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 슈코르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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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전 모습
히틀러와 슈코르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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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군들 사이에 쳐들어와 끼어있는 영관급 장교의 패기[1]
베니토 무솔리니 구출작전 당시 신분 위장을 위해 공군의 열대 전투복을 착용한 모습을 재현한 피규어
1. 소개
2. 유명해지기 전까지
3. 슈코르체니가 벌인 작전들
3.1. 떡갈나무 작전
3.2. 기사의 도약 작전
3.4. 판처파우스트 작전
3.5. 그라이프 작전
3.6. 네이메헌 철교 폭파작전
3.7. 레마겐 철교 폭파작전
3.8. 슈코르체니가 하려고 했는데 못 한 작전
3.9. 슈코르체니가 하지 않았는데 한 걸로 알려진 작전
4. 전후의 모습
4.1. 전후에 슈코르체니가 연관되었다고 보도된 사건들
5. 저서
6. 여담
7. 매체에서의 등장


1. 소개


Otto Skorzeny (1908년 6월 12일 ~ 1975년 7월 7일) [2]
제2차 세계 대전 시기 나치 독일 SS 장교였다. 키 193㎝, 체중 100kg이 넘는 덩치에 얼굴에 큰 흉터가 있는 완전 인간흉기급 외모를 가졌으며 활약까지 대단해 '''만화 캐릭터가 아닌 실존인물이란게 믿기 힘든 인간'''이다. 한눈에 띄는 외모를 가진데다 뛰어난 완력과 실행력으로 주목을 받았으며 아돌프 히틀러도 그를 특별히 신임해 결국 SS내에 편재된 특수부대의 지휘관이 된다.
그래서 생긴 별명이 위의 말이며 그의 행적을 연합국의 입장에서 보면 한마디로 무시무시한 대악당이라는 말이 어울린다. 하지만 슈코르체니는 민간인이나 포로들에게는 함부로 대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런 상대에게는 상당히 친절했다고 한다. 특히 슈츠슈타펠이라고 모두 전범 행위를 한 게 아니다. (위키피디아 영어판 문서 참조)
다이 하드 시리즈007 시리즈의 '''존 맥클레인'''과 '''제임스 본드'''의 모델이 되었다.
실물 사진과 자세한 약력은 이 링크에서도 잘 설명되어 있다.

2. 유명해지기 전까지


1908년 6월 12일에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군인 중산층 집안에서 태어났다.[3] 10대 소년 시절부터 15번의 목숨을 건 결투를 벌였다고 한다. 10번째에는 펜싱 칼을 들고 싸웠는데 얼굴의 흉터는 그때 생겼다고. 슈코르체니는 사실 대학 결투클럽의 회원이었고 모든 결투는 합의에 의한 결투였다. 결투후에 회원들과 함께 찍은 사진도 존재한다. 당시까지도 독일에서는 결투를 남자의 미덕으로 여겼고 얼굴에 상처가 몇 개 있는 것 정도는 오히려 멋으로 치부되었다.
1920년대에 빈 공대 건축학과를 다녔고 이때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복학생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졸업한 후에는 건축업에 종사했다. 원래 공돌이라 그런지, 자서전의 문장도 짧고 이해가 쉬운 편.
1931년에 오스트리아 나치당에 가입했으며 곧 이어 돌격대에 가입했다. 1938년에 안슐루스를 적극적으로 지지했고, 조종사 면허가 있어서 30세의 나이로 독일 공군에 입대했으나 나이가 많은 데다가 '''키가 너무 커서''' 조종사 지원에서는 탈락했다. 일부 자료에서는 이때 공수훈련 등의 기초를 배운 것으로 되어있기도 하다. 그 이후 사무실에 처박히기 싫어서 무장친위대에 지원하여 소위로 임관하고, 다스 라이히 사단 소속으로 서부 전격전 및 발칸, 러시아 등 동부전선에서 싸웠는데 탁월한 전공으로 인해 부상을 입자 본토로 후송됨과 동시에 철십자 훈장이 수여된다. 이런 저런 이야기가 히틀러의 귀에 들어가게되자 때마침 히틀러가 계획중이던 모종의 작전에 발탁되어 부름을 받는다. 이때 계급이 대위.
'''그리고 전설이 시작된다.'''

