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광래

 






'''조광래의 감독직 및 기타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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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구 FC '''
'''Daegu FC'''
''' 이름 '''
'''조광래'''
'''趙廣來 | Cho Kwang-rae'''
''' 출생 '''
1954년 3월 19일 (70세) /
대한민국 경상남도 진주시
''' 국적 '''
대한민국
''' 신체 '''
170cm
''' 직업 '''
축구선수(미드필더 / 은퇴)
축구감독
축구경영인
''' 학력 '''
연세대학교 (응용통계학 / 졸업)
''' 소속 '''
''' 선수 '''
포항제철 축구단(1978~1980)
상무 축구단(1980~1982 / 군복무)
대우 축구단(1982~1983)
대우 로얄즈(1983~1987)
''' 감독 '''
대우 로얄즈(1987~1992/ 코치)
대한민국 대표팀(1992 / 코치)
대우 로얄즈(1992~1994)
수원 삼성 블루윙즈(1995~1997/ 코치)
안양 LG 치타스/FC 서울(1999~2004)
경남 FC(2008~2010)
대한민국 대표팀(2010~2011)
''' 행정가 '''
'''대구 FC(2014.9~ / 대표)'''
''' 국가대표 '''
100경기[1] 15골(대한민국 / 1975~1986)
1. 개요
4. 프런트 경력
4.1. 대구 FC 대표이사 겸 단장
5. 여담
6. 같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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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축구선수 출신 감독, 축구경영인.
2010년부터 2011년까지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았고, 2014년 9월대구 FC단장 겸 대표이사 사장으로 선임되어 구단 프런트로 일하고 있다.
선수 시절 컴퓨터 링커로 불릴만큼 실력있는 선수였고, 지도자로서도 안양 LG 치타스/FC 서울,경남 FC를 이끌며 명장으로 인정받았으나,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은 당시 국내파와 유럽파간의 파벌싸움을 초래한 장본인과 국가대표팀의 흑역사 시발점 등 부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이후 구단 프런트로 변신해 대구 FC를 이끌면서 초반에는 부정적인 평가도 있었지만, 이후 긍정적인 성과들을 내며 명행정가로 인정받고 있다.[2]

2. 선수 경력


''' '''

3. 감독 경력


''' '''

