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원리
1. 개요
호주의 이론물리학자 브랜든 카터가 1973년 소개한 명제로, 인본 원리, 또는 인간 중심 원리라고도 한다.[1] 인본주의와는 거의 관계가 없으니 구분할 것.
약한 인류 원리(Weak Anthropic Principle/WAP)와 강한 인류 원리(Strong Anthropic Principle/SAP)로 나뉜다. 약한 인류 원리는 대략 "지적 생명체가 존재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춘 우주에서만 그것을 관측할 지적 생명체가 탄생할 수 있으므로, 관측되는 우주는 반드시 지적 생명체가 탄생할 만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라는 명제이며, 강한 인류 원리는 좀 더 나아가 "관측되지 않고 멸망하는 우주는 의미가 없으므로, 그런 의미에서는 지적생명체가 탄생할 조건을 갖춘 우주만이 의미있는 우주이다."라는 주장을 기반으로 한다. 아직 이해가 가지 않는다면 밑의 상세 부분 참조.[2][3]
물리학자들이 미세 조정된 우주나 희귀한 지구 가설에 대응해 많이 써먹는 방식이므로 과학 이론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약한 인류 원리는 항등적인 명제, 즉 truism이고 강한 인류 원리는 truism은 아니지만 과학적으로 검증할 방법이 (현재로서는) 없으므로 과학 이론이라고 말할 수 없다. 오히려 철학이나 단순한 의견에 가깝다.[4] 다만 이 원리를 지적설계를 옹호하는 데 사용하는 경우는 있고, 이 경우 유사과학에 가까운 형태를 띤다.
2. 등장 배경
드넓은 우주에서 대부분의 환경이 인간에게 가혹[5] 한데 반하여, 지구의 조건이 너무나 인간에게 호의적이고 지구는 그 존재만으로 마치 기적처럼 느껴진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인류원리가 등장했다. 이 원리에 따르면 "우주가 이렇게 미세조정되었고 지구도 이렇게 적절한 환경에 존재해서 인류가 태어나게 되었다니, 우리는 행운아야!"라고 주장하는 것은 일종의 선택편향(selection bias)이라고 할 수 있다. 인류원리는 표본의 범위를 존재할 수 있는 우주 전체로 잡아야하는 게 아니라 지적 생명체가 존재할 수 있는 우주로 한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2.1. 미세 조정된 우주(Fine-tuned universe)
이 미세 조정된 우주를 믿는 사람들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우주를 이루고 있는 기본적인 물질과 천체 구조들, 그리고 더 나아가 생명체들은, 우주의 기초적인 상수[6] 들이 아주 좁은 범위에 있어야만 존재할 수 있다'
주된 논지는 다음과 같다.
- 최초의 우주에서 기본 입자들 사이의 네 가지 힘(중력, 전자기력, 강력, 약력)의 비율이 조금만 달랐더라면(예컨대 강력이 2%만 더 셌더라면), 안정적인 원자들은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고 따라서 지적인 생명체는 커녕 안정적인 천체 구조도 등장하지 못했을 것이다.
- 현재 우주의 밀도[7] 는 정확하게 '임계밀도'라 불리는 값에 근접해 있는데, 만약 우주 탄생 초기에 이 밀도가 조금만 더 컸더라면 우주는 지적 생명체가 탄생할 틈도 없이 수축하여 빅 크런치로 멸망했을 것이고, 조금만 더 작았더라면 안정적인 천체 구조가 생겨날 틈도 없이 빨리 팽창하여 빅 프리즈로 멸망했을 것이다. [8]
2.2. 희귀한 지구 가설(Rare-Earth hypothesis)
2000년에 《Rare Earth: Why Complex Life Is Uncommon in the Universe?》라는 책이 출간되면서 본격적으로 지명도를 얻게 된 가설. 영문 위키피디아의 해당 문서에서는 대략 다음과 같은 주장들을 희귀한 지구 가설의 특징으로 들고 있다.
