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평호
1. 소개
前 해태 타이거즈와 쌍방울 레이더스에서 활약했던 외야수이자, 前 NC 다이노스 1군 수석코치.
2. 선수 경력
초창기 KBO 리그의 스위치 히터로 활약했던 선수였으며[2] , 외야수로 발이 빠르고 수비실력이 좋았다고 알려져 있다. 그 중에서도 다이빙 캐치만큼은 당대 최고였다는 평. 1986년 해태에 데뷔한 이후 선수 말년에는 고향 연고인 쌍방울에서 활약을 하고 1992년도에 은퇴하였다.
선수시절 등번호는 '''15번'''(해태),'''7번'''(쌍방울)이었다.
3. 지도자 경력
3.1. OB 베어스-두산 베어스 시절
은퇴 이후 1996년부터 OB 베어스-두산 베어스의 코치로 부임하게 되었다. 이는 동국대학교 시절과 쌍방울 레이더스 선수 시절 각각 감독이었던 김인식과의 인연에 의해서였다. 2001년 한국시리즈에 1루, 외야수비코치 로 우승반지를 끼었던 적이 있다. 또한 이 시기에 정수근이 도루왕에 등극하면서 도루왕 제조기의 자질을 드러냈다.
3.2. 삼성 라이온즈 1기 시절
김경문 배터리코치가 김인식의 뒤를 이어 두산 베어스의 감독으로 임명되자, 2004년에 삼성 라이온즈로 자리를 옮겼다. 선동열 당시 삼성 라이온즈 감독의 사단으로 활약하면서 수비코치-주루코치를 역임하였다. 삼성에 있었을 당시에는 선수들과의 친화력이 대단하고 자기관리가 철저하며 전력분석의 노하우까지 겸비하였다는 평을 받았다. 2011년 한국시리즈에 주루코치로 재임하면서 우승반지를 끼었다.
여담으로 선동열이 삼성 감독 시절 양준혁 은퇴 건으로 대부분의 삼성 팬들에게 평가가 안 좋았을 때도, 삼성에 있었던 선동열 사단 코치들 중 유일하게 평가가 좋았다.
이 시기 가장 유명했던건 레전설로 평가받는 정인욱, 김상수 하이데어 사건. 2011년 8월 6일 롯데에게 지고도 정신 못차린 정인욱과 김상수가 하이데어로 희희낙낙거리다 삼갤러들에게 딱 걸렸고, 분노한 삼갤러들은 트위터를 통해 김평호 코치에게 분노의 트윗을 날렸다. 그러자 이 트윗을 본 김평호 코치가 김상수, 정인욱 을 포함한 선수단 전원에게 하이데어를 탈퇴하도록 만들었다. 당시 김평호 코치가 남겼던 트윗들
3.3. KIA 타이거즈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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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선동열 감독이 KIA 타이거즈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정회열 배터리코치와 함께 KIA로 이적, 22년 만에 코치로 친정 팀 유니폼을 입게 되었다.
사실 1루 코치라 그렇게 주목받지 않았지만 당시 KIA 코치진들 중에선 제일 평가가 괜찮았다. 삼성 시절과 마찬가지로 KIA에서도 팬들의 우려를 받아들여 선수들을 볼 때마다 스마트폰에서 하이데어를 삭제하게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KIA에서도 스스로 노력을 많이 하고 팬들과의 소통도 잘하는 코치라는 칭찬을 많이 들었다.
그런 탓인지 선동열 감독이 KIA를 바닥으로 끌고 가는 2013년 중반 이후로 선동열 감독 후임 감독으로 추천하는 팬들도 생겼다. 하지만 우승이 아니면 죽음 수준인 KIA의 현실에서 과연 초보 감독을 기다려줄지, 김평호 코치가 감독이 되었을때의 행보는 어떻게 달라질 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니. 또한 외야수 출신은 감독으로 성공하기 힘들다는 이야기가 있다는 점이 걸린다.