3. 슈코르체니가 벌인 작전들



3.1. 떡갈나무 작전


히틀러의 친구이자 우방이었던 베니토 무솔리니가 국왕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와 파시스트 대평의회의 결탁에 의해 1943년 7월 25일 실각당하여 이탈리아 어딘가에 연금 중이었다. 히틀러는 한때 자신의 우상이었던 무솔리니가 힘없이 갇혀있는 것이 싫었고 슈코르체니 대위가 그 구출작전의 지휘관이 된다. 계속 옮겨지는 무솔리니의 위치를 추적한 끝에 그 해 9월 12일, 슈코르체니는 자신이 거느린 SS 소속의 프리덴탈 특수부대와 공군 공수사단에서 차출한 병력으로 구성된 특수임무부대를 이끌고 무솔리니가 연금된 아펜니노 산맥 골짜기의 그란사소(Gran Sasso) 호텔글라이더를 타고 돌입, 무솔리니를 구출하는데 성공했다. 이때 부대의 실체를 숨기기 위해 슈코르체니 휘하의 특수부대는 이탈리아에 올 때부터 전원 공군 공수부대원으로 위장했으며, 슈코르체니를 지원하기 위해 아래쪽 골짜기와 케이블카 정거장을 장악한 지원부대는 진짜 공군 공수부대였다.
그렇게 빠져나온 무솔리니는 히틀러에 의해 괴뢰 정부 '''살로 공화국'''의 수장이 되었으며 슈코르체니는 소령으로 진급함과 동시에 기사 철십자 훈장과 친위대 해골 순금반지, 히틀러 친필이 금으로 양각된 금박 독수리 담배 케이스를 수여 받으며 연합국으로부터 '''유럽에서 가장 위험한 사나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네이버에 등재된 무솔리니 구출작전 설명.

3.2. 기사의 도약 작전


1944년 5월 25일 유고슬라비아에서 파르티잔의 지휘소 한복판에 있던 요시프 브로즈 티토를 생포하러 강하했으나 간발의 차이로 실패하고 만다.[4] 한때 슈코르체니의 부대는 티토에게 부상을 입히면서 5분 거리에 도달하기까지 했으나 티토 역시 산전수전 다 겪은 거물인지라 결국 수적으로 우세한 파르티잔들과 부비트랩들을 이용해 지연전을 펼치며 자신은 숨겨놓은 비상 열차로 도피한다. 이 작전에 투입된 SS 공수부대는 슈코르체니 등 일부 인원을 제외하고는 전원 각종 전과로 인해 계급과 서훈이 박탈된 일종의 형벌부대원들이었으며 작전 성과에 따라 계급과 서훈을 전부 회복시켜 주겠다는 약속하에 투입된 것이었다. 비록 티토를 잡지는 못했으나 투입된 대원 다수가 전사 혹은 부상당할 만큼 치열한 전투를 벌였고 그를 코앞까지 몰아붙인 데다 그의 육군 원수 예복 등 상징적인 노획품 등을 획득한 것에 만족한 히틀러가 이들의 계급과 서훈을 모두 회복시켜 주었다.[5]
단, 슈코르체니는 작전의 입안과 실행은 주도했으나 무솔리니 때처럼 직접 뛰어내리지는 않았다.

