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 할라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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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ssi Kristian Halla-aho, 1971.4.27 ~
핀란드의 정치인으로, 현재 핀인당의 대표.

1. 생애


탐페레 출신이며, 24세 때까지 탐페레에서 거주했다. 모친은 알라얘르비 출신이다.[1] 10대 시절 버스기사인 부친과 소련을 여행한 적이 있었는데, 이 때를 계기로 좌파에 대한 반감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2]
대한민국처럼 징병제 국가인 핀란드답게 그는 여느 남성들과 마찬가지로 20대 신검을 피하지 못 하게 되었다. 신검 결과 현역 판정을 받았지만, 본인은 현역 대신 공익을 선택했다. 하지만 훗날 밝힌 바에 따르면 본인은 이 당시의 결정을 매우 후회한다면서(...), 징병제를 강하게 지지한다고 밝혔다.
헬싱키 대학교에서 수학했다. 웨이터가 되고 싶은 마음에 관련 공부를 하면서 전문 학위를 먼저 취득했는데, 사실 학창 시절 때 식당에서 웨이터로 일한 적이 있었다. 이 때 경험이 좋게 남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3] 결국 박사 학위까지 땄다. 물론 웨이터로는 별 이득이 되지는 않는 것을 알았는지, 고대 교회 슬라브어에 관한 논문도 썼다. 그리고 졸업 후 자신이 애초에 원하던 웨이터는 결국 되지 않은 듯 하다.
하지만 후술할 논란을 일으킨 바, 차라리 이 때 본인의 장래희망인 웨이터가 되었으면 그나마 별 일 없겠지만 그래도 나름 괜찮은 사람으로 남았을 지도 모른다. 아니, 진짜로 웨이터가 되었어야 한다고 표현하는 게 맞을 지도 모른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선량한 웨이터 할라아호'''로 남을 수 있었지만, 정계에 입문한 뒤 각종 파문을 일으키면서 스스로의 이미지를 깎아내리는, 그야말로 제 얼굴에 침 뱉은 격이다.

