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바스티안 쿠르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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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오스트리아의 정치인. 제 25, 26대 총리. 2017년 12월부터 2019년 5월 27일까지 첫 번째 총리를 지냈고, 2020년 1월 7일부터 두 번째 총리 직책을 수행 중이다. '''오스트리아의 역대 최연소 총리이자, 동시에 현직 세계 최연소 정부수반이다.'''[1]
2. 생애
빈에서 엔지니어인 요제프 쿠르츠와 학교 교사인 엘리자베트 쿠르츠의 외동아들로 태어났다. 외할머니가 보이보디나 출신이지만, 도나우슈바벤인(Donauschwaben)이라는 독일인의 일종이라 슬라브 혈통은 아니며, 따라서 쿠르츠 또한 혼혈인은 아니다.
2004년 A Level 수강을 받다가, 곧바로 군에 입대해 2005년 제대했다. 제대하자마자 빈 대학교에 입학해 법학을 전공했으나 이 후 정치 활동에 집중하기 위해 자퇴했다.
2.1. 정치 활동
2000년대 후반 국민당에 입당했으며, 2009년 당 청년 대표로 당선되어 본격적인 정치 활동을 개시했다. 2010년부터 2011년까지 빈 시의회 의원으로 일했으며, 도중에 신설된 사회통합부 정무 차관(내무부 산하)으로 임명되었다.
2013년 총선에 출마 후 당선되어 원내에 진입했으며, 동년 12월 외무부 장관으로 임명되었다. 이는 오스트리아는 물론 세계 최연소인데, 이를 계기로 "젊은 대세론"을 이끌어 나가게 되었다. 리버럴 중도우파 성향의 국민당 소속이지만, 쿠르츠는 당에서도 가장 오른쪽에 있다고 평가 받을 정도로 리버럴이 배제된 강경 우익 성향을 띠었으며, 이는 진보/좌파 진영의 비난을 받았다. 대표적으로 난민과 이슬람, 이민을 강하게 반대하는 정책을 펼쳤으며, 철저히 자국민 우선주의를 내세웠다.
이러한 정책들은 다른 유럽 국가 사이에서도 비난이 적지 않았으며, 같은 독일어권인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로부터 "반인륜적"이라는 맹비난에 직면하기도 했다. 허나 쿠르츠가 장관을 지내던 시절 유럽은 역대급의 난민 문제로 골머리를 앓았으며, 옆나라 헝가리의 오르반 빅토르와 더불어 "난민 문제를 해결할 주역"으로 오히려 재조명받기 시작했다.
이를 바탕으로 차기 당권주자로 급부상했으며, 2017년 5월 라인홀트 미터레너(Reinhold Mitterlehner)의 사임 후 전당대회에 출마했다. 이 때 무려 '''98.7%'''라는 유례 없는 득표율을 기록해 국민당의 새로운 당대표로 선출되었으며, 10월 총선에서 국민당이 원내 1당이 되자 총리직에 더 가까워졌다. 그러나 국민당의 의석수가 과반에 미치지 못해 연정이 불가피해졌는데, 논의 끝에 12월 극우 정당인 자유당과 연정 합의를 맺었다.
그리하여 12월 18일 오스트리아의 제25대 총리에 취임하게 되었으며, 당시 31세로 '''오스트리아 최연소'''는 물론, '''유럽 연합 최연소 정부 수반'''으로 기록되었다. 이는 전 세계적으로 화제가 되었으며, 국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2]
2019년 5월에 불과 유럽의회 선거 일주일 앞두고 하인츠 크리스티안 슈트라헤 부총리의 부패 스캔들로 연정이 붕괴됨에 따라 조기총선을 치를 예정이다.# 현 여론조사를 감안하면 국민당이 1당은 유지할 수 있지만 자유당이 저렇게 터진 이상 누구와 연정을 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는 여전히 존재하고, 스트라헤가 비디오 속에서 '''쿠르츠가 난교파티에 참석했었다'''는 발언을 한 게 추가로 공개되어서 본인의 이미지도 시험대에 오를 상황.#
비디오 스캔들 다음날 쿠르츠 총리가 자유당과의 연정 철회를 선언했고 총리는 의회 다수를 잃게 된다. 이런 상황이 되자 야당인 사회민주당이 당연하게도 총리 불신임안을 제출했고 2019년 5월 27일 불신임안이 가결되어 총리직에서 물러난다.
하지만 연정 붕괴 와중에서도 지지도를 꾸준히 유지했고, 결국 9월 29일 총선에서 쿠르츠가 이끄는 국민당이 다시 제1당이 되면서 연정 교섭권을 손에 넣었다.
연정에 대한 향방 도중에 의외로[3] 녹색당과의 연정 가능성이 대두되었다.# 그리고 협상 끝에 실제로 2020년 1월 1일에 녹색당과 연정 합의가 되었다.# 연정을 성사시키는데 부총리가 될 녹색당의 코글러 대표와 개인적 친분이 컸다고 하는 후문.
