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마가 히로유키

 

1. 개요
2. 생애
3. 작품 특징
4. 사건사고
5. 대표작


1. 개요


山賀博之
일본애니메이션 감독, 각본가, 기획자, 제작자. 가이낙스 전 대표이사. 니가타현 니가타시 출신. 현재 가이낙스 창립 멤버 중 가이낙스에 남아있는 인물들 중 하나.[1] 1962년 3월 23일생. (62세)

2. 생애


어린 시절 학력 컴플렉스가 있는 아버지가 샐러리맨이 되라고 강요해서 샐러리맨만은 되지 말자고 생각해서 영화 감독을 꿈꾼다. 이때 우연히 본 영화잡지에서 영화감독이 되려면 같은 영화를 10번 볼 수 있어야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700편의 영화를 10번씩 보면서 연출에 대한 감각을 얻었다. 그러나 영화는 재미가 없다고 생각해서 애니메이션 감독이 되기로 한다. 그런데 애니메이션에 대한 지식은 전무였다고 한다. 기동전사 건담도 본 적도 없고 뭔지도 몰라서 같은 학과의 (오타쿠) 학우들이 놀랬을 정도라고 한다.
게다가 야마가 히로유키는 그림을 그리는 재능도 전혀 없었다. "그럼 그림을 그리는 애니메이터들을 미리 포섭해서 만들자." 라는 비범한 발상으로 자신의 애니를 만들어줄 사람을 찾기 위해 1980년에 오사카 예술대학 영상계획학과(현 영상학과)에 진학한다.그리고 이때 만난 친구들이 신세기 에반게리온안노 히데아키, 프린세스 메이커의 아카이 타카미, 애니 평론가 오카다 토시오였다. 이들은 동인 애니메이션 DAICON 3를 제작해 억대의 돈을 벌고 뉴스에도 나오게 된다. 일이 잘 풀리자 학교는 중퇴.
그리고 그동안 쌓은 인맥과 돈으로 안노, 아카이, 오카다와 함께 가이낙스를 창설한다. 당초 가이낙스는 야마가가 만들고 싶었던 작품 왕립우주군만 만들면 앞으로 뭘할지 계획이 없는 회사였지만 왕립우주군이 거하게 망함으로서 부채 상환을 위해 다른 작품도 만들어야할 상황이 몰린다. 이때 탄생한 작품들이 톱을 노려라!이다. 그 외에도 가이낙스에 있으며 여러 히트작의 기획안 및 각본을 내놓았다.
반쯤 논픽션 만화, 드라마 아오이 호노오에서는 안노와 아카이에게 붙어먹어서 평생 날로 먹으려는 사람으로 나왔지만 [2] 실제로는 상당한 노력파. 그림을 못 그리지만 제작자가 되려면 연출 콘티라도 그릴 수 있어야한다며 학원까지 다니며 데셍 연습을 하였고 제작에 필요한 돈을 끌어오기 위해서 영업을 혼자 뛰어다녀 안노나 아카이는 작업에 집중할 수 있었다고 한다.

3. 작품 특징


주로 각본에 뛰어난 감각을 보여 야마가가 만든 작품은 스토리가 뛰어난 경우가 많다. 각본이나 기획을 담당한 작품은 패러디오마주가 매우 많으며 초반은 왁자지껄한 병맛과 액션 위주로 가다가 마지막에 새드 엔딩에 감동적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오카다 토시오도 야마가는 감동이란 무엇인지를 너무나 잘 알고 있다고 평론하고 있다. 야마가가 해피 엔딩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다.
존경하는 애니메이션 감독은 토미노 요시유키, 미야자키 하야오, 이시구로 노보루 3인이라고 한다. 그러나 애니 업계에 들어오고 실제로 만나보니 셋 다 기인이라 환상이 깨졌다고 한다.

4. 사건사고


2019년 안노 히데아키의 폭로에 따르면 에반게리온의 수입 배분을 제대로 하지 않고, 자신의 돈을 1억엔 빌리고 잠적 후 제대로 갚지 않는 기만 행위를 한 주체가 야마가이며, 그 수입을 애니메이터 들에게 제대로 분배하지도 않았고 야마가가 톱을 노려라와 프리크리의 판권도 멋대로 다른 회사에 팔아버렸다고 분노하며 앞으로 자신은 다시는 야마가와 가이낙스와 일을 하는 일이 없을 것이라며 의절을 하였다. # 팬들은 오카다 토시오보다 더한 쓰레기가 야마가일 줄은 몰랐다며 놀라워하고 있다. [3]
오카다 토시오는 야마가는 예전부터 사람보는 눈이 전혀 없었으며 회사를 강탈하려는 사기꾼들이 회사를 망하게 만들고 싶지 않은 야마가의 자존심을 이용해서 합법적으로 가이낙스를 강탈해 이 꼬라지가 난 것이며 이 모든 일의 원인은 야마가 네가 멍청해서 벌어진 일이라고 비판하였다. #

5. 대표작



[1] 다른 한 명은 사다모토 요시유키이다.[2] 하지만 아래에 있던 2019년 안노의 폭로로 사실상 진짜였던 것으로 재조명되었다.[3] 오카다 토시오는 안노와 관계가 안 좋아지긴 했어도 공식적으로 의절까진 이르지 않았다.[4] 오카다 토시오 말로는 처음에는 여자 젖가슴이나 나오고 패러디물이라 본인이 각본을 썼다는 것을 창피하다고 숨겼는데, 톱을 노려라!가 명작이라고 소문이 나니까 그 때부터는 자기가 먼저 그거 내가 쓴 거라고 떠들고 다녔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