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쉬 바넷
1. 소개
링네임인 '''동안의 암살자'''나 '''워마스터'''보다도 그 외의 별명인 '''지상 최강의 오타쿠''', '''약쟁이''', '''어플릭션의 암살자''' 등으로 더 유명하다.
2. 전적
※ 종합격투기
- 주요 승: 지미 암브리즈, 타카하시 카즈오, 바비 호프만, 댄 세번, 겐 맥기, 세미 슐트(2), 곤도 유키, 랜디 커투어, 나카무라 카즈히로, 알렉산드르 예멜리야넨코, 마크 헌트, 안토니오 호드리고 노게이라, 파웰 나스툴라, 요시다 히데히코, 제프 몬슨, 페드로 히조, 길버트 아이블, 제로니모 도스 산토스, 브렛 로저스, 세르게이 하리토노프, 프랭크 미어, 로이 넬슨, 안드레이 알롭스키
- 주요 승: 트래비스 풀턴, 두아르테 페드로, 딘 리스터, 히론 그레이시
- 주요 패: 마크 커(2), 가스 테일러, 히카르도 알메이다
2.1. UFC
1997년 19세의 나이로 MMA에 데뷔하여 중소단체에서 9연승을 쌓는다. 2000년 2월 SuperBrawl 16에서 댄 세번을 암바로 꺾은 후 UFC와 계약을 맺었다.
2000년 11월 UFC 28에서 겐 맥기를 펀치로 KO시켰고 2001년 2월에는 페드로 히조와 대결했다. 1라운드 히조의 레그킥에 고전하던 바넷은 2라운드 클린치와 레그킥을 활용하며 오히려 타격으로 히조를 몰아세웠다. 그러나 열심히 전진스탭을 밟던 중 히조의 라이트 카운터를 허용했고, 히조는 재빨리 바넷의 왼쪽으로 돌며 마무리의 일격을 날렸다. 바넷의 KO패.
연승에 제동이 걸린 바넷은 2001년 6월 UFC 32에서 세미 슐트와 대결했다. 경기 시작 후 슐트의 바디킥을 캐치하여 그라운드로 끌고 갔고 일방적인 경기를 보여주며 1라운드 암바승을 거둔다. 2001년 11월에는 다시 만난 바비 호프만에게 펀치 서브미션패를 선사하며 UFC 헤비급의 차기 대권주자로 발돋움한다.
2002년 3월 드디어 UFC 36에서 랜디 커투어를 물리치고 25세로 최연소 헤비급 챔피언이라는 영광을 안게 된다. 커투어의 더티 복싱에 밀려 레슬링에서 일방적인 관광을 당했으나 2라운드 스윕에 이은 파운딩 한방으로 커투어를 실신시키며 TKO승을 거두었다.
[image]
그러나 약물복용 사실이 드러나 타이틀을 박탈당한다. 3번에 걸쳐 약물 테스트를 받았는데, 때에 따라 결과가 다르게 나와 논란이 되기도 했다. 챔피언치곤 인기가 없었는데 그게 영향을 줬다는 말도 있다. 실은 커투어에게 승리한 후 데이나 화이트와의 협상에서 역대 최고 대우를 요구했는데, 당시 UFC가 금전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기 때문에 협상은 난행을 맞았고 이 시점에서 양성 결과가 발표된 것이다. 션 셔크나 쉐인 카윈, 차엘 소넨의 경우에서 알 수 있듯이, 데이나 화이트는 인지도 높고 단체의 의견을 비교적 잘 따르는 선수들의 약물복용에 대해서는 매우 관대한 편이다.
그리고 잘 알려져있지 않은 사실이지만, 사실 '''앞서 바비 호프만과의 2차전에서도 스테로이드 성분이 검출된 적이 있다.''' 당시에는 공식적으로 발표되지 않고 어찌저찌 넘어갔고, '''타이틀 도전권까지 줬는데 연타석으로 걸렸으니''' 계약 문제를 떠나 UFC에서 봐주는 게 이상할 수준이다. 약물 검출 됐다고 챔피언 경력 자체를 삭제해버리고는 전 챔프로 인정 안하는 것도 어느 정도는 이해가 된다.