3.3. 히틀러 암살 미수사건


후폭풍을 수습했다. 당시 아직까지 체포되지 않고 도망치던 가담자 대부분을 36시간 만에 체포했으며 프롬과 회프너, 비츨레벤 등 연루된 육군 장군들을 여럿 사로잡은 것으로 유명. 당시 주변에 있던 쿠데타 측에서 동원한 육군 장병들과 프롬 휘하 장교들도 슈코르체니가 나타나자 모두 얼어붙어서 움직이지도 않았다고.
하지만 당시 프롬은 쿠데타가 실패했다는 사실을 감지하고 반쿠데타측으로 변절해 쿠데타 측을 즉결처형하거나 체포하던 중이기 때문에 슈코르체니에게 반항할 이유가 없었다. 쿠데타 측에서 동원한 장병과 장교들은 대부분 자신들이 쿠데타 측이라는 사실조차 몰랐으며, 오히려 쿠데타를 진압하기 위해 소집되었다고 생각했으므로 더할 나위도 없다.
자서전에서 슈코르체니는 이때 자신의 주된 활동이 '''쿠데타가 진압된 후에 국방부 건물에 들어앉아서 30시간 동안 도장만 찍은 것'''이라고 기술했다. 여기저기서 불러 대는 바람에 왔다 갔다 이동만 했을 뿐, 유명인사들 중 누굴 체포하거나 했다는 주장은 전혀 없다. 국방부 청사에 도착한 것도 슈타우펜베르크가 프롬에게 총살된 후였고, 프롬이 체포되는 것도 목격했다고 한다.

3.4. 판처파우스트 작전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그때까지 동맹이었던 독일을 배신하고 연합군에 항복하려는 섭정 호르티 미클로시 제독의 아들 호르티 니콜라스를 납치하여 인질로 세워 항복을 막고 호르티 미클로시를 섭정에서 사임시켰다. 만약 이 작전이 실패 했다면 헝가리에 주둔해 있는 독일군이 고립되어 궤멸됐을 것이다.
이 작전에 성공하여 독일 십자장 금장[6]과 중령 진급을 상으로 받았다.

3.5. 그라이프 작전


아르덴 대공세때는 1개 기갑여단을 연합군 차량으로 위장하고 도색하여 진격하는 작전을 입안-실행하기도 한다. 특히, 영어가 가능하고 미군의 관습을 배운 병력들이 미제 장비를 착용하고 미제 지프에 올라 미군진영을 온통 들쑤시고 다녔다.[7]
구체적인 사례를 보면 도로 표지판을 정반대 방향으로 돌려놓아 연대 하나를 완전히 다른 곳으로 보내버린다거나 멀쩡한 평지에 테이프를 둘러치고 지뢰밭 표시를 해서 포병대의 발을 묶는다거나 지프에 미군 복장으로 다니면서 미군이 포위당했다는 허위소문을 퍼뜨려 연대급 병력을 철수시킨 것은 물론 체포당하자 아이젠하워를 암살하러 왔다고 허위 진술을 해서 혼란을 가중시킨 대원도 있다. 이에 대해서는 영화 벌지 대전투에서 잘 묘사되어 있다.
이때 하도 혼이 난 미군은 전쟁이 끝날 때까지도 비슷한 작전을 두려워해야 했다. 이 때문에 곤경에 처한 군인이 꽤 있었는데 자세한 사항은 오마 브래들리 문서에 기재되어 있다.

3.6. 네이메헌 철교 폭파작전



3.7. 레마겐 철교 폭파작전


라인강에 걸쳐있는 레마겐의 루덴도르프 대교를 폭파하라는 명령을 받고 작전을 실행하였으나, 강 일부가 얼어버려 실패하였다.

3.8. 슈코르체니가 하려고 했는데 못 한 작전


마그니토고르스크의 공업단지를 폭파하려고 했는데 특공대원들이 타고 갈 비행기가 없어서 못 했다.
기뢰를 부설해서 운하를 차단한다는 계획을 세웠는데 특공대원들이 타고 갈 비행기가 없어서 못 했다.[8]
차출 병력 부족, 루마니아군의 완강한 저항, 브란덴부르크 사단의 패퇴, 안토네스쿠의 가택연금으로 실행에 옮기지 못 했다.
  • 제 2차 티토 체포작전
본거지를 비스섬으로 옮긴 티토를 체포하기 위해 상륙작전을 준비중이었는데 히틀러가 그라이프 작전 준비를 명령하는 바람에 작전이 취소되었다. 그라이프 작전 후에는 티토 따위나 잡으러 다닐 여유가 없었다.

