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니뉴 페르남부카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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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브라질의 축구인.
주니뉴, 주닝요, 전인호[2] 등으로 국내에 알려져 있다. 단,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에서 브라질 국대로 뛴 주니뉴는 주니뉴 파울리스타라는 선수다.
자타공인 프리킥의 달인으로, 역대 최고의 프리키커 중 한명으로 꼽힌다. 리옹에서 통산 100골, 이 중에서 44골이 프리킥이였다. 무회전이 대표적이지만 중, 단거리에서는 주로 감아찼다. 기본적인 킥력과 킥 정확도가 사기적인 수준.[3] 또한 커리어 통산 프리킥으로만 77골을 득점했는데[4] 평범한 중앙 미드필더들이 선수 생활을 다 통틀어도 프리킥은 커녕 온갖 골을 다 합쳐봤자 어지간해서 70골 넘기기 어렵다는 점을 고려하자면 주니뉴의 가공할 킥력과 그 정확성을 엿볼 수 있다.
2019년 영국의 매체 데일리스타가 선정한 역대 최고의 프리키커 로 꼽히기도 하였다. #
프리킥 잘 차기로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 안드레아 피를로마저도 주니뉴의 프리킥을 보고 연습했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을 정도로 역대 최고 레벨의 프리키커이다.[5]
2017년 7월부터 리옹의 기술이사로 돌아왔다.
티에리 앙리가 최고로 뽑는 데드볼 스페셜리스트인 만큼 해당 분야에서 기여를 해줄 것으로 보인다. 또 유력한 리옹의 미래 지도자이기도 하다.[6]
2. 행적
2.1. 클럽
스포르트 헤시피 유스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했으며 이후, CR 바스쿠 다 가마로 이적. 점차 출장 횟수를 늘려가며 준주전급 위치로 도약한 뒤, 96~00년도까지 6시즌 동안 바스쿠에서 활약했다. 이후 01/02 시즌에 신흥 강호로써 당시 대대적인 스쿼드 강화를 하던 올랭피크 리옹[7] 으로 이적. 오자마자 사람들의 예상을 깨고 리옹의 주전 자리를 꿰어찼고 이후 통산 8시즌, 08/09 시즌까지 리옹의 핵심적인 에이스이자 주장으로서 리옹의 '''리그 7연속 우승'''이라는 대업적의 주역이다.
리그앙에서는 나름대로 우주 방위대나 다름없는 스쿼드를 구성하던 전성기 리옹의 스타 플레이어들조차도 자신들의 이전 커리어에 비해 상대적으로 소박한 커리어를 보유한 주니뉴를 진심으로 존경하며 같이 뛰는 것을 영광으로 여겼다고 한다. 성격 자체가 신사적이고 정중하고 프로로서의 자세에도 충실하여 구단 역사가 그렇게까지 길지는 않은 리옹에서는 리옹 역사상 최고의 선수, 최고의 주장으로 손꼽는다. 실제로 리옹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EPL이나 세리에 A같은 빅리그 클럽들에서 관심을 가졌으나 본인의 유럽 커리어는 리옹에서 끝날 것이라 할 정도로 리옹에 대한 충성심도 대단했던 수준. 실제로 본인의 커리어가 끝날 때까지 리옹을 제외한 다른 유럽 구단에 발을 들이지 않았다.
2008-09 시즌이 끝나고 노쇠화로 인한 기량 저하가 눈에 띄기도 했고 일반적으로 노쇠화한 스타 플레이어들이 으레 그렇듯이 말년에 거액의 수입+주전 보장을 위하여 카타르 리그의 알 가라파로 이적하였다. 카타르에서 나름대로 준수한 활약을 펼쳤고 2시즌 동안 카타르 리그에서 뛴 뒤, 자신의 실질적인 커리어 시작지라고 할 수 있는 브라질 리그의 바스쿠로 이적하였다. 바스쿠에서 거의 주급을 무료 봉사에 가까운 수준으로 적게 받았는데 본인이 일부러 그렇게 요구했다고 한다. 자신의 커리어를 꽃피울 수 있게 해준 바스쿠라는 구단에 대한 의리성 차원에서 한 일이라고 한다. 바스쿠에서도 2시즌 간 주전으로 뛰며 신체 능력은 저하했으나 죽지 않은 킥력과 킥 정확성을 바탕으로 여전한 활약을 뽐내다가 2012년 12월, 미국 MLS의 뉴욕 레드불스로 이적하였다. 13/14 시즌의 MLS에서도 38세의 나이로 현역으로 맹활약.
