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규(배우)

 


'''이름'''
박영규 (朴榮圭)
'''출생'''
1953년 10월 28일 (71세)
대전광역시 중구
'''신체'''
175cm[1], B형
'''학력'''
대전중앙중학교
충남기계공업고등학교
서울예술대학 연극과
'''본관'''
밀양 박씨
'''데뷔'''
1976년 영화 '걷지말고 뛰어라'
'''종교'''
무종교
'''특기'''
성악
'''소속사'''
크레빅엔터테인먼트
1. 개요
2. 생애
3. 출연 작품
3.1. 드라마
3.2. 영화
3.3. 예능
4. 평가
5. 여담
6.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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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아, 장인어른 진짜 왜 그러세요?"'''[2]

'''"힘없는 자의 용기만큼 공허한 것도 없지요. 세상을 바꾸고 싶으면 힘부터 기르세요. 고작 당신 정도가 떼를 쓴다고 바뀔 세상이었으면 난세라 부르지도 않았습니다."'''[3]

대한민국의 배우로, 찌질한 개그 캐릭터부터 중후한 사극 연기까지 매우 스펙트럼이 넓은 연기를 한다. 1989년에 앨범[4]을 낸 가수이기도 하며, 2016년에는 성악가들과 무대를 가진 적도 있을 만큼 가창력도 수준급이다.