2.2. PRIDE
결국 마지막 테스트 결과를 기다리다 못해 일본으로 건너가 프로레슬링 계열 단체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2003년 5월 신일본 프로레슬링에서 지미 암브리즈에게 승리했고, 2003년 8월에는 Pancrase에서 곤도 유키를 관광태운 끝에 무차별급 킹 오브 판크라시스트에 등극하기도 했다. 이로써 그는 켄 샴락, 프랭크 샴락, 바스 루텐과 더불어 UFC와 판크라스 두 단체에서 타이틀을 소유한 선수가 됐다. 2003년 1월 신일본 프로레슬링에서 타카하시 카즈오를 쓰러뜨렸고, 2003년 12월 이노미 봄바예에서는 세미 슐트와의 러버매치에서 또 다시 암바승을 거뒀다.
이후 PRIDE로 전향하면서, 일본 프로레슬링에도 동시에 출신해 일본에서의 인지도를 쌓아나간다. 미국에서 별 인기가 없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일본에서의 인기는 상당했는데 이를 십분 활용하여 프로레슬링에서 투잡을 뛰며 용돈벌이에 나서기도 했다.
2004년 10월 PRIDE 28에서 만난 첫 상대는 미르코 크로캅이었다. 그러나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경기 초반에 어깨가 빠지는 부상을 당해 패배하게 된다. 이 부상으로 1년의 공백기를 가진 후 2005년 10월 크로캅과 다시 맞붙었으나 또 졌다. 클린치 싸움으로 크로캅을 몰아붙이며 잘 싸웠으나 무리하게 테이크다운을 하려다 막히고 오히려 크로캅의 되치기에 걸려 3번이나 하위에 깔리며 판정패했다. 이때 경기 전 인터뷰에서 바넷이 크로캅에게 '''"녀석에게는 지옥불도 아깝다."'''는 등의 혹한 멘트를 날렸다가 '''"그 입 다물라."'''라는 크로캅의 전무후무한 명대사(...)로 화답 받았다.
2006년 2월 PRIDE 31에서 나카무라 카즈히로를 관광태운 것을 시작으로, 그 해 열린 무체급 토너먼트에 출전했다. 5월 알렉산드르 예멜리야넨코와의 1차전에서는 알렉산더의 펀치 테크닉에 고전했으나 2라운드 테이크다운을 얻어낸 후 사이드에서 키락을 잡아내며 승리했다. 7월의 2차전에서 만난 마크 헌트도 기무라로 간단히 정리한 후 결승 토너먼트 진출을 확정짓는다.
[image]
2006년 9월 결승 토너먼트 1차전에서 안토니오 호드리고 노게이라와 대결했는데 박빙의 대결 끝에 판정으로 승리한다. 바넷이 초반 강렬한 레프트 훅으로 다운을 따내지만 끝을 보지는 못했고 오히려 데미지를 회복한 노게이라에게 테이크다운을 당하며 상위를 내주었다. 이후 두 선수는 그라운드에서 일진일퇴의 공방 펼쳤다. 포지셔닝에서는 노게이라가 앞서나갔고 바넷은 경기 막판 니바를 캐치했으나 공이 울리며 승부는 판정으로 넘어가게 된다. 결국 3명의 저지 중 2명이 바넷의 손을 들어주며 결승 진출을 확정지었다. 박빙의 승부였기 때문에 판정에 논란이 일었는데 특히 노게이라 본인은 강하게 불만을 제시하기도 했다.
[image]
결승에서 만난 상대는 자신에게 2패를 안겨주었던 미르코 크로캅이었다. 하지만 미들급의 반달레이 실바를 KO로 잡고 올라온 크로캅과 달리 바넷은 노게이라를 상대로 체력을 다 소진한 상태였다. 결국 1라운드 내내 난타를 당하다 패배를 당하게 된다. 그라운드 공방중 크로캅의 써밍 논란이 일기도 했으나 그는 패배를 순순히 인정했다.
2006년 10월 PRIDE 32에서는 파웰 나스툴라를 토홀드로 제압. 2006년 12월 남제에서는 노게이라와의 러버 매치를 가졌는데, 1차전과는 달리 타격과 그라운드에서 모두 압도당하며 판정패했다.
2.3. Affliction & Strikeforce
노게이라와의 시합을 마지막으로 PRIDE가 도산하면서 바넷은 센고쿠행을 택한다.