3.9. 슈코르체니가 하지 않았는데 한 걸로 알려진 작전


  • 테헤란 회담 3거두 암살작전 - 설은 2018년까지도 계속 흘러나오는데, 본인은 자서전에서 그런 실현 가능성이 전혀 없는 허무맹랑한 작전을 어떤 미친 놈이 진행하느냐면서 부인했다.[9]

4. 전후의 모습


전후 뉘른베르크 국제군사재판에서는 그간의 특수 작전들과 아르덴 대공세 당시 위장 특수부대를 지휘했던 점, 히틀러 암살 미수사건 당시 뒷수습을 했던 점, 연합국 정보부를 가장 쩔쩔매게 했던 존재이니 만큼 검사 측은 그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연합군 검사 측은 애초에 '''사형'''을 요구하였으나 이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976년판 자서전을 보면 자신은 마땅히 무죄를 받았어야 했다고 주장한다. 여기에는 검사 측이 슈코르체니가 하지 않은 일을 가지고 억지로 사형을 구형한 데 대한 반발심이 크다. 위장부대는 연합국 특수부대도 운용했으므로 이를 가지고 슈코르체니를 기소할 수 없게 되자 검사 측이 슈코르체니가 하지도 않은 포로에 대한 고문 및 살해, 민간인 학살 등을 저질렀다고 주장하며 기소했기 때문이다. 당연히 기소된 죄목들은 모두 증거 불충분으로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이후 무죄 판결을 내렸으면 '''풀어주기나 할 것이지''' 풀어주지도 않고 (자기 말에 따르면) 영국, 소련 등 연합국에서 계속 자기를 데려다 이용하려고 한다는 이야기[10]를 듣고 탈나치화 과정에서 포로수용소를 탈출, 도피하며 세계 방방곡곡을 돌아다닌다.
다만 탈출 방법에 대해서는 두 가지 이야기가 있다. 국내 출간된 자서전에 나온 탈출 방법과 위키백과에 기술된 탈출 방법이 다르다. 어느 쪽이 사실인지는 자료를 더 확인해야 알 수 있을 듯. 슈코르체니가 두 명이라 두 가지 방법으로 탈출한 것도 아닐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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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 1월 마드리드 몬테라 25번지에 위치한 자신의 사무실에서 기자와 인터뷰 중인 슈코르체니[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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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하기 6개월전 1975년 1월에 찍은 사진
늙어도 여전한 패기
이후 프란시스코 프랑코가 파시즘 체제를 유지하고 있던 스페인에 정착하여 프랑코의 고문으로 활약하였고 나중에 건축 사업가가 됐다. 스페인에서 생활하던 도중인 1954년에는 결혼도 했다. 배우자는 나치 독일의 장관이었던 얄마르 샤흐트의 조카인 일제 폰 피스켄슈타인이다.[12]
스페인 정착 이후 해외여행도 즐겼고, 기자들의 취재도 즐긴 것으로 보이는데 종종 2차대전 시절을 회고하거나 미국의 피그스만 침공 작전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 등 여러가지 썰을 풀며 농담도 나누곤 했다. 하지만 전상으로 평생 후유증에 시달리며 살이 엄청나게 쪘고 심지어 1970년에는 함부르크에서 척추 종양 수술을 받던 도중 척수가 손상되어 하반신 불구 판정을 받았으나 6개월간의 끈질긴 물리치료 끝에 다시 걷게 되어 초인임을 다시 한번 입증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나친 재활치료가 몸에 무리를 주는 바람에 폐암이 재발하여[13] 결국 치료하지 못하고 1975년 7월 7일 마드리드에서 숨을 거두었다. 세상을 떠날 무렵엔 사업에 성공하여 백만장자이기도 했다. 전쟁 이후에는 오데사를 만들어 나치 잔당들의 남미 탈출까지 주도했다고 하는 여러 의미에서 철인.

