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르게이 하리토노프

 

종합격투기 관련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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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러시아어: Сергей Валерьевич Харитонов
영어:Sergei Valerievich Kharitonov
한국어: 세르게이 발레리예비치 하리토노프
'''생년월일'''
'''1980년 8월 18일 (44세)'''
'''국적'''
'''러시아''' [image]
'''출생지'''
플레세츠크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 [image]
'''신체'''
'''193cm / 117kg /193cm'''
'''종합격투기 전적'''
''' 42전 32승 8패 2무효'''
''''''
'''21KO, 9SUB, 2판정'''
''''''
'''4KO, 3SUB, 1판정'''
'''킥복싱 전적'''
'''18전 11승 7패 (5KO)'''
'''복싱 전적'''
'''1전 1승 (1KO)'''
'''링네임'''
'''Paratrooper'''
'''SNS'''

러시아 공수부대인 106공정사단[1] 출신의 격투가로 구 PRIDE 시절 러시안 탑 팀의 강자 2010년 10월에 가진 UFC 해설위원 김대환과의 인터뷰
1. 전적
2. 파이팅 스타일
3. 기타


1. 전적



1.1. 종합격투기


2000년 20세라는 비교적 젊은 나이에 MMA 커리어를 시작한 하리토노프는 2003년 10월 PRIDE 무사도에서 메이저 무대에 데뷔한다. 2004년 4월 헤비급 그랑프리에서 무릴로 닌자와 마주쳐 한 수 위의 피지컬과 리치를 십분 활용하여 타격전에서 닌자를 압도, 수차례 보디를 적중시켜 닌자의 발을 묶은 후 레프트훅으로 경기를 마무리한다.
2004년 6월에는 판크라스 출신의 세미 슐트를 상대한다. 닌자전과는 반대로 자신보다 큰 선수를 상대하게 된 하리토노프는 1라운드 3분경 원래그 테이크다운에 성공, 상위에서 파운딩을 수없이 꽂아넣었다. 마운트를 잡은 후, 다시 오른 무릎으로 상대의 왼팔을 제압하고 자유로워진 오른손으로 슐트의 얼굴을 난타했다. 슐트의 얼굴은 금새 피로 물들었고 레프리가 TKO를 선언하며 시합이 종료되었다. 유혈이 낭자했던 이 시합은 MMA 역사상 가장 잔혹한 경기 중 하나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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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 '미노타우로' 안토니오 호드리고 노게이라에게 첫 패배를 당한다. 2라운드 내내 노게이라를 열심히 괴롭혔으나 결국 마운트를 내주기도 하며 만장일치로 판정패했다.
2005년 6월에는 UFC의 강자였던 '더 락' 페드로 히조와 격돌한다. 타격전의 양상을 보인 시합에서 히조를 복싱으로 완전히 제압하며 라이트에 이은 사커킥과 파운딩으로 완승을 거두었다. 2005년 10월에는 파브리시오 베우둠마저 접전 끝에 판정으로 잡으며 상승세를 이어갔다. 다만 박빙의 승부였기에 논란이 좀 있었고 경기도 지루해서 좀 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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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조의 몰락
하지만 2006년 2월 알리스타 오브레임에게 패하는 것을 기점으로 부진의 늪에 빠지게 된다. 지금은 상상하기 어렵지만 당시 오브레임은 증량을 하기 전이라 한체급 낮은 프라이드 미들급(-93kg)으로 활약중이었고 체형도 지금보다 훨씬 날씬했다. 그 체급 대에서 마우리시오 쇼군, 척 리델 등에게 '5분의 힘'다운 초반 기세로 상당히 위협적인 모습을 연출하고 맥없이 진 적이 있었기도 했고, 헤비급에서 빅4로까지 불리던 세르게이의 우세를 점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으나, 경기는 반대로 내츄럴 헤비급으로 보일만큼 제대로 증량해서 벌크업을 하고 나왔던 오브레임의 관광승이었다.[2]