2008년 3월 센고쿠 1진에서 요시다 히데히코를 상대로 타격과 그라운드 양면에서 완전히 관광태우며 3라운드 힐훅승을 거둔다. 거의 능욕 수준의 원사이드했던 경기였는데 애초에 요시다는 바넷의 상대가 되기에 부족함이 많았다. 2008년 5월에는 제프 몬슨에게 만장일치 판정승을 거두었다. 2라운드에 TD를 당하기도 했으나 사이드에서 스윕을 성공시키며 파운딩으로 점수를 땄고, 3라운드 몬슨이 체력저하를 보이자 니킥으로 다운을 따낸 후 그라운드에서 각종 관절기를 시도하며 압승을 거뒀다.
2008년 7월 20일 Affliction Banned에서 과거 종합격투기 첫 패배를 안겨줬던 페드로 히조를 상대로 7년만에 리벤지에 성공했다. TD가 막히며 살짝 고전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으나 2라운드 중반 경 원투펀치가 적중하면서 히조를 실신시켰다.
2009년 1월에는 베테랑인 길버트 아이블을 상대로 레슬링과 그라운드에서 압도하며 3라운드 파운딩으로 승리한다.
[image]
2009년 Affliction에서 표도르 예멜리아넨코와의 경기가 잡혔으나, 또 다시 약물 복용이 적발되어 선수 자격 정지와 함께 대회 자체도 취소되었다. 3번째 적발이라 가루가 되도록 까였고 또 약물임이 확증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약물러들의 전형적인 적발 후 멘트인 '''"억울하다." "고의가 아니다."'''고 대응하는 병크를 터트려 이미지는 바닥을 기어가고 있다. MMA시장에 길이 남을 병크를 터트림과 동시에 당시에는 미국 대회에서 거의 사장되는 분위기였다. 이 사건으로 어플릭션이 MMA 사업에서 손을 떼었기 때문에 대회를 말아먹은 셈이 되었고, 링네임인 베이비페이스 어새신을 비꼰 '''어플릭션의 암살자'''라는 별칭이 추가되었다.
이후 안토니오 이노키의 IGF로 둥지를 옮겨 자격정지가 풀릴 때까지 프로레슬러로 활동했다. 밥 샙이랑 막 프로레슬링으로 놀고 그랬음. 프로레슬러로서의 경기력은 그럭저럭이라는 평이었다.
2010년 초 K-1의 산하단체인 DREAM과 계약, 마이티 모와 경기를 치렀다. 경기 자체는 바넷의 1라운드 서브미션으로 끝났으나... 경기 중반에 터진 로블로로 데미지가 심각한 상태에서 마이티 모가 경기를 치르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심판들이 경기를 강행하여 문제가 되었다. 누가 봐도 모는 바넷의 복귀전을 위한 떡밥에 불과했고, 이런 상황에서 흥행을 위해 선수보호를 등한시했기 때문에 드림과 함께 세트로 줄창 까이고 있다.
2010년 7월 오스트레일리아의 신생단체인 Impact FC에서 제로니모 도스 산토스를 상대로 경기를 했다. 연달아 테이크다운을 성공시키며 파운딩으로 가볍게 TKO승.
2010년 9월 Strikeforce와의 계약에 성공, 헤비급 토너먼트 로스터에 이름을 올렸다. 그러나 2011년이 되도록 캘리포니아주 라이센스를 발급받지 못했고 2011년 2월의 청문회에서는 변호사도 대동하지 않았다가 발급을 거부당하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결국 시합을 보름 남짓 남긴 상태에서 간신히 텍사스주의 라이센스를 받았다.
2011년 6월 Strikeforce 헤비급 토너먼트 8강전 경기에 나선 바넷은 브렛 로저스를 그라운드에서 농락한 끝에 2라운드 암 트라이앵글 초크로 가볍게 승리했다.
2011년 9월 Strikeforce 헤비급 토너먼트 4강전에서는 세르게이 하리토노프를 상대했다. 1라운드 초반부터 격렬한 타격전이 전개되었으나 바넷이 테이크 다운을 성공시키는 순간 경기는 급속히 바넷 쪽으로 기울었다. 손쉽게 마운트를 점령한 바넷은 세르게이의 안면에 꾸준히 파운딩을 꽂아 넣었고, 결국 3달전 로저스를 잡을 때 쓴 암 트라이앵글로 다시 한번 승리를 거두었다.