4. 프런트 경력



4.1. 대구 FC 대표이사 겸 단장


2014년 9월 12일, 대구 FC의 대표이사(사장) 겸 단장으로 선임되어 프런트로 일하게 되었다.
단장이라고 하지만 키프로스 현지에서 팀의 전지훈련 과정을 지켜보았고, 과거 대구를 거쳐갔던 이영진 감독, 손현준 감독, 안드레 감독 등이 본인과 전술적으로 잘 맞는 사람이거나 과거 안양에서 한솥밥을 먹던 인물이었다. 그렇다 보니 실제로 행정적인 면뿐만 아니라 구단의 훈련이나 전술에도 관여하고 있으며, 실제로 조 단장이 역임하는 기간 동안 있었던 감독들 모두 공격수 포함 11명 모두가 성실하게 수비하고, 간격을 촘촘하게 유지하면서 수비를 해낸 뒤 브라질 공격 트리오가 이끄는 역습으로 골문을 노리는 전술을 사용했었으며, 이러한 점에 있어서 사실상 '''대구 FC의 상왕이자 실세'''라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었다.[3] 이러한 의혹을 의식했는지 해명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안드레 감독이 외국인 감독이다보니 상대팀의 세부적인 부분 분석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있어 기술고문을 자처해 조언을 구할 때는 조금씩 도와주는 정도라고 언급했다.#
하지만 비슷한 의혹이 있는 어떤 축구단과 다르게 대구 FC가 1부리그 승격과 잔류 등의 좋은 성과를 거두고, 행정적인 측면에서도 유소년 육성 강화, 축구전용구장 건립[4]에 엄청난 공을 들였다.
특히 축구전용구장을 짓기 위해 대구광역시청과 시의회를 출근하듯이 방문하며 설득에 나섰고, 대구 FC 구단주인 권영진 대구광역시장이 그 집념과 의지를 인정했으며,[5] 축구전용구장 건립은 조광래와 구단에 전적으로 맡기겠다며 물심양면 지원을 약속했다. 이 때 조광래가 경남 FC 감독 시절 경험을 이야기하며 DGB대구은행파크에 지붕을 씌우기 위한 100억 원 가량의 예산 증액을 이끌어 내기도 했다.
시민구단에 부정적인 사람은 고작 축구 때문에 전용구장까지 지어야 하냐 했는데, 사실 대구시민운동장 일대는 2000년대 중반부터 야구장, 종합경기장을 불문하고 안전등급 E등급이라는 결과가 나와서 철거나 리모델링을 꾸준히 요구받아 왔다. 축구단이 없었어도, 어떻게든 시민운동장에 돈을 써야 했다. 어쨌든 그의 제안으로 DGB대구은행파크가 탄생했다.
2016년 승격 인터뷰에서 3년 내로 대구 FC를 K리그1 우승 경쟁을 할 수 있는 팀으로 만들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2018 시즌이 끝나고 2019년 목표를 리그 4위로 잡았다.#[6]
그리고 2018년 5월 13일 13라운드까지 단 1승에 승점 6점으로 최하위에 랭크되면서 강등 위기에 닥쳤으나, 월드컵 브레이크 이후 반등에 성공했다. 대구 FC 역사상 최초의 월드컵 출전 선수로 기록된 골키퍼 조현우 버프로 유료 관중이 대폭 증가했고, 조현우아시안게임와일드카드로 차출되어 갔음에도 예전보다 많은 관중이 대구스타디움의 좌석을 채웠다. 거기에 조현우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따면서 병역특례에도 골인하며 원군을 얻었다.
그리고 2018 시즌 막판 대구 FC의 기세가 하늘을 찌를 듯이 치솟고 있고, 5경기 연속 무패에 상위 스플릿 진출까지 노리고 있었으나 아쉽게 실패했다.
하지만 2년 연속 리그 잔류와 '''팀 창단 첫 FA컵 우승'''[7]을 하며 ACL 출전권을 획득했다는 것은 고무적이다. 이 과정에서 김대원, 정승원 등 젊은 선수들이 많이 기여하면서 조광래 유치원 이야기가 다시 나오기도 했다.
2018 FA컵에서 대구가 우승하면서 '''사상 첫 선수와 감독, 행정가로 우승을 모두 경험한 축구인이 되었다.'''
또한 2019년 고대하던 축구전용구장이 완공되면서 새롭게 맞이한 시즌 초반부터 두경기 연속 홈경기 매진을 기록했을뿐더러 대구도 이 매진된 경기에서 시즌 초반 무패 행진을 이어갔고, 리그와 ACL에서 기분 좋은 출발을 알리면서 대구 FC를 인기 구단으로 탈바꿈시키면서 흥행과 성적 두 마리의 토끼를 모두 잡는데 성공하면서 그야말로 대구 구단 최대 전성기를 열었고, 같은 축구인 출신의 대전 시티즌김호[8] 前 대표 이사하고는 정반대 행보를 보이고 있다.#
세징야에드가의 재계약을 따낸 내용이 기사화되면서 대구 팬들뿐 아니라 K리그 팬들에게도 칭찬받고 있다. 시민구단인 대구 특성상 돈을 많이 주는 건 불가능하니 세징야에겐 은퇴 이후의 지도자 생활과 아내[9]의 일자리를 챙겨 주었고 에드가에게는 은퇴까지 책임지도록 3년이라는 긴 기간의 계약을 제안하여 두 핵심 선수를 지켜내는 등 축구 행정가로서의 능력은 K리그 최상급. 취소선 드립이긴하지만 만화 축구를 실제로 재현해 내고 있는데 스리백을 기반으로 한 탄탄한 수비에 이은 빠른 역습을 통해서 리그 최소 실점이란 기록과 강력한 공격력을 바탕으로 대체스터 시티 소리를 듣고 있다. 케빈 더브라위너의 벨기에를 많이 참고한 전술이라는데 냉정히 이야기해서 대구의 선수들의 면면은 전북, 울산에 비해서 국대 차출 경험이나 네임 밸류가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유기적인 움직임을 통해 재미있는 축구를 보여주고 있다. 재미있는건 현재 대구 FC 전술이 국가대표팀 감독 시절의 자신의 전술과는 완전 상극이라는 것이다. FC 바르셀로나티키타카 전술을 모방하고 점유율을 중시한 과거 국가대표팀 시절에 비해 현재 대구의 속공, 역습 중심의 전술은 완전 반대라는 점이다.
이런 활약들을 바탕으로 구단 이사회에서 신임을 받아서 계약이 2년 연장됐다. 기사에서는 아직 할 일이 쌓여있다거나 대구가 K리그를 넘어 국내 프로스포츠 시장을 선도하고 다른 구단의 롤 모델이 될 수 있도록 활발한 활동을 펼치겠다는 식의 발언들을 남겼다.
2019 시즌을 마무리하면서 지켜내지 못한 우승공약을 다시 내걸며 2년 내 K리그 우승, 우승 이후 경기장 증축 등을 약속했다.#
그런데 안드레 감독이 팀에서 나가는 과정에서 논란이 생겼다. # 조 사장의 입장이 담긴 기사가 나올 때까지만 해도 대구 팬들은 안드레 감독을 배은망덕한 사람으로 봤지만[10], 안드레 감독은 기사를 보고 '''조광래 사장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11]'''고 해명을 내놓은 것.어떤 쪽이 진실이든지 간에 성공가도만을 걷던 최근의 대구에 암초가 생겼다.
선수들의 타팀 이적을 막고 과도하게 이적료를 부르거나 노예 계약이라는 비판도 있었다
대구 구단 측은 이에 대해 해명했고,# 구단과 안드레 감독 간의 진실 공방전이 벌어질 모양새다.