2. 생애


1953년 충청남도 대전시에서 태어난 그는 중고등학교 때 수학여행도 가지 못했을 만큼 경제적으로 어려운 유년시절을 보냈다.
15살에 신문을 돌리다가 불독에게 물린 뒤 깊은 절망감에 빠져 있을 때 학교 담임선생의 “넌 훌륭해질 거라고 선생님은 믿는다.”란 말을 듣고 용기를 냈다고. 막연히 성악가가 되고 싶었지만 전혀 그 쪽으로 인연이 없었고, 형편이 어려워 충남기계공고를 가야 했다. 기름밥 먹는 생활과 맞지 않았던 그는 고교 졸업 후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다가 결국은 서울예전에 72학번으로 합격했다. 면접관이 바로 연출가 오태석[5]이었다.
1976년 포병으로 입대했고 제대 후인 1980년 본격적으로 대학로에서 극단 생활을 하게 된다. <공간사랑>이란 곳이었는데 대학 은사 오태석의 작품인 <1980년 5월>로 연기를 시작했다. 곧 오태석이 <극단 목화>를 창단하면서 창단 멤버에 이름을 올린다. 대학로 소극장에서 소품을 정리하는 역할로 시작해 연극 배우로 총 7년의 세월을 보냈다. 당시를 회상한 그는 회식 자리가 있으면 오태석의 가방을 맡아서 끝까지 자리를 지켰고, 겸사겸사 그 날 연기에 대해서나 연기 철학에 대해 많은 것을 배웠던 행복한 시절이었다고 말했다. 당시 이화여대 정문 옆 철길 근처에서 살고 있었다고. 그 때 룸메이트들이 현재 <극단 76단>을 이끌고 있는 기주봉, 기국서 형제였다.
그러나 극단 생활이 흔히 그러듯 배고픔에 시달렸고, 심지어 도중에 폐결핵까지 걸렸다. 29세(81년) 9월 그가 묘청 역을 맡았을 때 체중이 42kg까지 줄고 무대에서 기절도 했다고. 잘 먹어야 할 병에 그러지도 못해 사람 얼굴이 아닐 정도가 됐다. 대전 어머니까지 상경해 간호를 하느라 집도 역촌동으로 옮겼다. 병원비를 댈 수가 없어 아픈 몸에 직접 책 외판원에 나서야 했다. 극단은 2년의 투병 기간동안 쉬었지만 외판원으로 매상을 꽤 올려 복귀 직전엔 영업부장까지 맡았다. 보건소에서 약을 타다 직접 엉덩이에 주사도 놓고, 모친은 약탕원에서 몸에 좋다는 것들을 고아다 먹였다. 훗날 드라마 정도전에서 이인임을 연기했을 때 말년에 폐결핵에 걸리는 장면에서는 과거의 자신을 떠올리면서 연기했었다고 한다.
그리곤 묘청 역을 맡은 '자1112년'에서 만난 대학 후배와 1983년에 결혼했다. 폐결핵을 앓아 힘든 그를 간호까지 해가며 2년 열애 끝에 결국 결혼했다. 처가의 반대가 심했고 워낙 가진 것이 없어 자취방에 비닐 장롱하나 놓고 신접 살림을 시작했다. 그 해에 드디어 아들을 얻는다. 그가 말하길 처가 어른들이 월남하신 분들이었는데 마음을 풀지 않으셔서, 나중에 애를 안고 찾아갔는데도 문전박대를 당했다고 한다.
1983년 가정 생활로 건강을 조금씩 되찾으면서 연극 한만선(韓滿線)으로 복귀했고, 1985년 MBC 베스트 극장 '초록빛 모자'[6]서갑숙과 부부 역을 맡아 자연스러우면서도 힘있는 연기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래서 그가 나중에 인기를 얻고 나서도 서갑숙을 그의 진짜 부인으로 아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1986년 MBC 특채 탤런트로 선발되면서 연극판은 떠난다.
그러다 1988년 '내일은 잊으리'에서 야망에 불타는 애인에게 배신당한 김희애를 묵묵하게 지켜주는 따뜻한 이미지로 대히트를 쳤다. 당시 가수 김종찬과 더불어 주부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연예인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1989년에는 앨범 '카멜레온'을 발표, 하루 12개의 행사에 출연할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1989년 9월엔 MBC 수목 미니시리즈 <당신의 축배>에서 최진실과 로맨스 연기를 하는 기염을 토했다. 그런데 그 뒤로 후속작이 터지질 않아 약 8년 가까이 침체기를 겪었다.[7]
결국 1994년 연극판으로 돌아온다. 은사 오태석이 쓴 <불효자는 웁니다>라는 모노 드라마였다. 온전히 그의 연기력으로만 1인극을 끌고가는 거였는데, 극단 목화가 대학로 흥사단 빌딩 지하에 상설 극장을 마련하면서 그에게 기회가 생긴 것이다. 상설 극장 이름은 <충돌극장2>라는 이름이었다. 1997년에 폐관했다.
돈과 인기는 생겼지만 부부 관계의 위기를 겪었다. 1996년에 부인이 어린 아들을 데리고 미국으로 떠나 곧 이혼했고, 1997년 3년 연상의 디자이너 최경숙과 재혼했다. 그러자 그의 인생이 다시 한 번 전환기를 맞는다.
거의 관(棺) 속에 들어가 있었던 그를 다시 끄집어낸 작품이 바로 1998년 3월 SBS 시트콤 순풍 산부인과였다. 미달이 아빠 "박영규" 역할을 맡은 뒤로는 기존의 실장님 이미지에서, 얍삽하고 이기적이며 민폐를 잘 끼치면서도 밉지 않은 코믹 캐릭터로 변신하는데 성공했다. 특히 이불킥하는 연기가 일품. 심지어 순풍 산부인과에 출연중이던 1999년 9~11월 MBC 드라마 국희에서는 친구 민영재를 배신하는 것도 모자라 아예 암살까지 시키는 등의 온갖 악행을 벌이는 악역 송주태를 맡았는데, '''매주 월~화요일 밤 9시 25분에는 SBS에서 코믹한 사고뭉치 사위로 나오는걸 본 뒤 바로 9시 55분에 MBC로 채널을 돌리면 사악하고 냉혈한 악역으로 변신하는 박영규를 볼 수 있었다.''' 그래서 순풍 산부인과의 그 코믹한 모습만 알던 어린 시청자들이 국희에서의 악역을 보고 박영규의 연기력에 감탄했다는 썰이 있기도.....
사실 그동안 이미지 전환을 여러 번 시도했었다. 1995년작인 '옥이 이모'에서도 개그 연기를 했었는데[8], 옥이 이모에게 잘보이려고 노래방에서 팝송을 부르려다 영어 가사를 몰라, "징글벨 징글벨 징글징글벨~ 징글징글징글징글 징글징글징글징글 징글징글벨"이라고(살짝 촐싹맞았다.) 부르는 코믹씬이었다. 물론 진짜 박영규는 원래 팝송을 좋아해 옛날 가요 방송에서 올드 팝송을 유창하게 부른 적도 있고 89년 앨범에 팝송 마이웨이도 들어있다.
영화 역시 1999년 '주유소 습격사건'에서 찌질한 사장을 시작으로 2002년 '라이터를 켜라'에서 찌질한 국회의원 역을 맡았다.
2001년 두 번째 결혼도 끝이 났다. 암투병을 하던 아내가 '건강할 때도 아내 노릇을 제대로 못했는데 자신이 없다. 마음 편히 투병하고 싶다. 당신도 편하게 해주고 싶다'고 말하며 이혼을 선언했다.
아픔을 딛고 MBC, KBS, SBS 대작에 출연하면서 연기에 몰두했다. 2000년작 <신귀공자>에서 재벌집 막내 삼촌 역을 맡아 여주인공 최지우를 뒤에서 돕는 키다리 아저씨 이미지로 대호평을 받았다. 아울러 미달이 아빠 이미지로 똑바로 살아라 등 시트콤에 연이어 출연해 전성기를 이어갔다. 압권은 다모의 좌포청 포도대장 조세욱 역을 맡아 역모로 걸린 친구를 두고 고뇌하는 씬이었다. 당시 다모 폐인들에게 압권이었다 평가받았다. 그의 노래대로 카멜레온같은 변신이 성공을 거듭했다.
그런데 2004년 3월 미국에서 아들이 교통사고로 갑작스럽게 사망하고 만다. 대륙횡단 여행을 떠났다가 메릴랜드에서 사고를 당했는데, 오토바이 뒷자리에 타고 있었다고. 박영규는 충격을 이기지 못했다. 그렇지만 아들 사고 이전에 계약했던 '해신'은 마무리하고 떠났다. 설평 역으로 작중 최수종의 정신적 지주이자 아버지와 같은 존재로써 좋은 연기를 보여줬다. 사고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전혀 티가 나지 않을 정도로 그의 연기력은 프로페셔널했다.

