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비르 칸국

 



'''시비르 칸국'''
'''Себер Ханлыҡ'''

1468년~1598년
위치
오늘날의 튜멘 주
수도
튜멘
정치체제
전제군주제
국가원수

언어
시베리아 타타르어
종족
시베리아 타타르
종교
이슬람
성립 이전
킵차크 칸국
멸망 이후
러시아 제국
1. 개요
2. 역사
3. 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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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시베리아 서부 지역에 위치한 튀르크계 이슬람 국가로 원래 칭기즈 칸의 장남 주치의 후손들이 다스렸다. 이들이 다스리던 곳이 현재의 톰스크 및 튜멘, 노보시비르스크 일대이다. 이들은 킵차크 칸국 계열 국가 중 하나이며 튀르크계의 시베리아 타타르인들이 주축이었다.
언어는 튀르크어족에 속하는 시베리아 타타르어를 사용하고 지배층은 수니파 이슬람을 피지배층에 속하는 여러 우랄어족 민족들은 토속 신앙을 믿었다. 이 칸국이 유명해진 건 다름아닌 시베리아라는 지명의 유래가 이 나라 이름에서 왔기 때문이다. 코사크 치모페예비치 예르마크가 오늘날의 튜멘에 위치한 시비르 칸국을 정복한 것을 계기로 우랄 산맥 동부의 광활한 타이가 지대는 시베리아라고 불리게 되었다.
모스크바 공국은 1586년 튜멘에, 1587년 토볼스크에 요새를 세우고 자리를 굳혔으며, 노가이 칸국으로 도망간 마지막 지도자 쿠춤 칸이 1598년 살해되면서 멸망했다.

2. 역사


시비르 칸국은 킵차크 칸국 계열의 국가 중 하나다. 킵차크 칸국이 티무르와의 전쟁으로 세력이 약화되면서 분열하는 와중에 서부 시베리아와 우랄 산맥에 일대에 독립한 세력들이 시비르 칸국이 되었다. 시비르 칸국의 지배층은 타타르인들이었지만 대다수 피지배민들은 우랄어족, 예니세이어족에 속하는 언어를 쓰는 시베리아 원주민들이었다. 이들은 기마 유목민인 튀르크인과는 다른 수렵채집인이었다.
루스 차르국의 스트로가노프 가문이 우랄 산맥 서부의 광산을 개발하며 막대한 이익을 얻는 와중에 바로 시비르 칸국이 광산 노동자들이 사는 지역을 습격하여 광산업에 큰 차질이 빚어졌다. 이에 분개한 스트로가노프는 차르 이반 4세에게 시비르 칸국을 토벌할 것을 호소하여 허락을 받고, 코사크 산적 출신의 예르마크를 아타만으로 삼아 코사크 기병 500여 명에 리보니아 전쟁 와중에 포로로 잡은 독일인과 리투아니아인 300여명을 동원하여 시비르 칸국을 탈탈 털어버리고 정복했다. 예르마크 본인은 시비르 칸인 무함마드 쿠춤 칸의 반격 때 후퇴하다가 갑옷을 입은 채로 강에 빠져 익사했다.
시비르 칸국 주민 중 대부분을 차지한 피지배인인 여러 우랄어족 부족들은 들은 말을 탈 줄도 모르고 활도 원시적인 형태여서 총으로 무장한 기병 수백명 만으로 정복이 가능할 정도로 쉬웠다만 시비르 칸국 멸망 이후에도 우랄어계 민족인 한티인만시인을 중심으로[1] 200~300년 동안 꾸준히 폭동이 일어났다. 이들은 대개 직접 러시아인들을 공격하기보다는 당시 친러 세력(...)인 코미인 상인들을 주로 습격했다.
원주민의 폭동을 유발시킨 문제는 아니 원주민 반란보다 더 골치 아픈 문제는 시베리아 원정대의 식량 수급 문제였다. 잉여 식량이 아예 없는 시베리아에서 수백명 단위의 원정군과 군마를 사냥과 낚시 만으로 먹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고, 코사크들은 원주민 마을을 약탈해야만 생존할 수 있었다.
시비르 칸국 영토 내의 원주민들이 약탈과 수탈을 피해 뿔뿔이 흩어져 달아나자 모스크바 공국은 이 지역에 러시아인 죄수들을 보내 이 지역에서 농사를 지으며 코사크들을 먹여살리게 하면서 러시아인들은 시베리아 개척의 첫 발을 내딛었다. 그리고 우랄계 원주민들은 변방으로 밀려나 버렸다.

3. 유산


시비르 칸국의 타타르인들은 오늘날 튜멘과 토볼스크를 중심으로 한 시베리아 타타르인들의 조상으로 평가받고 있다. 카잔아스트라한볼가 타타르족들은 몽골인의 후손이라기보다는 사실상 볼가 강 유역으로 이주한 튀르크계 불가르인[2]의 후예라면 이들은 킵차크 튀르크인인 카자흐스탄카자흐족이나 키르기스스탄키르기스족과 가깝다고 볼 수 있다.
한티-만시 자치구한티인, 만시인, 셀쿱인의 조상이 되는 오스탸크인들은 시비르 칸국의 피지배 민족으로 튀르크계와 같은 기마민족이 아닌 수렵과 고기잡이를 하는 사람들이었다. 비슷한 환경의 캐나다 원주민들이 모피와 노예를 더 많이 얻기 위해 서로 싸우다 전멸한 것과 다르게 시베리아 원주민들은 서로 사이좋게 러시아 제국에 맞서 꾸준히 반란을 일으켰다. 계속된 러시아화 및 러시아인과의 통혼 등의 과정을 거쳐 현재 이 지역의 원주민은 소수만 남아 있다.
[1] 이들의 이름에서 한티-만시 자치구가 유래했다.[2] 불가르 칸국 항목 참조. 불가리아도 이들이 슬라브화되어 만들어진 나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