여담으로 커리어의 반 이상을 프랑스에서 보냈기 때문에 브라질 선수들 중에서는 프랑스 국가 대표 선수들을 가장 많이 만나본 선수이기도 하다. 리옹에서 같이 뛴 국가 대표급 선수들만 해도 플로랑 말루다, 카림 벤제마, 아템 벤 아르파, 에릭 아비달, 제레미 툴라랑 등 상당히 많다.
2014년 1월,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본인이 향후 축구계에 계속 남게 된다면 리옹에서 코치직을 수행하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3년 뒤인 2017년에 리옹의 스탭으로 돌아오며 본인의 말을 지켰다.
2.2. 국가대표
1999년 3월, 대한민국과의 경기에서 국가대표 데뷔전을 뛰었는데, 당시 김도훈의 결승골로 대한민국이 브라질에 1-0으로 승리했다. 참고로 '''이 경기는 아시아 소속 국가대표팀이 브라질에 거둔 유일한 승리'''이다.
그러나 대표팀과는 거리가 멀어서[8][9] 메이저 대회에는 단골로 출전하지는 못했고, 2001년 소속팀의 부진 이후로 덩달아 평가가 낮아지면서 2002년 한일 월드컵은 동명의 파울리스타에게 밀려 탈락하였다. 그 후 리옹에서의 에이스급 활약을 보여주자 다시 대표팀에 콜업되기 시작했고, 서브 멤버였지만 2006년 독일 월드컵에는 출전할 수 있었다. 당대 화려한 네임밸류의 선수들에게 밀려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는 조별리그 3차전인 일본전과 8강 프랑스전에 각각 출전하였다. 일본전에서는 자신의 장기인 무회전 중거리슛으로 일본을 무너뜨리는 역전골을 득점하였다.[10] 대회 이후 주니뉴는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은퇴하였다.
3. 우승 경력
- 스포르토 헤시피 (1993 ~ 1994)
- 캄페오나투 페르남부카누 : 1994
- CR 바스쿠 다 가마 (1995 ~ 2001 / 2011 ~ 2012)
- 캄페오나투 브라질레이루 세리 A : 1997 , 2000
- 코파 메르 코수르 : 2000
- 코파 두 브라질 : 2011
- 캄페오나투 카히오카 : 1998
- 트로네이후 히우 상파울루 : 1999
-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 1998
- 올랭피크 리옹 (2001 ~ 2009)
- 리그 1 : 2001-02 , 2002-03 , 2003-04 , 2004-05 , 2005-06 , 2006-07 , 2007-08
- 쿠프 드 프랑스 : 2007-08
- 트로페 데 샹피옹 : 2002 , 2003 , 2004 , 2005 , 2006 , 2007
- 알가라파 SC (2009 ~ 2011)
- 카타르 스타스 리그 : 2009-10
- 카타르 크라운 프린스 컵 : 2010 , 2011
- 뉴욕 레드불스 (2013)
- MLS 서포터스 실드 : 2013
-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 (1999 ~ 2011)
- 2004 코파 아메리카 : 우승
- 2005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 우승
4. 플레이 스타일
수비력이 준수하고 활동량이 뛰어난 올라운드 유형의 중앙 미드필더이다. 전형적인 브라질 선수 특유의 리듬으로 화려한 기술을 갖추면서 개인 능력을 보여주는 유형은 아니었고 박스 투 박스처럼 움직이면서 침투하거나 전반적인 플레이메이킹으로 중원을 조율하는 선수였다. 거기에 사기적인 킥력과 축구민족 브라질리언다운 테크닉도 갖춘 미드필더였고 앞서 서술한 킥력을 이용한 전방위적인 공격 지휘를 잘했다.
