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유(배우)
1. 소개
대한민국의 배우. 2000년대 중반 큰 인기를 얻었던 키즈그룹 컬러링 베이비 7공주의 멤버로 활동했다. 2000년대 중~후반 아역배우로서 최고의 커리어를 쌓은 배우로 평가받고 있다.[4][5]
2013년 여왕의 교실 출연을 시작으로 다시 활동을 재개하고 현재까지도 꾸준히 활동중이다. 단 아이돌학교 출연 이후로는 이전보다는 활동이 뜸한 상태다.
2. 활동
2.1. 아역배우
2003년 SBS 드라마 <남과 여- 속세를 떠납시다> 에 출연하며 배우로 연예계에 첫 데뷔했다. 같은 해 연말 7공주의 멤버로 활동하며 가수로 활동했던 2004~2005년에도 배우 활동은 계속해서 병행했다. 2004년 MBC 드라마 <12월의 열대야>, SBS <햇빛 쏟아지다> 등에 출연했고 MBC 베스트극장에는 이 시기 외에도 2000년대 후반까지 꾸준히 출연하였다. 2005년 방영된 SBS 드라마 <불량주부> 에서 첫 주연을 맡았고 그 해 SBS 연기대상에서 아역상을 수상했다.
2집 <소중한 사랑> 을 끝으로 7공주에서 탈퇴한 이후에는 배우 활동에만 주력했다. 7공주 탈퇴 후인 2006년 출연한 SBS 수목시리즈 불량가족은 이영유가 인기 아역스타로 발돋움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영유는 이 작품에서 사고로 가족을 잃고 실어증에 걸렸으나 유사가족의 사랑으로 다시 이전의 기억과 말을 회복한 소녀 백나림 역을 맡아 인상 깊은 연기를 보여주며 호평을 받았다. 같은 드라마에 출연했던 성인 연기자들이 "'''이영유는 천재"''' 라고 극찬할 정도로 평이 좋았다.[6]
불량가족 출연 이후 인기 아역스타가 된 이영유는 이 후 2000년대 후반까지 아역배우로서 꽤 독보적인 위치를 구축하며 왕성한 활동을 보였다. 2007년 영화 허브에서 영란 역으로 출연하며 데뷔 이래 첫 스크린 데뷔를 했고, MBC 드라마 <돌아온 뚝배기> 에서는 불량가족 이후 2년만에 드라마에 복귀했고, 밤이면 밤마다에서는 어린 허초희 역을 맡으며 인상 깊은 연기를 보여줬다. 이 후 2010년까지 여러 드라마에서 아역으로 꾸준히 출연했고, 각종 광고나 CF 등에서도 자주 얼굴을 비췄다.
2005년에는 MBC 창작동요제 단독 MC를 맡기도 했고, 2006년에는 <뽀뽀뽀> 에서 최초의 키즈 MC로 활동했었다.
2.2. 가수
이영유는 커리어 대부분을 배우로 활동했지만 이영유가 처음 대중의 주목을 받게 된 건 가수로서였다.
2003년 SBS 드라마로 첫 데뷔하고 몇 개월 뒤 이영유는 컬러링 베이비 7공주의 막내로 합류하여 가수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당시 나이는 '''만 5세'''로, 이는 역대 최연소 걸그룹 멤버 기록이었다. 2021년 현재까지도 이 기록이 깨지지 않는 거 보면 왠만하면 깨질 일이 없을 듯. 데뷔 초 7공주는 컬러링 회사에 소속된 키즈그룹으로서 핸드폰 컬러링이나 싸이월드 미니홈피 배경음악 등을 발매했는데 이게 꽤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결국 2004년 말 정식 음반 발매와 데뷔로 이어지게 되었다.
2004년 말 첫 정규앨범을 발매한 7공주는 사랑의 인사를 샘플링한 <Love song> 으로 큰 인기를 얻게 되었다. 비록 연령 탓에 음악방송 출연은 불가능했지만 각종 행사나 나이 제한이 널널한 케이블 방송에 자주 초청되어 활동했고 특히 유아층과 초등학생들에게 7공주의 인기는 절대적이었다. 이영유는 이 당시 컬러링 음악에서 귀여운 음색을 선보이며 대중들에게 큰 주목을 받게 되었고 기존의 배우 활동 병행까지 겹쳐서 그룹 내에서 인지도가 가장 높았다. 정식 데뷔 이후 발매한 히트곡 러브송에서는 오인영을 제외하고 유일하게 개인 파트가 있을 정도로 소속사가 이영유를 엄청나게 푸쉬하며 그룹의 인지도를 높였다. 7공주는 이 후 중국, 북한에서도 공연했다.