얼마 후 열릴 Strikeforce 헤비급 토너먼트 결승전에서는 반대쪽 블록에서 안토니오 실바를 꺾는 대이변을 연출하고 올라온 다니엘 코미어와 맞붙을 예정이다. 전문가와 격투팬들 사이에선 아무래도 체격이나 경험, 현재의 상승세면에서 볼 때 바넷의 승리를 점치는 사람들이 많다. 외적인 문제가 없이 이 경기에서 이기고 헤비급 토너먼트 우승자가 된다면, 그동안 갖고 있었던 약쟁이 이미지를 어느정도 쇄신하고 미국 내에서의 인지도를 많이 높일 수 있을 전망이다. 뿐만 아니라 이제는 같은 모기업(ZUFFA) 아래의 단체인 UFC와의 향후 있을 수 있는 교섭에 대해서도 훨씬 유리한 입지를 다질 수 있을 것이다.
2012년 5월 19일 Strikeforce 헤비급 토너먼트 결승전에서 드디어 다니엘 코미어와 맞붙었다. 1라운드부터 코미어의 스텝과 펀치에 고전하기 시작한 바넷은 2라운드에는 테잌다운을 당한 후 엘보우를 맞아 안면에 출혈이 생기고 말았다. 이어진 3라운드에는 후반 코미어에게 오른발 헤드킥을 허용하며 그로기 상태에 빠졌으나 특유의 터프함으로 라운드를 넘겼다. 4라운드부터는 승기를 잡았다고 생각한 코미어가 비록 가드에 막혔지만 왼발 헤드킥에 이은 오른발 헤드킥까지 연속으로 보여주기도 했다. 이후 그라운드 공방전에서 바넷은 기습적인 힐 훅을 시도했으나 코미어가 탈출하면서 4라운드도 그가 가져가게 되었다. 결국 5라운드까지 끈덕지게 버티며 기회를 노린 바넷이었지만 판정으로 가면서 심판 전원일치로 코미어에게 판정패를 당했다. 헤비급 토너먼트 결승전이 열리기 한달 전 데이나 화이트는 "바넷과 나는 최근 사이가 많이 좋아졌다. 그가 코미어를 꺾고 토너먼트에서 우승한다면 UFC와 계약하지 못할 이유는 전혀 없다"라고 발언했다. 그러나 바넷이 우승을 하지 못하면서 그의 향후 거취가 어떻게 될지 주목된다.
2013년 1월 12일 마지막 Strikeforce 대회에서 구엘미노 난도르를 상대로 1라운드 암트라이앵글 초크 승리를 거두었다. 이 경기 이후 스포가 UFC에 합병됐고, 다수의 스포 파이터들이 UFC로 이적했기에 이번에도 그의 거취가 주목되었다. 이에 바넷은 '아직은 계약하지 않았다'고 말했으나, UFC 홈페이지에 바넷 프로필이 생긴 것으로 볼 때 UFC와 계약을 한 것으로 보였으나 결국 결렬. 결렬 이유는 '''돈 문제.'''
이대로 묻히나 싶더니 결국 UFC와 재계약을 했다.
2.4. 다시 UFC
2013년 8월 31일 UFC 163에서 프랭크 미어를 상대로 7년만에 UFC 복귀전을 가졌다. 바넷은 미어의 약점인 클린치를 노려 클린치 상태에서 수많은 잔펀치와 니킥을 날렸고, 안면에 니킥을 적중시켜 약 2분만에 가볍게 TKO승을 거뒀다. 다만 레프리 스탑이 지나치게 빨랐던 탓에[3] 에서 논란이 있었고, 승리를 거뒀음에도 폭풍과 같은 야유를 들어야만 했다.(...)
2013년 12월 28일 UFC 168에서 UFC 헤비급의 초신성 트래비스 브라운과 경기를 가졌다. 바넷은 브라운에게 여러 차리 TD 시도를 하였으나 모두 무위로 돌아갔고, 1라운드 약 50초 경 클린치를 하려다가 브라운의 니킥을 맞고 주저앉고 말았다. 이후 측두부에 엘보 난사를 당하며 약 8년만에 실신 KO패를 당하고 말았다.
이후 UFC에서 경기를 가지지 못하다가 2015년 9월 일본 대회에서 로이 넬슨과 경기를 가진다. 그리고 로이 넬슨을 판정으로 이겼다.