4.1. 전후에 슈코르체니가 연관되었다고 보도된 사건들


2016년 3월 27일에 이스라엘 하레츠 지가 보도한 바에 따르자면, 슈코르체니는 모사드에게 정보를 일부 넘겨준 정도도 아니고 아예 모사드에 협력하여 이집트군 무기 개발에 종사하던 독일 과학자를 '''암살'''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이집트 여행 중에 무기 개발 연구 시설을 폭파해서 이집트인 직원 다섯 명을 폭사시킴으로서 독일인 연구자들에게 겁을 주어 모조리 철수시키기도 했다고.
기사는 슈코르체니가 이런 활동을 한 이유로 시몬 비젠탈이 작성한 나치 사냥 명단에서 자기 이름을 빼 주기를 바라서라는 것과 함께 순전히 그런 비밀 공작 활동이 그의 천성이라서[14] 그랬다는 설명도 제시하고 있다. 기사번역본

5. 저서


저서로는 자서전 《Meine Kommando Unternehmen(내가 벌인 특수작전)》이 있다. 1976년 독일어판을 번역한 영어판을 기본으로 한 한국어 번역본이 2016년 상반기에 나왔다. 번역자는 발번역으로 유명한 이동훈이었는데 진흙 속의 호랑이 사건 이후 번역에 대한 검증 요구가 있어 이글루스의 유명유저슈타인호프가 감수를 하였다. 슈타인호프는 2016년 1월에 "감수를 다 끝냈으며, 원고를 출판사에 넘겼으니 4월에 출판될거 같다"고 했으나, 5월 플래툰 컨벤션에서야 잠시 선판매되었다. 6월 말이 되어서야 정식 발매. 계약 문제로 역자 이름에 이동훈을 그대로 올릴 수 밖에 없는 비극이 발생했다.
판본에 따른 내용 변화도 있다. 슈코르체니는 생전에만 자서전을 몇 번이나 냈고[15], 죽은 뒤에도 여기저기 출판사에서 각기 다른 판본으로 출간하면서 약간씩 내용이 달라진 경우가 많다. 생전에 자기가 고친 것도 고친 거지만 사후에 나온 판본은 문제가 있는 부분[16]을 각 출판사 편집부가 손본 경우가 있다. 그래서 어떤 사건에 대한 서술이 이 판에는 있고 저 판에는 없다거나, 여기는 이렇게 했는데 저기서는 저렇게 했다거나 등등 하는 문제가 나오게 되었다. 여기에 번역 과정에서 오역이 더해지면 헬게이트가...