그리고는 방송 스케줄을 모두 정리해 캐나다로 훌쩍 떠났기에 2009년까지 작품 활동을 할 수 없었다. 2004년 친구 결혼식에서 처음 만난 김수륜[9]과 이듬해 세번째 결혼을 한 뒤로도 한동안 캐나다에 있었다.
2009년부터 복귀를 모색했다. 가발업체 밀란과 계약해 광고 모델로 컴백한 그는 영화에서 그에게 성공을 안겨줬던 <주유소 습격 사건>의 후속작을 두고 제작비를 직접 대는 등 의욕적이었다. 자꾸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무너지지 않는다라고 생각했다.
2010년 영화 '주유소 습격 사건2'로 5년 만에 복귀하면서 무릎팍 도사에도 영화 홍보차 출연했다. 당시 강호동에게 안겨 코믹하게 등장한 그는 그렇지만 그 때의 아픔에 대해 말할 때 오열하며 끝내 말을 잇지 못했다. 속죄하는 심정 뿐이었다고. 미달이 아빠로만 기억하던 시청자들을 가슴 먹먹하게 했다.
2013년엔 MBC 일일극 '오로라 공주'에 출연했다가, 갑자기 드라마에서 사라져 버렸다. 해당 드라마의 작가인 임성한의 횡포에 의해 전격 하차된 것이다. 이로 인해 마음고생을 겪었다고 한다.