UFC on Fox 18에서 벤 로스웰에게 길로틴 초크로 패하며 '''첫 서브미션 패'''를 당했다. 과거에 조쉬 바넷이 노게이라에게 니 바를 걸거나, 그래플링 대회 메타모리스에서 딘 리스터[4] 에게 탭을 받아내는 등[5] 그래플링 쪽에서은근히 두각을 나타냈기 때문에 딱히 그래플링 쪽으로 두각을 드러내지 못한 선수한테 허무하게 길로틴 초크를 당했다는 점에서 많은 사람이 놀랐다.
9월 4일 함부르크에서 열린 UFN 93에선 안드레이 알롭스키에게 3라운드에서 리어 네이키드 초크로 승리했다. 초반 난타전에서는 두 사람 모두 무릎이 꺾일 정도의 펀치를 맞았지만 견뎌냈고. 2라운드 후반 알롭스키의 테이크 다운을 받아치며 탑으로 올라가 파운딩 세례를 꽃아 비록 KO시키진 못했지만 승기를 잡았다. 3라운드에서는 잠시 눈을 찔린 사이에 훅을 얻어 맞으며 위기에 빠지기도 했지만 또 다시 알롭스키를 테이크다운 이후 마운트 포지션을 차지한 뒤 파운딩을 연타하다가 초크를 성공하며 완벽하게 승리를 가져갔다.
알롭스키가 하락세이긴 했지만 엄연히 상위 랭커라 조쉬 바넷도 이 경기 승리로 컨텐더 경쟁에 본격적으로 뛰어들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이 경기 이후 또 약물이 적발되면서 경기를 뛰지 못하게 되었고, 결국 UFC를 떠나 벨라토르로 갔다.
3. 파이팅 스타일
원래는 학창 시절에 배운 유도와 레슬링을 주특기로 하며, 일본에서 프로레슬링을 하면서 캐치 레슬러 [6] 의 이미지를 활용하기 시작했다. [7] 영상 중간에 그 차이를 설명하는 대목이 있다. [8] .
그래플링과 타격에 걸쳐 밸런스가 좋은 웰라운더형이다. 그라운드 운영이 뛰어나며, 브라질리언 주짓수 출신이 아닌 만큼 하체관절기를 망설이지 않으며 과감하고 도박적으로 서브미션을 시도한다 [9] . 타격 스킬도 굉장히 좋다. 그라운드에서의 움직도 매우 좋은데, 주짓수를 수련한 경력이 없다고 발언했음에도 불구하고 2009년 문디알 노기 부문에 출전해 우승을 하고는 얼마 후 블랙벨트를 받았다.[10] 더불어 체격조건이나 신체능력이 2010년대의 헤비급 선수들과 비교해도 전혀 밀리지 않을 정도로 뛰어나다.
의외로 약점은 레슬링. 고등학생 때 레슬링을 수련했다고 하긴 하지만 엘리트 수준의 선수에 비하긴 힘들며 노게이라, 커투어, 다니엘 코미어 같은 선수들에게 테이크다운을 당했으며 최근에도 로이 넬슨과 안드레이 알롭스키에게도 테이크다운 당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스탠딩 타격도 정상권의 선수를 상대로 주무기로 써먹기에는 많이 부족하다. 사실 전성기라고 할 수 있는 2000년대에도 정통파 타격가나 엘리트 레슬러 출신 선수들에게는 기술적으로 밀리는 부분이 많았다.
그럼에도 10년 가까이 종합격투계에서 최정상권에서 활약할 수 있었던 요인은 뛰어난 경기 조율 능력과 파이팅 플랜, 그리고 근성이었다. 밀리는 시합에서도 쉽게 피니시를 당하지 않고 끈덕지게 버티면서 어떻게든 상대의 약점을 찾아내는 능력이 있다. 대표적으로 커투어전에서는 레슬링에서 완벽하게 관광을 당했으나, 그라운드에서 스윕 한방에 승부를 결정지어버렸다. 바넷이 실질적으로 KO를 당한 시합은 초창기 히조에게 당한 KO 하나밖에 없는데, 이마저도 KO로 리벤지해줬다. 이후 2013년에 브라운에게 KO를 당하긴 했지만 그래도 10년이 넘는 동안 KO패가 2번밖에 없다는 건 대단한 일이다.