- 지구는 적절한 은하계의 적절한 위치에 있다. 은하 중심부에는 초거대블랙홀이 있을 뿐만 아니라 별의 밀도가 높아 초신성 폭발 또는 블랙홀의 감마선 폭발에 끔살당할 확률이 높다. 반대로 은하 외곽 쪽은 무거운 원소들의 밀도가 더 낮기 때문에 복잡한 분자를 구성하기 힘들다. 특히 철보다 더 무거운 원소들은 초신성 폭발을 통해서만 생성되므로, 항성의 생성-소멸이 적은 구역은 해당 원소들의 비율이 적을 수밖에 없다.
- 지구는 적절한 종류의 항성 주위를 적절한 거리에서 돌고 있다. 태양의 질량이 너무 컸다면 단백질을 파괴하는 자외선이 문제가 되었을 것이고, 별의 진화가 너무 빨라져 지구 상에서 진화를 통해 인간이 탄생하기까지의 기간인 40억 년의 시간을 벌기 힘들었을 것이다. 반대로 질량이 너무 작았다면 잦은 플레어 및 너무 좁은 골디락스 존, 그리고 조석 고정으로 인해 생명 탄생에 지장이 있었을 것이다. 또한 태양과 유사한 항성들 가운데서도 강력한 플레어를 내뿜는 별들이 간혹 있으므로 항성이 태양과 비슷하다고 해서 모두 생명 탄생에 적합한건 아니다.
- 지구와 함께 태양계를 구성하는 다른 행성들이 너무나 적절하다. 근처의 수성, 금성, 화성은 작아서 지구의 궤도에 악영향을 주지 않으며, 태양에 끌려서 안쪽까지 들어갔다 나오는 소행성이나 혜성의 궤도를 자주 비틀지 않는다. 반대로 바깥쪽의 행성들, 특히 목성은 큰 덩치와 중력으로 외부에서 오는 위험물질(혜성 따위)들을 빨아들여서 내행성들을 보호하는 방파제 역할을 한다. 목성 그 자체로 소행성을 빨아들일 뿐 아니라 거대한 중력으로 엄청난 영역의 라그랑주 포인트를 만들어내어 소행성을 붙잡아 놓는다. 쉽게 말해 목성방향에서 오는 소행성 뿐만 아니라 태양 반대편에서 오는 소행성도 모조리 중력에 묶어 놓는다.
- 지구의 궤도는 안정적이다. 약간만이라도 더 타원궤도였다면 연간 기온차이가 수십 도에 이르렀을 것이다. 가까운 예를 들면 화성.
- 지구는 적절한 사이즈의 적절한 유형의 행성이다. 목성형 가스 행성에서는 그것이 가스로 구성되어 있는 만큼 생명체를 기대하기가 어렵다. 지구형 암석 행성도 작은 행성은 내부가 더 빨리 식어버려서 맨틀의 대류가 일어나지 않으며 따라서 자기장이 없어지고 대기가 항성풍에 날아가 버린다.(=화성) 지구보다 더 큰 지구형 행성의 경우는 태양계에 그 예가 없어서 쉬이 결론지을 수는 없지만, 뭐 딱히 더 나아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추측 중. 예를 들면 더 큰 중력 때문에 행성이 형성되는 단계에서 무거운 원소들이 내핵으로 가라앉는 비율이 더 높아서 지각에 금속의 비율이 낮아진다든가, 자기장이 너무 강력해서 생명의 탄생/진화에 악영향을 미친다든가, 지표면의 고저차가 적어서 바다 행성이 되어 버린다든가[9] , 높은 중력 때문에 행성의 역사 초기에 소행성 충돌이 훨씬 더 빈번해서 생명이 진화하는 걸 수시로 방해한다든가
- 지구 상의 물의 총량과 지표면의 고저차이가 적절하여 바다와 육지가 적절한 비율로 형성되었다. 특히 바다는 행성의 기온을 적절하게 유지하는 데 있어서 매우 큰 역할을 한다. 바다의 면적이 적으면 그만큼 행성의 기후 변화가 극심해서 생명체가 살 수 있는 공간이 한정되고, 그만큼 진화의 기회도 적었을 것이다. 헌데 반대로 바다가 너무 많았다면 육상생물이 진화할 기회가 너무 적었을 것이다. 물이 더 많거나 지표면이 더 평평했었다면 표면이 전부 바다로 뒤덮힌 바다행성이 됐을 것이다. 돌고래 같은 고도의 지능을 가진 생명체가 나타났을 수도 있지만, 불, 전기를 사용하고 천체를 관측하며 달에도 사람을 보낸 인류문명 같은 유형의 문명을 이루었을 거라고 보기는 어렵다.
