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립우주군 - 오네아미스의 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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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가이낙스의 '''첫작품'''이자 1987년에 개봉된 극장용 영화. 감독은 야마가 히로유키. 원래대로라면 가이낙스 최초이자 최후의 작품이 되어야했을 작품이다. 감독 및 각본은 야마가 히로유키. 조감독은 히구치 신지, 야마가가 콘티를 못 그려 영상 연출을 제대로 못 하던 시기라 각본과 세계관 위주로 체크하고 실제 영상은 히구치 신지 연출이다.
캐릭터 디자인 및 총 작화감독은 사다모토 요시유키. 작화감독은 사다모토 요시유키, 안노 히데아키, 모리야마 유지, SUEZEN 등.[1] 원화로는 가이낙스와 스튜디오 지브리의 1군만 뽑은 초호화 애니메이터가가 참여했다. (하단부 스태프 리스트 참조)
제목은 '우주군'이지만 우주전쟁 그딴건 없다.[2]
가이낙스의 대표작 중 하나이지만 같은 제작사의 다른 작품에서 심심치 않게 보이는 모에나 패러디 같은건 거의 없이 신과 인류 그리고 문명에 대해서 논하는 진지한 작품이다. 신비한 바다의 나디아의 프로토 타입이란 평도 있다.
손이 느리고 프로 정신이 부족해서 애니메이터 작화로는 거의 활동한 적이 없는 사다모토 요시유키가 거의 유일하게 애니메이터로서 제대로 그린 작품이다. 작화로는 전설적인 작품.
2. PV
3. 줄거리
배경은 현대보다 조금 떨어진 TV방송은 있지만 휴대폰은 없는 1970~80년대 기술문명의 지구와 흡사한 어느 별에 있는 나라[3] 오네아미스.
주인공 시로츠구는 하늘을 나는걸 동경하며 제트기의 파일럿이 되는걸 꿈꿨지만, 학교를 졸업하기 2개월 전에 그 꿈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을 성적이 가르쳐줬다. 그래서 꿩대신 닭이란 심정으로 우주군에 입대한다.
우주군은 우주 개발을 위해 조직된 군대. 하지만 거듭되는 실패속에 이루어 놓은건 없는 상태에서 인원은 열명 정도뿐이고 군대 안에서도 잉여 취급 받는데다, 시로츠구를 비롯한 소속원들도차 무기력과 무사안일에 젖어 하루하루를 보낸다.
그런 날들을 보내던 중, 시로츠구는 유흥가에서 전도를 하는 여자 리이쿠니[4] 를 만나게 된다. 우주에 가는건 멋진일 아니냐고 말하는 리이쿠니의 순수한 마음에 자기도 모르게 자극을 받으면서 그녀에게 반하게 된 시로츠구는, 딱히 거창한 마음없이 허파에 바람이 들어간듯한 마음으로 유인 우주 계획의 비행사로 지원한다. 거듭되는 로켓 발사 실패로 인해 조직과 예산의 축소를 겪으면서 우주군은 존재 자체가 위협받는 상황이었고, 그래서 우주군 총사령관이 조직을 유지시키기 위해 유인 우주 계획을 도박적으로 개시한 것이다.
시로츠구는 무사안일에서 벗어나 적극적으로 우주비행 훈련에 임하고, 세월아 네월아 하던 우주군 동료들도 시로츠구의 모습에 자극을 받으면서 유인 우주 계획에 점점 적극적이 되어간다. 그런 한편 시로츠구는 반한 여자인 리이쿠니에게 집적이는 것도 잊지 않는다. 리이쿠니는 전도를 위해 경전을 건네기도 하지만 시로츠구는 받기만 한다.
