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민(남배우)

 

''' 임성민의 주요 수상 이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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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
[image]
'''남우주연상'''
''' 제11회
(1990년) '''

''' 제12회
(1991년) '''

''' 제13회
(1992년) '''
안성기
(남부군)

'''임성민
(사의 찬미#s-4)
'''

문성근
(경마장 가는 길)


[image]
1956년 2월 25일 ~ 1995년 8월 20일
1. 개요
2. 관련 문서


1. 개요


대한민국배우로, 본명은 임관배다. 숭실고등학교 시절에는 육상선수로 활동했고, 건국대학교 체육학과를 다녔으나 중퇴 후 1977년 JTBC의 전신(前身)인 TBC의 18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했고, 1980년 언론통폐합 후 KBS로 배치돼 1982년 <TV 문학관> '바라암'에서 삭발을 한 채 주연으로 나와 처음 주목받았다.
1980~1990년대 미남 배우로 잘 알려졌으며, 잘 생긴 얼굴로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물론 용모만이 아니라 카리스마 있는 연기로도 평가를 받아 왔다. 1986~1987년 KBS 대하드라마 '노다지'에서 주인공 역할을 맡았으며, 반도패션의 전속 모델로도 활동했다.
1980년대 중후반 에로영화 의 간판급 배우로 주로 바람둥이 혹은 남창(지골로) 역할을 주로 맡았다. "달빛 멜로디"에 이은 두 번째 에로영화인 "탄드라의 불"에선 여주인공와의 베드신 때 부끄럼을 타서 자신의 주요부위(?)를 두손으로 가렸다는 순진하고 풋풋한 에피소드가 있다.
가장 대중적으로 알려진 영화로는 "색깔있는 남자"와 "무릎과 무릎사이"를 들 수 있다. 이후 에로영화는 1989년 "애란"[1]을 끝으로 이후엔 노출도가 없는 영화만 찍었다.
얼굴이 아주 멋지고 키까지 큰 데다 연기도 곧잘하는 배우라 월등한 비주얼로 많은 여심을 사로잡았다. 다만, 벗어서 유명해진(?) 배우라는 프레임만 씌우는 것도 부당한 게, 1986년 '장사의 꿈'으로 백상예술대상 남자신인연기상, 1991년 '사의 찬미#s-4'로 청룡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할 정도로 연기력이 있는 편이었다.
드라마에서도 한때는 선역보다 악역을 자주 맡아서 한동안은 비호감 인상이었다.[2] 그러나 당대 최고의 유행어 "잘났어 정말"을 탄생시킨 염현섭 연출, 고두심 주연의 드라마 '사랑의 굴레'에서 젠틀하고 유능한 데다 발군의 비주얼 "고실장" 역할을 맡아 고두심, 노주현, 김미숙 등 주연들과 스토리를 이끌어 가면서 급호감으로 대반전을 이루게 되었다. 여기서 극중 의부증 쩌는 고두심의 노골적인 추파를 받은 것은 물론이고 전국 아줌마들의 지지도 No.1으로 급상승 하며 이후 서브남주에서 메인남주로 격상되었다.[3] 1992년 <억새바람>을 시초로 MBC에서도 얼굴을 내밀었다.
그러나 1990년에 만성 간염을 앓게 되었고, 1993년에는 MBC 드라마 "폭풍의 계절" 출연 도중에 간질환으로 쓰러져 투병하기도 했다. 결국 1995년 5월 드라마 출연 도중 갑자기 쓰러져 투병하다가 간경화로 결국 8월 20일 저녁 서울 서초구 강남성모병원[4]에서 향년 39세를 일기로 사망하였으며, 사후 충청남도 예산군 선영에 묻혔다.
그런데 그는 1995년 당시 SBS 드라마 '고백', MBC 드라마 '사랑과 결혼'에 겹치기 출연을 하고 있었고, 김호선 감독과 김청 등과 함께 멕시코 올 로케로 찍고 있었던 영화 '애니깽'[5]도 촬영 중이었다..... 당시 간 이식이 필요하다고 언급했을 정도로 상태가 심각했다고 하였지만, 간 이식을 받지 못해 안타깝게 생을 마감했다. 그가 건강 악화로 하차하면서 '사랑과 결혼'은 손창민이 그의 대타로 출연하였으며 결국 이 드라마는 그의 유작이 되고 말았다. 당시 그가 전속모델로 활동하던 신원에벤에셀의 남성복 "모두스 비벤디"의 광고모델은 같은 드라마에 출연했던 정보석으로 모델이 교체되었다.
월간 영화잡지이던 스크린의 1986년 3월호 기사 중 "2000년대에 대한 미래는?" 이라는 기사의 인터뷰에서 "...난 중후하게 늙고 싶으며 ....외모보단 연기력으로 평가받고 싶다. 미래에 독자들이 컴퓨터 버튼 하나로 영화를 볼 시대가 올지 모르지만, 넓은 화면에서 영화를 보는 게 매력이다." 라는 말을 했다.
슬하에 1녀를 두고 있었는데, 1984년이혼했다. 은 임성민이 키우고 있었고, 전처는 미국에서 생활했었다.
그로부터 21년 뒤 큰 키와 귀공자 느낌의 잘 생긴 얼굴을 가진 비슷한 느낌 배우로 김성민이 있었는데, 공교롭게도 이름이 같은 그쪽도 43살에 요절하였다. 가톨릭대학교 성모병원에서 사망한 것도 같다.[6]

2. 관련 문서




[1] 박영규, 김구미자, 진희진 등과 함께 출연했다. 일제시대 독립투사로 나와 일본인 자매인 김구미자, 진희진과 정사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2] '푸른 해바라기'에선 절친의 여친을 탐하는 역할, '황금의 탑'에선 크게 도약해서 절친을 죽이고 약혼녀를 빼앗는 무자비한 역할을 맡았다. 두 드라마 모두 메인 남주인공은 홍요섭.[3] 당시 드라마 한편으로 떠서 아줌마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은 배우로는 '내일은 잊으리'의 박영규와 '엄마의 바다'에 나온 독고영재가 있었다.[4] 현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 같은 시기에 일어난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부상자들도 이 병원에서 수용되어 있었다.[5] 미완성 상태에서 대종상을 받아 논란이 된 그 작품 맞다. 1997년 12월에 지각 개봉했다.[6] 다만, 이쪽의 사인은 자살 기도로 인한 뇌손상. 사후에 장기 기증되었으며, 생전에 마약 혐의로 구속된 전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