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고영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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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전영재
'''출생'''
1953년 12월 13일 (71세)[1], 강원도 강릉군(현 강릉시)
'''본관'''
정선 전씨
'''학력'''
서울연극학교
'''종교'''
불교
'''소속사'''
아이티이엠
1. 개요
2. 그 외
2.1. 드라마
2.2.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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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배우.
생년월일은 1953년 12월 13일이며, 아버지는 악역 전문 배우였던 독고성. 독고영재는 이예춘의 아들 이덕화와 함께 영화배우 아들 라인의 큰 형으로, 황해의 아들 전영록, 조항의 아들 조형기, 최무룡의 아들 최민수, 박노식의 아들 박준규, 허장강의 아들 허준호 등 수많은 60년대 인기배우 아들들과 어릴때부터 모임도 하고 알고 지냈다. 이들 독고영재, 이덕화, 전영록, 조형기, 최민수, 박준규, 허준호 등은 죄다 오토바이 매니아 이기도 했는데 서로 오토바이를 돌려 타는 사이였다. 그리고 이덕화가 전영록의 오토바이를 빌려탔다가 목숨을 잃기 일보직전까지 가기도 했다.
본명은 전영재. 아버지처럼 독고씨 문중행사에 참여하진 않는다고 한다. 1973년 영화 '빗방울'로 데뷔해 아버지처럼 배우가 되었지만, 무명 생활이 오래가면서 1980~90년대 에로영화B급 영화에 많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다가 정지영 감독의 〈남부군〉, 〈하얀전쟁〉,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에 잇따라 캐스팅되면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2]
40살이 넘은 중년 이후 점잖은 중년신사 이미지를 얻었지만 20대, 30대의 무명시절 20년 동안에는 열등감도 심했고, 성격도 거칠어져서 영화나 드라마에 출연을 못하고 있는 기간[3]에는 반건달(후대의 폭주족과 비슷한 방식으로 사고도 치고 살았다고 한다)처럼 행동하고 다녔다고 한다. 세바퀴에 조형기와 함께 출연했을때, 조형기가 이를 폭로했는데 영화배우 아들 라인 모임에서 가죽옷에 반다나 두건을 머리에 뒤집어 쓰고 선글라스를 끼고 오토바이를 타고 와서는 껌까지 씹으면서 어느정도 탤런트나 영화배우 활동을 괜찮게 하던 동생들 앞에서 껄렁거리며 한명씩 앞에 가서 "얌마, 너 요새 잘나간다며? 너 어디(영화나 드라마 이름) 나오더라. 야 너 좋겠다"라고 시비를 걸기도 했다고 한다. 당시 탤런트였던 조형기 본인에게도 했다고 하는데, 조형기의 표현으로는 가히 그냥 불량배였다고. 다들 어릴때부터 보던 큰형님이라 시비에 대응을 못하고 가만히 있었다고 한다. 그러자 이 폭로에 당황한 독고영재가 내가 젊었을때 힘들어서 잠깐 좀 그런 걸 갖고 너는 그런 걸 방송에서 얘기하고 그러느냐고 성을 냈는데, 조형기가 당황하지 않고 "젊기는, 형님 그때 마흔이었수! 불혹의 나이!"라고 받아치자 당황해서 아무 말도 못했다. 다른 출연진들도 당시 나이를 듣자 빵 터지면서도 "40살이나 먹고 그러고 다니셨다고요?"라고 당황했다.
그 후 최민수의 추천으로 엄마의 바다에 출연하게 된다. 당시 매니저 배병수가 최민수 주연의 조건으로 독고영재와 허준호를 끼워팔기 한 것이며 셋 다 배병수 사단의 일원이었다. 결국 드라마는 대히트했고, 독고영재와 허준호도 인기있는 배우가 되었으니 서로가 윈윈한 셈이다. 참고로 당시 엄마의 바다 출연진은 최민수, 김혜자, 고현정, 고소영, 독고영재, 허준호라는 후덜덜한 라인업이었다. 특히 당시 신인인 고소영은 첫데뷔작 KBS 내일은 사랑에서 중반 하차할만큼 연기력에 문제가 있었으나 이 작품으로 톱스타로 등극했다.[4][5], 이후 중년스타로 떠오르며 드라마 코리아 게이트에서 무려 주인공 박정희 역할을 맡는[6]등 생전 못해본 주연급 배우가 되었고, 이후 계속 영화에서 주연이나 주연급 조연으로 활동하였다. 젊을 때 조단역을 전전하던 시절과는 차원이 달라진다. 아직도 TV에서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는 중이다.
드라마와 달리 영화 선구안은 별로라서 싸구려 영화에 꽤 많이 나왔는데, 대표적으로 주글래 살래에서 주인공의 아버지역과 키드캅에서 도둑놈 두목 역. 둘 다 작품성이 처참했고 흥행도 쫄딱 망했다.