하리토노프는 경기 초반부터 사이드를 내주었고[3] 이내 마운트까지 빼앗긴다. 강력한 좌우 파운딩에 스윕을 시도했지만 오히려 길로틴을 풀다가 사이드를 빼앗기고는 그라운드 4점 포지션 니킥 세례에 TKO로 패했다. 세미 슐츠를 피범벅으로 만들던 장면 만큼이나 반대로 잔인하게 당했는데, 오브레임의 4점 포지션 니킥에 뻑!뻑! 소리가 생생하게 들릴만큼 안면과 머리를 무방비로 난타당하며 실신 KO 당했다. 2006년 9월의 알렉산더 예멜리아넨코와의 대전에서도 팽팽한 타격전을 벌이다 안면에 클린히트를 허용하고 가드를 내리며 허세를 부렸지만, 바로 다리가 풀려 호랑나비 춤을 추다 다시 맞아서 쓰러지는 망신스러운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결국 이어지는 파운딩 세례에 피투성이가 되며 KO 패.
2007년 2월 미국 대회에서 마이크 루소와의 대결에서는 번번히 싱글렉에 당하며 하위에 깔렸으나 1라운드 종료를 1분 남긴 상황에서 암바를 성공시켜 역전승을 거둔다. 그런데 루소가 4번이나 탭을 쳐놓고도 아니라고 박박 잡아떼는 바람에 잡음이 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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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9월 K-1 히어로즈에서 알리스타 오브레임을 핵꿀밤으로 MMA 역사에 남을 굴욕적인 실신 KO를 선사하며 리벤지에 성공하고 2008년 DREAM에서 지미 암브리즈[4]까지 가볍게 때려잡으며 3연승을 거뒀으나 2009년 4월 DREAM에서 제프 몬슨에게 1라운드 초반 테익다운을 한 번 당한 후 이렇다할 저항 한번 해보지 못하고 노스사우스 초크로 패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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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2월 31일 K-1 다이너마이트에서 미즈노 타츠야를 가볍게 때려잡았다. WGP의 대미지가 남아있는 상태였지만 역시 미즈노 선에서 어떻게 할만한 선수는 아닌 듯.
2011년 2월 12일 Strikeforce에서 안드레이 알롭스키와 대결했다. 알롭스키의 복싱 테크닉에 고전하는 듯 했으나 1라운드 3분여만에 펀치러시로 다운을 뺏고 파운딩으로 알롭스키를 실신시키며 헤비급 토너먼트 2회전에 진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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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9월 Strikeforce에서 토너먼트 2회전 상대인 조쉬 바넷과 겨루게 되었다. 경기 초반 타격전에서는 약간 앞선 듯 하였으나 테익다운을 뺏긴 후로는 이렇다 할 저항도 못하고 마운트-백마운트 다 내주는 폭풍관광을 당한 끝에 암트라이앵글 초크로 패했다.
2012년 6월 MMA: Russian Open championship에서 존 델가도를 34초만에 키락으로 초살시키면서 1승을 챙겼다. 2013년 11월에는 M-1 Challenge 43에서 알렉세이 쿠딘을, 2014년 3월에는 Tech-Krep Fighting Championship에서 타일러 이스트를, 2014년 11월과 2015년 7월 M-1 Challenge 53, 59에서 케니 가너를 모두 TKO로 잡아내며 연승행진을 이어가는 중.
그리고 2016년 2월 Bellator MMA와 계약했다는 소식이 떴다.# 11월 벨라토르 163대회에서 하비 아얄라를 상대로 충격의 16초 초살KO패를 당했다. 하리토노프를 밀어주기 위한 떡밥선수였는데(9승5패인 b급 스트라이커) 자신의 장기인 카운터펀치를 시도했으나 상대의 오버핸드 라이트훅을 피하지 못하고 직격당했다. 후에 이 선수는 로이 넬슨,칙 콩고에게 패배했다.
Bellator 175에서 체이스 곰리를 KO로 잡고 재기에 성공하였다.
Bellator 207에서 로이 넬슨을 KO시켰다. 하지만 1라운드에 나온 반칙성 니킥이 흠이었다.
Bellator 215에서 맷 미트리온과의 경기에서 경기 시작후 15초 만에 미트리온의 로블로를 맞고 경기가 중단되었고 결국 경기는 무효처리되었다.
Bellator 225에서 다시 맞붙은 맷 미트리온을 KO로 잡았고, Bellator 234에서는 린튼 바셀에게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며 TKO패를 당했다.
그 후 타 중소단체에서 2연승 중이다.

