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빙하기
1. 개요
소빙하기, Little Ice Age, 小氷河期, 지구의 기온이 간빙기에 비해서 비교적 낮게 내려갈 때를 이르는 말이다. 평균 기온이 2~3도 정도 강하해서, 농업 생산력과 어류 움직임 등이 크게 변화하는 사태가 나타난다. 현재로서는 근대적 측량 기록이 남은 17세기에는 기온 저하가 극에 달했음이 확인되어, 1400년/1500년에서 1850년까지가 장기적인 '소빙하기'로 설정되는 경향이 있다. 처음에는 역사학자나 기후학자가 아닌 한 기자가 사용하기 시작한 용어라고 하며 현재로서도 그 실체에 대해서는 논의 중이므로 다소 조심스럽게 접근할 필요는 있다.
2. 역사적 소빙하기
17세기 소빙하기의 원인은 아직 미상이다. 몇몇 학자들은 태양 활동의 후퇴를 지목한다. 17세기 후반에는 마운더 극소점(Maunder Minimum)으로 지목되는 흑점 활동이 가장 미약한 시기가 존재했는데, 이것이 태양 활동의 약화로 설명된다는 것. 또한 혜성이나 운석 등 지구 밖의 동향이 영향을 미쳤다거나[1] , 화산 폭발 등의 또다른 자연재해가 영향을 미쳤다는 주장이 있다. 현재는 당시의 역사 기록뿐만 아니라 꽃가루 측정, 빙하 퇴적 측정, 나이테 측정 등을 통해 원인을 알아내려는 연구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명확하게 증명된 이론은 없다'''.
17세기 소빙하기는 유럽의 농업 생산력을 쇠퇴시켜 마녀사냥, 17세기의 각종 반란(영국 청교도 혁명 및 명예 혁명, 프랑스 프롱드의 난, 러시아 스텐카 라진의 난 등) 30년 전쟁 시기의 혼란 등 사회적으로 분란을 불러 온 간접적인 원인으로 지목된다.(17세기 위기론) 1677년과 1683~1684년에는 영국 템스 강이 얼어 회화로 남기도 하였으며, 스트라디바리우스 바이올린이 17세기 유명해진 것도 이 시기 소빙하기로 인해 목재 질이 촘촘해지고 음질이 달라졌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있다.
한편 미술사에도 이 소빙하기를 접목시키는 연구가 이루어지기도 한다. 해당 기사에 따르면 미국과 영국 박물관에 소장된 1400년 이후 유럽의 사실주의 풍경화 만 2천점을 분석한 결과 소빙하기 이전엔 파란 하늘이 묘사된 그림이 65%였지만 소빙하기가 시작된 이후엔 흐리고 어두운 날씨가 70~80%를 차지했다고 한다.
현재 동아시아에도 이 학설을 접목하여 명나라와 청나라의 교체를 여기에 연결 지으려는 시도가 있다. 조선왕조실록이나 『증보문헌비고』 등의 기록을 종합했을 때 이 시기의 자연재해가 잦았다는 것이 동아시아 측에서도 확인되기도 한다. 조선의 경우 1653년 6월에는 한 여름임에도 강원도에 서리가 끼였다는 이야기가 나오며 1655년 봄과, 1659년 봄에는 동해가 얼어 붙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또한 이 시기 조선에 표류해 전라남도 나주, 여수를 돌며 떠돌이 생활을 당했던 헨드릭 하멜은 자신의 저서 하멜 표류기에 "(1662년) 우리가 산간에 있는 사찰에 갔을 때 어찌나 눈이 많이 왔던지 집과 나무가 다 파묻혀 사람들이 눈 속에 굴을 뚫고 이 집에서 저집으로 다니는 것을 본 일이 있다."라고 묘사하기도 했다. 또한 조선 후기의 거대한 재앙이었던 경신대기근이 일어나기도 했다. 일본 에도 막부 역시 화산 활동과 저온 현상 등으로 인한 텐메이 대기근 등의 잦은 대기근에 시달린 기록이 남아 있다.
