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카다 가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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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본의 정치인. 2016년 기준 중의원 의원이자, 초대 민진당 대표이기도 했다. 지역구는 미에현 제3구. 현재는 무소속 원내회파인 미에민주연합 소속이다.
1.1. 출생, 정계 입문 이전
집안 대대로 미에현 욧카이치시에서 집안 대대로 상업을 하던 욧카이치 오카다 가문이었고 그의 아버지 오카다 타쿠야는 이온그룹의 창업주이다. 즉, 재벌집 아들로 태어났다. 도쿄대학 법학부를 졸업했고, 1976년 통상산업성에 입성하여 공무원으로 중소기업이나 석유문제 등을 담당했다. 1985년 미국 하버드대학교 국제문제연구소에 파견돼 1년간 연구원으로 지냈다.
1.2. 정치 입문 시절
1990년 미에현 제1구에서 4등이 되었지만 결국 당선했다.[1]
자민당에서는 원래 타케시타 노보루의 다케시타 파에 속해있었으나 하타 쓰토무의 하타 파로 이동했으며, 이후 "한 나라의 총리대신 자리가 정치자금을 얼마나 잘 모으는 것으로 결정되선 안된다."라는 말을 남기고 자민당을 탈당하여 신생당 창당에 참여했다. 이후 신진당에 참여하였으나 오자와 이치로가 신진당을 해산하면서 국민의 목소리(정무조사회장), 민정당(정책조사회장)을 거쳐 민주당에 참여했다.
1.3. 민주당
2002년, 제5회 당대표 선거에서 간 나오토에게 패해 간사장에 취임한다. 이후 2004년, 제6,7회 민주당 대표에 취임하고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에서 자민당을 한 석 앞서면서 주목받지만 예상보다 빠른 중의원 해산(우정 해산)으로 인해 실시된 총선에서 참패하면서 대표직에서 물러난다.
2006년, 민주당 개조인사로 부대표에 선출된다.
2009년 젊은 의원들을 규합하며 다시 대표선거에 출마하지만 하토야마 유키오에게 밀렸다. 이 때 선거 직전 민주당 인사들이 오카다에게 해준 말이 미국에는 오바마, 일본에는 오카다가 있다고 해주기도 했다. 패배 직후 간사장에 취임했다. 이후 민주당 정권에서 외무장관, 간사장, 부총리 등을 거치다가 민주당 정권이 무너지면서 야당 인사가 되었다. 외무상 시절 식민지 지배에 대해 다시 사죄하고 식민지배의 '''강제성'''과 '''폭력성'''을 인정하는 간 담화에 관여했다.
2014년 가이에다 반리의 대표 사임으로 인하여 대표 대행이 되었고 2015년 다시 민주당 대표선거에 출마하여 호소노 고시를 제치고 마지막 민주당 당대표로 당선되었다. 야당 재편파로 유신당과 통합을 주장하는 호소노 후보에 비해 야당 재편에 신중하고, 경험 많은 당대표가 이끌어 선명한 야당을 만들어야 한다는 오카다의 주장이 높이 평가받았다. 그러나 미에현지사 선거에서 민주당이 독자 후보를 옹립하는 것을 포기하고 보수 성향의 스즈키 에이케이 후보가 당선되는 등 자신의 지역구에서 영향력이 감소하고 있다는 평도 받았다.
1.4. 민진당과 그 이후
2016년, 민주당이 유신당, 개혁결집회(일부)와 합당해서 민진당이 창당되었고, 첫 대표로 지명되었다. 임기는 2016년 9월 30일까지이다.
2016년 제24회 일본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에서 자신의 중의원 지역구가 있는 곳이자 정치 기반인 미에현에서 민진당 후보가 낙선하면 다음 당대표 선거에 출마하지 않겠다는 배수진을 쳤다. 미에현은 이번 참의원 선거에서 자민당과 민진당의 명운을 건 격전지인 총 32곳의 1인 선거구 중 하나였는데, 선거 결과 민진당에서 출마한 미에현 후보가 끝내 겨우 당선되어 그나마 한숨 돌리게 되었다. 당시, 아베 신조와 오카다 가쓰야의 대결이라는 말이 있었을 정도로 치열한 접전을 벌였던 곳이었다. 하지만 개헌선인 2/3을 자유민주당(일본), 공명당, 오사카 유신회 등 개헌세력이 차지하는 걸 막지 못해, 이에 오카다 대표에 대한 책임론이 부상하였고, 결국 7월 30일 불출마를 선언했다.
8월 2일 양원의원총회에서 9월 2일 대표 선거를 고시하고, 9월 15일 투표와 개표를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선거 결과 렌호 대표대행이 차기대표로 선출되었다.
이후 제48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는 민진당을 탈당해 무소속으로 출마하게 되었다. 희망의 당에서 출마하려 했으나 거부당했고 입헌민주당과는 성향이 다르다는 이유로 무소속으로 출마하게 되었다. 투표 결과, 64.3%(147,255표)를 획득하며 압도적인 차이로 자유민주당 후보를 누르고 당선되었다. 10선째 이후 한동안 민진당 출신 무소속 회파를 유지하면서 호헌 연대에 참여했다.
1.5. 입헌민주당
2020년 들어 입헌민주당과 국민민주당 간 합당 논의가 본격화되자 자신과 마찬가지로 무소속 회파를 이끌던 노다 요시히코 전 총리 등과 함께 입당 의사를 타진하여 본인의 무소속 회파를 이끌고 통합 신당이 된 입헌민주당으로 입당하였다.
2. 소속 정당
3. 여담
- 청렴하기로 유명해서[2] 별명은 'Mr.클린' 또는 '클린 오카다'. 게다가 자기관리가 투철해 '로봇 오카다' 라고 불리기도 한다고. 덕분에 민주당이 정권을 잡은 리즈 시절에는 총리감 투표를 하면 항상 1,2위를 차지할 정도로 대중적 지지도가 높았다고 한다.#
- 체질적으로 '파벌정치'를 싫어한다고 한다. 덕분에 민주당 시절 세력 중심의 정치를 해온 오자와 이치로와는 상극 관계였다고.
- 취미로 개구리 인형을 모은다.(...)
- 일본 정치인 중에서 친한적인 인사로 분류된다. 방한 당시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과거사 문제에 대해 사과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일본 국회 내에서도 재일 한국인을 비롯한 영주 외국인 주민의 법적 지위 향상을 추진하는 의원 연맹 회장을 맡고 있다.
- 2017 총선 이후 소속당인 민진당과 희망의 당을 어떻게든 엮어 정계개편을 도모하는 듯 보이지만 과연 그의 미래나 일본 야권의 앞날로 봤을때 잘 될지는 의문. 그러나 2018년 5월 7일 민진당과 희망의 당이 국민민주당으로 합당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국민민주당에 합류하지 않았다. [3]
4. 둘러보기
[1] 중선거구제 시절이라 가능했다.[2] 재벌집안 출신이라 사실 더러운 돈을 받을 필요가 없다(...) 한국으로 치면 정몽준 비슷한 케이스.[3] 최소한 그는 민진당과 희망의 당이 합류한다고 해도 국민들의 지지를 못 받을 것과 입헌민주당만이 국민들의 지지를 어느 정도 받고 있는 것을 간파하고 있다.
분류
- 일본의 부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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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내각부 특명담당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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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진당(일본) 국회의원
- 입헌민주당(2020년) 국회의원
- 1953년 출생
- 욧카이치시 출신 인물
- 당 대표/일본
- 도쿄대학 출신
- 공무원 출신 정치인
- 학자 출신 정치인
- 기업인 자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