5. 여담


  • 위와 같은 활약상으로 조광래는 성적을 막론하고 자기 전술에 선수를 끼워맞추는 경향이 심한 감독들에게 붙는 별명이 되었다. 축구 커뮤니티에선 그런 감독들의 이름 앞 글자에 광래를 붙여서 부르는 경우가 많다. 가장 많이 쓰이는 경우는 안드레 빌라스보아스를 보광래라고 부르는 것이다.[12]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시절의 데이비드 모예스 역시 모광래란 별명이 붙었었고 펩 과르디올라조차 펩광래라는 별명이 붙었다.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인 요아힘 뢰프도 2014년 브라질 월드컵 16강 알제리전 때 이른바 포터백 전술로 인해 고전을 면치 못하는 모습을 보이자 뢰광래라는 별명으로 까였다.
  • 대표팀 감독 시절 지나칠 정도로 유럽파 선수들을 우선시하였다. 심지어 그 선수가 부상을 당하건 슬럼프를 겪든 2군에 내려가 있든 상관없이[13] 대표팀에 합류시켰는데 나이에 상관없이 수집에 가깝게 선발하고 실제 경기에서는 쓰는 선수만 줄기차게 써대며 종국에는 손흥민의 아버지 손웅정 씨가 항명하는 사건이 일어났을 정도며 나이 어린 선수들을 1군에 기용하자 이들의 유럽 소속팀들이 올림픽 대표 선출을 거부하여[14] 홍명보 감독의 선택지를 확 좁혀버려 올림픽 대표팀 선수를 구하기 위해 전국 팔도를 이잡듯이 뒤져 선수단을 구성하여 최종예선까지 치렀다. 올림픽 대표팀에서 가능성을 보인 선수마저도 조광래 감독이 뽑아가서 올림픽 최종예선보다 며칠 더 앞서 열리는 경기에 출전시켜서 홍명보 감독은 울며 겨자먹기로 또 선수를 찾아 나섰어야 했다.
거기에 더해 골키퍼를 제외한 전 포지션에서 사실상 유럽팀에 소속되어 있는 선수들은 베스트 11 내지 교체 1, 2, 3자원이 정해져 있으며 23명 중 해외파 14명을 제외한 9명 중 골키퍼 후보 2명을 제외하고 남은 자리 7명은 J리그나 다른 해외 선수들의 자리였고 그나마 차출이 어렵거나 남은 빈 자리를 K리그 선수들에게 주는 자리였고 대표팀 소집 훈련 시에는 1군과 2군을 해외파와 비해외파로 나누어 훈련을 하였다.[15]
유일하게 중용된 K리거 필드 플레이어가 이용래인데 그는 2011년 수원과 대표팀을 오가며 60경기를 넘게 뛰는 혹사를 당하게 된다. 심지어 풀타임 경기가 거의 대부분이었고 중동 원정도 예외 없었다. 이후 이용래는 폼이 죽어버려 그저 그런 선수가 되어 버리고 의경(안산 경찰청) 입대를 하게 된다.[16]
  • 사투리가 굉장히 심하다. 일례로 대표팀 훈련 때 무슨 말인지 모르는 경우가 많아서, 박주영이나 윤빛가람 등 경상도 출신 선수들이 통역을 해 준적도 있었다. 그 선수들도 각각 대구랑 창원 출신이라 진주출신인 조광래감독이 말하는거에 완전히는 못알아 들을수도 있었겠지만. 다만 안드레 감독은 그나마 조금 알아듣는다고 한다.
  • 대구 FC 대표직을 수행하면서 열정적인 모습 때문에 이런 의혹이 있기도 했지만 본인이 이 의혹에 대해선 전면 부인했다. 오히려 초보 감독인 안드레가 조언을 구하러 온다고. 그리고 이런 의혹을 제기한 기자는 크게 비판받는 중이다.[17] 그러나 2020년 지역 신문인 영남일보에서 외혹도 아니고 미담인 것처럼(...) 선수단 개입을 전했다. 같은 해 이병근 감독대행은 아예 조 사장께 SOS를 요청했다며 당연한 일처럼 생각하는 듯한 인터뷰를 남겼다.