1.2. 킥복싱


골든 글로리로 이적한 후에는 K-1 입식에도 용돈벌이에 나섰다. 지명도만 높으면 입식이고 종합이고 닥치고 내보내는 FEG의 경영방침에 따른 선발이었는데, 당연한 얘기지만 그다지 좋은 활약을 보이지 못했다.
2009년 12월 5일 K-1 WGP 2009 파이널에 리저브파이트로 출전하여 다니엘 기타를 상대로 입식 데뷔전을 가졌으나 강력한 기타의 로킥에 탈탈 털리며 결국 로킥 TKO패를 당했다.
2010년 10월 2일 K-1 WGP 2010 개막전에 슈퍼파이트로 출전, 사토 타쿠미에게 폭풍같은 펀치 러쉬로 3번의 다운을 빼앗으며 KO승리를 거뒀다.
2010년 12월 4일 K-1 WGP 2010 결승 토너먼트에서 슈퍼파이트에 출전하여 2009 K-1 서울 그랑프리 우승자인 싱 자이딥(싱그 하트 자디브)와 대결하였다. 경기 내내 전진하는 모습을 보이며 어느정도 하는 듯 하더니 2분 쯤에 큰 펀치를 한대 허용한 후로는 자이딥의 잔펀치를 계속 허용하며 불안한 모습을 보이더니 2번이나 다운을 당하면서 KO로 패배하였다.
2011년 5월에는 골든 글로리 주최 대회인 United Glory 14에 출전해 마이티 모를 어퍼컷으로 KO시켰고, 2012년 3월 United Glory 15에서도 마크 밀러를 KO시키며 2연승을 거뒀다.
2012년 12월 31일 Dream 18에서 열린 Glory 4 토너먼트[5] 에서 리코 베르호벤에게 판정패했다.
2013년 10월 12일 Glory 11에서 다니엘 샘에게, 2013년 12월 21일 Glory 13에서 제롬 르 밴너에게 심판 전원일치 판정승을 거뒀다.
2014년 5월 3일 Glory 16에서 앤더슨 실바[6]에게 판정패를 당했으나 2014년 10월 11일 W5 Grand Prix에서 TKO승으로 리벤지에 성공하며 W5 헤비급 타이틀도 획득.

1.3. 복싱


한 때 타지키스탄의 복싱 국대에 발탁되기도 했다. 구소련 연방에서 해체한 연방국가들은 가끔 러시아 출신의 선수들을 자국 국가대표로 출전시키는 경우가 있으며 세르게이의 경우 러시아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결승에 손쉽게 진출했음에도 불구하고 고질적인 어깨부상으로 인하여 결승행 티켓을 양보하게 되자 타지키스탄에서 그를 섭외하여 국가대표로 출전시켰다.
슈퍼헤비급에서 출전하여 2003년 중앙아시아 게임 은메달을 획득하였고, 2004 아시아 아마추어 복싱 대회에서도 은메달을 땄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출전권도 획득하였었던 바 있지만 프라이드 그랑프리 출전으로 인하여 포기한 바 있다.
복싱 스킬같은 경우에는 사실상 MMA의 라이벌로 여겨졌던 알렉산더보다 테크닉의 면에서는 몇길 위며 다소 둔탁하지만 바디워크가 뛰어나고 패링도 자유자재로 쓴다. 잽을 이용한 앞손싸움에서 바디샷으로 이어지며 접근하여 둔탁한 훅과 어퍼컷 연타를 애용하는 스타일이며 마지막 접근전에서 거의 피니쉬를 시키는 편이다. 동유럽 아마추어 복싱계에서는 꽤나 유명하며 현 동유럽 복싱 유망주나 이름날리는 선수들은 대부분 아마추어 시절 그와 주먹을 맞대본 적이 있을 정도이다.
사무엘 피터를 꺾고 복싱 헤비급의 탑콘텐더로 떠오른 로버트 헬레니우스도 하리토노프와 주먹을 섞은 바 있다. 결과는 32:21로 헬레니우스의 승리. 그러나 충격은 헬레니우스가 더 많이 받았다.
물론 이름 꽤나 있다는 선수들과의 경기에서는 대부분 포인트 싸움에서 밀려 패했는데, 그의 스타일상 포인트를 신경쓰지 않고 자신의 스타일대로 경기를 풀어나가기 때문에 아마복싱에서는 보기 드물게 포인트 홍수 경기를 많이 보여주고는 한다. 그가 펼친 경기 중 패한 경기의 경우 거의 40: 30 수준으로 포인트 홍수 경기를 보인다. 국내 복싱의 전문가들은 그의 스타일을 '별로 똑똑하지 못한 스타일'이라고 평가했다.

