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빈 랜들맨
Kevin "The Monster" Randleman
미국 오하이오주에서 태어나 빈민가에서 어려운 유년시절을 보낸 랜들맨은 레슬링을 통해 자신의 길을 찾는다. 오하이오 주립대학교에서 NCAA 우승을 두번이나 하며 뛰어난 아마추어 레슬링 선수로 활약하던 랜들맨은 자신의 우상이었던 마크 콜먼의 해머하우스에 입문하면서 종합격투기 생활을 시작한다.
1. 전적
- 주요 패: 카를로스 바레토, 톰 에릭슨, 바스 루텐, 랜디 커투어, 척 리델, 퀸튼 잭슨, 사쿠라바 카즈시, 표도르 예멜리야넨코, 미르코 크로캅, 나카무라 카즈히로, 마우리시오 쇼군, 마이크 화이트헤드, 호저 그레이시.
1.1. UFC
1999년 5월 UFC 20에서 4대 헤비급 챔피언인 바스 루텐과 타이틀매치를 갖지만 시종 유리한 경기를 펼치고도 판정으로 패하고 만다. 분명히 랜들맨이 우세한 경기였는데 석연치 않은 판정이 나와서 많은 논란이 되었다.
같은 해 11월에 공석이 된 왕좌를 놓고 피트 윌리엄스와 격돌해 승리, UFC 헤비급 5대 챔피언에 등극했다. 이후 2000년 6월 페드로 히조에게 승리하여 1차 방어에도 성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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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11월 UFC 28에서 '캡틴 아메리카' 랜디 커투어를 맞아 2차 방어전을 치렀다. 랜들맨은 특유의 폭발력과 파워를 앞세워 1, 2라운드 내내 커투어를 깔아뭉갠 채 압박했으나 3라운드 단 한번의 테이크다운에서 풀 마운트를 내주며 파운딩에 TKO패를 당했다. 2001년 5월에는 라이트헤비급으로 체급을 전향하여 '아이스맨' 척 리델과 경기를 가졌으나 1라운드 1분 18초만에 리델 특유의 레프트 훅에 침몰하며 TKO로 패했다.
2002년 1월 헤나토 소브랄에게 판정승을 거두며 부활, 이후 RFC를 거쳐 콜먼을 따라 일본의 PRIDE로 무대를 옮긴다.
1.2. PRIDE
PRIDE 진출 후 일본인 파이터를 상대로 2연승을 거둔 후 2002년 12월 슈트박세의 강자인 무릴로 닌자와 격돌한다. 레슬러인 랜들맨이 타격을 주도하고 스트라이커인 닌자가 그라운드에서 우세를 점하는 약간 이상한 상황에서 3라운드 20초만에 펀치로 커트를 만들며 TKO 승을 거두었다. 해머하우스와 슈트박세 사이의 지긋지긋한 악연의 시작이다.
그러나 2003년 3월 PRIDE 25에서 '람페이지' 퀸튼 잭슨에게 펀치로 TKO패, 2003년 11월에는 사쿠라바 카즈시에게 암바로 패하면서 기세가 한풀 꺾이게 된다.
2004년 4월 한창 물이 올라있던 미르코 크로캅과의 경기에서는 패할 것이라는 예상을 뒤엎고 1라운드 1분 57초만에 레프트를 작렬시키며 호쾌한 KO승을 거두었다. 이 대결을 위해 척 리델과 함께 트레이닝을 하며 카운터에 대한 타이밍을 익혔고 이 작전이 적중하여 왼발 하이킥의 빈틈을 정확히 찔러 크로캅을 일격에 무너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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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6월에는 '더 라스트 엠페러' 에밀리아넨코 효도르와 격돌한다. 초반부터 격렬한 태클로 상위 포지션를 빼앗았고 효도르가 몸을 비틀며 일어서자 등을 잡은 그대로 프로레슬링에나 나올 법한 '''고각도 저먼 스플렉스'''를 시전했다. 머리부터 떨어지는 완벽한 스플렉스였고 해설자들이 '''승패는 둘째치고 효도르의 의식을 걱정'''할 정도였다. 하지만 효도르는 아무런 데미지도 입지 않았다는 듯 그라운드에서의 방어에 들어갔고 순간적인 스윕 후 기무라로 경기를 마무리지었다. 충격의 패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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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MA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슬램'. 근데 별 효과는 없었다. 사실 잘 보면 메쳐지는 순간 효도르가 오른팔을 펼쳐 낙법을 치면서 양어깨로 받아내 충격을 완화시키는걸 볼 수 있다. 이것은 프로레슬러들이 이와 비슷한 고각도 백드랍이나 저먼을 맞을 때 쓰는 낙법과 유사하다. 이는 아마 효도르의 삼보 경험과 순간적인 기지가 빛을 발했다고 볼 수 있다.
