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인첨
1. 개요
고려 중기의 문신[1] 이자 무신.[2]
파평 윤씨 가문의 일원으로 문무를 겸비한 선비였다. 하지만 무신정변으로 인해 죽기 전까지 무관들의 눈치를 봐야 했던 비애의 인물이다.
2. 무신정변 이전
별무반을 이끌던 윤관의 아들이자 김부식과 칭제건원 문제로 대립했던 유명한 윤언이의 장남으로 1110년 태어났다.
1132년 과거에 급제했다. 당시 지공거 최자성의 출제 오류 때문에 급제가 취소될 뻔했는데, 윤인첨의 장인 한유충 등의 노력으로 급제자 신분을 유지하게 됐다. 의종 때 시어사(侍御史)가 되었으나 고관에게 잘못보여 좌사원외랑(左司員外郞)으로 강등되었다가 기거주(起居注)가 되었다. 그 후 형부시랑이 되었고, 서북면병마부사가 되었는데 이 때 변경에서 금나라와 관련된 일을 당했으나[3] 조정에 보고하지 않았다. 1169년 우간의대부가 되어 다시 내직으로 복귀하였다.
이때까지 보면 평범한 문신의 삶을 살아왔다고 볼 수 있겠다. 물론 1170년에 일어난 무신정변으로 그의 인생은 급변하게 된다.
3. 무신정변 이후
1170년 무신정변이 발생한다. 이 때 상당수 문신이 화를 당했으나 윤인첨은 김부식과 대립하였던 윤언이의 장남이자, 별무반을 이끌었고 무신들에게 명망이 높았던 윤관의 손자였기 때문에 살아남을 수 있었고, 그동안 나이에 비해 상당히 낮은 관직을 전전했던 것[4] 이 여러모로 도움이 되었을 것으로 예상된다.
명종이 즉위하자 국자감대사성에 올랐다가 지추밀원사와 참지정사, 판병부사를 거쳐 중서시랑평장사로 승진하였고, 1172년 동북면병마판사 - 행영병마판사 겸 중군병마판사[5] 가 되었다. 1173년 김보당의 난에 연루되어 체포되었다가 유응규의 도움으로 풀려났다. 곧바로 수태사에 오르고 상장군이 되어 중방에 참여하게 되었다.
1174년 서경유수 조위총이 일으킨 조위총의 난이 일어나자 진압군의 원수로 임명되어 진압에 나섰으나 오히려 궤멸당하는 패배를 당했다. 이 과정에서 싸우다 죽으려 하였으나 정균이 말려 겨우 죽음을 면하고 돌아오게 되었다. 이 과정중에 이의방이 직접 조위총의 난을 진압하려 나서다가 정균에게 제거되는 변란이 발생되기도 했다. 이의방 제거 이후 다시금 진압군의 원수가 되어 재진압에 나섰고, 두경승의 도움을 받아 1176년 서경을 함락시키고 조위총을 처형시켰다.
반란을 진압한 공으로 추충정란광국공신 - 상주국 - 감수국사[6] 가 되었다. 하지만 당해 그는 세상을 떴고, 수태사 - 문하시중이 추증되었다. 차후 명종의 묘정에 배향되어 문정공 시호를 받았다.
슬하에 4남 1녀를 두었는데, 장남 윤종악(尹宗諤)은 대부주부(大府主簿)를 지내다가 정중부의 난에 휩쓸려 죽었다. 차남 윤종회(尹宗誨)는 판예빈성사(判禮賓省事), 삼남 윤종함(尹宗諴)은 국좌제주(國子祭酒), 사남 윤종양(尹宗諹)은 형부시랑(刑部侍郞)을 각각 지냈다. 윤종함과 윤종양은 대가 이어지지 못하고, 윤종악과 윤종회의 후손들이 파평 윤씨 문정공파(文定公派)를 이루어 윤인첨을 파조(派祖)로서 모시고 있다.
4. 창작물에서
KBS의 사극 무인시대에 등장했다. 배우는 태조 왕건의 아지태 역으로 유명한 김인태.[7] 노장파 문신 중 한 명으로 등장하며 환관들과 정적이었던 동시에 정치적 영향력이 높아서 무신들의 칼날을 겨우 피해갈 수 있었다. 여진정벌의 주도자였던 그 윤관의 손자임에도 강골과는 다른 다소 유약한 모습으로 현실을 덤덤히 받아들이는 것으로 묘사되었다.
5. 역임 관작
[1] 생전 최종 문관직은 평장사, 사후 문하시중에 추증되었다.[2] 생전 무신정권의 영향으로 정3품 최고위 무관직인 상장군에 임명되어 중방회의에 참여했다.[3] 고려사에 따르면 금나라에 영토를 빼앗기는 것을 수치로 여겨 금나라 황제의 명을 거부하여 금나라가 사람들을 잡아갔다. 이후 금나라에 요청하여 잡아간 사람들을 다시 돌려 받았다고 한다.[4] 1169년 정4품 우간의대부가 되었는데 이 때 그의 나이가 60이 다 되었던 시점이었고, 아버지 윤언이가 그의 나이대에 종2품 정당문학에 올랐던 것과 비교한다면 상당히 낮다고 볼 수 있다. 아무래도 그의 아버지가 김부식과 대립하였고, 의종 대에 총신이었던 김돈중이 김부식의 아들이었다는 점이 작용된 것으로 보인다.[5] 외직(外職)으로 국경에 직접 나아가 국방을 담당하는 직위들이다.[6] 사관의 장관.[7] 전전작인 태조 왕건에서는 아지태 역을 맡아 임금의 눈을 흐리는 간신 연기를 제대로 보여주었다. 반면 이 드라마에서는 힘 없는 노신 역할을 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