물론, 최대 장기인 프리킥으로 공격포인트를 쏠쏠히 적립하는 것도 준수하게 해준다. 축구 역사상 최고의 프리킥 스페셜리스트를 뽑으라면 웬만하면 탑5(그 안에서도 보통 1~2등을 왔다갔다 함) 안에는 무조건 들 정도로 그의 데드볼을 처리하는 능력은 역대 최고 수준이다. 주니뉴 하면 역시나 상식을 벗어나는 볼의 움직임을 보여주는 무회전 킥이 유명하지만 사실 무회전, 감아차기를 비롯한 축구에 존재하는 모든 종류의 킥[11] 을 자유자재로 능숙하게 구사한다. 보통의 선수들은 킥을 처리하는 방식이 대부분 정해져있으나[12] 주니뉴는 데드볼을 처리하는게 프리스타일에 가깝다고 보면 된다.
게다가 유럽에서 뛰는 많은 브라질 선수들이 자기관리나 정신력, 매너 등에서 부족한 모습을 보여준 데 반해 주니뉴는 선수 생활 도중에 논란거리도 만들지 않았으며 소속팀에 대한 충성심도 매우 뛰어났다.
현대 축구에서 각광받는 전형적인 3선 플레이메이커 유형인데, 주니뉴의 주 활동시기에는 이러한 유형의 플레이메이커가 대세가 되기 전이라 시대를 잘못 타고난 선수라는 올드축구팬들의 의견도 종종 보이곤 한다.
[1] 포르투갈 어로 'little Júnior'라는 뜻으로, 보통 Júnior가 이름에 들어가는 사람에게 많이 붙는 애칭이라고 한다.[2] Juninho를 Jun In Ho로 띄어 읽으면 전인호로 읽히는 드립. 인터넷 상에서 한 때 비운의 한국계 선수 어쩌고 하면서 떠돌았다.[3] 놀라운 건 주니뉴 본인은 "지쿠가 나보다 잘 찬다."고 했다.[4] 브라질 리그, 리그앙, 중동, 미국에서의 기록을 통틀어서.[5] 비단 티에리 앙리만이 그를 최고로 꼽는 것은 아니다. 피를로도 그를 한 수위로 볼 정도로, 이 분야에서는 역사상 탑5안에 드는 선수라고 봐야 한다.[6] 중앙미드필더로서 경기 운영능력 역시 탁월했던지라, 장래 지도자가 된다면 리옹의 중원에서 뛰고 있는 어린 선수들에게 큰 도움을 주리라 본다. [7] 많은 사람들이 리그앙에 대해서 잘 모르는지라 모나코나 리옹 등을 전통 강호처럼 여기는 경우가 많으나 리옹과 모나코 모두 당시는 신흥 강호들이었다. 특히나 리옹의 경우에는 2000년도 접어들어서 장 미셸 율라 구단주의 대대적 투자가 있기 전까지는 그저 2부 리그와 1부 하위권을 오가는 약체 팀이었다. 프랑스에서 전통 명문 구단이라 할만한 클럽은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와 AS 생테티엔 정도.[8] 당시 브라질의 공격을 주도하던 인물들이 호나우두, 호나우지뉴, 카카 등이 하나같이 전성기였을 무렵이었던지라 주니뉴는 발을 얹기 힘들었다. 플레이 스타일도 화려한 기술(브라질리언으로써 기본 내장된 실력 말고)이나 스피드 같은 신체 능력이 아닌 키핑과 킥이 주 무기였는데, 호나우지뉴나 호나우두 등도 킥이 사기였다. 2012년까지의 프리킥 골들.[9] 설령, 중미로 출장을 한다고 해도 수비력에 있어서 에메르송 & 제 호베르투, 질베르투 실바등을 넘어서기는 불가능하였다. 기본적으로, 4R을 뒷받침해야 하는데 수비적인 면에서 주니뉴는 저들보다 아쉽고 그렇다고 실바를 제외한 저 2명 역시 공격기여도는 나쁘지 않은지라...[10] 이 날 수없는 선방쇼를 벌였던 가와구치 요시카쓰 조차도 감탄했을 정도의 엄청난 위력이었다.[11] 장지현 해설에 의하면 킥의 구종만 7~8가지가 된다고 한다.[12] 호날두의 무회전, 베컴의 감아차기 등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