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노우에 토시유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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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화상(...) [1]
1. 개요
2. 특징
3. 작품 목록
4. 기타


1. 개요


井上俊之
1961년 7월 20일 생. (63세) 오사카출신의 애니메이터이다. 미래소년 코난을 계기로 애니메이터의 진로를 잡았으며 이때 이미 애니메이션의 작화를 보는 그의 관찰력은 남달랐다고 한다. 텔레콤 애니메이션 필름 입사에 실패한 후 오사카 디자이너 학원에 입학, 졸업한 후에는 애니메이션 쥬니오라는 회사에 동화맨으로 취직한다. 곧 원화가가 되고 Gu-Gu 간모에서부터 캐릭터 디자인과 원화를 맡아 주목을 받기 시작한다. 그 이후 AKIRA, 마녀 배달부 키키, 공각기동대, 천년여우, 파프리카, 에반게리온:Q 등 유명한 극장판 애니메이션과 각종 TV 애니메이션에서 주력 애니메이터로 활약하게 된다. 현재 일본 애니메이터 중에서 가장 모범적인, 최고의 애니메이터라고 할 수 있다.
작화에 대한 지식이 많고 글과 말도 재밌게 해서 오구로 유이치로의 잡지 아니메 스타일에서 칼럼을 연재하면서 어느 장면을 누가 그렸는지에 대해 정확한 평론과 정보를 공개하며 화제가 되기도 했다. 작화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많은 도움을 준 애니메이터이다. 이 칼럼을 통해 애니메이터 계의 카리스마라는 별명을 얻어 카리스마라고 불리기도 한다.
같이 활동하는 감독으로는 오시이 마모루, 콘 사토시가 있다.


2. 특징





영상을 보면 알겠지만 상당히 부드러운 움직임을 보여주면서도 머리칼이나 바람, 배경의 이동 이펙트가 상당히 섬세하게 그려져 있다. 컷 수도 상당히 많고 구도를 일일이 잡아 그려내는 것을 보면 애니메이팅의 달인이다. 이러한 작화는 애니메이션 작화법 책에서도 다루기가 어려울 정도로 복잡하며 오로지 경험을 통한 흡수나 강도높은 교육이 아니면 이렇게까지 그리기 어렵다. 이 정도로 부드럽고 정교한 움직임을 표현하기 위해 원화의 비중을 늘린다고 한다. 남들 3장 그릴 때 5장 그려서 제출하는 식. 이렇게 하면 동화 작업자들이 동화를 그리기 편해지므로 부드럽고 튀지 않는 자연스러운 움직임이 나온다.
애니메이터로서 그는 작업속도가 아주 빠르고[2] 균형잡힌 최고의 레이아웃을 만들며 작화능력도 매우 뛰어나다. 인물의 섬세한 액팅, 4족보행동물, 이펙트, 떼거지씬, 심지어는 떼거지씬에 카메라 움직임까지 있는 컷까지 소화 가능하다. 다른 사람들의 그림체도 잘 모작해서 이노우에가 직접 이곳은 내가 했다고 말하지 않으면 찾기가 쉽지 않다. [3] 이런 능력 자체가 그의 개성으로 인정받아서 '''이노우에의 가장 큰 특징은 잘 그리는 것'''이란 이야기도 있다. 한국에서 작밀레 라고 할 정도의 작화를 크게 고생도 안 하고 슥슥 그려내는 괴물이다.
본인도 인정한 자신의 단점으로는 애니메이션 업계를 뒤흔들만한 새로운 기법을 창시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대신 다른 사람들이 창시한 기법을 매우 빠르게 흡수해서 완벽하게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능력이 있다. 그는 이소 미츠오, 오키우라 히로유키등과 같이 사실적인 애니메이션을 지향하는데 처음에는 우츠노미야 사토루의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그의 인터뷰를 보면 정말 주위의 동료들의 영향을 많이 받았음을 알 수 있다.
일부 팬들은 손오공의 원기옥에 빗대기도 한다. 모두의 작화가 모여 이노우에가 탄생했다고. 그리고 그걸로 종종 변변한 작품이 없을 때의 애니메이션 시장을 휩쓸어버린다고.
작화보루에서 그의 작업물들을 볼 수 있다.

3. 작품 목록


일본 작화 위키 참조.

4. 기타


혐한 발언을 한 사다모토 요시유키를 향해 "역겨운 본성을 드러낸 동업자"라며 비판하였다.#[4] 이전에도 본인 트위터에서 미즈키 시게루가 그린 위안부 문제를 다룬 만화 '총원 옥쇄하라'를 리트윗 한 적이 있다. 요코야마 미츠테루 만화 마즈 재판본에서 일본이 중국을 침략했다는 부분이 빠졌다며 화를 내기도 했고 역사 인식은 상당히 올바른 것으로 보인다.[5]
다른 애니메이터들의 기술을 빠르게 습득하면서도 다른 애니메이터들을 높이 평가하는 겸손한 인물이지만 그럼에도 유독 이 사람은 이길 수 없다며 높이 평가한 선의의 라이벌이 있었는데 그게 바로 교토 애니메이션키가미 요시지이다. 키가미가 유명해지기 전에는 이노우에의 인지도가 훨씬 높아서 다들 얼마나 대단하길래 그러냐고 했으나 키가미 요시지가 세상을 떠나고 뒤늦게 그의 업적이 밝혀진 뒤로는 다들 납득하고 있다.
그 외에 이노우에 토시유키가 자신보다 잘 그린다고 한 동일 세대의 애니메이터로는 유아사 마사아키, 오오히라 신야, 이소 미츠오, 타나베 오사무, 하시모토 신지가 있다. #

[1] 이 그림을 그렸을 때는 정수리에 머리가 남아있었지만 지금은 완전히 모근이 소멸하였다.[2] 이소 미츠오는 그의 작업 속도가 (아마도 과장이겠지만) 자신보다 10배 이상 빠르다고도 했다.[3] 이노우에 토시유키는 어디를 자기가 했다고 비교적 잘 밝히는 애니메이터이다. 그만큼 자신이 있다는 것이다.[4] 이 발언 탓에 사다모토는 원래부터 인성에 결함이 있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는데, 굳이 사다모토가 쓴 '''역겨운''' 이라는 말을 되받아 본성이 드러났다고 깐 것을 보면 업계 특성상 외부에서는 확인 할 수 없어서 자세한 사정은 불명이지만 사다모토의 인성이 좋지 않아 둘 사이에 불화가 있었다는 걸 알 수 있다. 아니, 에바 신 극장판 파이널에서 사다모토의 이름이 스태프 명단에서 제외된 것을 보면 사실상 안노를 포함한 모든 스태프들과의 관계가 파탄난 것일 수도 있다.[5] 또한 최근에는 일본의 대표적 좌파 성향의 영화평론가인 마치야마 토모히로의 글을 자주 리트윗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