8월 17일, 코치진 교체 차원에서 3군 코치로 내려갔다. 그 후 10월 5일 이순철, 조규제, 박철우 코치와 함께 재계약 불가 통보를 받고 해임되었다.
3.4. 삼성 라이온즈 2기 시절
삼성 라이온즈와 재계약한다는 소식이 엠엘비파크를 통해 전해졌다. 그리고 3일뒤 재계약 확정 기사가 떴다. [3] 삼성에 온 선동열 사단의 코치진 중 유일하게 평가가 좋았던 데다 위의 하이데어 다잡기 사건 덕에 삼성 팬들은 대환영 중. 연속 우승으로 멘탈이 헤이해진 선수들을 다잡을 기회라며 모두들 좋아하고 있다. 그리고 다시 받아 준 류중일 감독이 대인배라는 평도 따랐다.
오자마자 김상수가 전년에 비해 확실히 도루 갯수가 늘어났다. 김평호 코치의 영향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삼팬들은 이에 대해 매우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중이다. 도루 성공률도 높은 편으로 김평호 코치의 분석이 주효해 보인다는 평. 게다가 팀이 전반적으로 도루 갯수가 많아졌다. 특히 5월 16일 기준으로 '''9개 구단 중 도루 1위 및 유일한 도루 성공률 8할대'''라는 성적을 거두고 있어 더더욱 평가는 좋아지는 중.
다만 6월 24일 넥센 히어로즈전에서 아쉬운 작전이 나왔었던 게 옥에 티. 9회말 2사 1루 상황(주자 채태인)에서 넥센 마무리 손승락이 던진 초구를 이승엽이 받아처서 1, 3루 안타가 됐는데 안타를 치기 직전에 그만 타임을 불러서 안타가 취소된 것. 이 후 이승엽이 페이스를 뺏기며 허무하게 삼진당하면서 게임이 종료되었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아마 대주자를 쓰기 위해 타임을 부른듯. 승부의 큰 파장을 일으킨 김평호 코치의 타임 요청
이 후에는 큰 흠을 잡을만한 일은 전혀 없었고 김상수를 창단 첫 도루왕으로 만들었으며, 도루 자체에 관심이 없었던 야마이코 나바로를 30-30에 근접한 수준까지 키워 냈으며, 그 외에도 박해민을 풀 타임 첫해에 30도루 타자로 만드는 등 그야말로 삼성 팬들의 칭송을 한 몸에 받게 되었다.
기사에 따르면 원래 류중일 감독과 껄끄러운 관계였지만, 2013 시즌이 끝나자 류중일 감독이 팀을 위해 필요한 사람이라며 KIA에서 물러난 김평호의 영입을 직접 추천했다고 한다. 당연히 류중일 감독은 대인배라는 찬사를 듣는 중.
2015년에는 박해민이 구단 역사상 최초로 60도루에 성공하며 2년 연속으로 도루왕을 배출하는데 성공했다. 2016년에도 도루왕 배출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9월 20일 기준으로 박해민이 2위 손아섭과 10개차로 도루 1위를 유지하면서 3년 연속 도루왕 배출을 해냈다!
후폭풍이 몰아친 2016 시즌 후 김한수 신임 감독의 취임식 때 모습이 보이지 않았고 오키나와에서 열린 마무리 훈련 때도 개인 사정을 이유로 불참하면서 팀을 떠나는 게 아닌가 했는데, 결국 사임을 선언하며 2016년 11월 9일 삼성을 떠난다는 공식 기사가 나왔다. 감독이나 바뀐 코치들과의 나이차 때문인 듯.[4]
2015 WBSC 프리미어 12에 이어 2017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야구 국가대표팀 코치를 다시 한 번 더 맡는다.
3.5. NC 다이노스 시절
사임 후 행보가 불분명한 가운데 뜬금없이 박해민의 2016 시즌 도루왕 기사에서 NC행 소식이 전해졌다. 공식적인 소식이 나오지 않아 많은 팬들이 어리둥절한 가운데, 공식 기사가 나오면서 NC 행이 확정되었다. NC 다이노스는 이광길 코치의 kt wiz행으로 인한 주루코치 공석을 메우기 위해 김경문 감독의 요청으로 김평호 코치를 영입했다고 한다.