그러던 '''2014년 KBS 1TV 사극 '정도전'에서 이인임 역할로 제3의 전성기'''를 맞았다. 당시 정현민 작가는[10] 박영규의 이미지 때문에 반대했다. 그러나 베테랑 강병택 PD[11]는 박영규의 사극 연기를 알고 있었고 작가에게 여러 작품을 보여줬다. 그제서야 인정했다.
'''이인임은 입체적인 악당으로 다시 태어났다. 캐릭터 자체도 매력적인 악역인 데다 명연기까지 더해지니, 드라마 초반부를 하드캐리'''했다. 심지어 드라마 제목이 <승암 이인임>이 아니냐란 평까지 들을 정도였다.

2014 KBS 연기대상에서 장편 드라마 부문 남자우수연기상을 수상했다. 이날 수상 소감에서 수상의 기쁨, 먼저 떠나간 아들에 대한 그리움을 밝혔으며, 하늘에 있는 아들이 듣기 바란다며 오페라 축배의 노래를 한소절[12]를 부른 후, 자신처럼 자식을 잃은 세월호 유가족을 위로하며 드라마 못지 않은 감동을 주었다. 기사.
2019년 KBS 2TV 주말드라마 사랑은 뷰티풀 인생은 원더풀에서 한량 아빠 역을 맡았으며, 이듬해 1월 15일 개봉작 해치지않아(영화)에서 동물원 원장 역을 맡았다.
2019년 12월 25일 네번째 결혼이 <더팩트>지 단독보도로 알려진 것이다. 세번째 이혼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전혀 없으며 지인 30명 정도 초대한 극비 결혼이었다. 상대는 미모의 일반인 여성으로만 보도됐다. 장소는 역삼동 라움아트센터라고... 지인들만 초대된 스몰웨딩이었다고 한다.

3. 출연 작품



3.1. 드라마


'''방영연도'''
'''방송사'''
'''제목'''
'''배역 이름'''
'''비고'''
1985년
MBC
베스트셀러극장 - 초록빛 모자


전원일기
약장수
[13]
1987년
MBC
아름다운 밀회
최기봉

1988년
MBC
내일 잊으리
배동준

1989년
MBC
그것은 우리도 모른다
현인규

당신의 축배
김민봉

1990년
MBC
어둔 하늘 어둔 새
최중기

1991년
MBC
이별의 시작
유덕규

1992년
KBS1
정든님


1993년
MBC
폭풍의 계절
주성혁

1994년
KBS2
인간의 땅


1995년
KBS2
갈채
선우혁

장녹수


MBC
최승희


SBS
옥이 이모
장씨

1996년
MBC
길 위의 여자
전동우

1.5


1997년
SBS
당신뿐인데
윤기

아름다운 죄
김진섭

MBC
욕망
마 회장

예감
오 전무

1998년
SBS
'''순풍 산부인과'''
'''박영규'''

KBS2
종이학
지성 부

1999년
KBS2
우리는 길 잃은 작은새를 보았다
하퍼 박

MBC
국희
송주태

2000년
SBS
덕이
정한구

MBC
신 귀공자
장인철

2001년
MBC
어쩌면 좋아
구석기

2002년
SBS
대망
최선재

KBS2
잘난 걸 어떡해
박영규

2003년
MBC
다모
조세욱

SBS
똑바로 살아라
박영규

2004년
KBS2
해신
설평

2009년
MBC
지붕뚫고 하이킥
박영규
특별출연
2011년
SBS
보스를 지켜라
차봉만

천일의 약속
노홍길

2012년
MBC
아이두 아이두
박광석

2013년
MBC
백년의 유산
강진

오로라 공주
오왕성

2014년
KBS1
'''정도전'''
'''이인임'''

tvN
삼총사
김자점

SBS
별에서 온 그대
허균

내겐 너무 사랑스러운 그녀
이종호

2015년
JTBC
순정에 반하다
강현철

KBS2
복면검사
정도성 (박규철)