- 지구의 판 변동이 복잡한 생물들을 만들어 내기에 기여하였다.
- 지구의 위성인 달의 크기가 너무나도 적절하다. 큰 위성은 큰 조석간만의 차를 초래하며, 이것은 다시 생명 탄생의 후보지 중 하나로 일컬어지는 원시 지구의 바닷가 거품 웅덩이(원시수프)들을 많이 만들어냈을 것이다.
- 지구의 역사 속에서 진화가 적절한 시기와 적절한 방식으로 나타났다.
- 은하 속 생명체 거주가능 영역에 존재하는 항성의 비율
- 그 항성들 중에서 행성들을 거느리고 있는 비율
- 그 행성들 중에서 가스형 행성이 아닌 행성의 비율
- 지구형 행성들 중에서 미생물 수준 이상의 생명이 탄생한 행성의 비율
- 그 행성들 중에서 복잡한 생명이 탄생한 행성의 비율
- 그 행성들의 수명 중 다세포 생물이 살아갈 만한 기간이 차지하는 비율
- 그런 조건을 만족하는 행성들 중에서 거대한 위성을 갖고 있는 행성의 비율
- 그 행성들 중에서 행성계 속에 거대한 가스 행성을 지니고 있는 행성의 비율
- 그 행성들 중에서 생물의 대량 절멸을 겪지 않은 행성의 비율
딱 보기에도 알겠지만 희귀한 지구 가설을 거꾸로 뒤집어 보면 "그러니까 외계인은 없을 거야 아마"라는 결론도 나온다. 실제로 희귀한 지구 가설은 외계인 떡밥을 다룰 때 종종 등장하며, 종종 미세 조정된 우주 논증을 거꾸로 뒤집는 듯한 방식으로 쓰이기도 한다. 즉, 미세 조정된 우주는 (또 다른 외계인이라 할 수 있는) 인류에게 너무나도 호의적인 우주를 그린다면, 희귀한 지구 가설은 고등 생명체를 잉태하기에는 너무나 가혹하고 적대적인 우주를 그리고 있는 셈. 현재까지는 실제적으로 외계인이 나타난 증거가 없는 현실세계에서 거의 진실에 가까운 주장이기도 하다.
한편 물리학자 S. 웹은 자신의 저서 《모두 어디 있지?》에서 페르미 역설을 소개함과 함께 외계인 존재 떡밥을 다루면서 50가지의 예상 응답을 제시했는데 어지간한 위키러들의 "외계인은 존재할까?" 에 대한 예상 응답도 대부분 다 들어있다. 희귀한 지구 가설의 주축을 이루는 주장들을 무려 19가지로 세밀하게 분류하여 하나하나 자세하게 논의했다. 그는 여기에서 '''1)''' "우주는 무한히 넓다. 우주 어딘가에 충분한 기술력을 지닌 지적 생명체가 없을 리는 없다." 와 '''2)''' "그러나 우주는 소위 '거대한 침묵' 을 지키고 있다. 그들이 존재한다면, 우주는 왜 조용한가? 그들은 모두 어디 있는가?" 의 상반되는 현실 사이에서 결과적으로는 희귀한 지구 가설을 잠정적으로 선택하였다. 그는 에라토스테네스의 체의 형식을 빌어서 자신의 19가지의 제약조건들을 일일이 검사한 후 '''"역시 인류는 외톨이였다"''' 고 결론내렸다. 한편 그는 더 나아가서 "지구 같은 행성이 더 있을지도 모른다" 는 주장에 대해서 심지어 "그런 기대 자체가 교묘히 포장된 거만함, 내지는 잘난체와 겸손함을 동시에 달성하려는 것이 아닌가?" 라고 도발하기까지 하였다.