이번에는 연립정부를 5년까지 이끌겠다고 선언했다.#
2017년 총선 당시 과도한 선거 비용 지출 등으로 벌금 11억원을 물게 됐다.#
2020년 8월 28일(현지시간) 작지만 혁신적인 나라 중 하나로 한국을 꼽으며 관계를 강화하고 싶다고 밝혔다. 아울러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에 대해 "개인적으로 아는 사람"이라며 그의 전격적인 사의 표명에 "놀랐다"고 전했다. #
온라인 혐오 게시물을 삭제할 수 있는 법안을 통과하였다.#
2021년 1월에 논문 표절 의혹으로 크리스티네 아쉬바허 노동부 장관이 사임했다.# 2월에는 국민당 소속 재무장관의 부패 혐의가 나왔다.#
3. 성향
국민당 소속으로서 대표적인 우파 정치인이다. 본래는 메르켈처럼 친난민 성향 정치인이였으나, 극우 자유당의 부상으로 반난민, 반이슬람 성향으로 우클릭했으며 아예 자유당과 연정을 했다.
쿠르츠가 비판을 받는 이유는 연정 파트너인 자유당 때문인데, 자유당은 선명 극우 정당으로도 모자라 친(親)나치 정당이다. 오스트리아는 나치에 대한 경각심이 약한데, 실제로 자유당은 적지 않게 캐스팅 보트를 쥔 경우가 많았으며, 최근에는 난민 문제 등으로 주요 정당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게다가 2016년 대선 때는 자유당이 대선 결선에 진출에 전국이 충격에 빠졌다. 물론 여야가 극우를 막자며 무소속 중도파 후보(알렉산더 판데어벨렌)를 밀어준 덕에 낙선했지만, 오스트리아는 독일처럼 대통령은 실권이 없는 바지사장이고, 그마저도 접전끝에 자유당이 패배했다.
하지만 쿠르츠는 홀로코스트 추모비를 건립함과 동시에 자국이 범죄(=홀로코스트)에 가담했음을 인정했고, 이스라엘과의 관계를 개선했다. 외무, 국방, 내무부를 양보받은 자유당이 난민 정책을 주도했지만, 총리인 쿠르츠가 대외정책을 '직접' 주도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성과였다. 그리고 쿠르츠는 '이비사 스캔들'이 터지자 헤르베르트 키클 내무장관을 위시한 자유당 소속 장관들을 해임함으로써 연정을 파기했다. 이러한 과정은 쿠르츠가 과연 진심으로 극우 노선을 포용한 것인지를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쿠르츠의 자유당 포섭 전략을 2016년 자유당의 호퍼 후보가 1차투표에서 1위하고 각종 선거에서 급작스럽게 치고 올라오자 극우 정당의 단독 집권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선택이라고 본다. 물론 진보진영에선 대차게 깠지만 오스트리아 정치 현실과 국제적인 정치성향 기준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쿠르츠를 극우라고 보긴 힘들다.
4. 여담
- 주자네 티어(Susanne Thier)와 연애 중이다. 주변에서 쿠르츠가 티어와 결혼할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고 있지만, 아직은 정해진 것은 없다.
- 상당한 미남에다가 장신에 나이도 젊어서 이른바 얼빠(...)들도 많다.
- 우연의 일치이겠지만, 성씨인 'Kurz'가 세르비아어로 '음경'을 뜻한다(...). 2013년 쿠르츠가 외무장관에 오르자 세르비아 민주당 부당수 알렉산다르 샤피치(Aleksandar Šapić)가 트위터에서 이러한 점을 갖고 조롱했다가 파면되기도 했다.기사
- 2019년 2월 14일 오스트리아 총리로서 한국을 방문했는데 이는 19년 만의 일이다.
[1] 취임 당시 31세. 물론, '''민주적 절차를 거쳐 선출된 지도자들''' 중에서 최연소란 뜻이다. 전제군주나 독재자까지 포함하면 더 어린 나이에 집권한 사람도 많긴 하지만. 다만 취임 나이를 기준으로 유럽 최연소는 아닌데, 물론 총리 첫 취임 당시에는 유럽 최연소이자 세계 최연소가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러나 2018년 4월 산마리노의 집정관으로 '''28세'''의 마테오 치아치가 선출되어, 이 기록은 깨졌다.[2] 사실 2, 30대라는 나이는 정치권에서는 "어린이"라고 봐도 무관할 정도이며, 이런 나이에 정부 수반에 오른다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이전에는 끽해봤자 북한의 김정은 등이 있었지만, 이들은 비민주적으로 선출된 경우기 때문에, 민주적으로 선출된 경우로서는 사실상 쿠르츠가 처음이다. 별개로 국내에서 이 나이 때에 정치를 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3] 녹색당은 최근 유럽에서 핵심 쟁점인 환경 및 이민 문제에 대해 쿠르츠와는 전혀 다른 입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