하지만 세상의 흐름은 유인 우주 계획을 그냥 두지 않는다. 우주군 총사령관은 우주 전함 계획이란 명목으로 유인 우주 계획을 선전하고, 모자란 예산 속에 나온 유인 우주 계획의 비용조차도 실은 정경유착으로 인한 뒷돈의 산물이었다. 그리고 유인 우주 계획과 시로츠구는 적극적인 프로파간다 도구로 쓰인다. 빈민들은 우주 계획에 쓸 돈이 있으면 자신들을 도우라며 시위를 벌인다. 그리고 국방부는 유인 우주 계획과 우주군의 필요성 자체를 부정하면서, 우주군 총사령관 이외의 인물에게는 비밀로 하면서 유인 우주 계획과 우주군이란 조직 자체를 사석으로 쓰기 위해 로켓 발사 장소를 이웃나라이자 원수지간인 적국인 공화국과의 국경[5] 근처로 결정한다. 일부러 로켓을 적국에게 포획하게 해서, 나중에 외교적으로 이용하려는 목적이었다. 당연히 공화국은 분노하고 이를 갈며 이 우주계획을 방해하기로 한다.[6]
계속해서 훈련에 임하는 시로츠구였지만, 유인 우주 계획을 둘러싼 갈등과 자신과는 상관없이 굴러가는 프로파간다용 일정속에 점점 지쳐가고, 자기도 모르게 인간 문명의 발전과 그로 인한 인간의 타락에 대한 내용을 신화로 담고 있는 경전에 빠져든다. 선전용 사진의 촬영 장소에서 도망쳐 버린 시로츠구는 리이쿠니가 있는 곳에 틀어박힌채 있다가 리이쿠니에게 '''검열삭제'''까지 시도하다가 미수에 그치는 일까지 벌인다[7] 겨우 다시 마음을 잡고 우주군으로 오는데 오자마자 적국에서 보낸 암살자에게 쫓기다 반격하여 암살자를 죽이는 일까지 겪는다.
이런 사건들 속에서도 마침내 유인 우주 로켓이 우주로 날아가는 날. 적의 군대가 군대를 넘어 발사장을 향하는 것을 알게되고, 장군은 발사 중지를 명령, 그리고 로켓 주변은 양 군대의 격전지가 되어버린다. 그리고 몰려드는 적군 속에서 카운트 다운이 시작된다...
4. 제작 과정
원래는 DAICON FILM의 8분짜리 아마츄어 인디영화의 기획에서 시작했다. 아무튼 SF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오카다 토시오에게 야마가 히로유키가 지구가 아닌 어느 별에서 우주에 대한 꿈을 꾸는 자들에 대한 이야기의 플롯을 보여주자, 오카다는 구상을 애니메이션화하기로 했다. '왕국우주군'이라는 제목은 카페에서 로얄 밀크티라는 메뉴를 보고 로얄(왕립)이라는 것을 떠올렸다고 한다.
오카다 토시오는 도쿄의 반다이를 찾아가 3억 엔의 제작비 투자약속을 받아냈다. 건프라 팔아서 성공한 반다이는 이때부터 영상사업(아니메 분야)에 사업을 진출할 구상이었다. 물론, 처음부터 3억엔을 덜컥 투자한 것은 아니었고, 가이낙스가 만들어온 파일럿필름의 휼륭한 완성도(이 파일럿만 보면 모험활극 흥행대박의 느낌이 확 온다)와 오카다 토시오의 열성적인 프레젠테이션에 믿고 투자를 결심하게 되었다.
1984년 야마가 히로유키의 구상을 애니메이션화하기 위한 회사인 가이낙스가 설립되고 왕립우주군이 본격적으로 제작에 들어가게 되었다. (이 부분은 출처마다 내용에서 조금 차이가 있다. 일단 가이낙스를 설립한후 반다이와 접촉해 자본 투자를 받았다고 적어놓은 곳도 있고, 반다이의 자본을 받아 가이낙스를 설립했다는 곳도 있다.)