어셈블리
박춘섭

MBC
화정
선조

앵그리맘
홍상복

엄마
엄일남

2016년
MBC
몬스터
도충

2017년
KBS2
김과장
박현도

tvN
내성적인 보스
황영규
특별출연
SBS
다시 만난 세계
차권표

TV조선
너의 등짝에 스매싱
박영규

2018년
KBS2
너도 인간이니?
남건호

2019년
KBS2
사랑은 뷰티풀 인생은 원더풀
김영웅

2020년
JTBC
런 온
기정도


3.2. 영화


'''개봉 연도'''
'''제목'''
'''배역 이름'''
'''비고'''
1985년
별리


대학별곡


1987년
레테의 연가


1988년

장호

사랑의 낙서
길수

1989년
서울 무지개
표 사장

애란
요시무라

신사동 제비
제비도사

인신매매


1991년
내일은 비


1993년
로맨스 황제
주근노

1995년
비상구가 없다
록 카페 종업원

1999년
주유소 습격사건
주유소 사장

2001년
휴머니스트
아버지

2002년
아프리카
주유소 사장

라이터를 켜라
박용갑

2003년
보리울의 여름
우남 스님

오! 브라더스
박 사장
특별출연
해피 에로 크리스마스
온천파 보스 방석두

2004년
고독이 몸부림칠 때
박중범

귀신이 산다

특별출연
플라워 샵

단편 영화
2010년
주유소 습격사건 2
주유소 사장

2012년
나는 왕이로소이다
태종

2013년
남자사용설명서
Dr. 스왈스키

미나 문방구
이재근

2014년
상의원
쌍둥이 양반

2020년
해치지않아
서 원장

2021년
인생은 아름다워



3.3. 예능


'''방영연도'''
'''방송사'''
'''제목'''
'''역할'''
'''비고'''
1991년
KBS1
도전 차차차
MC

1998년
MBC
가요콘서트
MC

2010년
MBC
무릎팍도사
게스트

2010년
KBS2
김승우의 승승장구
게스트

2014년
KBS2
해피투게더3
게스트

2019년
KBS2
해피투게더4
게스트


4. 평가


다소 쪼잔한 이미지가 강한 캐릭터로 유명세를 떨친 탓에 소인배 이미지가 강하지만, 사실 연기자로서는 대인배적인 인품을 가졌다. 드라마 오로라 공주에서 임성한 작가의 일방적인 통보로 하차당하면서 큰 실망과 황당함을 겪고 좌절감을 맛봤지만, 이 작품을 선택한 것도 자신의 책임이라 생각하면서 다음 기회를 겸허히 기다리자고 마음을 가라앉혔다고 한다. 박영규 인터뷰.
비록 오로라 공주에서는 하차당했지만, 2014년 KBS1 대하사극 정도전에서 극의 키 포인트인 이인임 역을 제의받으면서 보다 더 탄탄한 커리어를 쌓을 수 있었으니 배우 본인에게는 전화위복인 셈. 팬들은 이번 캐스팅을 똥차 가고 벤츠 온다라면서 같이 축하해주고 있다. 그리고 주인공 정도전이 각성하기 이전, 초반 전개를 하드캐리하면서 극의 시청률을 견인하는 역할을 했다.
사실 다모해신에서 이미 보여줬듯이 사극에서의 정극 연기는 말이 필요 없는 사람이다.[14] 코믹한 연기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코믹한 연기로 이미지가 고정되어 정극 연기를 그동안 보지 못했던 것은 크게 아쉬웠던 점. 그런 팬들의 갈망을 제대로 풀어주었다. 박영규 본인도 꿈속에서라도 한번 맡아보고 싶은 역할이라고 기뻐했다. 인터뷰
2015년 작가 정현민과 다시 만난 정치 드라마 어셈블리에서 한복을 입고 나와 이인임의 연장선 같았지만, 중후한 분위기의 무거운 연기를 잘 소화했다. 삼총사, 몬스터, 김과장, 다시 만난 세계 등 진중한 분위기의 높으신 분 캐릭터를 많이 연기하고 있다.
의외로 애드립을 기피하고 철저하게 대본에 충실한 타입이며 배우의 본분이라고 생각한다고 한다. 순풍산부인과에서 미달이 아빠를 연기할 때의 찰진 개그 대사들은 마치 애드립처럼 보여서 애드립이 많은 배우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지만, 실제로는 전부 대본에 쓰여져있던 것이며 그저 애드립처럼 보일 정도로 맛을 살려서 연기하는 것이다.
코미디 연기로 유명한 사람답게 개그맨 지망생들 사이에서도 박영규의 성대모사는 기본 중의 기본이라고 한다. 후배 정보석은 그를 시트콤에 있어서는 신같은 존재라고 평했다.
순풍 산부인과와 주유소 습격사건에 나온 모습 등으로 코믹한 연기의 대가라고 생각하지만, 그보다 더 대단한것은 바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인간말종기믹의 연기이다. 국희에 나온 친일파이자 최종보스 송주태, 덕이에 나온 한량 정한구[15] 어셈블리의 박춘섭이나 위에 시트콤으로 언급한 순풍산부인과/똑바로 살아라 등의 박영규를 보면, '''어떻게 저렇게 뻔뻔할 수가 있지?''' 라는 평가를 모두 받은 명연기였다.[16] 이성재와 더불어 저게 연기인건 알겠지만, 정말 소름돋는다. 유형의 배우이다.