2. 정치 활동


2008년 헬싱키 시의원으로 처음 당선되었다. 핀인당[4] 비례대표로 도전했지만 정작 본인은 무소속이었다.[5] 이후 2010년 핀인당에 정식으로 입당한다.
이미 이 시기부터 존재감을 드러냈는데 전국에서 18번 째로 인기 있는 정치인이었으며, 핀인당 내에서는 티모 소이니 대표 다음으로 인기가 높았다. 경험이 전무했던 것에 비하면 의외로 돌풍을 일으킨 것. 물론 여기에는 후술할 논란과 연관이 있다.
2011년 처음으로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 이 때 핀인당은 포퓰리즘 공약으로 당시 실업난, 이민 문제를 직면하고 있던 국민들의 지지에 힘업어 단숨에 원내 2당으로 급부상하는 기염을 토했으며, 할라아호도 이의 수혜자였다. 새 회기가 출범하고 국회 행정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출되었지만, 이듬해 여름 사임했다. 다만 위원회에는 잔류했다. 그리고 동년 헬싱키 시의원에 재선되었다.
2014년 유럽의회 선거 때 핀인당을 이끌었다. 비록 유럽의회 선거에서는 국민연합당이 1위를 하는 편이라[6] 3위에 의석수 2석에 그쳤지만, 그래도 2011년 총선 이후의 열기가 여전히 남아있었던 탓에 득표율이 두 자리 수를 기록하는 데는 성공했다. 당시 할라아호는 비례대표 1번이었기 때문에 자동 당선되었는데, 득표수 80,772표로 핀란드 몫 당선자 전원 중에서는 국민연합당 알렉산데르 스투브(148,190표) 다음으로 높은 득표수였다. 그리고 스투브가 새 회기 개회 전에 핀란드의 총리로 선출되면서 사임함에 따라, 할라아호가 사실상 최다 득표 당선자인 것이나 마찬가지. 이 때는 유럽 보수와 개혁 그룹에 속해 있었지만, 후에는 정체성과 민주주의로 스위치한다.
2015년 총선 때도 핀인당은 원내 2당 지위를 유지하는 데 성공했고, 유하 시필래(중앙당)가 이끄는 연정에 합류하면서 처음으로 여당이 된다. 소이니 대표는 부총리 겸 외무장관직을 차지하면서 승승장구하고 있었지만, 막상 핀인당의 주요 이슈였던 이민 문제가 정작 핀란드에서는 터지지도 않으면서, 핀인당은 괜히 유권자들에게 공포감을 조장했다고 욕을 바가지로 먹게 되고, 결국 지지율은 한 자리 수로 추락한다. 이 책임으로 2017년 3월 소이니는 대표직 사임을 선언했고, 핀인당은 얼마 후 지방선거에서 5위로 내려앉는 참패를 당한다.
결국 조기 전당대회가 개최되었고, 할라아호는 그간의 경력을 바탕으로 유력한 당권주자로 거론되었으며, 이 여세를 몰아 출마를 선언한다. 소이니의 지원을 받은 삼포 테르호와 맞붙게 되었으며, 여론조사에서 엎치락뒤치락 하기는 했지만 막판에는 테르호가 될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를 비웃듯 할라아호가 56.2%를 득표해 압승했으며, 반대로 테르호는 37.2%로 광탈한다. 대체적으로 테르호가 될 가능성이 높았다던 당초 예상이 엇나가자 전국적으로 꽤 신선한 충격을 주기도 했다.
하지만 후술할 논란이 있는 바, 할라아호는 취임 첫 날부터 각종 난관에 직면하게 되었다. 대표가 되자마자 중앙당과 국민연합당은 핀인당과의 연정 해소를 선언했는데, 이는 양당이 논란이 많은 할라아호와의 협력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중앙당과 국민연합당만으로는 과반이 안 되었던 탓에 정치 위기로 번졌을 정도. 결국 며칠 뒤 핀인당 내 소이니계 의원들이 탈당해 청색미래당을 창당하고, 청색미래당이 연정 합류 의사를 밝히면서 일단락되었다.
그렇게 핀인당은 몰락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2018년 말 정작 국민들이 그렇게도 터지지도 않는다던 이민 문제가 본격적으로 터지면서 핀인당은 지지율이 반등하기 시작한다. 오울루에서 성범죄 사건이 터졌는데, 이게 이민자 소행이라는 언론의 보도가 연일 터져 나오면서 전국적으로 반이민 정서가 불기 시작했고, 그렇게 지지율이 상승하다가 2019년 총선에서 사회민주당에게 득표율 0.2%차로, 의석수 1석 차로 아깝게 원내 1당이 되는 데 실패했을 정도로 무섭게 세를 회복했다. 이는 핀인당이 막판에 지지율 상승해도 3위에 그칠 것이라던 당초의 예상을 비웃는, 가히 충격적인 결과였다.
이후에는 줄곧 지지율 1위를 찍으면서 2023년에는 원내 1당 자리를 차지해 할라아호가 총리직을 거며쥘 수 있다는 예상도 나오고 있다. 다만 이게 실제로 성사될 지는 미지수.