특히 조선에 관련해서는 서울대학교 이태진 교수가 기후사 관련 주장에 적극적인데, 다른 학설(예를 들어 고종의 재조명 등) 면에서도 최근에 충돌이 잦은 사람이라 평가가 갈리는 편.[2]
이 외에 8세기 ~ 9세기 경과 13세기 후반 ~ 14세기 즈음에도 소빙하기가 존재했다는 설이 있다. 8세기 ~ 9세기 소빙기론은 바이킹의 남하, 마야 문명의 쇠퇴, 당과 신라 등지의 혼란 등을 설명하는 데 이용된다. 실제로 삼국사기를 보면 효공왕과 신덕왕 때 음력 3월 ~ 4월에 서리가 내렸다는 기록이 보인다. 13세기 ~ 14세기 소빙하기론은 흑사병과 중세 말기의 이상 기온과 관련되어 나온 학설이다. 좀 더 나아가서는 로마 제국 후기부터 중세 시대의 기온이 상당히 높았던 것의 반작용으로 이해하기도 한다.
3. 재발 가능성 및 전망
결론부터 말하자면 '''당대에 일어날 확률은 거의 없다'''. 소빙하기의 원인조차 모르는 지금 상황인데, 지구 온난화 등을 필두로 한 기온 상승은 이미 충분히 증명된 사실이다. 초화산의 폭발 등 극단적인 현상으로 태양 에너지의 입사가 원천 차단되지 않는 한, 지구 전체에 걸쳐 통상적인 원인(태양 주기, 해류 변화 등)으로 소빙하기가 올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1914년부터 시작된 태양 주기의 극대기(근현대 태양 극대기, modern solar maximum)가 2007년을 끝으로 종료되었고, 극소기로 들어갈 가능성이 매우 높아진[3] 상황이다. 여기에 2020년 후반에 라니냐 현상과 흑점 대극소기가 겹치고, 여기에 확인되지 않은 일부 '''가설'''(남극 토양 샘플의 소빙하기 500년 주기설 등으로 '''초소빙하기'''(mini ice age)가 온다는 소문들이 초~중반(1~7월)에 오고 갔다. 게다가 역대급 여름 저온이 일어나면서 더 그래졌다. 그러나 라니냐 및 흑점 주기 등은 주기적인 현상으로, 이것들만으로는 소빙하기의 가능성을 제기하는 것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 또한 태양 극소기의 영향력에 대해서는 NASA에서 그 가능성을 다음과 같이 일축하였다.
- 17세기의 소빙하기의 원인을 위 문단에서도 언급하였듯 마운더 극소기(Mounder minimum)[4] 에서 찾는 연구들이 많지만, 학계에서는 아직 근거가 부족하기에 정설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소빙하기의 시작을 보수적으로 산정하더라도 마운더 극소기 이전에 온다는 증거가 여럿 있다. 다른 개입 요소들의 영향이 명확히 밝혀지지 않는 한, 이 이론을 정설로 받아들이는 것은 섣부른 예단이다.
- 또한 만약 마운더 극소기 수준의 태양 활동 저하가 나타난다 하더라도 태양 에너지의 입사 감소량은 -0.1W/m² 정도로 추정된다. 그런데, 현재 지구상에서 인류가 배출하는 이산화탄소는 계속 증가하고 있고, 3년분의 증가량만으로 이 입사 감소량을 충분히 상쇄시키는 효과가 있다. 이를 조금 더 해석하면 지구 온난화 자체가 소빙하기의 영향인 기온 저하를 삭제할 수 있다는 뜻이 된다. 따라서 초소빙하기설이 제시하는 기후 변화(기온 감소 등)이 나타날 가능성은 현실적으로 없거나 극히 적다.
[1] 핼리 혜성이 나타난 것이나, 요하네스 케플러, 갈릴레오 갈릴레이 등이 천문학을 발달시킬 수 있었던 것도 당시의 동향 때문이라는 주장으로 뒷받침된다.[2] 허나 이 당시 일본은 인구 증가 등의 발전이 있었다고 하나 급격한 인구 증가가 반드시 좋은 상황이다 라는 것도 아닐뿐더러, 무엇보다 조선은 임진왜란, 병자호란 등의 굵직한 전쟁들을 본토에서 겪어 인구 경감과 농경지 등이 황폐화된 이후 였다. 참고로 임진왜란 후 조선의 농경지가 거의 회복된 건 최소 영조 ~ 정조 시절이다.[3] 사실상의 극소기로 가정하는 것이 완전히 틀리지는 않으나, 훗날에 가서야 지금 시기가 극대기인지 극소기인지 확정할 수 있으므로 가능성이 높다는 것으로 표현한다.[4] 대극소기(Grand solar minimum)으로 불리기도 한다.[5] 당장 이 문서의 이전 판에도 비록 비판적인 논조였지만 낭설이 구체적으로 쓰여져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