부산 아이파크/새한자동차와 대우 시절

 



1. 개요
2. 시기별
2.1. 새한자동차 축구단
2.1.1. 당시 주요 선수
2.2. 대우 축구단
2.2.1. 당시 주요 선수
2.3. 대우 로얄즈
2.3.1. 당시 주요 선수
2.4. 부산 대우 로얄즈
2.4.1. 당시 주요 선수
3. 여담
4. 유산
5. 관련 문서


1. 개요


부산 아이파크는 1979년 11월 22일 창단한 실업축구단인 새한자동차 축구단을 모태로 하여 대우 로얄즈로 1983년 슈퍼리그 원년에 참가하였다. 원년 시즌이 끝난 후 1983년 12월 실업축구단에서 프로축구단으로 전환하였으며 이 후 부산 대우 로얄즈를 거쳐 2000년 현대산업개발에 인수되면서 대우 시절이 막을 내린다. 해당 문서에서는 부산 아이파크 이전인 새한자동차와 대우 시절에 대해 중점적으로 다룬다.

2. 시기별



2.1. 새한자동차 축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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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한자동차 축구단
1980시즌
부산 아이파크의 뿌리는 새한자동차 축구단에서 찾을 수 있다. 새한자동차는 대우자동차 (현재 한국GM)의 전신인 회사[1]로 1979년 11월 22일 해체된 산업은행 축구단 선수들을 주축으로 인천의 부평공장에서 창단식을 거행하였다.[2] 특이하게 당시 단장은 새한자동차의 신임부사장이었던 리처드 존슨이 맡았고 아래 사진에 나온 외국인이다. 1980 시즌 새한자동차 축구단으로 실업축구 대회에 참가하였으며 그 해 다시 구단명칭을 대우 축구단으로 개칭한다.
[image]
[image]

2.1.1. 당시 주요 선수



2.2. 대우 축구단


[image]
대우 축구단
1980시즌
1981 시즌
1982 시즌
1980년 실업축구 시즌 도중 대우 축구단으로 구단 명칭을 변경하였으며 1982년까지 대우 축구단으로 활동한다.

2.2.1. 당시 주요 선수



2.3. 대우 로얄즈


[image]

대우 로얄즈 축구단
1983 시즌
1984 시즌
1985 시즌
1986 시즌
1987 시즌
1988 시즌
1989 시즌
1990 시즌
1991 시즌
1992 시즌
1993 시즌
1994 시즌
1995 시즌
1983년 한국 프로축구 리그인 슈퍼리그가 창설되었고 실업축구단 자격으로 리그에 참가하게 되었다. 마스코트는 왕관으로 정하였고 구단 명칭을 대우 로얄즈로 확정하였다. 1983년 당시 다른 구단들은 돌핀스, 코끼리, 독수리, 황소, 호랑이 등을 마스코트로 정하며 동물의 왕국을 재현할 때 혼자 생소한 엠블럼에 로얄즈라는 명칭을 사용하여 세련된 이미지를 구축하였다. 축구단을 Football Club이 아닌 Football Team으로 넣은 것이 특이한 경우.
참고로 부산 아이파크는 왜 브랜드명이냐며 대우 로얄즈와 비교하는 경우도 있는데, 대우 로얄즈라는 명칭도 새한자동차-대우자동차에서 생산한 브랜드인 대우 로얄에서 따온 것이다. 말 그대로 팀명 = 자사 자동차 브랜드였던 셈. 엠블럼에 있는 왕관 모양은 로얄과 르망 차량에 들어간 로고에서도 볼 수 있다.
대우자동차의 부산 공장이 있고 대한민국의 제2위의 대도시인 부산을 주연고지로 하는 부산/경남을 연고지로 정하였고 부산 구덕운동장을 홈경기장으로 사용하였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1988 시즌에 4월 30일관련기사 , 6월 5일 관련기사 이렇게 2 경기를 사직 야구장에서 개최한적이 있었다.

2.3.1. 당시 주요 선수



2.4. 부산 대우 로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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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대우 로얄즈
1996 시즌
1997 시즌
1998 시즌
1999 시즌

부산 대우 로얄즈 시절은 1997시즌 전관왕 (K리그 우승, 리그컵 2개 대회 우승), 1998시즌 리그컵 준우승, 1999시즌 K리그 준우승 그리고 1997년 평균관중 2위 (11,717명), 1998년 평균관중 1위 (26,995명), 1999년 평균관중 2위 (19,798명) 이렇게 성적과 인기 모두 최고의 리즈 시절이었다. 이 시기의 부산 대우 로얄즈는 축구 게임 FIFA 2000에 클래식팀으로 K리그는 물론 아시아 클럽 최초로 수록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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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 시즌 스쿼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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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대우 로얄즈 서포터스 로얄 패밀리.

2.4.1. 당시 주요 선수



3. 여담


대우그룹이 축구단을 운영하던 시절 구단 운영 측면에서 다른 팀과 차별화된 부분이 많았다. 외국인 선수 선발에서도 남미 선수보다 동유럽권 선수를 뽑았고 당시로서는 매우 파격적으로 외국인 감독을 선임하는 등 투자에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그 시절에는 상당히 앞선 수준의 구단 운영 사례를 보여줬다.
이는 당시 대우그룹의 회장이던 김우중이 열렬한 축빠였기에 가능했다. 김우중은 포항제철 아톰즈 시절 유명 선수를 직접 스카웃하고 포항 스틸야드 건축 당시 자신이 직접 그라운드의 잡초를 뽑았던 박태준 회장과 더불어 축구사랑이 유별났던 인물 중 하나다.

4. 유산


2011년 10월 2일 부산 아이파크는 구덕운동장에서 경남FC와의 경기를 개최하며 과거 대우 로얄즈 시절 추억을 되살리기 위한 마케팅을 시도했지만 기대에 못 미쳤으며 2015년 7월 12일 수원 삼성과의 경기에서도 비슷한 컨셉의 마케팅을 했지만 별다른 소득은 없었다.
소득이 없는 게 당연하다. 안정환 같은 스타 선수들이 떠난 건 둘째 치더라도, 현대산업개발로 팀이 넘어간 후에 기업 홍보를 위해 팀 유니폼 색깔이나 앰블렘 등을 한번에 싹 다 바꿔버렸으니. 거기다 접근성이 놓은 구덕 대신에 아시아드 경기장을 홈으로 쓰면서 팬들이 대거 이탈했다. 2011년에 와서 뒷북을 쳤지만, 방치되다 시피 버려졌던 로얄즈 시절 올드팬들은 호응해 줄 만큼 애정이 남아 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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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관련 문서


[1] 실제로 1983년도에 사명을 대우자동차로 바꾼다.[2] 새한자동차는 1978년경 산업은행이 지분을 갖고 있다 이를 대우그룹에게 넘겼다. 축구단도 그래서인지 대우로 넘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