사실 느린속도로 자세히보면 이 스플렉스가 랜들맨에게도 오히려 경기흐름에 악영향이였음을 볼 수 있다. 효도르를 넘기면서 효도르의 몸에 자신의 무게중심을 실어 접수해야하는데 옆으로 잘못 착지하여 링바닥에 머리를 박아 머리로 모든충격(효도르의 무게 + 랜들맨의 무게)을 받고야 만다... 슬램 시전후 바로 공격하지 않고 주춤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효도르와의 경기는 명승부였으나 저주라도 붙었는지 이후의 경기에서 3연패의 부진에 빠진다. 2005년 10월 무사도[2] 에서 1승[3] 을 따내며 부활하는가 싶었지만 2006년 10년 슈트박세의 마우리시오 쇼군에게 니바로 패배.(정발로 발목 관절기에 당했다.)
1.3. 포도상구균 감염
부진에 빠져있던 2007년, 랜들맨은 자신의 인생을 바꾼 악재에 부딪힌다. 바로 포도상구균 감염이었다. 신체의 면역력이 저하되어 살이 썩어들어가는 끔찍한 증상을 유발하는 질병에 맞서는 2년간의 기나긴 싸움이 시작되었다. 옆구리와 겨드랑이에 2개의 커다란 구멍을 뚫은 다음 흡입장치에 연결해 독소와 피를 뽑아내는 고통스러운 과정이었다. 몸이 부어올라 93kg이었던 체중이 110kg까지 올라가더니 나중에는 야위면서 85kg으로 떨어지기도 했다. 한때는 정말 생명에 지장이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얼마 안 있어 '''음주운전을 하다가 적발될 정도'''로 상태가 좋아졌다고 한다(...).
당시 인터뷰에서 이런 상황에서도 댄 핸더슨과 쇼군의 소식을 듣고는 '''"병만 아니면 내가 티토 오티즈와 싸우고 싶다"''' 말했다고 한다. 천성이 낙천가였던 모양.
다만 투병생활을 계기로 약물복용(도핑) 논란에 휩싸이게 된다. 실은 포도상구균은 정상적인 면역체계에서는 발병하는 일이 극히 드문 병이고 면역저하는 스테로이드 복용의 전형적인 후유증으로 알려져 있다. 프라이드 시절의 타이론 우들리저리가라할 정도의 근육량을 보면 의심이 안가기도 힘들지만...
1.4. 복귀
결국 기나긴 병마와의 싸움에서 승리를 거두고 2008년 5월 센고쿠의 무대를 통해 다시금 MMA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다. 전성기의 기량은 아니었지만 료 카와무라를 상대로 판정승 거두었다.
2009년 6월 스트라이크 포스에 진출하였으나 중진급 선수인 마이크 화이트헤드에게 판정패, 2009년 11월에는 센고쿠에서 스타니슬라브 네드코프에게 다시 판정으로 패배했다.[4] 2010년 5월에는 스트라이크포스에서 호저 그레이시를 맞아 타격에서 밀린 끝에 2라운드 리어네이키드초크로 패배.
1971년생으로 40을 훌쩍 넘긴 나이인 만큼 전성기의 기량을 찾긴 어려울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한때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노장 파이터가 질병과 세월을 이기고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었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낭만적인 일이었다.
2. 파이팅 스타일
엘리트 레슬러 출신이다. 고교시절 이미 오하이오 주 챔피언에 올랐고 오하이오 주립대에 진학해서도 NCAA 디비전 1에서 2회 우승, 3차례 올 아메리칸에 선정되는 등 레슬링 커리어가 출중하다.
MMA에서는 해머하우스의 전형적인 레슬러 타입으로 마크 콜먼의 그라운드&파운딩에 특화된 선수이다. 흑인 특유의 힘과 탄력을 구사하며 수많은 명장면을 만들어내었다. '괴물'이라는 링네임은 그 믿을 수 없는 파워에서 비롯된 것이다. 태클과 테이크다운 능력을 비롯한 레슬링 실력은 최정상급. 크로캅을 펀치로 KO시킬 정도로 타격능력도 뛰어나다.
단점은 전체적으로 플레이에 정교함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타격이 나쁜 편은 아니지만 톱파이터들을 상대로는 부족하고 그라운드에서의 경기를 즐기지만 관절기에 약하다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때문에 상위포지션을 차지하고도 어이없이 관절기에 당하는 경우가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바로 쇼군과의 경기이다. 또한 경기 스타일이 전적으로 피지컬에 의존한 스타일이다 보니 나이를 먹고 피지컬 능력이 저하되면서 경기력도 크게 하락 하였다. 실제로 UFC에서 30세가 되기 전에 가졌던 경기를 보면 당대 최강의 타격가중 한명인 페드로 히조의 무시무시한 타격(탱크 애벗도 골로 보냈던)을 레슬링 개비기 하나로 막아내며 판정승을 거두었고 랜디 커추어와의 경기에서도 1, 2라운드에서 힘에서는 커투어를 압도하는 모습을 보였다. 미들급의 체격에 웨이트 트레이닝으로 증량을 해서 UFC 헤비급 챔피언까지 지냈다. MMA 초기 시절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실제로 대학 레슬링 오하이오주 우승 경력이 있는데 이때 체급이 80kg 급이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MMA 1세대에 속하는 G&P 이후로 이렇다 할 발전이 없었기에 웰라운드로 진화해가는 종합격투기의 변화를 따라잡지 못하고 저물어 버렸다. 물론 랜들맨도 변화를 시도했지만 MMA의 발전속도가 더 빨랐다고 해야겠다.
