삿포로 참사(축구)
1. 개요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참사 중 하나.
2011년 8월 10일 삿포로에서 벌어진 한국과 일본과의 친선경기에서 벌어진 충격적인 대패. 무려 37년만에 3점 차이 패배를 당하며 대표팀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욕을 모조리 쳐먹었다.
2. 서막
이미 징조가 보이긴 했다. 먼저 조광래의 대표팀 감독 3번째 경기가 한국에서 열린 한일전이었는데, 남아공 월드컵 직전에 박지성의 산책과 더불어 일본을 탈탈 털어대던 경기력은 어디가고 조광래만의 포지션놀이와 그가 원하는 패스축구를 하다 도리어 일본한테 패스 교육을 받으면서 이렇다 할 찬스 없이 0대0으로 비겼다. 그리고 아시안컵 4강전에서 대한민국 대표팀 올스타를 출전시켰음에도 그가 원하는 점유율은 오히려 일본에게 밀리며 연장 후반에 어찌어찌 극장골을 넣어 간신히 승부차기까지 끌고 갔더니 3연속 실축으로 일본한테 결승티켓을 내주는 등 실력차가 좁혀졌다는게 눈에 보일 정도였다.
그리고 삿포로 원정 당시엔 박지성과 이영표가 대표팀 은퇴를 한지 얼마 안 되었고, 부상으로 인해 이청용과 지동원이 불참한 상태였다. 반대로 일본은 불과 1년 3개월전 박지성과 박주영의 득점으로 사이타마에서 일본의 콧대를 꺾은 그 경기에 대한 복수를 다짐하듯이 베스트 11중 7명을 유럽파를 채워 넣은 초호화 멤버를 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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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이전 두 번의 한일전처럼 그럭저럭 괜찮게 붙었다. 그러나 전반 25분 왼쪽 수비수였던 김영권이 발목 부상으로 조기 교체되는 이상 징후가 발생했으며 김영권 교체로 들어간 박원재마저 얼마 되지도 않아 엔도 야스히토의 강슛을 머리로 막다가 가벼운 뇌진탕 증세를 일으켜 다시 박주호로 교체되는 바람에 수비진이 급격히 무너졌다. 교체카드를 왕창 쓴 직후부터 그나마 생긴 유기적인 움직임은 그대로 실종되고 수비하기에만 급급하다 전반 35분, 이근호가 수비하면서 공을 따내 역습하려다 실수로 일본한데 다시 공이 넘어갔고 그대로 득점으로 연결 시키면서 선제골이 나왔다.[1]
3. 충격과 공포의 0:3 패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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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한국 대표팀은 일방적으로 뚜드려맞게 된다. 전반전은 악재 속에서도 잘 싸웠다고 해줄 수 있었지만 후반전은 한국 축구 역대급 졸전으로 아무것도 못하고 반코트 게임을 당한 끝에 후반 8분과 후반 10분에 혼다 케이스케와 가가와 신지가 득점에 성공하며 0:3으로 점수차가 벌어졌다.[2] 3점밖에 안 먹은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할 정도로 참담한 상황이었는데, 정성룡이 간신히 쳐낸 슈팅이 여럿에 일본의 1대1찬스에서 날린 슈팅이 골포스트를 맞고 나오기도 했다.
0:5로 밀렸어도 할말이 없던 상황이었다. 경기가 끝난 후 한국 선수들도 '''일본이 너무 강했다'''며 인정했고, 가가와 신지는 "우리가 패스할 때마다 공간이 생겼다. 한국 선수들은 우리를 따라오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이런 말을 할만도 한게, 카가와를 비롯한 일본 선수들은 전방위 압박에 약한 대신 '''패싱 능력은 탈아시아급이다'''. 그렇기 때문에 역대 한국 감독들이 일본이 패스를 시도하기도 전에 강력한 압박과 피지컬로 찍어 눌렀던 것이다. 간혹 유럽팀들이 일본을 무시하고 압박을 풀다가 일본에 의외의 일격을 맞는 경우가 많다. 이런 선수들 상대로 압박을 풀으니 그 뒤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3]
3골 차이로 완벽하게 발린 것은 37년 만이고, 37년 전에는 그나마 한 골을 넣기라도 했지 이번엔 완벽히 '''클린시트'''를 안겨주었다. 경기 내용면으로도 왼쪽 수비는 자동문이었으며 미드필드진은 공을 잡으면 당황했다. 그나마 축구 제대로 한 선수는 차두리를 위시한 노장들. 답이 없다. 이렇게 참패를 당한 광경을 본 한국의 축구 팬들은 단체로 뒷목을 잡았다. 중앙 미드필더에다가 오랜 기간 경기를 못 뛴 구자철을 윙으로 박아 넣는 등 헛웃음만 나오는 선수 기용과 전방압박의 실종, 혼다와 가가와의 개인기에 한국 미드필더진, 수비진이 초토화가 되었고[4] [5] 전방에 공을 보내기는커녕 별의 별 희한한 이유로 일본 측에 공이 넘어갔다.
일본이 미칠듯이 두들겨 팬 이후 압박이 느슨해지면서 막판에 공격 찬스를 여럿 잡긴 했으나 김신욱과 구자철이 주어진 결정적인 기회를 약속이나 한 듯 어처구니 없이 날렸다. 많은 사람들이 ‘3골차는 안된다.’ ‘한골이라도 넣어라 축막ㅅㅂ들아.’를 염원했지만 결국 반전은 없었다. 특히 구자철은 적어도 2골은 확실히 넣을 수 있는 찬스를 잡았지만 경기감각이 없었는지 성공시키지 못하며 아쉬움만 남겼다.