반다이가 투자를 결정한 배경에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추천이 있었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이 기획이 어떠냐는 검토 의뢰를 받고, 투자를 망설이는 반다이 간부들에게 좋은 작품을 만들면 처음엔 적자가 나더라도 반드시 투자금은 되돌아 온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의 예언대로 됐다. 그리고 미야자키의 하야오의 스승이자 선배인 오오츠카 야스오는 그의 애제자 사다모토 요시유키가 장편 애니메이션을 만드다고 하니, 미야자키 하야오와 함께 몇 번이나 제작 현장을 방문해서 격려하고 동화 작업의 기술 지도를 해 주기도 했다. 미야자키는 자신들의 슬하에 있는 애니메이터를 다수 왕립우주군으로 보냈고 왕립우준군은 사실상 가이낙스와 스튜디오 지브리의 합작 형태의 작품이 되었다. 하지만 미야자키는 완성된 필름을 보고 나서 뒤에서 노력했던 노인들의 숨은 공로는 그려지지 않았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실은 왕립우주군의 세계관은 미야자키 하야오 작품의 안티테제였다. 가이낙스는 미야자키 하야오에 대해 묘한 경쟁심에 불타고 있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바람계곡의 나우시카(1984년작)을 뛰어넘는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열정으로 불타고 있었다. 그래서 나우시카를 이상한 컬트 종교에 빠진 소녀로 해석한 단발머리의 여주인공 리이쿠니를 등장시켰다. 또 미야자키 작품은 그려지는 인물은 그렇다고 쳐도, 사회 전반이 한 사람이 디자인한 세계였다. 둥글둥글한 디자인의 메카는 이 세계에서는 모든 기계의 디자이너가 한 사람(미야자키 하야오)이었다. 이런 점을 비판의식을 가진 가이낙스팀은 각종 소품, 드라이버나 펜찌 연장 하나도 지구에 없는 디자인으로 새로 디자인하고, 예를 들어 화폐도 귀금속을 단위로 사용하는데, 길죽한 막대기 모양으로 길이가 길 수록 가치가 높고 부러뜨려 사용할 수 있다라는 식으로, 이 세계는 여러 명의 디자이너가 설계한 것이라는 설정에 주의를 기울렸다.
왕립우주군의 제작은 돈을 마구잡이로 까먹기 시작한다. 별 하나의 국가 언어 신화 사회 문화 등등 모든걸 새롭게 창조한후 그런 요소들을 작품 구석구석에 집어넣는건 작은 일이 아니었다. 거기다 애니메이션이 좋아 애니메이션을 만들게 되었고 가이낙스까지 함께 하게된 이들은 자신들이 창조해내는 작품속의 장면 하나하나에 자신들의 모든 정성을 담아내려 했고, 그런 정성을 쏟는만큼 돈과 시간은 소모되어 갔다.
왕립우주군을 만들던 가이낙스의 인물들은 전부 젊고 열정에 가득한 인물들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이들끼리 모여 정식 상업용 애니메이션을 만드는건 처음이었다는 점이다. 제어되지 않은 열정은 한정된 스케줄과 자본에 대한 압박을 더욱 강하게 만들어 갔다.
반다이에서 투자받은 자본은 금새 동이 났으며, 가이낙스는 여기저기서 돈을 빌려 모자란 제작비를 충당하기에 이른다. 당시 사장이던 오카다 토시오는 일하는 시간보다 돈빌리러 다니는 시간이 더 많았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야마가가 밝히기론 최종적으로 반다이가 제작에만 투자한 비용은 3억 6천만엔(나우시카가 이 금액으로 만들어졌다)이다, 3억엔이면 충분하니 6천만엔은 주머니 속에 챙기자고 프로듀서였던 오카다 토시오는 생각했었는데, 제작 중반 쯤에 돈이 떨어져서 5천만 엔을 빌려서 만들어 최종적으로는 4억 1천만엔의 제작비가 들었다고 한다. 물론 홍보와 배급에 들어간 비용은 별도였다. 그리고 그 5천만 엔은 고스란히 가이낙스 명의의 빚으로 남게 되었다.
결국 애초 반다이에서 받은 자금을 훨씬 초과한 돈을 들인 끝에 왕립우주군은 완성되어 극장에 상영되었다. 하지만 왕립우주군이 개봉된 1987년은 이미 이 작품이 구상되던 1984년과는 다른 시대가 되어 있었다. 가이낙스 멤버들을 키운 애니메이션 붐은 1985년을 기점으로 사그러든 상태였고, 애니메이션 붐을 이끌었던 소비층은 취미에서 멀어지거나 미소녀 캐릭터 중심의 OVA를 주 소비대상으로 삼고 있었다. 일반 관객층이 보기에는 왕립우주군의 이야기가 뭔가 거리감이 있어 보였다. 거기다 이야기가 단조롭다는 약점 또한 분명했다.
광고와 홍보와 배급을 위한 비용을 포함한 총 8억엔 정도의 제작비를 들인 왕립우주군은 3억엔이 좀 넘는 수익만을 거두며 흥행에서 참패했고, 일본 개봉에 앞서 천조국 미국 본토에서 시사회까지 열었다고 한다. 역시나 반응은 별로 였다고...한다.[8] 처음 돈을 투자했던 반다이는 이후 애니메이션 사업에서 손을 뗐다.[9] 그리고 가이낙스는 빚더미 위에 올라섰다. 원래 2시간짜리 러닝타임도 반다이의 높으신 윗분들은 상영시간을 거기서 25분을 줄이라고 압박이 심했다고 한다.
