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프로야구/1997년/신인드래프트
1. 개요
1997년 KBO 신인 드래프트 (공식 명칭: '''1997년 한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는 1차 지명, 고졸우선지명과 2차 지명으로 진행되었다.
2. 1차 지명 및 고졸우선 지명
1차 지명은 1996년 9월 23일까지 각 팀에서 팀 별 연고지 내 고교 출신 선수 중 1명을 뽑았다. 고졸우선 지명은 각 팀에서 팀 별 연고지 내 고졸선수 중 3명을 뽑았다.
※표시는 지명권 포기 등으로 지명팀에 입단하지 않은 선수.
'''볼드체'''는 통산 WAR이 스탯티즈 기준 2 이상 되는 선수.
3. 2차 지명
1996년 10월 31일 서울특별시 올림픽파크텔에서 개최되었다.
고등학교 및 대학교 졸업 예정자, 상무 소속 선수들이 신인 드래프트에 참가했다.[1]
3.1. 지명방식
전년도에 무제한이었던 것이 1라운드부터 12라운드까지로 축소되어 각 팀은 최대 12명의 선수를 지명할 수 있다. 단, 지명을 원치 않는 팀의 경우 해당 라운드에서 패스할 수 있다.
지명방식은 매 라운드마다 1996 시즌 성적 역순대로 지명하는 방식이다. 꼴찌팀은 1라운드에서 2명을 지명한다.
3.2. 지명 결과
※표시는 지명권 포기 등으로 지명팀에 입단하지 않은 선수.
@표시는 고졸로 지명받고 대학에 진학하지 않았거나 대학 진학 후 중도하차한 선수.
'''볼드체'''는 통산 WAR이 스탯티즈 기준 2 이상 되는 선수.
4. 드래프트 평가
- OB 베어스 : 요약하면 망했다. 주사위 싸움에서 이병규를 LG에 빼앗긴 뒤 대신 1차 지명으로 뽑은 이경필이 데뷔 초부터 선발진에 진입하며 제 몫을 해줬지만, 김인식의 무지막지한 혹사로 인해 부상을 얻은 뒤 재기하지 못했고, 결정적으로 병역비리에 연루된 뒤 사실상 선수 생명이 끝났다. 그 외 꼴지 경쟁을 해가면서 얻은 2차 1라운드 지명권 2장 중 1장은 대졸 포수 진갑용에게 썼지만, OB에서는 대학 시절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채 2년 뒤 들어온 홍성흔에게 밀리며 삼성으로 이적한 뒤 주전 포수자리를 차지했고, 나머지 1장으로 선택한 김영수는 베어스의 고질적인 좌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계약금 2억 3000만원을 줘가며 입단시켰지만 정작 제구 문제 등으로 인해 두산에서 자리잡지 못하고 롯데로 트레이드되었다. 그 외에도 2차 6라운드에서 뽑은 외야수 김원섭은 단국대 졸업 후 2001년에 입단했지만 만성 간염 등으로 인해 1군에서 자리잡지 못하고 KIA로 트레이드, 결론적으로 OB에서 제대로 써 먹은 선수가 하나도 없었을 정도로 이 해 드래프트는 2000년 신인드래프트 못지 않은 베어스 역사상 최악의 신인지명 흉작 중 하나였다.
- 삼성 라이온즈 : 2차 6라운드에서 뽑은 박한이가 동국대 졸업 후 2001년 입단하자마자 주전 외야수 자리를 차지하고 삼성의 프랜차이즈가 된 게 유일한 수확일 뿐, 나머지는 말그대로 폭망. 1차 지명으로 선택한 황성관과 고졸우선지명으로 뽑은 설재호, 황영구, 이동국 등은 소리소문없이 사라졌다. 성균관대를 중퇴하고 2차 3라운드로 지명한 포수 황두성은 시력 문제로 인해 투수로 전향했다가 임창용을 얻기 위한 트레이드 과정에서 해태로 이적하면서 아예 써 보지도 못했고, 오랜 무명 생활 끝에 현대에서 포텐이 터졌다.
- LG 트윈스 : 주사위 던지기 경쟁 끝에 1차 지명으로 영입한 적토마가 LG의 프랜차이즈로 자리잡으며 이번 드래프트 최대의 수확이었다. 하지만 그 외에는 장문석, 전승남, 안재만 정도만 그나마 제 몫을 해 주었지만, 다른 선수들에 비해 커리어가 부족했던 편. 고교시절 '제 2의 유지현' 이 될거라고 기대받았던 휘문고 내야수 손지환은 연세대와의 이중 등록 파문 끝에 LG에 입단했으나 자리잡지 못하고 진필중의 보상 선수로 KIA에 이적한 뒤 주전 내야수 자리를 꿰찼고, 역대 최초로 무보살 삼중살을 성공시켰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후 부상으로 몰락, 저니맨 신세가 되었다가 30대 초반에 유니폼을 벗었다.
- 롯데 자이언츠 : 1차 지명으로 뽑아 계약금 5억을 얹어주고 데려온 손민한이 전국구 에이스로 성장하며 재미를 보았지만, 그마저도 데뷔 초 몇 년을 부상으로 날리고 2000년부터 빛을 보았다. 고졸우선지명으로 뽑은 내야수 신명철은 연세대 졸업 후 2001년에 입단했지만, 아마 시절 국가대표까지 지냈던 거에 비해 롯데에서는 물방망이 타격만 보여주다가 삼성으로 트레이드된 뒤 쏠쏠하게 활약하며 주전 2루수 자리를 꿰찼다. 그나마 신명철과 맞바꿔온 좌완투수 강영식이 몆 년간 롯데의 좌완 불펜으로 활약했으니 위안거리. 2차 2라운드에서 뽑은 내야수 이동욱은 훗날 NC 다이노스 감독으로 부임한다.