가뜩이나 대한항공 A380 독도 시범비행 이후로 일본이 깽판을 치는 것 때문에 국민 감정상 매우 중요한 경기였는데 졌으니 박탈감이 보통이 아니다. 2011 아시안컵도 그렇고 한/일 양국의 선수들의 이적 소식이나 경기 결과를 볼 때 더 이상 아시아 최강소리하기 힘들어지게 되었다.
감독은 패전에 대해 부상, 원정, 심판 등 여러 핑계를 대며 먹을 욕을 곱절로 늘렸다. 감독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아쉬울 만한 상황이긴 했는데, 당시 이청용이나 손흥민, 지동원이 각각 부상등의 개인사정으로 인해 소집되지 못한데다 박주영과 기성용은 제 컨디션이 아니었고 대표팀은 일본으로 건너가 조명시설조차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동네축구장에서 연습했다.[6]
더군다나 경기가 열린 삿포로 돔은 돔 구장이라서 일본은 관중들의 응원 소리가 버프되었고 통풍이 잘 되질 않아 경기장은 습도가 80%가 넘는 찜통이 되어버렸다. 한국 선수들은 돔 구장에 적응이 덜 된 탓에 당황스러운 모습을 감추지 못했다. 반면 일본은 홈경기인데다 베스트 멤버에서 나가토모 유토만이 불참한 최상의 컨디션 등등 입에 담아봤자 비참해지기만하는 변명거리는 많았지만, 부상자가 많아서 패했다는 건 핑계일 뿐이다. 차두리 말대로 크게 반성해서 좋은 기회로 삼는 게 나을 것이다.
4. 여담
- 국내 기사로 혼다가 조롱적인 세레모니를 했다고 개드립을 치고 있다. 뭐 댓글로는 기자에 대한 비난이 압도적으로 폭발했지만.
- 일본 대표팀은 이번 한일전이 열리기 약 일주일 전에 심근경색으로 사망한 마츠다 나오키를 애도하기 위해 모두 완장을 차고 출장했다. 적절하게도 마츠다 나오키의 생전 등번호는 3번이었다.
- 이 경기에서 부상당한 박원재는 부분적인 기억상실증세를 보였다. 어쩌면 이딴 경기 기억하고 싶지 않아!!라는 뇌의 자기방어일지도...
- 언론으로 작게 씹힌 기사이긴 하지만, 조중연 대한축구협회 회장은 여러 도내 축구협회장들을 데려와 직접 경기를 관람했다가 선거를 앞두고 재선을 노리고자 선거운동 한 거 아니냐는 지적을 받았다. 뭐 경기를 대패하면서 현장에서 본 조회장과 다른 도내회장들 기분은 어땠을려나.
- 아시안컵 4강전에서 원숭이 세레모니를 시전한 기성용이 선발 출전했는데, 전반전에 경고를 받자 일본 관중들의 어마어마한 야유가 쏟아졌다. 기성용이 공을 잡을때마다 야유가 일 정도로 제대로 찍혔는데 하필 카드를 받아 이목이 쏠리는 바람에...
- 남아공 월드컵 파라과이전에서 승부차기 실축으로 파라과이의 8강 진출에 공헌한 고마노도 선발로 나왔는데, 측면에서 박주영을 간단하게 뚫어버리며 혼다의 두번째 골에 큰 공헌을 했다.
- 1년 후 2012 런던 올림픽에서 영국 축구 국가대표팀이 이 때의 일본을 본받아 한국과의 경기가 예정된 카디프의 밀레니엄 스타디움이 돔 구장이란 점을 악용해 잔디 보호라는 핑계를 대고 지붕을 닫고 경기를 했지만 한국 선수들은 두 번 당하지 않았고 1 : 1 무승부를 거둔 후 승부차기에서 5 : 4로 꺾어 영국의 꼼수를 처절하게 응징했다.
- 연령은 달랐지만 이 참사가 벌어진 뒤 딱 1년 되던 날에 일본과의 리턴 매치가 성사되었으며 자세한 건 여기 참고.
5. 둘러보기
[1] 이근호의 실수도 있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기성용의 아무 생각 없는 전진수비로 공간이 텅 비어버리는 바람에 카가와가 손쉽게 공간침투 후 선제골을 넣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2] 게다가 후반 44분 경에는 당시 혼다의 전매특기였던 무회전 프리킥도 보여주었다. 정성룡이 몸을 날려 막았기에 망정이었지 카메라도 공의 궤적을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엄청난 스피드의 슛이었다.[3] 거기다 공미를 보는 혼다 케이스케는 공미라는 높은 지점에서도 한국의 힘에 밀리지 않는 피지컬 + 한국 수비를 갖고 노는 테크닉을 겸비한, 일본 초유의 공격형 미드필더였다. 일반적인 일본 선수였다면 조광래 생각대로였을지 모르겠지만...[4] 사실 좀 불운했던게 김영권이 부상으로 아웃되고 교체로 들어갔던 박원재가 5분만에 뇌진탕으로 아웃되어 박주호가 투입되는 등 수비진 왼쪽이 붕괴되긴 했다. 하지만 전방 압박이 실종된 상황에서 불운이 없었다고 해도 과연 잘 해냈을지는 의문이다. 게다가 김영권도 교체전까지 썩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고...박주호는 탈탈 털렸다(...)[5] 더불어 당시 센터백 중 1명이었던 이재성은 이 경기가 무려 국가대표 데뷔전이었다. 김영권 박원재 같은 풀백들도 당시 A매치가 경험이 한 손으로 꼽을 정도의 새내기들이었다는 것을 생각하면...한일전 일본 원정에서 뭔 깡을 부린 걸까.[6] 이에 일본은 자기들 입장에서도 삿포로는 거의 원정경기급이라며 응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