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바키아 영화

 


Slovak Film
기본정보 (2018년)
출처(EFP: 유럽 영화 프로모션)
인구
540만 명
순수 자국생산 장편영화
17편
관객 수
590만 명
1인당 연간 영화 관람 횟수
1.09회
자국영화 점유율
4.21%
스크린 수
267개


1. 개요


슬로바키아영화. 체코슬로바키아에서 1991년 국가분할을 하면서 슬로바키아로 데뷔했다.

2. 영화 시장


인구 1인당 연간 영화 관람 횟수는 1.09회로 일본 영화 시장의 같은 수치(1.34회)보다도 적다. 스크린 수는 인구수에 비하면 꽤 되는 편으로 2만 명 당 1개 꼴이다.
자국 영화 점유율은 4.2%에 그쳐서 옆동네 체코 영화가 자국영화 점유율 20%대를 유지하는 것에 비해 매우 상황이 열악하다.

3. 역사


체코슬로바키아에서 국가분할을 할 때 분리 이전의 영화 역사는 체코 영화의 역사로 편입하기로 합의했다. 때문에 슬로바키아 영화는 역사가 띄엄띄엄이다.

3.1. 오스트리아-헝가리(1897년 ~ 1914년)


체코보헤미아 왕국으로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제국에서 독립 개체였던 것과 달리, 슬로바키아는 원래 헝가리 왕국의 영지였다. 그래서 체코 영화에 비해 슬로바키아의 영화 도입은 좀 많이 늦은 편이다. 브라티슬라바에 첫 영화가 상영된 건 1899년이다. 영화관1911년에 와서야 세워졌다.

3.2. 전간기


체코슬로바키아 제1공화국으로 독립할 때 와서야 첫 영화가 촬영되었다. 1919년 Snowdrop from the Tatras (Sněženka z Tatier, dir. Olaf Larus-Racek, 1919)라는 영화가 슬로바키아의 첫 영화이다. 전간기에는 체코 영화에 묻어가는 편이었다.

3.3. 슬로바키아 제1공화국(1939년 ~ 1945년)


아돌프 히틀러뮌헨 협정을 통해 체코슬로바키아를 병탄하고 슬로바키아의 요제프 티소를 통해 슬로바키아 제1공화국이라는 괴뢰국을 세웠다. 요제프 티소 시기의 슬로바키아의 영화는 나치 독일제2차 세계 대전을 선전하는 선전영화가 만들어졌다. 또한 독일 영화의 슬로바키아어 더빙이 주로 이뤄졌다.

3.4. 체코슬로바키아 사회주의 공화국



3.5. 체코슬로바키아 연방 공화국(1989년 ~ 1991년)


1989년 동유럽 혁명으로 체코슬로바키아는 연방공화국 이름으로 민주화가 되었다. 그러자 슬로바키아 내부에서도 유럽 공동체를 통한 영화 산업 유입이 시작되었다.

3.6. 슬로바키아 공화국(1991년) ~ 1990년대


국가분할의 후폭풍은 엄청났다. 체코슬로바키아 시기와 달리 슬로바키아가 되면서 알짜배기를 체코가 다 가져간 상황이라 슬로바키아 영화는 홀로서기가 매우 힘들었다. 그 와중에 1994년 유럽연합 출범으로 신생 슬로바키아 공화국에 외국 영화가 무분별하게 쏟아져 들어왔다. 슬로바키아는 신생 국가라 각종 영화 관련 법제가 미비했다. 이 틈에 미국 영화와 유럽 각국의 영화가 쏟아져들어온 것이다. 덕분에 슬로바키아 국내의 영화 생태계는 완전히 무너졌다.
1991년부터 1999년까지 10년 간 슬로바키아 전체에서 자국 영화는 '''딱 7편'''만 만들어졌다. '''1년에 한 편도 영화를 못 만든 것이다!''' 1990년대는 슬로바키아 영화계에서 '''최악의 시기'''라고 모두 입을 모아 말할 지경이다.

3.7. 2000년대


다행히도 21세기가 되면서 슬로바키아 영화도 바닥을 잡았다. 유럽연합에서 문화 보조금을 슬로바키아에 지급해서 1년에 5~10편 정도 영화를 만들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대침체로 인해 슬로바키아 영화 기반이 뿌리째 흔들렸다.

3.8. 2010년대


옆나라 체코와 달리 슬로바키아유로존이다. 유로 덕분에 유로존의 영화가 마구잡이로 들어왔고, 슬로바키아의 영화도 제작은 되고 있지만 자국 영화 시장 내에서 경쟁력을 상실, 자국 영화 점유율이 10%에도 미치지 못하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3.9. 2020년대



4. 영화 감독



5. 주요 작품



6. 영화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