왕립우주군은 그 영화 플룻은 평소 별 볼일 없던 왕립우주군 소속 젊은이가 인류 최초의 우주비행을 한다는 이야기로. 결국 아마추어 동영상 제작집단이었던 DAICON FLIM이 첫 극장용 대작 애니메이션 영화를 만드는 성공담이었다. DAICON 3, 4 오프닝 애니메이션도 그 내용은 알고 보면 다이콘 필름과 당시의 일본 SF업계와 오타쿠들의 내부 사정 이야기라고 오카다 토시오가 말을 한 적이 있다.
5. 평가
가이낙스의 천재 애니메이터 들의 전성기의 작품이고 오오츠카 야스오 사단의 지원도 들어가 작화는 역사에 남을 수준이었다. 전차, 비행기, 로켓 같이 작화하기 어려운 물체들이 자유롭게 마구 움직였고 배경부터 캐릭터 작화까지 무너지는 것은 단 하나도 없다.
하지만 대중의 취향을 완전히 무시하고 가이낙스 소속 크리에이터 들의 취향만 가득 담은 작품이라 그냥 재미가 없다는 평이 대부분이다. 영화가 극적인 이야기가 없고 이야기가 평이하며 성공시대 다큐멘터리 같은 느낌이지 오락물로 보기 힘들다. 심지어 작화 좋은 애니를 선호하는 서양 애니메이션 팬덤에서도 그다지 좋은 평가가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영화 평론가 로저 이버트는 영상미가 뛰어나다고 극찬했으며 # 야후 재팬에서도 4.1점 대로 상당히 호평을 받으며 후대에는 점차 재조명되는 추세에 있다. 이게 나올 당시에만 해도 일본엔 유능한 애니메이터가 많아 AKIRA, 천공의 성 라퓨타 같은 작화가 뛰어난 작품이 해마다 쏟아져서 작화만 좋은 거로는 전혀 관심을 받을 수 없었으나 후대에 이런 작품이 별로 나오지 않게 되면서 이 작품만이 가진 가치를 인정받은 것이다. 또한 시대상도 평가에 영향을 주었는데 이게 나온 당시 일본은 1980년대 일본 버블경제 시절이었고 사람들은 걱정 없는 윤택하고 활기찬 삶을 살았다. 이 애니가 보여주는 무기력한 사회의 모습은 현실과 다르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시대가 변하면서 각 나라의 고도 경제 성장이 멈추고 무기력한 사회가 세계적으로 퍼져나가며 공감과 지지를 얻게 되었다.
오타쿠 스태프가 만든 것인데도 애니메이션 오타쿠에겐 반응이 좋지 않고 오히려 영화 팬들에게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6. 관련 내용
머큐리 계획을 다룬 영화 The Right Stuff (한국 타이틀: 필사의 도전, 일본 타이틀| ライトスタッフ)(1983년작)이 일본에서 1984년 9월에 개봉했고, 같은 소재인 로켓 발사와 우주비행사를 그렸다는 이유로 내용이 비슷해서 표절이 되지 않을까 걱정하는 마음으로 관람하러 갔다는 일화가 있다.
작품 제작을 위해 주요 스탭진은 NASA까지 견학갔다 오기도 했다.
작화는 셀화로 이루어졌지만 부분적으로 CG도 동원되었다.(그런데 여기서 쓰인 CG의 경우, 와이어 프레임만 CG로 만들어도 돈이 드는 판에 와이어 프레임 CG를 만든후 그걸 셀화로 선을 옮겨서 셀화로 칠을 하는 생 노가다를 통해 만들어진 것들이다. 결국 이것도 제작비 압박 요인중 하나인 셈.)
돈을 쏟아넣어 만든 덕도 있어 작화 면에서는 특급 수준. 등장 인물들부터 해서 길가는 엑스트라 하나하나까지 세심하게 부여된 움직임에다, 구석구석까지 섬세하게 담아낸 세부 묘사, 장면 장면이 일러스트 급인 미술 등등. 거기다 주인공이 암살자에게 쫒기는 사건이나 절정부의 전쟁 장면은 오락적으로 화끈한 면모도 보여준다.