그 외에, 생물학계에서는[10] 유신론적 진화론자이자 캄브리아기 대폭발의 권위자인 S.C. 모리스가 희귀한 지구 가설을 지지하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해당 가설을 소개하면서 긍정적으로 가능성을 열어두는 느낌에 가깝지만, 종종 희귀한 지구 가설의 지지자로서 소개되고 있다.
이에 대한 비판은 거꾸로 외계 행성들의 '''"평범성의 원리"''' 에 초점을 맞춘다. 연구에 따르면 이미 수학적으로는 수십억 개는 되는 지구가 존재할 수 있으며 '우리 은하에만' 수십억 개가 존재할수 있다는 내용이다. 참고로 관측 가능한 범위 내에서 추산되는 은하의 숫자만 수천억 개다. 은하당 평균 수십억 개의 지구형 행성이 있다고 감안할 때, 수십억 x 수천억 개만 해도 경우의 숫자는 아득하게 늘어간다. 우리 은하가 비교적 큰 은하라는 것을 감안한다 할지라도, 이 숫자는 관측 가능한 범위 내의 우주에 있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경우의 수는 '''고작''' 수십억 개 불과하지 않다. 문명의 수도 천 단위에는 육박할 것이라는 예측이 있다. 이 희귀한 지구가설에 대한 비판의 핵심이 되는 논리는 당신들 생각보다는 흔하다는 것이다.
또한 외계인 관련 떡밥에 얽혀 있는 보다 전통적인 반박으로, 우주의 무한히 넓은 성질을 강조하는 경우도 있다. 우주의 무한히 넓은 성질은 희귀한 지구 가설에 대한 가장 확실하고 정면적인 반박이라 말할 수 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인류는 관측 가능한 우주 밖에 관측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 밖에 어떤 문명이 있든, 어떤 초 우주적 존재가 있든 인류는 그것을 알 수 없다. 특히, 상대도 인류처럼 상대성 이론(정확히 말하자면 광속)을 극복하지 못했을 경우 이 경향은 더욱 심해진다. 사실 광속을 어느 정도 극복했어도 문제가 사라지는 것은 아닌데, 올베르스의 역설을 참조하면 더 이해가 쉬울 것이다.
또한 인류의 생물학적 지식이 지구에서 발견된 생물에게서만 얻어졌다는 것 역시 반증이 될 수 있다. 앞서 언급된 희귀한 지구 가설에 설득력을 주기 위한 확률은 다분히 지구 중심적이다. 인류 과학사에서 심해 열수구 생물, 혐기성 생물 등이 발견되었던 것과 그것들이 가져온 충격을 생각해 보면 된다. 이 생물들은 인간이 이전에 생각하던 '생물이 존재할 수 있는 환경'이라는 기준을 뒤집어버렸다. 당장 '''곰벌레'''를 생각해보자. 희귀한 지구 가설에선 가스형 행성을 지워버렸지만, 가스형 행성의 대기나 그 주변의 위성에서 살아가는 생명체가 없다는 보장을 할 수는 없다. 즉, 희귀한 지구 가설에서는 어디까지나 지구의 환경이 아니면 생물체가 탄생하고 생존할 수 없다는 전제가 깔려있으나, 그것은 역으로 지구에서 탄생하고 생존한 생물들이기에 그런 것이라는 반론이 가능하다. 타 행성에서는 그 행성의 환경에 알맞은 생물이 탄생할 수 있다는 것.