2. 파이팅 스타일


코만도 삼보를 베이스로 MMA에 특화된 복싱 스킬도 뛰어나다. 주로 펀치에 의한 스탠딩 타격으로 상대를 제압하지만 탑 포지션에서의 파운딩 또한 전율스러울 정도로 강하다. 세미 슐트를 난자한 파운딩은 거의 호러급. 삼비스트답게 유도식 테이크다운을 보여주기도 한다.
타격에서의 스타일은 전형적인 슬러거 스타일. 체력과 내구력이 좋기 때문에 끊임없이 전진하며 상대방을 압박한다. 그의 펀치력은 돌주먹이라고 불릴 정도로 묵직하고 강력하다. 때문에 거의 모든 타격가들은 그와의 난타전은 최대한 피하려고 한다. 심지어 MMA에서 화력이 가장 좋다는 평가를 받는 안드레이 알롭스키도 그와의 경기때는 세르게이의 묵직한 펀치와 내구력을 부담스러워 해서 아웃복싱 전략을 펼치다가 KO 당했다. 초반에는 바디블로로 상대의 데미지를 축적해 체력을 갉아먹는 스타일으로, 그렇게 상대의 발을 묶고 스탭을 못 밟게 한 후에, 상대방에게 충분한 데미지를 입혔다고 생각되면 안면부를 공격해 KO를 이끌어 내는 타입이다. 스피드는 좀 부족한 편이여서 스피드와 테크닉이 좋은 상대방에게는 잔매를 많이 허용하는 편이다. 하지만 복싱 스킬이 나쁘지 않아서 큰 공격은 잘 회피해 내거나 가드를 하는 편이다.
가장 큰 약점은 레슬링과 그라운드, 무엇보다 하위에 깔렸을 때의 움직임이 너무 무기력하다. 오브레임과의 1차전을 시작으로 제프 몬슨에게도 같은 약점을 공략당했다. 이것이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이 Strikeforce에서의 조쉬 바넷전으로 한 번 넘어감과 동시에 마운트를 내주고 회복하지 못했다.
알리스타 오브레임전에서 오른쪽 어깨가 탈골되는 부상을 입었는데 오른팔에 수차례 부상이 누적되는 일을 겪었다. 갑작스러운 경기력 하락의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스탠딩에서도 킥이 거의 없다시피한데 종합격투기 무대에서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세르게이가 킥복싱 무대에 데뷔하면서부터 발목을 잡히게 되었다. K-1 데뷔전에서 기타의 로킥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며 로킥 TKO패를 당한 것이 그 좋은 예인데, 최근 들어서는 로킥에 대한 약점을 어느정도 보완하며 탑급 입식강자들도 종종 잡아내고 Glory 랭킹 10위 안에도 진입하는 등 그라운드의 약점 보완이 전혀 안되고 있는 종합에 비해 최근엔 오히려 입식에서 더 좋은 모습을 보이는 중이다. 원체 예전부터 복싱스킬과 맷집, 펀칭파워 등은 정평이 나 있었기 때문에..