안노 히데아키는 절정부의 지상전 공중전 로켓 발사장면을 콘티부터 원화까지 거의 혼자서 원맨쇼로 그려냈다. 이 전투 장면 그리겠다고 자위대 체험 입대까지 했을 정도. 거기다 로켓 발사 장면을 그리기 위해 나사의 로켓 발사 기록 필름을 프레임 단위로 하나하나 뜯어보며 분석하기까지 했다.(하지만 저런 안노 히데아키의 대활약도 사실 제작비 증가의 요인중 하나이다. 사실 이 장면이 돈이 제일 많이 들었다고 한다.)
음악은 사카모토 류이치가 맡았으며, 안녕, 티라노: 영원히, 함께를 맡기 이전까지 사카모토 류이치가 음악을 맡은 유일한 애니메이션이었다.
일부 열광적인 팬들 덕에 비디오 테이프나 LD를 통한 수입은 꽤 벌어들였고, 그덕에 결국엔 제작비 회수에 성공했다.
빚더미에 올라탄 가이낙스는, 해산하지도 못하고 자신들에게 쌓인 빚을 갚기 위해 이후 미소녀와 출렁이는 가슴, 패러디, 오마주를 가득 집어넣은 작품 톱을 노려라!를 만들기에 이른다.
나디아가 끝난 이후 야마가 히로유키가 각본을 쓰고 안노 히데아키가 감독을 맡는 형태로 왕립우주군의 속편 명목으로 푸른 우르를 제작하고자 한일이 있지만[10] , 기획 단계에서의 구상을 실현하려면 제작비는 수십억엔이 필요한 상황에서 그정도 거금은 당시 가이낙스에서 조달이 불가능했던지라 제작이 무산되었다.
한국에서 도는 왕립우주군 립 영상용 자막은 과거 영어판 대본을 중역해서 나온 한국어 대본을 가지고 만든 자막이라, 여러모로 번역에 문제가 많아서 감상에 마이너스 요소로만 작용한다. 하지만 한국어판 DVD는 아쉬운 부분이 없는건 아니지만 충실한 자막을 제공하고 있다. 그러니 왕립우주군을 제대로 보려면 립 영상과 자막 가지고 보지 말고 한국어판 DVD로 볼것.
반다이 비주얼의 첫번째 블루레이 타이틀이기도 해서, 이를 기리기 위해 반다이 비주얼 블루레이 레이블을 Honneamise로 부르고 있다. 원래는 해외 상품 전용이였으나 블루레이 레이블로 전환하면서 국내외 가리지 않고 쓰이고 있다.
"신비한 바다의 나디아"의 세계관과 이어진다는 떡밥도 있다. 나디아에서 극중 아틀란티스인들이 "안/타바/라이"라는 말을 인사로 하는데, 왕립우주군에서도 공군 파일럿들이 출격할때 적국이나 아군 모두 이 말을 "행운을 빈다"는 뜻으로 말하기 때문이다. 즉 왕립우주군은 아틀란티스인들의 조상들이 외계행성에서 살때 이야기라는 것.
작중 등장하는 전투기등이 살펴보면 매력있다. 엔진이 뒤로 향해 있는 엔테식 항공기라던가 특이한 형태의 초기 제트기라던가, 여러 기술적 진보와 시도가 이루어졌던 레시프로 항공기의 황혼기이자 제트엔진의 여명기였던 2차대전 말엽이 좀 더 길어졌다면 본격적으로 시도 되었을 듯한 독특한 형상의 기체들이 공중전을 벌이는것도 항공기에 관심이 있다면 눈여겨 볼 만한 부분
영화 음악으로 참가한 사카모토 류이치는 애니의 그림 콘티만 보고 이대로 애니가 만들어지는 줄 알고, 1초 단위로 콘티에 맞춰서 음악을 미리 만들었는데, 실제로 만들어진 작품은 콘티하고는 전혀 별개로 마구 바뀐 대목이 많아, 음악과 화면이 맞지 않는 장면 투성이라 실망했다는 후일담이 있다.
