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반 코노노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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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반 코노노프에게 훈장을 전달하는 헬무트 폰 판비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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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장 시절의 코노코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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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러시아 제국, 소련의 장교에서 나치 독일로 전향한 카자크 출신의 군인.
2. 생애
러시아 제국 출신으로 1900년에 흑해 북부 연안의 현 우크라이나에서 선장의 아들로 태어났다. 선장이었던 아버지와 어머니는 반동으로 몰려 볼셰비키에 의해 교수형에 처해졌고, 다른 형제들은 모두 볼셰비키에 탄압받거나 러시아 내전에 참전했다가 죽었다. 코노노프는 자신의 출신 성분을 숨기고 1922년에 붉은 군대에 입대하였고 기병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부터는 기병부대를 중심으로 근무하였다. 1939~1940년에 겨울전쟁에 참가하였고, 노력적기훈장을 수여받고 중령까지 올라간다.[1]
1941년, 독소전쟁이 발발, 바르바로사 작전이 펼쳐지면서 9월에는 이반 코노노프가 이끌던 부대는 독일군에 포위되었다. 자신의 일기장에서는 자신의 부대는 독일군에게 항복하여 소비에트 연방의 인민들을 공산주의 세력으로부터 해방시킬 것이라고 하기도 하였으나, 일부에서는 지휘부 일부의 장교들만 체포되었고 잔여 연대원들은 계속 싸웠다라는 견해가 있다. 어찌 됐든 코노노프는 독일 국방군에 항복했고 정보국 아프베어의 심문을 통해서 소련에 대항하여 싸울 것임을 거듭 확인하였다.
아돌프 히틀러가 처음에 러시아 출신 인종이나 인물을 신뢰하지 않았던 영향이 있지만 결국 국방군은 코노노프와 전향한 카자크 포로, 백계 카자크로 구성된 2개 기병대대, 2 자전거대대, 1개 포병 대대, 1개 대전차대대로 구성된 부대를 창설하는 것을 수락하였다.나는 소련 치하에서 직접 생활하면서 공산주의자들의 공포와 빈곤, 조롱을 보고 느꼈다. 나는 공산주의에 반대하는 투쟁을 길을 공개적으로 걸으며 조국을 야만족, 늑대같은 주가슈빌리 스탈린이 이끄는 공산주의로부터 해방시킬 것이다.
초기에는 파르티잔과 공수부대에 대비하기 위해서 88보병사단에 예속되어 활약하였고 붉은 군대의 알렉세예비치 벨로프 장군이 이끄는 제1경기병군단에 대항하여 벨로루시, 스몰렌스크 지역에서 활동하였다. 코노노프의 계급 또한 소련군에서 받은 중령 계급을 유지시켜 주었다. 이후 모길료프의 파르티잔을 토벌하기도 한다. 중부후방집단군의 사령관이 었던 막스 폰 셴켄도르프[2] 의 일기에는 코노노프가 이끄는 부대에 대해서 "부대의 분위기는 좋다. 전투준비 태세는 훌륭하며 특히 파르티잔 토벌에 자비 없이 임한다."라는 기록이 있었다.
1944년에 코노노프는 대령으로 승진하였고 기사십자 철십자 훈장과 1, 2등급의 철십자 훈장을 수여받는다. 정확한 시점을 알 수 없지만 나중에 동방민족을 위한 오스트폭스 메달(Ostvalk Medal, 동방민족 메달)[3] 을 수여받기도 한다. 그 해 겨울에는 헬무트 폰 판비츠의 제 1카자크 기병연대와 함께 기사의 도약 작전에 투입되어 요시프 브로즈 티토를 생포하기 위한 작전을 펼쳤으나 티토가 간신히 탈출하면서 실패로 끝났다. 이 작전에서 소련군의 제3우크라이나 전선군의 57군과의 전투에서 병력의 상당 부분을 잃게 된다.
1945년에는 15 SS 카자크 기병군단으로 개편 통합되면서 코노노프의 부대도 재편성되었다. 실질적으로 15 SS 카자크 기병군단의 이름으로 활동한 것은 없었고 나중에 러시아 인민 해방 위원회 소속 자유 러시아 군단에 편입되어 15 카자크 기병군단으로 명칭이 변경되고 코노노프는 소장으로 진급하였다. 하지만 머지않아 종전을 맞이하게 된다.
소위 카자크의 배신, 린츠의 카자크인 학살 등의 이름으로 불리는 독일 측 카자크가 소련으로 대량으로 송환되는 일에 휘말리게 된다. 하지만 코노노프는 카자크 기병군단의 실질적 주요 지휘관 12인 가운데서 유일하게 도피에 성공했다. 뮌헨에서도 잠시 머물렀다가 40년대 후반 호주로 도피하는데 성공하였다. KGB가 그를 끝까지 추적하였으나 실패하였고 1967년에 교통사고로 사망한다. 교통사고로 사망했을 때도 KGB가 교통사고로 위장하여 죽인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있었는데 확인 결과 심장마비로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볼셰비키에 의해 탄압받은 일부 카자크들이 있기 때문에 카자크의 나치 부역에 대해서 어느 정도 이해하는 견해도 있는 편이다. 하지만 이반 코노노프는 가족들이 볼셰비키에 의해서 탄압받고 죽임을 당하였었지만 다시 소련군에 입대를 하였고, 다시 나치에 항복하였기 때문에 그냥 반골이라고 보는 경향도 있다. 더군다나 다른 지휘관들은 잡혀가서 처벌을 받았고 심지어 독일인이었던 헬무트 폰 판비츠도 자기 발로 소련으로 가서 처형당했다. 이런 점들이 있다보니 이반 코노노프에 대해서는 전반적으로 기회주의자라고 보는 경향이 있는 듯하다.
3. 관련 문서
[1] 물론 나중에 독일로 전향하고 나서는 취소된다.[2] Max von Schenckendorff. 보병대장. 중부후방집단군 사령관으로써 동유럽 일대의 파르티잔 토벌을 주된 과업으로 삼던 부대였고 모길료프에서의 학살을 저질렀다. 여기에는 SS의 에리히 폰 뎀 바흐첼레프스키도 관여했다. 셴켄도르프는 종전 이전에 심장마비로 죽었다.[3] 이 메달을 받은 대표적인 인물이 슈츠슈타펠의 브로니슬라프 카민스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