더불어, '''인류의 존재 자체'''가 이미 외계 생명에 대한 하나의 긍정적인 신호로 간주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도 많다. 이는 '한 번이 어렵지 두 번은 쉽다.'라는 생각의 연장선에 있다. 하지만 도박사의 오류를 생각해 보면 인류의 존재가 외계인의 존재를 긍정할 증거로 사용되기에는 다분히 불충분하다.
이것은 별도로 "동물원 가설"과도 묘하게 연결되는데, 인류의 존재 자체는 외계 생명의 존재를 의미하긴 하는데, 외계 생명이 인류 몰래 지구를 하나의 동물원 비슷하게 보호구역으로 지정해서 인류가 멸망하지 않고 발전해 올 수 있었다는 식의 가설이다. 그런데 동물원 가설은 본질적으로 통 속의 뇌 수준의 가설이라는 점은 감안하자.
또한 아이작 아시모프는 희귀한 지구 가설에 대한 반박하는 듯한 내용을 나이트폴이라는 소설의 인물의 대사로 몇 문장 집어넣었다. 해당 소설의 배경은 항성이 7개인 행성이라서 낮이 유지되는데, "항성이 1개뿐인 행성이 있다면, 항성의 빛이 도달하지 못하는 시기가 있으니까, 생명체가 생길 수가 없지 않냐"라는 식의 대사가 등장인물의 입에서 나온다. 위의 고세균들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불가능하다 생각하는 환경에서도 생명의 분화가 가능할 수 있다는 것. 이는 반증가능성 등의 개념과도 관련이 있다. 희귀한 지구 가설이건 그것에 대한 반론이건, 현재 인류의 지식과 기술력, 관측 수준에서는 저 가설들이 옳은지 아닌지에 대한 답을 내기는 힘들다.
3. 상세
3.1. 약한 인류 원리(Weak Anthropic Principle)
우주가 관측되려면 반드시 그 안에 지적이고 의식을 가진 생명체가 있어야 하며, 따라서 우리 우주가 지적 생명체가 탄생할 수 있게끔 '미세조정'된 것처럼 보인다는 것은 그리 놀랍지 않다는 원리이다. 즉, 지적인 생명체가 발달할 만큼 '좋은' 조건이 주어지지 않은 우주는 관측되지도 않고 멸망했을 것이고, 따라서 관측되는 우주는 필연적으로 지적 생명체를 가져야 한다는 뜻.
비유를 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당첨번호가 정해진 상태로 발급되는 복권들이 있는데, 이 복권들을 모종의 방법으로 스캔해서 개봉하지도 않고 그 결과를 알 수 있는 기계가 있다. 이 기계는 수백만 장의 복권들을 읽은 뒤에, 단 한 장의 당첨 복권만을 통과시키고 나머지는 버린다. A와 B는 기계를 통과한 유일한 복권을 뜯어서 확인해보고, 당첨번호가 적혀있는 것을 확인한다. 그리고 A는 자신이 엄청난 행운아이며 복권에 당첨된 것은 신이 내린 축복이라고 확신하고, B는 기계를 분해해서 그 작동 원리를 파헤치려고 한다. 이 상황에서 당신은 누가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가?
복권들은 우주, 당첨은 지적 생명체의 존재 여부, 당첨번호는 지적 생명체가 존재할 수 있게 하는 우주의 기초 상수, 기계는 우주의 작동 원리라고 할 수 있다.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복권이 기계를 통과했으니 당연히 거기에 당첨번호가 적혀있을 것이고, 따라서 A는 절대 행운아가 아니라 필연적으로 당첨번호를 가진 것이라고 판단내릴 것이다.
생각해보면 수백만 장의 복권 중에 한 장만 당첨이라고 하더라도 있어도 기계는 그 복권을 통과시킬 것이고, A와 B는 당첨 복권을 갖게 된다. 마찬가지로 다중우주론의 여러 우주 중에서 단 하나의 우주만이라도 지적 생명체가 살 조건을 갖추고 있다면, 그 우주에서 시간이 지난 후에 지적 생명체가 탄생할 것이다. 이 생명체가 자신의 우주에서 당첨번호를 확인하게 되는 것이 필연적이라는 것이 바로 약한 인류 원리다.