미르코 크로캅과는 3번 싸웠는데 모두 석연치 않은 이유로 졌다. 1차전은 거의 시작하자마자 어깨 부상을 입어서 무효경기라고 봐도 무방했다. 2차전은 그때의 부상으로 1년 가까이 공백을 가졌는데 체중관리도 안되는 등 컨디션도 엉망이었던 데다가 경기 결과도 편파 판정이라고 말이 많았다. 마지막 3차전은 토너먼트 대진이 크로캅에겐 유리했고 바넷에겐 불리했는데[11] 경기 중 고의는 아니지만 써밍 크리까지 있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런 일들이 3번이나 일어났다는 것'''. 뭐 운도 실력이니까.
셔독 헤비급 랭킹 2위까지 올라간 적이 있다. PRIDE가 도산한 이후 2010년까지는 실질적으로 떡밥급만 상대했기 때문에 지금에 와서도 정상권에서 통할지는 미지수라고 생각되었다. 허나 2011년에 브렛 로저스와 세르게이 하리토노프를, 2013년에는 프랭크 미어 마저 손쉽게 잡아내면서 실력에 대해선 의심할 여지가 없음을 보여주었다.
4. 기타
팬들에게는 여러가지 의미로 애증이 교차하는 선수. MMA 단체들에게는 쓰기엔 문제가 많고 버리자니 아까운 계륵같은 존재다. 대전 선수를 찾는 것부터가 큰일. 탑 파이터들은 약물복용 의혹 때문에 그와 싸우려 하지 않고 그렇다고 적당한 상대를 붙여주자니 그냥 떡밥매치가 돼버리기 때문에.
이렇듯 약물복용 관련 위업으로 북미단체 진입을 어려울 것이라는 예상이 대세였기에 2010년 8월의 Strikeforce 입성은 상당히 의외의 결과였다. 그만큼 스포의 상황이 절박했다고도 볼 수도 있는데 어플릭션의 암살자가 스트라이크포스의 구세주가 될 수 있을지는 좀 더 두고봐야 할 듯.
굉장히 붙임성이 좋은 사람인 모양이다. 그와 함께 경기를 치렀던 사람들 대부분이 그와 친하게 지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크로캅과도 경기를 치른 다음의 인터뷰 장소에서 친근하게 이야기를 주고받는 모습이 널리 알려지기도 했다. 마크 헌트의 말에 의하면 사람은 참 좋은데 너무 말이 많아서 시끄럽다고(...). 고자킥의 희생자인 마이티 모와도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데 경기 후 모가 장난조로 바넷에게 로블로를 때리기도 했다. 참고로 바넷의 일격은 '''퍽!'''하는 소리가 경기장에 울릴 정도로 강렬했다. 우정에 금이 가지 말아야 할 텐데. 그래서인지 인터뷰에서 마이티 모를 엄청 띄워줬다. 모가 매우 강한 파이터이며 브록 레스너를 이길 수 있다고도 말했는데...
데이나 화이트와 안좋게 헤어진 후 PRIDE에서 UFC의 뒷담화를 엄청 깠기 때문에 유빠들에겐 눈에 가시같은 존재다. 꼭 유빠가 아니더라도 워낙 저질러 놓은 일이 심각해서 다들 깐다. 조X 발넷이라고도 부르는 모양. 그런데 이러던 바넷이 2012년 스포가 합병된 후 실업자가 되자 전세가 완벽하게 역전되었다(...). 뭐 그래도 UFC로 복귀하기는 했다.
2017년에는 약물 복용으로 자격 정지가 된 틈에 북미 프로레슬링 2위 단체인 TNA에 깜짝 참전하였다. 벨라토르에서 이종격투기 선수이자 프로레슬러를 겸직하는 바비 레쉴리와 퓨드를 맺을듯 하다.
4.1. 지상 최강의 덕후
일본 만화나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취미도 있고 북두의 권 오덕이기 때문에 "지상 최강의 덕후"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남두보다는 북두를 더 좋아하는 것 같다. 인터뷰에서 '너는 이미 죽어있다'를 일어로 말하기도 하고. 그래플러 바키도 좋아하는 듯. 아키하바라에서 목격했다는 사람들도 많고(...) 키미노조 포스터 앞에서 이소룡포즈로 찍은 사진도 존재(....)
[image]
일본 프로레슬링이 자주 제창하는 '프로레슬링 최강론'에 근접해있고 본인도 프로레슬링에 대한 애착이 강하기 때문에[12] '베이비페이스 어새신'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실제로 프로레슬러 활동도 겸사겸사 하고 있는데, 이노키 50주년 기념대회[13] 에서 팀 실비아와 프로레슬링 시합을 하기도 했다.
