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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林春元
1938년 3월 1일 ~ (86세)
대한민국의 전 정치인이다. 호는 해정(海汀)이다.
1938년 전라북도 군산부(현 군산시)에서 태어났다. 회사를 경영하면서 1970년 통일문제연구회라는 단체를 만들고 회장이 되었다. 1971년 제7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윤보선, 장준하, 박기출 등과 국민당을 창당하였다. 그리고 국민당 정무위원에 임명되었다. 같은 해 치러진 제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국민당 전국구 국회의원 4번으로 출마하였으나 낙선하였다. 1974년 윤보선, 장준하, 김대중 등과 함께 박정희 유신정권에 반대하는 민주회복국민회의에 참여하였다. 1975년 장준하 의문사 사건에 대해 의혹을 제기하자 연행되어 체포, 고문조사를 받았다.
1980년대 초반 부산 동아대학교 재단의 이사를 역임하였다. 1984년 민주화추진협의회가 결성되자 이에 참여하였다. 1985년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한민주당 전국구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이후 야당의 경제통 국회의원으로 활동하였다. 1987년 1월 강삼재의 뒤를 이어 신한민주당 부대변인에 임명되었다. 같은 해 5월 신한민주당 원내부총무에 임명되었다. 그러나 6월 신한민주당을 탈당하였고 무소속으로 있다가 11월 평화민주당에 입당하였다. 이후 김대중 총재의 경제특별보좌관이 되었다.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평화민주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을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같은 해부터 1992년까지 대한민국 국회 재무위원회(현 기획재정위원회) 간사로 활동하였다. 또한 대한민국 국회 5공비리조사특별위원회 위원, 제5공화국 부실기업비리 조사반장 등으로도 활동하였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그러나 제14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박규식, 송천영 등과 민주당을 탈당하여 민주자유당에 입당하였다. 1993년 김영삼 정부가 출범하자 재산공개 파동으로 민주자유당을 탈당하여 무소속으로 있었다. 1994년 6월 통일국민당에 입당하였고 통일국민당이 신정치개혁당과 합당하여 신민당이 되자 신민당 사무총장에 임명되었다. 1995년 신민당이 자유민주연합에 흡수 합당되려 하자 반대하였다.
신민당이 자민련에게 흡수된 후 독자적으로 신민당을 재창당하였다. 이후 이 당은 무소속 정당을 표방한 무정파전국연합[1] 으로 변경한다.[2]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무정파전국연합 대표에서 물러나고 통합민주당에서 공천을 받았다가 취소되었다. 이후 정계 은퇴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