다음 해인 2005년 12월 발매된 정규 2집 <소중한 사람> 도 히트를 기록했지만 이영유는 2집 앨범을 끝으로 7공주에서 탈퇴해 배우 활동에만 집중하게 된다. 그도 그럴것이 당시 행사 초청 1순위 그룹이었던 7공주 활동과 며칠씩 촬영해야 하는 배우 활동을 병행하기 상당히 힘들었기 때문. 7공주는 이영유가 떠난 이후에도 어느 정도 건제한 인기를 자랑했으나 2007년 이후 핵심멤버인 오인영의 탈퇴와 멤버의 잦은 교체로 인해 결국 활동을 중단하게 되고, 해체에 이른다.
7공주 시절에도 종종 컬러링 가수로 방송에 출연해서 노래를 부르기도 했는데 그 중에서도 KBS <열려라 동요세상> 에 자주 출연했다.
2008년에는 7공주 탈퇴 3년만에 솔로 앨범 <Lovely> 를 발매했다. 7공주 시절만큼 히트를 치지는 못했으나 키즈카페나 어린이 프로그램에 종종 배경음악으로 깔렸다. 이 이후에는 더 이상 개인이 발매한 솔로앨범은 없고, 대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성인이 된 후 힙합의 민족 2나 아이돌학교 등 음악 프로그램에 얼굴을 비추고 있다.
2.3. 공백기와 화려한 복귀
2000년대 후반까지 아역배우로 승승장구하던 이영유는 2010년 MBC 시트콤 <볼수록 애교만점> 에 출연한 것을 마지막으로 3년여의 시간동안 공백기를 가졌다. 이영유가 공백기를 가지는 동안 아역배우 시장에는 김유정, 김소현, 김새론으로 대표되는 아역배우 트로이카 3인방과 진지희, 서신애 등이 인기를 얻기 시작하며 이영유의 자리를 위협했고 공백기가 길어지면서 전성기 시절보다 인기가 많이 하락했었다.
그러던 2013년 4월 이영유는 3년만에 MBC 여왕의 교실에서 고나리 역을 맡으며 드라마에 복귀하게 되는데, 이 작품에서 김새론, 비슷한 시기에 아역활동을 했던 김향기 등과 함께 출연하여 다시 큰 인기를 얻게 된다. 이 작품에서 보여준 광기와 분노 연기는 압권. 사실 이 작품은 고현정의 복귀작으로 초반 화제가 되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아역배우들의 연기에 시청자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이 작품에 출연할 당시 이영유의 나이는 만 15세(중3)로, 아역배우로 보기에는 애매한 나이였으나 좋은 연기력을 선보이며 기존까지 강했던 아역배우의 이미지를 완벽하게 탈피해버렸다. 이 작품 이후 이영유는 기존의 인기를 상당부분 회복했고 MBC 세바퀴에 출연하는 등 오랜만에 예능 나들이도 했다. 그 해 MBC 연기대상에서 2005년 <불량주부> 이후 8년만에 아역상을 수상했다.
이 후에도 종종 단막극 등에 얼굴을 비추었고 2016년에는 드라마 사랑이 오네요 에서 오랜만에 드라마 주연을 맡기도 했다. <사랑이 오네요> 이후에는 이영유가 힙합의 민족 2나 아이돌학교 등 음악 관련 활동에 집중하면서, 배우 활동은 현재 잠정 중단 상태이다. 무엇보다 이영유가 2020년 8월 라이브 방송을 통해 걸그룹 데뷔를 앞두고 있다고 밝힘으로써 이영유의 배우 활동은 2010년에 이어 다시 휴식기를 맞게 되었다.
2.4. 음악 활동
2016년 10월 힙합의 민족 2에 출연해서 오랜만에 대중 앞에 모습을 들어냈다. 이전에도 드라마 출연은 계속하고 있었지만 아무래도 여왕의 교실 이후 출연한 작품들은 그리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지 못했던지라... 여왕의 교실 때보다 '''폭풍성장'''한 모습으로 등장하여 관심을 받았다. 심지어 심사위원들도 처음에는 이영유를 못 알아볼 정도였다.