6. 같이보기




[1] 1982년 3월 7일에 바그다드에서 열린 이라크와의 친선 경기가 누락되었다고 축구협회가 FIFA에 정정 요청을 했다. 아직 정정요청이 인용되지 않아 2019년 12월 FIFA 기록에서는 99경기 출전이다.[2] 2019년 새롭게 개장한 DGB대구은행파크의 관중몰이를 이끈 주역이다. 월드컵 특수의 영향을 감안해도 관중 숫자가 거의 300%대로 증가했다.[3] 조광래 대표 본인도 이걸 인식하고 있는지, 2018 시즌에는 되도록이면 안드레 감독과 독대를 하는 모습은 잘 안드러내려고 한다.[4] 야구단대구스타디움 근처로 오고, 축구단이 야구장 옆의 종합 경기장으로 가는 상황. 야구장은 일부 시설을 철거하고 이승엽 야구장 으로 리모델링했으며, 기존 종합경기장 자리에는 축구전용구장을 짓게 되었다.[5] 도심재생사업을 고민하던 권영진 시장이 대구시민운동장 주경기장을 축구전용구장으로 리모델링하자는 조광래의 의견을 수용했다고 한다. 시 외곽의 신 구장으로 떠난 삼성 라이온즈의 공백을 대구 FC로 메운다는 역발상이었다.[6] 재미있는 건 2019년 3~4위를 오르내리며 끝내 상위스플릿에 안착했는데 시즌 개막 직후 얇은 선수층이 부상악재 등으로 찢겨나가기 전까지 우승경쟁도 하면서 저 2016년에 얘기한 3년내 우승경쟁 인터뷰도 어느정도 맞아떨어졌다. [7] 비록 FA컵이지만, 프로농구와 프로야구 우승을 한꺼번에 석권했던 2002년 이후 오랜만에 대구광역시 연고 프로구단이 모처럼 거둔 우승 기록이다.[8] 김호와는 수원 삼성 블루윙즈 시절 감독과 수석코치 사이로 지냈었는데, 이후 둘의 불화로 인해 조광래가 안양 LG 치타스의 감독으로 떠나게 되며, 서로 대척하게 되었다. K리그의 유명한 더비매치인 지지대 더비는 바로 이들 두 명의 관계로 인해 탄생하게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9] 축구선수 출신으로, 유소년 지도사 자격증이 있다.[10] 그럴 만도 한 것이 조 사장의 입장을 전한 기사에는 안드레 감독의 재계약 협상 태도가 미진했고 훈련 지도도 불성실했으며 퇴단할 때 보도자료에 돈 때문에 나간다는 인상을 안 주도록 보도자료에 그런 표현을 넣지 말라는 말까지 했다는 내용이 들어있었다.[11] 안드레 감독의 입장은 자신은 애초부터 대구를 떠날 생각이 없었고, 그 때문에 전지훈련지인 중국 쿤밍까지 날아가서 미계약 상태로(즉 무급이다) 10일 동안 훈련지도를 했다는 것이다. 이쪽이 사실이라면 조광래 사장은 계약도 못했으면서 대구에 남을 생각으로 브라질에서 중국까지 달려와 팀을 지도한 안드레 감독을 언플로 매장하려 한 셈이 된다.[12] 사커라인에서 광래라고 검색하면 2013년 12월 즈음 글에 조광래보다 보광래가 훨씬 많이 등장한다.[13] 컨디션에 문제가 있음에도 계속 출전시켜 혹사시키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해외파라는 특성상 바다 건너 와서 시차 적응까지 해야 한다는 점과 이동 시간 동안 소속팀에서의 적응이나 컨디션을 추스릴 시간도 빼앗겼기 때문에 많은 비판을 받았다.[14] 유럽 팀들은 23세 이하의 선수라도 성인 대표팀에 선출되어 뛰게 될 경우 성인 선수로 분류하여 U-23 대표팀 이하의 대표팀 차출을 거부한다.[15] 히딩크 감독의 경우, 선수들이 식사할 때 선후배로 나뉘어 앉은 것조차도 좋지 않다며 비판하고 시정했을 정도였다.[16] 대표팀에서 뛸 때 비판을 많이 듣긴 했지만 그렇게 망가질 정도로 못하는 선수는 아니었다.[17] 해당 기자 자체가 야구쪽에서 우동 건으로 입방아에 올랐던 인물이라 팬들도 저 기사를 별로 신뢰하지 않긴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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