[image]
그가 등장할때 나오는 음악은 북두의 권의 1기 오프닝곡인 "사랑을 되찾아라!!"이다. 승리한다면 "1:1 비율의 켄시로 피규어를 구입하고 싶다"라는 의사를 밝혀 '''"푸른 눈의 켄시로"'''라는 별명도 붙었다.
4.2. 약물 복용
이쪽 분야에서는 거의 최고봉으로 여겨진다. 약물 복용 혐의로 UFC에서 타이틀을 박탈당하기도 하고 PRIDE에서도 징계를 받았으며, Affliction을 말아먹기도 했다. 이때문에 탑 컨텐더급의 실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번번히 최고의 자리에서 밀려났으며 중소단체를 전전하는 신세가 되었다. 팬들 사이에서는 일명 '약쟁이'로 통하며 까이고 스포츠맨 정신에 어긋난다고 까이며, 안그래도 비주류인 시장에서 메이저 단체를 잡아먹었다고 가루가 되도록 까인다. 게다가 억울하다는 식의 반응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더욱 까이고 있는 인간. 결국 ''''약물로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하며 대망의 트릴로지[14] 를 완성했다는 평이다. 약물 검사 강화 전까지 걸리면 병신이라는 소리까지 나오던 허접한 약물 검사에 세번이나 걸렸다는 건 거의 대놓고 쓰는 수준이라는 것.
다만 그가 '억울하다'는 의사표현을 비판하기 위해서는 MMA 시장, 아니 프로 스포츠 시장의 고질적인 약물복용 실태 또한 직시할 필요가 있다. 많은 수의 선수들이 스테로이드, 진통제 등의 약물을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 격투기 관련 약물 검사 실태를 보자면 실질적으로 선수들의 도핑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일본 단체들의 검사는 '있으나 마나'한 수준[15] 이고 미국은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좀 나은' 정도[16] 이다. 게다가 반감기[17] 를 잘만 활용한다면 약물을 복용하고도 검사에 전혀 흔적을 남기지 않는 것이 가능하다. 다만 2015년 8월부터 UFC가 USADA에 약물검사를 맞기며 약물검사가 많이 엄격해졌다.
따라서 미국, 일본을 막론하고 엄청나게 많은 수의 선수들이 약물을 복용하는 것이 현실이며, 이를 제지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기술, 금전적인 문제에 앞서 선수층이 얇아질 가능성이 있는 데다가 Affliction의 경우에서 알 수 있듯이 시장 전체가 사장될 위험마저 존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계속 안고 가는 수 밖에는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약물복용이라는 엄연히 규칙과 법률에 어긋나고 선수들의 건강을 갉아먹으며 시청자들을 기만하는 행위를 그대로 두고 갈 수는 없다! 다른 스포츠들도 마찬가지이지만 근절이 매우 어려운 것이 사실이나, 이런 왜곡된 행위를 통해서만 유지될 수 있는 격투기 시장이라면 그냥 사장되는게 낫다.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이지만 격투기 시장 자체가 꼭 존재해야만 하는 이유는 없다(!) 아직 제도화된 스포츠들보다 열악한 자금과 인프라가 더 발목을 잡는 셈이다.
도핑 혐의자 중에는 탑텐더들이나 인기 파이터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다. 체급 중에서 엄청나게 벌크가 좋거나, 훈련강도가 낮은데도 비상식적으로 체력과 맷집이 좋거나, 희귀한 질병에 감염된 경험이 있는 선수는 금지약물을 복용했을 가능성이 높다. 약물과 궁합이 좋아서 장기간 복용하고도 아무런 부작용이 발생하지 않는 경우도 있고, 심지어는 '''대놓고 약물을 해도 검사에서 양성 반응이 안 나오는 경우'''[18] 도 있음을 생각하면 범위는 더욱 넓어질 수 있다.
'''그렇다고 이 인간이 잘했다는 건 절대 아니다'''. 애초에 '억울하다' 발언 자체가 딴놈도 다 하는데 나만 걸려서 억울하다는 게 아니라 '''"내가 약물을 안 했는데 했다고 몰아가서"'''에 대한 것이며, 나중에는 '고의가 아니다'며 간접적으로 자신이 약물을 복용했음을 인정하면서도 '약물 양성 반응 결과가 나온 문서를 본 적이 없다'며 음모론 드립이나 치며 상황을 회피하려는 모습만 보였으니... 게다가 2016년 12월 경, '''또''' 약물 양성 반응이 나왔다.