- 쌍방울 레이더스 : 1차 지명에서 오상민, 고졸우선지명에서 정대현을 얻었으나 이 둘만 터진 드래프트였다. 정대현은 군산상고를 졸업하고 경희대학교로 진학한 후, 2001년에 지명권을 인수인계받은 SK 와이번스에 입단하면서 언더핸드 투구 폼으로 여왕벌이라는 별명을 얻으며 활약한다.
- 현대 유니콘스 : 최만호와 정수성이 외야 백업으로 요긴하게 쓰였고, 김일경도 쏠쏠하게 활약해 줬다. 최영필은 김수경-정민태-임선동이라는 후덜덜한 황금의 선발 투수진 때문에 현대에서 자리를 못 얻었고, 2001년에 한화 이글스로 트레이드되고 나서야 포텐이 터졌다. 2017년까지 KIA 타이거즈에서 핵심 불펜 요원으로 활약했다.
- 해태 타이거즈 : 2차 1순위로 뽑은 외야수 김창희만 그럭저럭 활약했을뿐 나머지는 모조리 폭망할 정도로 흉작을 거두었다. 한편 김병현은 해태 입단을 거부하고 성균관대학교를 거쳐 메이저리그로 진출,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에서 마무리 투수로 활약하며 박찬호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한국인 메이저리거로 급부상했다. 하지만 이거 때문에 최희섭과 함께 자격정지를 당했고, 2007년 해외파 지명 때 자격정지가 풀린 후 현대 유니콘스의 지명을 받게 된다. 우여곡절 끝에 2012년 현대의 지명권을 이어받은 넥센 히어로즈에 입단하여 국내 무대로 돌아오게 된다. 이후 산전수전 다 겪고 2014 트레이드로 고향팀에 돌아왔지만 큰 활약은 펼치지 못하고 2016년 시즌이 끝나고 방출되고 만다.
5. 이모저모
- 쌍방울에 2라운즈 지명된 정회선은 지명 하루 후 삼성 라이온즈의 김성현과 이종두의 트레이드 대상이 되면서 삼성 유니폼을 입었다. 현재 충훈고등학교 야구부 감독을 맡고 있다.
- 현대에 2차 9순위 지명을 받은 김낙관은 현대 피닉스 출신 선수 중 유일하게 프로 팀에 지명받은 선수다. 김낙관을 제외하고, 현대 피닉스에서 프로로 진출한 선수들은 이미 프로 지명을 받은 상태였다.
- 한화에 11라운드 지명된 김준태는 프로 입단 전에 교통사고로 운명을 달리하고 말았다.
- 진갑용이 부산고-고려대 동기인 손민한에게 밀려 2차 지명으로 흘러나올 것이 확실했기 때문에 1996 시즌 막판 포스트시즌 진출이 힘들어진 OB와 LG가 진갑용을 잡기 위해 꼴지 경쟁을 하기도 했다. 결국 전년도 우승팀에서 꼴찌가 되는데 성공한 OB가 2차 1번픽으로 진갑용을 지명. 그런데 진갑용은 홍성흔에게 밀려 삼성으로 트레이드되었다.
- 해태에 고졸 우선 지명되었던 김원은 원광대로 진학했다가 지명권이 풀린 뒤 군 복무를 거쳐 SK 와이번스에 신고선수로 입단한 후 2004년 깜짝 활약을 펼쳐 주목받았지만, 그 시즌 말에 방출되었다.
- 해태에 6라운드 지명된 김재구는 단국대 진학 후 지명권이 풀렸고, 졸업 후 SK에 신고선수로 입단했으나 불미스러운 일에 휘말리기도 했다.
- OB에 고졸 우선 지명되었던 김덕용은 두산 지명을 거부하고 경희대에 진학하였으나, 자기관리 소흘로 인해 경희대를 졸업하고 프로에 데뷔한 후에는 2001년 1군에 세 번 등판한 게 전부였고, 이후 2002년 7월 자유계약선수로 방출당하면서 사실상 선수 은퇴 수순을 밟았다. 하지만, 선수 은퇴 후 광명시 리틀야구단 감독을 맡아 2013년 박찬호배 전국리틀야구대회 우승 등 각종 대회에서 팀을 우승으로 이끌며 지도력을 인정받고 있다.
- 한화에 6라운드 지명된 김대원은 고려대로 진학한 후 한화 이글스에 입단하였으나, 은퇴 후 배우로 활동 중이다. 김기무라는 예명으로 활동 중이며 2017년 힘쎈여자 도봉순으로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렸다. 2019년 말과 2020년 초에 걸쳐 방영한 야구드라마 스토브리그에 출연했다.
- 롯데에 2라운드 지명된 이동욱은 프로 첫 해부터 부상에 시달린 탓에 만 30세도 안 된 나이인 2003년에 방출되어 은퇴했지만, 롯데의 지도자 제의를 받아들여 수비코치로 경력을 쌓아 오다 2019년 NC 다이노스의 2대 감독으로 선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