3. 기타
오하이오 주립대 시절 뛰어난 레슬링 커리어를 쌓아가나 정작 기량이 절정에 다다른 4학년때에는 학업 성적 미달로 대회에 출전 할 수 없게 되었다. 이후 콜먼의 권유로 MMA에 뛰어든다.
해머하우스의 수장인 마크 콜먼의 수제자로 콜먼을 우상처럼 따른다.
UFC에서 헤비급 챔피언을 지냈지만 인기는 PRIDE에서 더 높았다. 입담이 좋고 쇼맨쉽도 뛰어나기 때문에 관중들의 열광적인 호응을 끌어낼 줄 알았다. 크로캅을 KO로 잡은 뒤의 인터뷰에서 그의 열정적인 마이크 웍을 들을 수 있다.
점프하는 것을 매우 좋아하는데 사쿠라바와의 대전을 앞두고 대기실에서 점프를 하다가 '''천장에 머리를 들이받고 기절'''했다. 사쿠라바의 반응은 "바보 아냐?" 링 위에서도 경쾌하게 통통 튀어다니는 모습 때문에 일본에서는 '동키콩'이라는 별명으로 더 유명하다.
은근히 동안. 1996년에 데뷔한 이후로 2010년까지 얼굴이 거의 변하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동안이라기보다는 나이를 짐작하기 어려운 얼굴이다.
마동석이 트레이너로 함께 했었다.
PRIDE 32에게 부상이 남아있는 상태로 마우리시오 쇼군과 싸워 패하자 "부상과 관계없이 쇼군은 강했다"며 자신의 패배를 인정했다. 대인배. 그러면서도 "쇼군은 퀸튼 잭슨이나 포레스트 그리핀에게는 미치지 못한다."라는 말을 한 적이 있는데 UFC 76에서 그리핀이 쇼군에게 서브미션 승을 거두면서 현실이 되었다. 여담이지만 이 경기 후 스테로이드 검사에서 '''인간의 것이 아닌''' 소변을 제출했다가 무기한 출장정지를 당하기도 했다.
젊었을 때는 아마추어 레슬링으로 이름을 날렸지만 사고도 많이 치고 다닌 모양이다. 스스로 "예전에는 미친 짓거리를 하며 살았다"고 고백했다. 대학 시절 바에서 '''17대 1'''로 맞짱을 떠서 2분만에 정리했다는 얘기가 있다. 콜먼이 이 소식을 듣고 바로 스카웃에 나섰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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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게이 하리토노프 vs 세미 슐트의 경기에서 세르게이를 보면서 한 말이다. 이 경기는 프라이드 사상 가장 잔혹한 경기 중 하나.
마리오 카트 시리즈의 열렬한 팬으로 심지어 경기 직전에도 대기실에서 조이패드만 붙잡고 있었다고 한다. 엄청난 근육량 때문에 그의 웨이트 트레이닝 무게를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으나 정작 본인은 무거운 무게 대신에 저중량 고반복 훈련을 한다고 한다. 이유는 고중량 훈련은 심폐 지구력 향상에 전혀 도움이 안 된다고 인터뷰에서 말한 적이 있다. 참고로 훈련시에 벤치 프레스 한세트 기준 125kg x 30회 정도 한다고 한다.(물론 벤치프레스 125kg는 일반인 기준으로는 고중량이다.)
무지막지한 외모에 안어울리게 목소리가 꽤나 고음에 가는톤이다.
3.1. 사망
안타깝게도 2016년 2월 11일 폐렴에 의한 심부전으로 사망하였다. 향년 44세. 미국 폭스 스포츠는 11일 "케빈 랜들맨이 폐렴 증세로 병원에 입원 했다가 심장마비로 숨을 거뒀다"고 전했다. 한국 팬들 중에는 '페이스 북에서 효도르가 RIP Kevin이라고 써놓은 것을 보고 설마 설마 했는데...'라는 반응을 보인 팬들이 다수였다. 상술했다시피 마동석은 웨이트 트레이너로 있었던 만큼 친분이 있었기 때문에 추모 트윗을 남기기도 했다.#
포도상구균 감염과 대수술 이후 복귀했을 때 벌크가 눈에 뜨게 줄어든 점. 그리고 폐렴, 심장마비로 사망한 것을 보면 무리한 아나볼릭 스테로이드 & 성장호르몬 남용이 그의 몸을 꾸준히 갉아먹은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