6. 여담


  • 인간쓰레기 오스카 파울 디를레방어와 정말 정말 사이가 안 좋았다고 한다. 디를레방어가 계급빨로 눌러댔지만[17] 독일 상층부에서 디를레방어를 좋아하는 사람은 친구인 고틀로프 베르거[18]를 제외하면 사실상 없었기 때문에 별로 개의치 않았다고 한다.
  • 도피하면서 모사드와 협력관계를 가지기도 했다. 이집트 미사일 계획에서 일했던 독일 과학자들을 제거하려는 계획에 협력한 것인데, 그야말로 충격과 공포.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된 셈이다. 물론 슈코르체니 본인이 모사드에 접근한 것이 아니고, 모사드 요원들이 관광객[19] 행세를 하며 으슥하게 찾아왔기 때문이다. 외국인 관광객을 가장한 모사드 요원들이 찾아오자 슈코르체니는 그들에게 바로 권총을 들이대며 '너희는 나를 잡으러 온 모사드'라고 했다고 한다. 그 때가 돼서야 당황한 모사드 요원들이 정체를 밝히며 너 잡아먹으러 온 거 아니고 도와달라고 온 것이며, 여기서 우리를 쏴죽이면 너도 죽는다고 이야기하면서 협상을 했다고 한다.
  • 이에 대해서는 슈코르체니가 죽을까봐 겁을 집어먹은 것이 아니라 모사드와의 협력을 대가로 그가 세운 오데사 조직에 관련된 옛 나치당 인사들의 추적을 그만두는 것, 또는 그 자신을 나치 사냥꾼인 시몬 비젠탈이 만든 체포 대상자 명단에서 빼는 것으로 합의봤다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게다가 그가 겁을 먹었다는 말도 따지고 보면 어이가 없는 것이, 극비중의 극비인 미사일 계획에 관여중인 과학자들의 신상까지 털어내는, 모사드조차 하지 못해서 도움을 청하러 올 수 밖에 없게 만든 양반이 모사드 몇명 왔다고 겁을 먹었을까? 게다가 이 사람은 일단 자기 주장에 따르자면 유대인을 건드리지도 않았으므로 모사드 상대로 하나도 거리낄 게 없는 사람이다. 물론 모사드가 그와 접선했던 시기가 아돌프 아이히만을 목매달며 세계를 놀라게 한 때였으니 아주 근거없는 얘기는 아니지만 이 이야기도 결국 이스라엘에서 전해지는 이야기이므로 많이 과장을 섞었다고 보면 타당할 것이다. 거기다가 애초에 시몬 비젠탈도 이 양반에게는 별 관심도 없었다. 그가 관심 있던건 인간쓰레기지, 인간흉기는 아니었으므로.[20]

7. 매체에서의 등장


겁스 무한세계에서 홈라인무한그룹은 파시즘을 혐오하고 나치에 반발하다가 수감된 평행세계[21]의 오토 슈코르체니를 구출했으며 오토의 주장으로 수많은 평행세계의 온갖 초인들을 모은 '무한경비대 특무부'라는 비밀 부대가 창설되어 부장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 특징으론 '''다른 평행세계의 자신-그러니까 나치의 졸개인 자신-을 비겁자라며 몹시 싫어한다'''는 것. 그래서 부하들에게도 평행세계에서 나치를 만나면 모조리 때려잡을 것을 권장하고 있다.