7. 스태프
- 이그젝티브 프로듀서:야마시나 마코토(山科 誠)
- 기획:오카다 토시오, 와타나베 시게루(渡辺 繁)
- 감독 ・ 원안 ・ 각본:야마가 히로유키
- 각본협력:오오노기 히로시(大野木 寛)
- 보조 감독:아카이 타카미, 히구치 신지, 마스오 쇼이치
- 캐릭터 디자인 ・ 총작화감독:사다모토 요시유키
- 작화감독:안노 히데아키, 이이다 후미오, 모리야마 유지
- 스페셜 이펙트 아티스트:안노 히데아키
- 미술감독:오구라 히로마사(小倉宏昌)
- 설정 슈퍼 바이저:노다 마사히로(野田昌宏), 에토 이와오(江藤 巌)
- 디자인, 레이아웃:후지와라 카무이(藤原カムイ)
- 오프닝, 엔딩 일러스트:오오니시 노부유키(大西信之)
- 타이틀 문자:야마모토 마사코(山本麻佐子)
- 음향감독:타시로 아츠미(田代敦巳)
- 음악감독:사카모토 류이치
- 음악:사카모토 류이치, 우에노 코지(上野耕路), 노미 유지, 쿠보타 하루오(窪田晴男)
- 원화: 마에다 마히로, 이노우에 토시유키, 코사카 키타로, 엔도 마사아키, 콘도 카츠야, 유키 노부테루, 오오누키 켄이치, 오오츠카 신지, 오카무라 텐사이, 요시모토 킨지, 이타노 이치로, 쿠보오카 토시유키 등
- 제작:가이낙스
- 제작:반다이
[1] 안노는 이펙트 작화감독을 맡았다.[2] 사실 현실의 우주군이 이런 형태이다. 그나마 개발이 시도된 병기가 SDI, 신의 지팡이나 폴류스.[3] 월간 키노 지와의 인터뷰에서 야마가 히로유키는 우주군 디자인이나 여러 모로 터키, 즉 옛 오스만 제국을 모델로 복장이나 여러가지를 설정했다고 밝혔다. 영화 속에서도 동서의 문명의 교충지대라는 설정이다.[4] 의외일지 몰라도 그 모델은 미야자키 하야오의 바람계곡의 나우시카가 모델. 당시 가이낙스는 미야자키 하야오를 넘어서고 싶다는 묘한 경쟁심리가 있었는데, 그들이 보기에 나우시카는 요상한 컬트 종교에 빠진 소녀로 보였다. 그래서 그런 캐릭터를 살린 여주인공을 등장시켜버린 것이 리이쿠니. 일종의 패러디 또는 오마쥬라고 볼 수 있을듯하다.[5] 정확히는 공화국의 속국인 리마다와의 완충지대 근처. 오네아미스 왕국이 북반국에 있고 공화국은 남반구에 위치하고 있다.[6] 그런데, 설정상 두 나라가 북반구와 남반구를 각각 지배하고 있다면, 그 경계인 적도지방에 발사장이 서는 건 타당한 입지 선정이다.[7] 이 과정에서 '''유두를 포함한 알몸이 노출'''되는 수위 높은 묘사가 있다. 역시 용자 가이낙스. 이 부분의 작화를 담당한 것은 이 작품을 도와주기 위해 참여한 만화가 에가와 타츠야 그가 예전에 그린 만화의 에로틱 씬을 보고 여기를 그릴 사람은 에가와밖에 없다며 콘티를 맡겼다.참고로 1998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전연령으로 상영하는 바람에 아이들과 멋모르고 온 엄마들이 이 장면에서 기겁하고 아이데리고 나가는 일이 벌어졌다.[8] 특히나 클라이막스의 우주선 로켓 발사 장면에서는 한창 요란하고 시끄럽게 전쟁 전투중일 때 인류 최초의 우주선이 발사되고, 다들 그 순간 전쟁을 잊고 로켓을 쳐다본다는 영화의 테마에도 맞는 극적인 효과를 주기 위해 일부러 우주선이 대기권을 돌파할 때까지 소리가 나지 않는 정적 연출이 몇 초간 지속되는데, 이런 연출에 익숙하지 않은 서양인 관객들은 음향사고인줄 알고 뒤를 쳐다보면서 웅성거렸다고 한다. 어쩔 수 없이 정식 극장판 개봉 시에는 로켓 발사 효과 음향이 들어갔다고 한다.[9] 대신 자회사인 반다이 비주얼이 영상 사업에서 활약한다.[10] 왕립우주군의 속편이라 하지만 이건 인지도를 얻기 위해서였고, 실제로는 왕립우주군의 시대에서 50년뒤의 이야기라 세계관만 같을뿐 완전 별개의 이야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