[1] 바넷이 좋아하는 데스메탈 그룹인 볼트 스로워가 바넷에게 지어준 별명으로, 볼트 스로워의 앨범명이기도 하다. [2] 약물복용 혐의로 박탈된 뒤 UFC에서 한동안 인정하지 않았지만, 재계약 이후에는 다시 인정해 주고 있다. [3] 미어가 스탑 선언과 동시에 벌떡 일어나서 항의를 했다. 승리를 거둔 바넷 본인 마저 심판이 너무 빨리 말린것 같다고 인터뷰에서 말할 정도였다. [4] 바넷에게 패하기 전까지 10년이 넘게 서브미션 패배가 없었던 선수다. [5] 이게 얼마나 대단한거냐면 당시 배당률이 리스터 쪽이 '''-2000을 넘어갔다.''' 이는 종합격투계에서 지금까지 나온 가장 큰 차이의 배당률 톱 5에 들어간다. [6] 근대이전의 관절기, 조르기가 있던 레슬링 형태를 계승한 캐치레슬링 레슬러 [7] 이 차이에 대한 설명이 나오는 것이 이 유튜브 영상이다.링크[8] 참고로 일본 프로레슬링은 랭커셔 레슬링에서 시작됐다. 현재 정통 캐치레슬링을 계승하는 단체들이 있는데 캐치레슬링 스타일만 적용한 일본 프로레슬링을 직계후손이라고 이야기서술한 이전 작성자의 글에는 어폐가 있다[9] 브라질리언 주짓수의 경우, 하체 관절기에 우호적으로 돌아선 게 '''최근'''의 일이며, 또 서브미션을 시도하는 타이밍도 예나 지금이나 굉장히 보수적인 편이다. 캐치 레슬링은 그런 거 없다. [10] 조쉬 바넷의 캐치 레슬링 스승인 에릭 폴슨이 조쉬 바넷에게 주짓수를 가르친 적 없다고 발언한 바 있다. 에릭 폴슨 본인은 마차도 계열의 블랙벨트로 힉슨 그레이시가 일본의 종합격투기 단체에 출전하게 다리를 놓아준 바 있다. [11] 크로캅은 한 체급 낮은 반달레이 실바와의 대결이였던 반면에 바넷은 헤비급 2인자인 노게이라와 경기를 가졌다. 무제한급 토너먼트 대진을 팬 투표로 선발했기에 경기가 '''팬들이 보고 싶은 경기''' 위주로 짜여지다보니 나온 결과이다. [12] 애초에 베이스가 실전형 프로레슬링이라 할 수 있는 캐치레슬링이다. 조쉬 바넷은 캐치레슬링을 익히기 위해 과거의 전설적인 프로레슬러들을 찾아가 사사받았다. 지금처럼 완전한 엔터테인먼트로 정착되기 이전에는 프로레슬러들은 각본을 따름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실전 격투가들이었고 그들이 '''만일의 경우''' 링 위에서 사용하는 격투기가 캐치레슬링이었다. 항목들 참고.[13] 누가 이노키즘 아니랄까봐 마크 콜먼, 밥 샙 등 유명 MMA 선수들을 잔뜩 불렀다.[14] 바넷이 말아먹은 대회 부제도 트릴로지였다. [15] 자체적으로 검사를 한다. 외부의 간섭이 없기 때문에 단체 내에서 좌지우지하는 것이 가능. PRIDE의 경우에는 사카키바라 DSE대표가 '''일본인들은 약물을 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는 이유로 약물 검사를 아예 안했다고 한다.[16] 주체육위원회에서 검사를 한다. 하지만 체육위의 빈약한 인력, 수익자가 부담하지 않는 비용구조를 생각한다면 제대로 된 검사가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것은 과욕이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소변검사밖에 안 한다.'''[17] 혈액 검사를 하면 막을 수 있으나, 혈액 검사를 실시하는 종합 격투기 단체는 '''없다.''' 다만 약물 스캔들이 유독 많이 터졌던 2011년 이후로는 부분적으로 실시하고 있는 모습이 조금씩 보인다.[18] 대표적인 양심 선언자중 한 명인 제프 몬슨은 자신이 약물을 복용하는 동안 약물 검사에서 '''단 한번도 양성 반응이 나온 적이 없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