출연 사실은 나름대로 화제가 되었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이영유에게는 득보다 실이 더 큰 출연이 되버리고 말았다. 프로그램 자체가 힙합과는 무관한 다른 직종의 유명인들이 나와서 경연을 펼치는 컨셉이었다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이영유의 랩 실력은 수준 미달이었다. 또한 래퍼로서 랩보다는 춤에 집중하는 모습 때문에 비판을 받았고, 심사위원이었던 지투에게도 독설을 들었다. 1회 경연에서 박자를 실수하고 발음을 저는 등 치명적인 실수를 많이 해서 탈락 위기였으나 가능성이 어느 정도 있다는 딘딘의 선택을 받았다.
1:1 데스메치에서는 앤씨아와 맞붙게 되었는데[7] 연습 때는 딘딘이 난감해할 정도로 기본기가 부족했으나 피나는 연습을 했는지 실전 무대에서는 어느 정도 나아진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부족한 랩실력에 발목이 잡혀 결국 앤씨아에게 패했다. 결과적으로 힙합의 민족 출연으로 기존의 좋은 이미지를 많이 날려먹긴 했지만 오랜만에 드라마가 아닌 예능에 나왔으니 화제성을 불러일으키는데는 성공했다.[8]
다음 해인 2017년에는 아이돌학교에 출연했다. 모집 당시 소속사가 없는 사람만 받았기 때문에 2017년 기준으로 소속사가 없었다. 아이돌학교 출연진들 중에서는 연예계 경력이 긴 인물이고[9] 7공주 출신이라는 점 때문에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의외로 많은 분량을 받지 못했고 아이돌학교 자체가 여러 논란에 휩싸이며 큰 흥행을 하지 못해 프로그램을 통한 큰 수혜는 받지 못했다. 차라리 프로듀스 시리즈에 출연했더라면 7공주 출신이라는 타이틀로 좋은 인기를 받았을 수 있다는 아쉬움도 남았다.
2018년 3월 4일 슈가맨 2에 7공주 멤버들과 함께 출연했다. 2005년 탈퇴 이후 7공주로 출연하는 건 13년만이며, 전 세대에서 '''100표'''를 받았고 심지어 유재석이 눈물을 흘릴 정도로 꽤 인상깊은 회차로 남았다. <Love song> 뮤직비디오에서 머리에 썼던 왕관 장식을 하고 나왔다. 근황으로 동덕여대 입학을 앞두고 있다고 밝혔는데, 1년 늦게 들어간 걸로 봐서는 재수를 하거나 방송 활동으로 인해 입학을 미룬 것으로 보인다.
2020년 8월 인스타그램 라이브를 통해 4인조 걸그룹으로 데뷔를 앞두고 있다고 밝혔다.
3. 출연작
3.1. 드라마
3.2. 영화
3.3. 더빙
애니메이션 겨울연가 희진 역
3.4. 방송
- 2004년 KBS 이홍렬 박주미의 여유만만
- 2005년 MBC 제23회 MBC 창작동요제 - MC
- 2006년 MBC 뽀뽀뽀
- 2007년 MBC 뽀뽀뽀 - MC
- 2008년 MBC 무한도전 창작동요제 - 심사위원
- 2015년 KBS 청춘 익스프레스
- 2016년 JTBC 힙합의 민족2 - 게스트
- 2017년 엠넷 아이돌학교 - 참가자
- 2018년 JTBC 슈가맨 2 - 슈가맨
4. 음반 활동
'''Lovely'''라는 싱글 앨범으로, 2008년 12월 5일에 발표했다.
- 꼬마 사랑 (Feat. 마리오)
- 하얀 세상
5. 아이돌학교
- 2회 군무 연습 도중 "차라리 하위권 10명을 빼고 하는 게 이득일 것 같다"고 말했으나 사실은 본인이 하위권 10명에 속해 있었기 때문에 자책하는 의미에서 했던 이야기였다.
- 3, 4회에 걸쳐 방송된 데뷔능력고사에서 이영유가 속한 조가 1위를 하여 순위 상승권을 획득하였다. 다른 참가자들에게는 단순한 순위 변동이었지만, 이영유에게는 엄청난 이득이 되었다.
