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 존 스터드
1. 개요
1948년 2월 19일생으로 펜실베이니아 주 버틀러가 고향이다. 전형적인 빅 머슬 가이지만 WWE에서 치뤄진 로얄럼블의 두번째 우승자이자 악역으로도 큰 인상을 남겼으며, 프로레슬러들에게 트레이너로도 활약했다.
WWF 테마곡[1]
WWE 2K14 테마곡[2]
2. 커리어
2.1. 데뷔
빅 존 스터드는 킬러 코왈스키 밑에서 훈련을 받은 후, 1976년에 코왈스키의 파트너로 WWE에 데뷔한다. 그와 코왈스키는 복면을 쓰고 엑세큐셔너스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며, 같은 해 월드 태그팀 챔피언이 되기도 했다. 한편, 빅 존 스터드는 동시기에 척 오코너라는 이름으로 복면 없이도 활동했다.
그 후 빅 존 스터드는 WWE를 떠난 뒤 미드 애틀랜틱 지역에서 마스크드 수퍼스타 #2로서 활동했다. 빅 존 스터드는 이 시기에 켄 파테라와 처음으로 조우해, 1978년에 미드 애틀랜틱 태그팀 타이틀을 획득하기도 했다. 하지만 블랙잭 멀리건과의 매치에서 패배한 후 가면을 벗고 빅 존 스터드라는 이름으로 활약하기 시작했다.
2.2. WWF
빅 존 스터드는 1980년대 초반에 플로리다, AWA, NWA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WWE로 복귀하였다. 빅 존 스터드는 원래 프레디 블래시를 매니저로 두었다가 히낸 패밀리의 일원으로 전향해, WWE의 '진정한 거인'을 가리기 위해 안드레 더 자이언트와 오랜 대립을 펼쳤다.
그렇게 빅 존 스터드는 판테라, 히낸과 함께 안드레의 머리카락을 자르거나, 몇 달 후 메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열린 첫 레슬매니아에서 15,000미국 달러 바디슬램 챌린지를 개최 했다가 안드레가 스터드를 메치고 상금을 챙기려 하자 히낸이 그가 돈을 관중에게 뿌리기 전에 강탈해가 방해하는 등 치열하게 대립했다. 그 후 히낸 패밀리의 일원이었던 빅 존 스터드와 킹 콩 번디는 1985년에 태그팀을 결성해 안드레 & 헐크 호건 같은 팀과 자주 마찰을 겪었다.
스터드는 레슬매니아 2의 WWE/NFL 배틀 로얄[3] 에 참가해 또 한 번 레슬매니아 명장면을 만들었다. 이 배틀 로얄은 시카고에서 열렸는데, 빅 존 스터드는 시카고 베어스의 전설인 윌리엄 '리프리지레이터' 페리를 제거시키며 관중의 어그로를 끌었다. 그렇게 탈락한 페리는 악수를 청하는듯 싶다가 빅 존 스터드를 탑 로프 밖으로 떨어뜨려 탈락시키는 역관광을 보여주었다.
그 후, 스터드는 WWE를 2년정도 떠났다가, 복귀해 안드레와의 대립을 재점화시켰다. 하지만 이번에는 안드레가 사악한 히낸의 수하에 있었고, 팬들은 빅 존 스터드를 응원했다. 스터드는 1989년 로얄 럼블 매치에 27번으로 등장해 아캄과 테드 디비아시, 버질의 다굴을 버텨내고 테드 디비아시를 마지막으로 탈락시키며 우승을 차지하는 쾌거를 누린다. 그는 같은 해에 열린 레슬매니아 V에서 안드레와 제이크 로버츠의 시합의 특별 심판 역을 맡았다. 하지만 빅 존 스터드는 1989년 중반에 WWE를 떠남과 동시에 은퇴했다.
2.3. 은퇴 후
은퇴 후 빅 존 스터드는 몇 해 동안 신인 선수를 육성했다. 그 중 가장 유명했던 인물은 스승을 향한 존경심을 담아 '빅' 론 스터드라는 이름으로 WCW에서 활동하기도 하였던 론 레이스였다. 또, 그는 할리우드에도 몸을 담궈, A특공대와 헌터 등의 드라마와 할리와 말보로 맨 같은 영화에도 등장했다.
2.4. 사망
하지만 슬프게도 1995년 3월 20일에 간암과 호지킨병의 합병증으로 유명을 달리했다. 빅 존 스터드는 2004년에 레슬매니아 XX가 열리기 전 날에 20년 전 레슬매니아 명장면을 만들었던 뉴욕에서 WWE 명예의 전당에 사후 헌액됐다. 후배 거인인 빅 쇼가 스터드를 헌액했고, 아들인 존 민튼 주니어[4] 가 아버지를 대신해 명예의 전당 훈장을 수여받았다.
3. 기타
- WWE 로얄럼블 우승자들 중에서는 나무위키에서 가장 마지막으로 개인 문서가 작성된 선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