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희경
1. 개요
1959년 10월 27일에 태어난 소설가. 전라북도 고창군 출신이고, 숙명여자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에서 국어국문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한자 이름은 殷熙耕. 1990년대를 대표하는 소설가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1]
1995년 36살 때에 동아일보 신춘문예 중편부문에 《이중주》가 당선되면서 등단했다. 그 해에 첫 장편인《새의 선물》을 발표하며 한국문단에 일약 스타로 등극했다. 그 후 1997년에는 첫 소설집 《타인에게 말걸기》로 동서문학상을 수상했고, 1998년에는 《아내의 상자》로 이상문학상을, 2007년에는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로 동인문학상을 수상하였다. 대표작은 《새의 선물》이며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마이너리그》 등도 많이 읽힌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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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작품세계
대단히 유머러스하면서도 약간은 위악적이고 냉소적인 작품세계를 갖고 있다. 특유의 삐딱한 시선으로 세상의 모순과 추한 모습, 그리고 인생의 비루한 모습 등을 매우 심드렁한 문장으로, 그러면서도 매우 예리하고 노골적으로 무자비하게 드러내는 성향을 갖고 있다. 그래서 읽는 사람을 키득키득 웃게 하면서도 약간은 불편하게 만드는 그런 면이 있다. '장마철에 더 고마운 까실까실한 수건처럼 삶의 습기가 제거된 언어를 사용한다'는 평을 듣고 있다. 특히 단편의 경우 매우 깔끔하고 짜임새가 있어서 "못을 하나도 쓰지 않고, 나무의 홈과 홈을 꽉 짜 맞추어 집을 지은 듯하다"는 평을 듣기도 하였다. '은희경은 하나의 장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대단히 특이하면서 완결된 작품세계를 자랑하였다.
대체로 은희경 소설의 키워드는 냉소와 위악이었다. 세상과 인생을 특유의 삐딱한 시각으로 심각하지 않은 문장으로 예리하게 드러냈었다. 그러나 소설집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 이후 작가 시선은 많이 둥글어지고 덤덤해짐을 볼 수 있다. 소설 속 주인공들은 세상의 모순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고독하게 자신의 좌표를 찾아 헤맨다. 그 전까지는 두려움과 불안으로부터 방어하고 상처받지 않기 위해 필요한 태도인 '냉소'적인 시선을 유지했다면 최근에는 긴장과 두려움에서 한결 자유로워져서 작가의 관심사는 공정함[2] 으로 바뀌었다.
첫 장편소설 <새의 선물>이 '냉담과 냉소로 깜찍한 문제제기'였다면 이후의 작품들은 '질문이 깊어졌고 해답을 찾는 과정이 치밀해졌다.'라고 평가받는다. 그렇기 때문에 고개를 모로 비틀고 기성세대를 양껏 조롱하던 그 조소 띤 어조, 느닷없는 사건들로 상식을 전복하는 의외성, 그런 ‘은희경의 것들’을 향수하며 아쉬워하는 독자들도 있다. 하지만 ''은희경의 작품을 선호하는 까닭은 그의 냉소와 풍자가 일종의 카타르시스 효과를 주기 때문인데 그렇다고 이런 점이 문학성을 대변해 주지는 못한다"고 비판하는 평론가도 있다.[3]
3. 작품
출간된 연도 순서대로 나열한다.