2. 그 외


  • 군대에서 만난 이계인과도 계속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특히 2019년 10월 이계인이 혼자 사는 집에서 전신 마비 증상으로 쓰러진 것을 독고영재가 발견하여 목숨을 구한 인연이 있다.
  • 젊을 때부터 타던 오토바이를 아직까지 탄다. 집에 오토바이 헬멧만 6~70개가 진열되어 있으며, 아직도 바이크동호회 회원들과 라이딩이나 바이크캠핑을 나선다고 한다.
  • 무명생활이 길었다가 1992년 영화 하얀전쟁으로 청룡영화상 남우조연상을 수상하기 전까지 20년 무명의 설움을 겪었다. 아들이 무명생활을 오래 해서 아버지인 독고성이 마음고생을 많이 했다고 한다. 독고영재가 남우조연상 수상 당시 "이덕화, 최민수, 전영록만 나오면 TV채널을 슬그머니 다른 데로 돌리시던 분이 계시다. 저희 아버님이다."라고 수상소감을 전한 적이 있다. 상술된 꼬장 이야기도 열등감이 심해 벌어진 일이었다.
  • 주글래 살래를 같이 작업한 김두영 감독과 '9시 뉴스'를 작업한다는 말이 나왔으나 무산되었다.
  • 조폭 조양은과도 친분이 있으며 조양은 주연의 싸구려 조폭영화 보스에 조연으로 나왔다. 젊은 시절 뒷골목 조직 생활을 잠시 했다는 것을 TV 토크쇼에서 완곡하게 고백했다. 당시 본인이 설명한 당시 생활상을 따지고 보면, 정확히 말해 조폭 쪽이 아니라 오토바이를 타고 행패를 부리는 폭주족 조직이었다. 현대 폭주족의 원조.
  • 정치적으론 보수 성향이며 드라마 코리아게이트영웅시대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 역을 맡았다. 박정희 전담 배우로는 이창환 다음으로 많이 알려진 배우다.[7]
  • 2012년 11월엔 트위터에서 독고영재의 이름으로 박원순 당시 서울시장과 문재인 당시 후보를 거친 욕설로 비방하는 글이 올라와 논란이 일었는데, 자신은 SNS를 하지 않는다고 밝히면서 트위터는 사칭으로 결론났다. 애당초 환갑에 가까운 중견배우가 난데없이 SNS를, 그것도 트위터[8] 계정을 만들고 정치인을 욕한다는 거 자체가 초월적 발상이다. 말 그대로 고소각.
  • 진중한 이미지지만 의외로 예능에서의 입담이 매우 좋다. 그동안 많은 수의 예능 프로그램들에 나와서 많은 활약을 보여줬다. 불후의 명곡 2에 나와서 "3분 동안 관객을 겁 준 거야" "흙 먹는 거야" 등 드립을 쳤다.
  • 나이들고는 탈모때문에 그 이미지가 없어졌지만 과거에는 친한 배우들 사이에서 동안으로 유명했다고 하는데, 무명시절 7살 어린 임예진이 그를 촬영장에서 처음보고 자신과 같거나 어린 나이인 줄 알고 "영재씨 안녕?"하면서 말을 걸어서 어이가 없던 나머지 말을 안하다가 임예진이 계속 말을 걸자 "으흠.. 나 이덕화랑 친구다."라고 말을 하니 임예진이 화들짝 놀랐다고 한다. 일부러 임예진과 어릴때부터 연기한 이덕화의 이름을 댄 건데, 임예진은 심지어 이덕화랑 여러 영화에 출연하던 시절에 "아저씨"라고 불렀다고 한다. 처음에는 안 믿었다고 하는데, 독고영재가 진지하게 화난 표정으로 노려봤다고 한다. 동안도 있고, 임예진은 어렸을때 데뷔해서 커리어가 긴 반면 독고영재는 무명시절이 길었기 때문에 막연하게 자기보다 후배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사실 한국사회에서는 선후배가 절대적이라 (무조건 서열대로 하는 개그계까지 가지 않더라도) 후배가 약간 나이가 많으면 어린 선배가 그냥 편하게 하는 경우도 많다. 물론 그렇다해도 7살 차이한테는 옛날에도 그렇게 안했으니 임예진은 혹시 본인보다 많을 가능성을 막연히 생각해도 한두살 정도라 봤을 것이다. 독고영재는 나이도 훨씬 많을 뿐 아니라 연극데뷔가 1971년, 영화 데뷔가 1973년이라 경력면에서도 선배가 맞다.
  • 아내와의 나이 차이가 많이 난다. 독고영재 본인의 말에 따르면 16세 연하라고...