1942년에 파충류 외계인이 내려온다는 해리 터틀도브[22]대체역사소설 월드워에서는 말 그대로 '''지구를 구한 사나이'''로 나온다. 외계인에 대한 각종 공격을 주도하면서 외계인의 우월한 기술을 모조리 빼오고 앞서 말한 무솔리니 구출, 호르티 제독 제압이나 외계인의 핵물질 탈취작전 등을 실행한다. 마지막에 지구와 외계인의 평화조약 장소를 신경가스로 제압하려다가 역으로 당해서 사망. SS라면 치를 떠는 미국에서 나온 작품임을 생각하면 취급이 좋은 편.
코에이의 게임 유럽 전선에서도 후반부 시나리오에 등장한다. 근데 쓰기엔 뭔가 좀 특출난 능력치가 잘 안 나온다.
메탈기어 솔리드 3의 등장 인물인 볼긴 대령과 고전 FPS게임 울펜슈타인 3D의 첫 번째 보스 한스 그로스의 모델로 추정 된다. 특히 볼긴 대령은 거구에다가 얼굴에 난 흉터가 한스 그로스는 머리 스타일이 정말정말 닮았다. 특히 대체역사물로 리부트된 울펜슈타인 시리즈의 최신작 울펜슈타인 2: 더 프리덤 크로니클즈의 마지막 에피소드 윌킨스 대위의 놀라운 기행 편에서는 미군버전 슈코르체니인 클라이브 크로스라는 인물도 나온다. [23]
트리니티 블러드로젠크로이츠 올덴의 간부 쉬잔느 폰 스코르체니의 모델이다. 이름과 얼굴의 흉터를 따왔다.
헛쯔모없는 개혁에서는 제 4제국 소속으로 등장. 바티칸에 모인 정상들의 앞에 나타나 마작 대결을 제안한 뒤 하우니브를 타고 사라진다. 그 후 제 4제국의 한스 울리히 루델과 함께 중견으로 출전해 아버지 부시&아들 부시를 상대로 마작 대결을 벌인다. 블러핑에 능해 아들 부시를 여러 번 위기로 몰아넣지만, 아버지 부시의 희생으로 각성한 아들 부시에게 역으로 몰리다가 눈에조차 보이지 않는 츠바메가에시로 흐름을 뒤집다 반칙을 간파당해 콜린 파월이 배치해 둔 저격수에게 당하지만, 루델 역시 츠바메가에시를 사용할 수 있었기에 결국에는 승리. 필살기는 '''그리프 작전[24]''', '''팬저파우스트 작전''', '''아이헤 작전[25]''', 그리고 '''발켄크로이츠([직십자)'''.
슈타인호프의 대체역사소설 <내가 히틀러라니!>에서는 히틀러에 빙의된 한국인 주인공이 광복군을 돕기 위하여 군사고문으로 파견해 이우 구출작전 등의 활약으로 일본으로부터의 독립에 기여하고, 종전 후에도 한국에 정착해 만주에서의 공작활동을 하여 이 세계관에선 '''유라시아에서 가장 위험한 사나이'''라고 불린다.
카르카손의 대체역사 소설 <내 독일에 나치는 필요없다>에서는 작중 반역죄로 끌려갈 뻔한 리히트호펜을 순식간에 구해주고, 오히려 그를 체포하러 온 참모총장 예쇼네크까지 잡아버린다. 이후 나치 정권의 부활을 꿈꾸며 쿠데타를 계획하던 퀴힐러의 3군이 주둔하던 포젠 상공으로 쿠데타를 제압하기 위해 공수부대를 이끌고 투입되며 순식간에 퀴힐러 앞에 직접 나타나며 그를 잡아들이는 활약을 한다.