3.1. 소설집
- 타인에게 말걸기
- 행복한 사람은 시계를 보지 않는다
- 상속
-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
- 다른 모든 눈송이와 아주 비슷하게 생긴 단 하나의 눈송이
- The Closet Novel[4]
- 중국식 룰렛
3.2. 장편소설
- 새의 선물
-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 그것은 꿈이었을까
- 마이너리그
- 비밀과 거짓말
- 소년을 위로해줘[5]
- 태연한 인생
- 빛의 과거
3.3. 산문집
- 생각의 일요일들
4. 수상목록
- 1995년 제1회 문학동네 소설상 <새의 선물>
- 1997년 제10회 동서 문학상 <타인에게 말걸기>
- 1998년 제22회 이상문학상 <아내의 상자>
- 2000년 제26회 한국소설문학상 <내가 살았던 집>
- 2002년 제35회 한국일보 문학상 <누가 꽃피는 봄날 리기다소나무 숲에 덫을 놓았을까>
- 2006년 제18회 이산문학상 <비밀과 거짓말>
- 2007년 제38회 동인문학상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
- 2014년 제14회 황순원문학상 <금성녀>
5. 여담
- 직장인처럼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글을 쓴다고 한다. 보통 3개월에 1편 정도 단편을 쓰고, 1달은 완전히 집필에 몰두한다고 한다. 가정을 대단히 중시한다고 한다.
- 은희경 씨의 어머니인 이정애 여사는 2014년 '예술가의 장한 어머니상'을 수상했다.[8]
- 뮤지션 MOT을 상당히 좋아하는 듯 하다.
- 강연에 대해서 다소 부정적인 입장이다.
- 달리기, 여행을 상당히 좋아한다. [11]
- 트윗 공간에서도 활동하고 있다. 은유적이고 간결하고 문학작가다운 트윗을 하여 지식인들에게 높이 평가받고 있다. 트윗을 하면서 정치얘기는 거의 안 하지만, 가끔은 "대통령을 '불쌍하다'고 뽑아 주는 나라. 힘 있는 자들이 표 얻겠다며 '도와주세요'라고 엎드리는 나라. 그런 나라 국민이라서 나 좀 불쌍한 듯..." 같은 글을 올린다고 한다. 2014년 이후에는 새 글을 올리지 않고 있다.
6. 작품 속에 나오는 말들
셋은 좋은 숫자이다.
오직 하나뿐이라는 것? 이 어리석은 은유는 설명할 필요조차 없다. 당연히 비극이 예정되어 있다. 둘이라는 숫자는 불안하다. 일단 둘 중 하나를 선택하고 나면 그때부터는 자유롭지 못하다. 결국은 첫 선택에 대한 체념을 강요당하거나 기껏 잘해봤자 덜 나쁜 것을 선택한 정도가 되어버린다. 셋 정도면 조금 느긋한 마음으로 일이 잘 안 될 때를 대비할 수가 있다.
가능성이 셋이면 그 일의 무게도 셋으로 나누어 가지게 된다. 진지한 환상에서도 벗어나게 되며, 산에 오를 때와 마찬가지로 체중을 양다리에 나눠 싣고 아랫배로도 좀 덜어왔으므로 몸가짐이 가뿐하고 균형 잡기가 쉽다. 혹 넘어지더라도 덜 다칠 게 틀림없다.
실제로도 내게는 언제나 3번째 선택이란 것이 그리 나쁘지 않았던 것 같다. 어쨌든 애인이 셋 정도는 되어야 사랑에 대한 냉소를 유지할 수 있다는 얘기다.
-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12]
사랑은 자유를 배신하고 법치주의를 배신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배신하고, 지속되기를 거부함으로써 사랑 자체를 배신한다. 사랑은 나 스스로 만든 환상을 깨뜨려서 나 자신까지도 배신한다.
사랑에서 환상을 깨는 것이 배신의 역할이다. 환상이 하나하나 깨지는 것이 바로 사랑이 완결되어가는 과정이라면, 사랑은 배신에 의해 완성되는 셈이다.
사랑은 환상으로 시작되며, 모든 환상이 깨지고 난 뒤 그런데도 자기도 모르게 어느새 그를 사랑하게 되어버린 것을 깨달으면서 완성되고, 그러고도 끝난다.