5. 여담


  • 상단 프로필에 특기가 성악이라고 표시되어 있는 것처럼 노래 실력이 꽤 출중한 편이다. '카멜레온'의 경우도 배우 자체가 코믹 배우로 유명해진 시점에서는 농담 소재로 쓰였으나 노래도 그렇고, 역량도 그렇고 농담거리로 쓰일만큼 별로인 곡도 아니지만 트로트라는 점에서 농담이 된 것이고, 상단의 축하소감에서 부른 축가도 그렇고 노래 실력을 보여준 사례가 많다.
[image]
박영규(좌)와 정성화(우)
  • 정도전에서 이인임 역으로 나오기 전에는 뮤지컬 스팸어랏[17]에서 정성화와 더블 캐스팅으로 아더왕 역을 맡아서 명연을 보여주기도 했다. 사실 MBC 창사기념 뮤지컬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등 이전에도 종종 뮤지컬에 출연하기도 했다.
  • 2012년부터 상수역 근처에서 이자카야 코다차야 홍대점[18]을 운영하고 있다. 15개 이상의 포장마차가 모인 특이한 컨셉의 가게로 꽤 대규모다. 박영규가 런칭한 건 아니고 분점을 맡은 것이다. 어쨌든 덕분에 해피투게더에서 홍대 박 사장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2019년 현재도 예약석을 제외하면 꽤 만석이고 대기줄이 생긴다.
  • 2016년 6월 부산문화회관에서 부산 출신 성악 트리오 그룹 <헤븐싱어즈>와 공연했다.
  • 항상 가발을 쓰고 나온다. 89년 왼쪽 앞이마부터 시작된 탈모로 로맨스 연기를 다시 하지 못할 정도로 고민이 많았지만, 호사다마라고 방송에 재복귀할 때 가발 광고로 컴백했다. 현재는 후배 배우 이진우가 한다.
  • 투 머치 토커 스타일이다. 인터뷰 하다 노래 좀 불러달라고 하면 한곡을 굳이 완창하고, 왜 그랬냐고 질문하면 무려 고등학생 시절 이야기까지 거슬러 올라가서 얘기하는 전형적인 TMT 타입. 2019년에 해피투게더에 출연할 때 별 질문거리도 없는데 사전인터뷰가 5시간이나 걸려서 작가가 학을 뗐다고 한다.
  • 후백제의 건국자 견훤의 사위이자 고려 태조 왕건의 장인이기도 하던 박영규와 동명이인이고, 2000년대 초반 가장 잘 알려진 박영규가 순풍산부인과의 박영규다보니 간혹 둘을 엮는 패러디도 있었다. 정작 배우 박영규는 여말선초를 다룬 사극 정도전에 나왔지만. 더불어 배우 박영규는 밀양 박씨고, 후삼국시대와 고려초의 박영규는 순천 박씨의 시조라는 차이가 있다.