3. 논란과 비판


상습적인 극우적 막말로 수차례 물의를 빚었으며, 이 때문에 핀란드 내에서 가장 인기 있는 정치인 중 하나라고는 하지만 동시에 반대자들이 가장 싫어하는 정치인이기도 하다. 영어 위키백과의 그의 "성향" 파트를 보면 유럽의 전형적인 우파 포퓰리즘 정치인이고, 이민과 이슬람을 반대하지만 동시에 복지를 지향하는 우익 정치인 정도로 서술되어 있어서 무엇이 문제인가 싶을 수도 있겠지만, 알다시피 위키백과는 독자연구 금지와 중립성을 매우 강하게 고수하고 있어서 논란을 마냥 언급할 수 없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7] 실제로 저 서술은 극히 미화된 것이며, 현실에서 할라아호는 수차례 막말, 모욕 혐의로 벌금형까지 받은, 명백한 '''범죄자'''이다.
사실 위에서 언급했듯이 할라아호는 소련을 방문한 뒤로 좌파 사상에 대한 극도의 혐오감을 갖게 되었으며, 극우 단체인 수오멘 시수에서 활동한 전적까지 있었다.[8] 2019년 총선 이후 "인종주의 단체와 협력하고 싶지 않다"며 탈퇴했지만, 이것도 핀인당이 주류 정당으로 급부상한 탓에 추후 세를 확장하기 위한 립서비스일 가능성이 높다.
그 첫 시작은 2008년으로, 당시 인종차별적 발언으로 시민단체로부터 고소당했다. 직전 그는 블로그에다가 "이민자들이 이 나라를 강간 천국으로 만들 게 뻔한데, 이러고도 이민을 받아야 한다? 그런 놈들은 '''강간 좀 당해봐야 한다.''' 누구냐고? 착한 척 하는 녹색좌빨들하고 지지자들"이라는 글을 게시했고, 결국 시민단체의 고소로 수사에 들어갔다.
그리고 해당 사건 이전 극우 운동가 세포 레토[9]가 이슬람 혐오 발언 등으로 2년 5개월의 징역형을 선고 받았는데, 할라아호는 이에 레토를 두둔하는 글을 올렸다가 여론의 뭊매를 맞았다. 해당 글 왈, "아이샤하고 검열삭제한 게 무함마드다. 고로 무함마드는 소아성애자이고 이슬람은 소아성애의 종교이다." 문제는 단순히 이슬람 혐오 발언에서 그치지 않고, 소말리인에 대해서도 "국민 혈세나 빨아먹으면서 소매치기나 하는 민족"이라는 인종차별적 망언은 덤. 결국 이 사건으로 피소되었고 2009년 330유로(한화 약 45만원)의 벌금형을 선고 받았다. 그러나 종교 폄하 발언만 혐의를 받았고, 인종차별 발언은 기각당했다. 이에 검찰과 할라아호 양측 모두 항소를 제기했고, 2012년 6월 8일 종교 폄하, 인종차별 발언 둘 다 혐의를 적용해 벌금이 400유로(한화 약 54만원)로 늘어났다.
그렇다고 그의 막말이 이슬람과 비백인에게 그친 것이냐? 그것도 아니다. 위의 사건으로 재판 중이던 2011년 9월 페이스북에 "그리스는 군사 정부가 들어서야 한다. 아니면 부채 해결은 꿈 깨"라는 글을 게시했고, 하필 두 나라 다 유럽연합 회원국이었던 탓이 그리스 측과도 크게 물의를 빚었다. 논란이 커지자 해당 게시물을 삭제하면서 "민주주의로는 해야되는 일도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하면 할 수 없다. 내 말은 그런 뜻이었다"고 뒤늦게 해명을 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고, 결국 소이니 대표는 그의 당원권 1개월 정지를 추진했다. 허나 실제로는 1개월이 아닌 2주에 그쳤는데, 이 때 소이니도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당 내 강경파들을 의식한 것일 수도 있었겠지만, 가재는 게 편이라고, 사실상 보여주기식이라고 비판을 받았다.
이러한 막말로 전방위적인 규탄을 받았으며, 본인도 자신이 올린 게시물 때문에 살해협박도 수 차례 받았다고 털어놓은 바 있다. 그나마 이 때까지는 일개의 의원이었으니까 그렇다 쳐도, 문제는 이렇게 논란을 일으키고도 핀인당 대표가 된 것이다.
그가 핀인당의 당권을 잡자 마자 가장 먼저 내세운 것이 바로 "반이민"이었다. 물론 핀인당은 소이니 시절 때도 난민 반대, 샤리아 반대를 내세우기는 했으나, 최소 취업이민은 오히려 찬성했다. 소이니 본인도 "핀인당은 프랑스 국민전선과는 다르다"고 강조했을 정도. 때문에 중앙당, 국민연합당, 사민당 등 주요 정당들도 핀인당을 별다른 기피 대상으로 삼지도 않았고, 2015년 중앙당과 국민연합당이 주도하는 연정에 문제 없이 참여했을 정도였다. 때문에 이 당시의 핀인당은 그저 우익으로 분류되었지 "극우"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었지만,[10] 할라아호 치하에서는 본격적인 반이민, 반이슬람 감정을 대놓고 내세우기 시작했고, 그나마 지지했던 취업이민도 강경 반대로 돌아섰다. 따라서 이후의 핀인당은 "극우"라고 봐도 틀린 말이 아니다.
당연히 이러한 행보로 하루아침에 핀인당은 주요 정당들의 기피 대상이 되었고, 중앙당과 국민연합당은 곧바로 핀인당과의 연정 파기를 선언했다. 최소 소이니는 그래도 말이라도 통했고 눈치라도 봤지만, 할라아호는 그런 거 없다는 이유 때문.[11] 정치 위기로 번진 끝에 소이니계 의원들이 탈당해서 청색미래당을 창당했고, 핀인당은 야당으로 내려 앉았다. 원래 핀인당이 원내 2당이었던 탓에 할라아호는 부총리직을 노리기도 했지만(전임 소이니), 집단 탈당으로 원내 4당으로 추락하면서 부총리직은 커녕 야권대표직도 놓치게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논란거리가 2019년 총선때는 오히려 호재가 되어 사실상 당의 승리로 귀결된 반면, 할라아호의 극단적 행보를 반대하며 창당된 청색미래당은 1%도 안 되는 득표율에 모든 의석을 잃었다. 할라아호가 논란이 짙기는 했지만, 애초에 핀인당 자체가 핀인 민족주의, 반이민 성향이 아예 없던 것은 아니었으며, 일전부터도 언론들은 극우라고 분류하는 등 근본적으로 소이니 치하라고 할라아호와 다르다고는 볼 수 없다. 이민 외에도, 핀인당은 소이니 치하에서조차 친환경 정책 반대, 성소수자 반대, 스웨덴어 공용화 반대 등 애초부터 강경 보수 성향을 드러냈다. 언급했듯이 할라아호에게 징계를 건성으로 때린 것도 있고, 전반적으로 할라아호만 욕할 수도 없는 노릇.