이는 어떠한 과학적인 관찰 없이 논리로만 전개된 명제이기 때문에 반증 불가능(unfalsifiable)하며, 따라서 과학 이론이 아니다. 그저 하나의 항등적인 명제일 뿐이지만, 우리 우주가 왜 하필 이렇게 미세조정되었는지의 질문에 매력적으로 대답해주기 때문에 여러 물리학자들에게서 각광받는다.
3.2. 강한 인류 원리(Strong Anthropic Principle)
Strong, 강한이라는 뜻 그대로 인류 원리의 기본 개념을 강하게 주장하는 것으로 우주는 어느 정도를 넘어서면 우주를 관측하는 관측자의 등장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고 하는 것이다. 그 말은, 우주가 우리를 위해 탄생해 우리의 탄생을 예고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우주의 모든 법칙들이 우리에게 유리하게 설계되었다는 것.
이 원리를 계속 파고들다 보면 결국에는 지적 설계자로 이어지기 때문에 많은 비판과 함께 사라지고 있다. 그 예로 이 개념에 쏟아진 비판 중의 하나를 소개한자면, "이런 우호적인 환경을 만들 때에 왜 하필 우주의 아주 작은 부분인 조그만 행성, 그리고 그 중에서도 조그마한 영역에서만 일부 생물에게 우호적인 영역을 만들었는가"이다.
4. 비판
"약한 인류 원리는 단순히 동어반복(tautology)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통해 우리가 아직 모르는 어떠한 것도 설명할 수도 없고 예측할 수도 없다. 강한 인류 원리는, 그저 불필요한 추측일 뿐이다.
In its weak version, the anthropic principle is a mere tautology, which does not allow us to explain anything or to predict anything that we did not already know. In its strong version, it is a gratuitous specul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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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어만, 에르넌 맥멀린, 헤수스 모스테린
- "인류" 원리라는 이름 때문에 비판받기도 한다. 내용 자체는 지적 생명체가 인류이건 아니건 아무런 상관이 없는데, "인류"라는 이름을 붙인다는 건 꽤나 인간 중심주의적으로 들린다는 것. 자칫 인간 원리가 마치 "우주는 인간을 위해서 존재합니다!"라는 인간 중심주의적인 사상인 것처럼 오해할 수 있다. 물론 위키피디아의 Anthropic principle 항목만 참고해보면 알겠지만 전혀 그런 내용이 아니다. 이름과 실제가 다른 것의 예시 중 하나가 될 수도. 여기서 인류라 함은 관찰자로서 지적생명체의 존재를 일반적으로 일컫는 것이라 생각하자.
4.1. 약한 인류 원리에 대한 비판
- 우주나 지구의 희귀성에 관한 질문들에 대해 과학적인 대답을 내놓지도 않으면서 오용된다는 문제점이 있다. 즉 적절한 대답을 찾지 못할 때마다 툭툭 튀어나오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적 명제라는 것.