6. 수상


'''수상 연도'''
'''시상식'''
'''부문'''
'''작품'''
1993년
제29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인기상
로맨스 황제
1998년
SBS 연기대상
시트콤부문 연기상
순풍 산부인과
2000년
SBS 연기대상
시트콤부문 대상
순풍 산부인과
빅스타상
덕이
2011년
SBS 연기대상
드라마스페셜부문 특별연기상
보스를 지켜라
2014년
KBS 연기대상
장편드라마부문 남자 우수연기상
정도전
2015년
MBC 연기대상
연속극부문 남자 우수연기상
엄마
[1] 나이를 먹어 젊었을 때의 원래 키에서 3cm가 줄었다고 손수 밝힌 바 있다.[2] 전설이 된 시트콤 순풍 산부인과에서 실질적인 주인공 오지명의 사위를 연기했을 때의 명대사다.[3] 정도전(드라마)에서 이인임 역으로 분할 때.[4] 카멜레온: 1989년 6월 1일 발매[5] 오태석: 1940년 생. 서울예대 교수이며 극단 목화를 이끌고 있다. 연세대학교를 졸업했고 1967년 웨딩드레스를 시작으로 수 백 편의 연극을 연출했다. 2005년 호암상, 2012년 동아 연극대상을 수상했다.[6] 1985년 1월 6일에 방영[7] 침체기의 원인은 곧 40대에 접어드는 나이와 점점 빠지는 머리숱에도 있었다. 더이상 로맨티스트로서 극에 서기가 어렵게 됐던 것이다. 1989년 토토즐에서 카멜레온을 부르는 영상을 보면, 되도록 숱이 많이 남은 오른쪽을 보여주려 계속 카메라 각을 잡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전화위복이라고 훗날 가발 업체 밀란의 브랜드 모델로 장기간 활동하기도 했다.[8] 옥이 이모가 중년이 된 이후 시점인 방영 후반 등장[9] 김수륜은 한국 레이컴 회장인 정호영의 전처다. 정호영은 심은하와 약혼했다가 파혼한 경력이 있고 후에 이영애와 결혼했다.[10] 작가 뿐만 아니라 같이 출연한 배우들도 박영규의 코믹 이미지 때문에 대본 리딩 전까지는 우려가 많았다고 밝혔다.[11] 용의 눈물 당시 막내 PD로 커리어를 시작. 거기에 박영규가 출연했던 해신의 연출을 맡기도 했었다.[12] 주세페 베르디오페라 라 트라비아타[13] 양촌리에 등장한 약장수로 단역 출연[14] 해신과 정도전은 강병택 PD의 작품으로 해신 때의 연기를 눈여겨 보고 이인임으로 캐스팅한 것이라고 한다. 처음엔 코미디 연기의 이미자가 강한 배우라 정현민 작가가 반대했지만 강병택 PD가 권한대로 '해신'을 본 후 정현민 작가도 캐스팅에 찬성했다고 한다.[15] 정한구의 경우 드라마 덕이의 인기와 인면수심의 연기력을 보여줘 실제로 TV쇼에서 박영규에게 실제로 정한구 같은 인간이 있겠냐? 라고 물어보기까지 했다. 당사자인 박영규는 그저 악독한 한량 연기를 보인거라고 한다.[16] 국희에서는 절친의 딸과 독립운동가 친구의 재산을 받은뒤 일본 헌병에 신고해서 친구를 죽게만들고, 딸을 종으로 부리는 모습, 덕이에서는 무능한 한량이면서, 장모와 짜고 강제로 강간한 여인의 몸에서 낳은 자식을 외면하고, 깡패가 된 아들에게 빨대를 꽂으며, 덕이의 출생의 비밀을 아무렇지 않게 떠벌리는 모습등.[17] 몬티 파이튼의 성배를 뮤지컬화 한 것이다.[18] 서울 마포구 와우산로 48 로하스타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