[1] 사진 위쪽 슈코르체니의 좌우에 있는 인물들과 맨 끄트머리의 인물은 국방군 육군 장군들이고 네 번째 검은 제복은 SS 장군이다. 왼쪽에서 두번째가 슈코르체니다.[2] 읽는 방법은 오토 스코르체니가 더 독일식에 가깝다. sp st와 달리 sk는 슈크라 발음하지 않는다. 다만 흔히들 슈코르체니라 알려져있으니 이하는 그렇게 기술한다.[3] 'Skorzeny'라는 표기에서 알 수 있듯이 폴란드계 성씨이다.[4] 티토의 아지트를 밀고한 배신자는 전후 체포되어 처형됐다.[5] 이들은 작전을 수행하면서 티토의 지휘소에 들어가서 티토의 체스로 체스를 두는 여유까지 보였으나 철수하면서 체스 세트는 분실했다. 곧 기지로 돌아온 티토는 되찾은 체스로 솔플레잉하는 모습을 촬영하여 자신이 습격을 받았어도 건재하다며 추축국들을 엿먹이는 선전에 써먹었다.[6] 1급 철십자 훈장과 기사 철십자 훈장의 중간 등급으로, 은장과 금장이 있다. 은장은 비전투 수훈에 수여되는 전쟁공로십자훈장 1급과 기사 등급 사이에 있는 것으로, 전투 수훈에는 금장이 수여된다. 독일 십자장은 철십자 훈장과 마찬가지로 바로 아래 등급 훈장인 1급 철십자 훈장을 수훈한 상태여야 받을 수 있으며, "임무에서 뛰어나고 용감한 행동을 반복"한 사람에게 수여한다고 하나 보통 기사 철십자 훈장을 주긴 애매한 공로를 세운 1급 철십자 훈장 수훈자에게 수여됐다. 당연히, 이를 건너뛰고 기사 철십자 훈장을 받은 이들에겐 기존 훈장보다 낮은 걸 주는 셈이 되다 보니 잘 안 수여됐다.[7] 기갑장비도 운용했는데 본래는 연합군 전차를 사용하려 했으나 - 구할 수가 없자 판터 전차에 철판을 덧대고 하얀별을 칠하여 M10 울버린, 일명 '''판버린'''으로 위장시켜 사용했다. [8] 대영제국의 위상은 인도 하나에서 나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인도와의 연결은 영국의 위신을 유지하는데 필수적이었는데, 이를 이어주는 주요 지점 두 곳이 지중해의 두 관문 지브롤터수에즈 운하이다. 물론 이 작전이 성공했더라도 일시적으로 운하를 차단할 뿐 곧 개통되었을 것이고, 희망봉을 우회하는 항로는 여전히 살아있기에 영국은 대영제국의 심장인 인도와의 연결이 끊기지는 않았을 것이다.[9] 다만 그와는 별개로 처칠은 진짜로 테헤란으로 가던 도중 죽을 뻔했다. 독일이 근처에 유보트 몇 척을 매복시켜두었는데, 이들 중 한 척이 과감하게 처칠이 승선한 전함 넬슨에 어뢰를 발사한 것. 하지만 어뢰는 모두 불발되었고 결국 처칠은 살아서 테헤란으로 갔다.[10] 이건 꽤나 신빙성이 있는데, 이유는 그를 체코 법정에 압송한다고 했기 때문이다.[11] GTA4 오리지널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Paper company를 이끄는 인물의 생김새가 이 사진의 슈코르체니와 상당히 흡사하다.[12] 이 결혼은 재혼이다. 슈코르체니는 안슐루스 이전, 20대 때 한번 결혼한 적이 있다.[13] 슈코르체니는 골초로 유명했다. 무솔리니 구출작전 포상으로도 금박의 국장과 히틀러의 친필이 새겨진 담배갑을 받았으며 전후 1945년~1975년 사진들을 보면 담배를 피우지 않는 사진이 매우 드물다.[14] 독극물에 열광한 탈륨살인마 그레이엄 영이나 무기상을 천직으로 여긴 로드 오브 워의 유리 올로프 같이 자신이 파멸할 수 있는 위험에도 전공 분야에 탐닉하는 부류[15] 무려 '''1950년'''에 '''프랑스어판'''을 내기도 했다![16] 저자의 성향을 너무 강하게 드러낸 부분이라거나, 명백한 역사적 오류이거나.[17] 디를레방어는 상급대령까지 진급했고, 이 사람은 중령까지 진급했다.[18] 최종 계급이 상급집단지도자(독일 국방군의 대장, 영국군, 미군의 중장과 동 계급이다.)[19] NATO 관계자 행세라는 이야기도 있다.[20] 애당초 정말 겁을 먹었으면 저렇게 대놓고 다니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떻게든 변장을 하고 숨어지내기만 했을게 뻔하니.[21] 아이올루스 평행계. 현지연도 1941년으로 왕정제의 유럽 강대국들이 세계의 패권을 거의 쥔 상태.[22] 대체역사소설계의 거장으로 인정받는 미국소설가이다. 국내에는 비잔티움의 첩자, 가지 않은 길, 최후의 신조가 번역출판돼 있다.[23] 사실 나치의 스파이로 클라이브 크로스라는 이름은 미군 군번줄에 적힌 클라이브 크로스라는 이름을 도용해 그의 전우(?)인 제럴드 윌킨스 대위와 함께 결성한 나치 도살 특수부대(노르망디 상륙작전 패배 이후 결성되었다.) 스콜피온 부대를 로마에서 괴멸시켰다. 상처만 없다 뿐이지 그의 악행을 보면 가히 울펜슈타인 리부트 시리즈판 슈코르체니인 셈.[24] 영어가 유창한 독일군으로 편성된 기갑여단을 연합군 차량으로 위장해 진격시키는 작전.[25] 나치스의 베니토 무솔리니 구출 작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