4.2. 강한 인류 원리에 대한 비판
도킨스의 반박과는 별개로, 우주상수들이 누군가에 의해 조정되었다고 생각할 이유가 없다. 우주상수들이 정밀하게 조정될 확률이 낮다 하더라도 시행횟수가 매우 많다면 우연히 조정된 우주가 탄생할 수 있다.물웅덩이가 아침에 깨어나서 이렇게 생각하는 것을 상상해 보자. '참 내게 맞는 재밌는 세상, 내게 맞는 재밌는 구멍이야. 아주 편안하게 내게 딱 맞지 않아? 사실, 내게 딱 들어맞게 존재하는 바닥의 이 구멍은 내가 여기 있도록 만들어져 있는 게 틀림없어!' 이윽고 태양이 하늘에 떠올라 공기가 뎁혀지면서 그 웅덩이가 점점 작아지지만, 그 웅덩이는 아직도 이 세상은 자신이 그 구멍에 고여 있도록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라는 생각을 놓지 못한다. 그 웅덩이는 자신이 사라지는 순간에야 깜짝 놀라게 될 것이다. 나는 이런 생각을 경계해야 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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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아직 우리 우주 바깥을 관측할 수 없으며 우리 우주 이외에 다른 우주가 있는지 없는지도 알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는 우주에 시초가 있다는 것을 알며 또한 우주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도 안다. 만약 우주가 만들어지고 소멸하는 일이 무한 번에 가까운 횟수로 일어난다면 우리 우주와 같이 정밀하게 조정된 상수를 갖는 우주가 생길 수도 있다. 조정자를 가정하지 않아도 우연에 의해 적당한 상수를 갖는 우주가 생길 수 있으니 조정자가 없다면 적당한 상수를 갖는 우주도 없다는 주장을 받아들일 이유가 없다.
우주의 생성과 소멸이 무한 번 반복되는지 어떻게 아는가? 당연히 알 수 없다. 포인트는 우주가 무한 번 생성되느냐 아니냐, 조정자가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다. 조정자가 있다는 주장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조정자를 상정하지 않았을 경우 불가능한 현상의 존재를 입증해야 한다. 즉, 적당한 상수를 가진 우주는 조정자가 있을 때에만 생성될 수 있으며 '''다른 가능성은 없다'''라는 것을 입증해야 우주상수를 근거로 조정자의 존재를 받아들일 수 있다. 이 주장을 반박하기 위해서는 다른 가능성이 있다는 것만 보여도 된다. 우주의 생성과 소멸이 무한 번 반복되었는지 알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다른 가능성이 있으므로 조정자의 주장을 받아들일 이유는 없다.
5. 관련 문서
[1] 그 외의 표현으로서, 영국의 수리물리학자이자 유신론적 진화론자인 존 폴킹혼 경은 자신의 저서에서 인류 원리를 언급하면서, 어쩌면 이것을 탄소원리로 바꾸어 불러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 인류원리, 인류학적 원리, 인간 중심 원리라는 표현도 있다.[2] 우주를 예로 들었지만, 지구가 되어도 상관없다.[3] '인류'를 '나'로 치환해서 존재론적인 비유를 들자면, "내가 태어날 세계만 내가 경험할 수 (혹은 살아갈 수) 있으므로, 경험할 수 있는 세계는 반드시 '''내'''가 태어날 수 있는 세계이다.", "'''내'''가 태어나서 경험하지 않을 세계는 나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으므로, '''내'''가 태어나서 살아가는 세계만이 의미있는 세계이다."[4] 물론 일반적으로는 변경지대의 과학으로 보고있다.[5] 지나치게 뜨겁거나, 차갑거나, 중력이 과하거나, 산소가 없거나, 방사선이 과하거나 등[6] 대부분 차원을 가지지 않는(dimensionless), 즉 어떤 단위를 쓰느냐에 상관없는 상수들을 말한다. 양성자와 전자의 질량비, 전자기력과 강력의 결합상수 등[7] 우주를 수축시키려는 물질과 우주를 팽창시키려는 암흑에너지의 밀도의 합[8] 예를 들면 빅뱅 이후 1나노초 이내에 우주의 밀도가 10-24배 정도만 컸어도 현재 우주는 빅 크런치를 맞이했을 것이다. 이 문제는 빅뱅 우주론에서 '평면성 문제'라고 불리는 것으로서 인플레이션 이론이 탄생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9] 육상생물들은 당연히 전멸이지만, 해양생물은 해안과 대륙붕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는 경우가 아니면 나름대로 살아갈 수도 있다.[10] 사실 오늘날의 외계인 떡밥에 대해서는 점차 생물학의 지분이 넓어지고 있는 추세이다. 즉, 생물학계의 의견은 갈수록 중요하게 취급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