2.1. 드라마



2.2. 영화



[1] 같은 연예인 2세 박준규가 2006년 당시 상상플러스에서 독고영재가 실제 나이는 이덕화와 같은 1952년생 동갑이라고 밝힌바가 있다. 즉 박준규 본인과 띠동갑이라고 한다. 1950년대 60년대에 흔히 발견되는 주민등록이 1년 늦은 케이스로 알려져 있다.[2] 하얀전쟁에서는 청룡영화제 남우조연상을 수상했고,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에서는 백상예술대상 인기상 수상과 더불어 청룡영화제 남우주연상으로 노미네이트 되기도 했다.[3] 사실 그 시기에도 찾아보면 출연 작품 수는 적지 않으나, 알다시피 비중이 높은 조연이 아니고서야 일반적으로 조단역은 촬영분량이 적어 여러 작품에 나왔다고 해도 촬영을 한 기간은 짧을 수 밖에 없다. 하루이틀만 촬영하면 한 영화의 출연이 끝나기도 한다. 비중 높은 조연이라도 자주 했으면 괜찮으나, 드문드문 했을 뿐이고 상당 기간 동안은 비중 낮은 역할만 해서 그러지 못했으니 당연히 할 거 없는 날이 많았던 것이다. [4] 지금은 훌륭한 연기자지만, 당시엔 첫 출연하는 드라마여서 그런지 연기가 차마 좋다고는 말 못할 수준이었다. [5] 독고영재 본인은 처음엔 ‘영화배우가 TV에 나가면 욕먹는다’고 거절했지만, 드라마 국장이 ‘우리도 영화배우를 출연시켜 덕 본 적이 없다’고 말해 오기가 생겨서 출연했다고 회자했다.[6] 심지어 부인 육영수 역할이 독고영재 청년기에는 근처에도 못 가던 천하의 대스타 고두심이었으니, 독고영재에겐 가히 인생역전. [7] 보통 이진수, 이창환, 독고영재를 박정희 전문 배우로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다.[8] 12년 당시만 해도 국내 유저수 극히 적고 젊은층에서도 잘 이용하지 않던 SNS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