- 4회 방송 마지막에 하위권 8명을 퇴소자로 뽑을 때, 이영유는 원래 33위로 퇴소자가 되어야했지만, 바로 이 순위 상승권으로 인해 원래 32위였던 스노우 베이비를 33위로 밀어내고 32위로 상승하여 생존하게 되었다! 그야말로 4회 기준 최고의 행운아
- 5, 6회에 걸쳐 진행된 중간고사에서는 원래 댄스 중급반에 편성되었으나, 나머지 조원들의 퇴소로 퍼포먼스 상급A반에 편입되어
를 공연하였다. 좋은 무대를 선보였지만, <아드레날린> 조에 패하여 순위상승권을 놓쳤다. 점수를 자세히 보면 개인 평균 점수가 밝혀지지 않은 까탈레나 조를 제외하면 제일 낮은 점수를 받았는데, 아마 이영유의 점수가 아니었다면 조가 이겼을 것이다. 다만, 이것이 딱히 이영유의 잘못이라기보다, 원래 중급반이었던 이영유를 상급반에 편성시킨 것부터가 제작진의 무리수. 자세한 사항은 아이돌학교/5회의 해당 항목 참조.
그 결과 6회 최종순위 32위를 기록하며 퇴소하게 되었다.
- 아역배우로서의 이미지 탓인지 좀처럼 주목받질 못하고 있다. 분량도 그렇게 많지 않을 뿐더러 새로운 모습을 비출 기회도 적어 대부분의 시청자들에겐 아 쟤... 혹은 아 쟤가 걔임?정도의 반응만 끌어낼 뿐이다.
6. 수상
7. 기타
- 잠을 하도 많이 자서 아이돌학교 멤버들이 붙여준 별명이 신생아라고 한다.
- 7공주 활동 당시에는 얼굴마담 역할을 맡았던 듯하다. 나머지 멤버들이 너무 어리고 대부분 앞니가 빠져서 발음이 잘 안됐기 때문에 사실상 오인영 솔로곡이었던 러브송에서도 따로 파트를 분배해줬을 정도였다. 2절이 끝나고 간주가 흐른 뒤 나오는 파트가 그녀의 파트다.
- 7공주 활동 시기에 드라마 촬영 일정이 빡빡했다. 이 때문에 러브송 외의 뮤직비디오에는 이영유의 모습을 찾을 수 없다.
- 일본에서 태어났지만 어릴 때 한국으로 귀국해서 자랐기 때문에 일본어는 못한다. 또한 영어도 크게 잘하지는 못하는 듯하다. 힙합의 민족 1라운드에서 예지의 함부로 해줘를 불렀는데, 영어 단어들을 너무 한국식으로 발음해서 딘딘이 놀리기도 했다.
- 인스타그램 라이브 방송을 하면서 팬들과 많은 소통을 한다.
[1] 엄밀히 말하면 어머니가 이씨 남자와 재혼한 것이 아니다. 이영유의 주민등록증에는 당연히 본명인 전영유라고 적혀있다. 동생들도 같은 전씨 성을 가지고 있다.[2] 일본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속인주의 시민권 제도를 운영하기 때문에 이영유의 국적은 그냥 대한민국이다.[3] 18학번 / 재수[4] 아역배우 트로이카라고 불리는 김유정, 김소현, 김새론은 이영유보다 후발주자이다. 또한 이 3명은 라이벌 체제를 구축하며 서로 경쟁한 반면, 2000년대 중반의 이영유는 그 나이 또래 아역배우 중 경쟁자가 거의 없을 정도로 어느 정도 독보적인 위치를 자랑했었다.[5] 이 시기 이영유의 인기는 만 9세의 나이에 솔로 앨범을 발매하고 당시 MBC 연예대상을 수상하고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무한도전의 프로젝트 창작가요제에서 심사위원으로 출연한 것으로 증명될 수 있다.[6] 심지어 성인들도 어려워하는 에드립 연기도 꽤 잘 소화해서 감독, 스탭들도 이영유의 재능을 높이 평가했다고 한다.[7] 참고로 앤씨아가 이영유보다 2살 많은데 연예계 경력은 이영유가 정확히 10년 선배이다.[8] 종종 자신의 친구들이 "랩 잘 봤다" 면서 칭찬을 해줬다고 한다.[9] 심사위원이었던 스테파니와 MC 김희철보다도 데뷔 년도가 빠르다. 심지어 김희철과는 아역 시절 불량가족에 함께 출연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