4. 여담


  • 부인 힐라와의 사이에 4명의 자녀를 두고 있는데, 2015년 익명의 다른 여성과의 사이에서 아이를 하나 더 낳았다는 보도가 있었다. 본인은 자녀가 4명 뿐이라면서 처음에는 극구 부인했지만, 추후 해당 보도가 사실로 밝혀지자 그제서야 인정했다. 물론 추가 답변은 거부. 즉 빼도 박도 못 하는 간통인 셈인데, 대체적으로 극우들이 간통을 포함한 혼외정사를 반대한다는 점에서 보면 그야말로 모순.
  • J. R. R. 톨킨의 소설을 좋아한다고 한다. 취미로 사냥도 한다고.
  • 지지자들은 그를 선생님(Mestari)이라고 부른다.
  • 유럽의 극우들 상당수가 기독교인인 데 반해, 할라아호는 몇 안 되는 무신론자이다. 정확히는 불가지론적 무신론자라고.

5. 각주


[1] 여담이지만 알라얘르비 출신 인물들을 보면, 2명의 인물의 성씨에 "아호(aho)"가 들어있다. 우연인 지는 몰라도 나름 연관은 있어 보이는 부분.[2] 근데 조금 아이러니한게, 유럽의 극우 정치인들(특히 정체성과 민주주의 소속)은 대부분 친러 성향을 띄고 있는 것에 비해, 할라아호는 소련 때문에 극우가 되었다는 점에서 "반러"라고도 할 수 있는 부분.[3] 핀란드에서는 고등학생들에게 직업 체험을 직접 시킨다. 아무래도 이와 연관이 있는 듯 하다.[4] 당시에는 참핀인(True Finns). 물론 핀란드어 명은 그대로이다. 하지만 당명이 핀인 인종주의를 조장한다는 비판을 받으면서, 2011년 총선 전후로 영어명을 핀인당(Finns Party)으로 개명했다. 다만 이후에도 국내 언론들도 간간히 "진정한 핀란드인" 등으로 번역하는 등 구 영어명을 사용하기는 했다.[5] 뭔가 싶겠지만 핀란드에서는 이게 '''합법'''이다. 비단 핀란드뿐 아니라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도 이는 합법이며, 이외에도 비례대표가 아닌 100% 소선거구제이지만 말레이시아에서도 무소속이나 특정 정당 후보가 아예 타 정당에 입당하지 않고 후보로 뛰는 것이 가능하다. 가령 말레이시아 사회당(PSM)의 대표인 마이클 제야쿠마르도 사회당 당적을 유지하면서 인민정의당(PKR) 후보로 2선 국회의원을 역임한 바 있다. 물론 2018년에는 사회당 당적으로 직접 나갔고, 결과는 '''낙선'''.[6] 물론 어디까지나 유럽의회 선거이다. 정작 총선에서는 2011년 한 번을 제외하고는 1위를 한 적이 없다. 이 때문인지 국민연합당 출신 총리는 별로 없다.[7] 이 때문에 일부에서는 위키백과의 과도한 중립성이 되레 진실을 왜곡한다고 비판하기도 한다.[8] 해당 단체는 2006년 무함마드 풍자 만화로 파문을 빚은 바 있으며, 랜시배일래라는 신문으로부터 "나치" 소리를 듣기까지 했다. 당연히 단체 측은 해당 신문사를 고소했지만, 법원 왈 "이건 처벌감이 못 된다"고.[9] 훗날이지만 대놓고 나치식 경례를 했다.[10] 굳이 비교하자면 제바스티안 쿠르츠와 비슷한 정도?[11] 중앙당 시필래 대표는 총리에 오른 2015년 유럽 난민 사태를 직면했는데, 이 때 난민들을 총리 관저로 받아주는 인도적인 행보를 보여왔다. 국민연합당의 경우 페테리 오르포 대표 취임 이후 이민 문제를 조금 더 보수적으로 접근해 소이니의 지지를 받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 국민연합당은 사회자유주의, 친이민 성향이다. 이 때문에 국민연합당을 포괄 정당으로 보는 시각도 있을 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