5월 20일 코치진 변동을 통해 1군 수석코치로 승격되었다. 본인이 무슨 잘못을 한 것은 아니고 답이 없는 NC의 토종 선발진 때문에 본래 수석코치였던 최일언 수석코치를 다시 1군 투수코치로 내리면서 김평호 코치가 승격된 것.
7월 28일부터 당분간 임시로 팀을 지휘하게 되었다. 김경문 감독이 갑작스런 급체와 어지럼증으로 빠지면서 수석코치로서 팀을 이끌게 된 것. 단 이 분과 이 분의 사례처럼 김평호 코치 본인이 지휘했어도 그 기간동안 올린 전적은 김경문 감독의 것이 된다.
2018년 6월 3일 김경문 감독이 감독직에서 물러나고 유영준 단장이 감독 대행을 맡으면서 코치진 개편 때 양승관 코치와 함께 사임하고 팀을 떠났다.
2019년에 김경문이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되자, 국가대표팀 전력분석관으로 선임됐다. 그리고 3월 21일 CMB 해설위원이 되었다.
4. 연도별 성적
5. 여담
- KIA 타이거즈에 부임한 이후에는 뜸하지만, 트위터를 통해서 팬들과 많이 소통을 하는 야구인이다. 김평호 코치 트위터. 다만 삼성의 코치로 재임했을 당시 LG 트윈스와의 3연전에서 스윕을 하면서 'LG를 원래 자리로 되돌려 놓겠다'라는 부적절한 발언으로 LG 팬들의 집중 포화를 당했던 일이 있었고, 김평호 코치가 트위터를 통해 사과를 해야 했던 일이 있었다. 또한 트위터 덕분인지 최신 야구 유행어도 어느정도 아는듯.[5] 최근에는 트위터에서 인스타그램으로 갈아타신 듯 하다. 적지 않은 연령에도 sns로 팬들과 소통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호평을 받는 중.
- 삼성 라이온즈의 주루코치로 있을 당시 코치로서는 최초로 야구 헬멧(프로텍터)을 쓴 코치가 되었다. 3루에서 작전 지시를 내려야 하는 위치에서 강습 타구에 얼굴을 맞을 수 있는 위험에 도사리고 있기 때문에 그에 대비하기 위해 썼다고 한다. 실제로 2007년에 미국 마이너리그에서 주루코치로 있었던 마이크 쿨바[6] 가 파울 타구에 머리를 맞고 사망한 일이 발생하면서 그 일을 계기로 쓰게 되었다. 참고로 주루/작전코치의 헬멧 착용 의무화는 2011년에 와서야 이루어졌다.
- 아들은 WBSC에서 근무를 하고 있다고 한다. 훗날 야구 행정가로 기대해볼 듯 하다.
6. 관련 문서
[1] KBO 홈페이지에서는 '우투우타'로 표기[2] 최초의 한국프로야구의 스위치 히터는 태평양 돌핀스에서 활약했던 원원근 선수로 알려져 있다.[3] 여담으로 신명철이 kt wiz로 이적한다는 글도 이때 엠팍에 같이 올라왔는데 이는 공식 언론 자료가 나오기 무려 일주일 전이었다.[4] 당장 김한수 신임 감독보다도 무려 '''8살''' 위다.[5] 2014년에는 탑성을 지켜내겠다는 트윗을 남긴적도 있고, 2016년에는 인스타그램 태그로 '9등이라 삼송합니다'라는 드립을 쳤다.[6] 2003년 두산 베어스에서 활약했던 적이 있었다. 그의 형은 현대 유니콘스의 초대 외국인 선수였던 스캇 쿨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