3. 기타


러시아 공수부대 출신으로 밀리터리 기믹을 가지고 있다. 일본의 단체들도 이점을 십분 어필하여 군복과 베레모를 갖추고 입장하기도 했다.
표도르 예멜리야넨코, 알렉산더 예멜리아넨코와는 러시안 탑 팀 시절의 동료. 표도르가 RTT를 떠나 레드데빌로 이적하자 비난을 퍼붓기도 했다.[7] 물론 이걸 놓칠 PRIDE가 아니어서 표도르와 하리토노프 사이의 노골적인 대립구도를 조장하였다. "러시아인은 러시아인의 손으로 처단해 주겠다"는 선언 아래, 2004년의 헤비급 그랑프리에서 둘간의 대결이 실현될 뻔 했으나 하리토노프가 4강에서 노게이라에게 패하면서 무산되었다.
한때 표도르, 노게이라, 미르코 크로캅과 함께 PRIDE 4강으로 불리우기도 했다. 근데 어떤 북두의 권 덕후때문에 입지가 많이 밀리고 "4강"의 칭호도 뺏겼다. [8]
세미 슐트전은 너무 잔혹한 나머지 일본 현지에서는 흑백으로 방영되기도 했다. 현역 선수들도 그의 경기영상을 보고는 다들 질겁을 했다고 한다. 케빈 랜들맨의 명대사인 "저 친구 스타일은 사람을 죽일 듯 한데?"가 여기서 나왔고, 히스 헤링, 안토니오 호드리고 노게이라 등의 선수들도 모두 혀를 내둘렀다. 슐트는 이 경기 후 K-1의 입식 격투기로 넘어가 절대강자로 등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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슐트와의 김장매치 이후, 오브레임과의 1차전에서 반대로 자신이 김장을 당하면서 '역김장'이라는 말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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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으로 흥한 자 김장으로 망했다.
러시아 공수부대 80주년 기념 콘서트에 참석해 아코디언을 연주하기도 했다. 원래 음악 쪽을 공부하고 있었다고 한다. 다만 복장이라든지 여러가지로 한국 정서에는 맞지 않았는지 동춘서커스라고 까이기도 했다. 더불어 누구인지 알아보기도 힘들 정도로 불어난 몸무게 때문에 '돼르게이'라고도 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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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장곡인 Lube의 'Davai Za'[9]는 러시아 드라마인 '스페츠나츠'의 OST이기도 하다. 철권 시리즈세르게이 드라그노프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다.
브록 레스너가 UFC 챔피언인 시절 인터뷰에서 "레스너를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에 '''"난 브록 레스너가 누군지 모른다."'''라는 대답을 날리는 대범함을 보이기도 했다.
'''2011년에 드디어 전역하셨다.''' 러시아군 예비역 대위.
[1] 많은 이들이 스페츠나츠 출신으로 착각하지만 본인은 러시아 일반 공수부대 출신이라고 밝혔다. 스페츠나츠는 소속군과 같은 색의 베레모와 텔냐쉬카를 착용하므로 공수부대는 일반병과 스페츠나츠를 외견만으로 판단하기 힘들다. 러시아 공수군 스페츠나츠는 제45 독립특수정찰연대 소속이다.[2] 다들 알겠지만 오브레임이 저렇게 벌크업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3] 이때 어깨가 탈골되었는데 어필하지 않고 시합을 강행했다. 어깨부상이 악화된 것은 이때문이라는 말도 있다.[4] 원래 상대는 마이티 모였으나 모가 경기 3일전까지 비자문제를 해결 못하는 바람에 상대가 급하게 바뀌었다.[5] 참고로 Dream 18대회는 Dream과 Glory가 공동개최한 이벤트였다.[6] UFC 전 미들급 챔피언인 그 앤더슨 실바가 아니라 동명이인의 브라질 헤비급 킥복서.[7] 하리토노프도 2007년 골든글로리로 이적했다.[8] 사실 PRIDE FC의 4강 라인의 한 자리는 유동적이었다. 표도르>노게이라>크로캅의 순서로 서열도 거의 정리된 상태에서 4위 자리를 놓고 경쟁을 벌이는 구도. 하리토노프 이전에는 히스 헤링이 4강으로 꼽혔고, 시기상으로도 가장 오랫동안 4강으로 꼽히는 선수였다. 조쉬 바넷은 하리토노프가 부진에 빠진 뒤 4강으로 언급되었지만, PRIDE FC가 도산한 시점을 감안하면 4강으로 꼽힌 기간은 하리토노프와 비슷한 정도이다.(약 2년)[9] 러시아어로 건배. 직역하면 '위하여'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