-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
섹스를 사랑의 표현으로만 생각하고 있는데, 그것이 가부장적인 생식의 현실로 다가올 때 혐오가 느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
사람들은 자기에게 보이는 것을 중심으로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그러다 어느 한순간 멈추고 돌아보니 그렇게 의식없이 보내버린 시간이 쌓여서 바로 자기 인생이 되었다는 걸 깨닫는다. 그때 그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뭐라고? 나는 좋은 인생이 오기를 바라고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데, 아직 인생다운 인생을 살아보지도 못했는데, 그런데 내가 무턱대고 살아왔던 그것이 바로 내 인생이었다고?
- 마이너리그 -
내가 조금 겪고 수없이 본 바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잘생긴 남자는 예쁜 여자와 결혼하지 못한다. 이 또한 어디까지나 일반적인 얘기지만 예쁜 여자들은 남자에게 적극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남자에게 적극적인 쪽은, 예쁜 것에 대한 욕망은 있지만 자기가 그리 예쁘지 않기 때문에 자기 대신 잘생긴 남자를 좋아하게 돼 있는 보통 용모의 여자들이다. 그런 여자 중에는 욕망과 거기에서 생긴 성취동기 덕분에 공부를 잘 하든 장사를 잘 하든 간에 능력을 갖춘 여자들이 많고 자기가 원하는 게 뭔지 알고 있는 현실적인 여자들이 대부분이다. 잘 생긴 남자들은 물론 여느 남자들처럼 예쁜 여자를 좋아하지만 뜸을 들이는 동안 적극적인 여자들이 치고 들어와 자기를 낚아채가는 데 대해 필사적으로 반항하진 않는다. 자기가 잘 생겼다는 사실을 익히 알고 있는 그들은 숭배자를 내치는 법이 없다. 남자는 또 눈 앞의 현실에 약하다. 순정을 바친 여자가 따로 있는데도 눈앞에 여자가 있으면 그 여자 역시 여자는 여자라는 게 남자의 생각이다. 잘 생긴 남자가 자기를 향한 숭배와 그것이 제공하는 자기만족에 익숙해져 있을 때면 결혼절차가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 마이너리그 -
내가 알기로 세상을 서정적으로 보는 사람은 상처받게 마련이다. 영원하고 유일한 사랑 따위가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서정성 자체가 고통에 대한 면역을 빼앗아가기 때문이다."
- 새의 선물 -
나는 한꺼번에 배신당했으며 더욱 비참한 것은 그렇게 배신당한 것을 아무에게도 눈치채여서는 안 되므로 노골적으로 비탄에 빠질 수도 없고 위로나 배려를 받을 수도 없다는 점이었다. 내 고통은 바로 거기에 있었다. 나는 모든 사람들의 내면을 이해할 수 있었지만 나를 이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 새의 선물 -
"선배가 생각하는 진화란 게 뭐예요?"
"모두들 다른 존재가 되는 것, 그것이 진화야. 인간들은 다르다는 것에 불안을 느끼고 자기와 다른 인간을 배척하게 돼 있어. 하지만 야생에서는 달라야만 서로 존중을 받지. 거기에서는 다르다는 것이 살아남는 방법이야. 사는 곳도 다르고 먹이도 다르고 천적도 다르고. 서로 다른 존재들만이 평화롭게 공존하는거야."
-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 -
"사람들 앞에서 울면 그들은 너를 달래주려 하겠지만 마음속으로는 깔보기 시작하는거야."
- 소년을 위로해줘 -
"고독은 학교숙제처럼 혼자 해결해야 하는 것이지만 슬픔은 함께 견디는 거야."
- 소년의 위로해줘 -
둘만 있다거나 가까이 있을때 서로는 유일한 존재이며 그 사람을 남과 구분지어야 할 필요도 없으므로 이름이란 별로 소용이 없다. 이름이란 타인이 존재하기 때문에 생겨난 것이고 구별해야할 타인의 숫자가 많으면 그것은 보통번호가 되기 마련이다.
- 그것은 꿈이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