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유니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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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유니온'''
Youth Community Unions
靑年유니온
<colbgcolor=#9b3990><colcolor=#ffffff>'''약칭'''
YCU(영)
'''창립일'''
2010년 3월 13일
'''위치'''
서울특별시 마포구 백범로 24, 4층
(노고산동, 금용빌딩)
'''임원진'''
6기
<colbgcolor=#9b3990><colcolor=#ffffff>'''위원장'''
이채은
'''사무처장'''
김영민
'''조합원 수'''
2,039명 (2017년)
'''공식 사이트'''
옛 홈페이지 현재 홈페이지 페이스북
트위터 인스타그램 유튜브
1. 개요
2. 로고
3. 조직
4. 활동
5. 역사
5.1. 창립
5.2. 노조로 인정받기 위한 험난한 길
5.3. 성장과 현재
6.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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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 최초의 세대노동조합. 만 15세부터 만 39세 이하의 비정규직, 정규직, 구직자, 일시적 실업자청년 노동자가 구성원이다.

2. 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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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유니온의 로고는 청년 재능기부 모임인 ‘세이브애즈’에서 디자인했다. 을 내미는 형태로 서로가 서로에게 손을 내민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다. 양쪽의 손이 모였을 때는 상대를 따뜻하게 포옹하는 형태가 되는 로고로서 손을 모티브로 서로 악수하는 형상을 취하여 연합과 화합을 표현한다.

3. 조직


서울특별시, 경기도, 부산광역시, 대구광역시, 인천광역시, 경남, 광주광역시에 지부를 두고 있으며, 각 지부마다 위원장과 사무국장이 회계, 연대업무, 인사, 행정 등을 맡는다. 세대별 지부로 청소년유니온이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아무래도 세대를 대표하는 노조이니 생긴 특징이다.

4. 활동


청년유니온은 청년들의 고용안정과 노동권 보장, 생활안정을 위한 기획사업과 청년 노동입법활동 및 거버넌스, 이를 추진하기 위한 운동을 중점으로 두고 있다. 청년 노동에 의제를 둔, 다양한 주제의 설문조사 및 실태조사를 진행하는 중. 청년 노동은 그 근로기간이 짧고 비정규직인 경우가 많아서 노동 착취 실태를 조사하기도 어렵고, 제대로 된 임금을 받고 있는지도 확인되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근로 상황에서 생기는 노동문제를 상담, 해결해 주는 것이 바로 청년유니온이다.
주요 성과로는 피자 업계의 고질적 적폐였던 30분 이내 배달 제도 폐지를 관철시켰고, 야간운영하는 카페주휴수당 지급을 명시, 전국 편의점 노동 실태 등, 청년 알바 일자리 개선을 위한 활동을 중심적으로 해 나아갔다. 또한 블랙기업 반대운동, 국회 최저임금위원회에 양대 노총과 함께 당사자로 참여,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청년 네트워크 활동 등 청년 참여적, 진보적 정치활동도 계속해왔다. 당연히 노동조합이니만큼 롯데 호텔, 서울시, YBM, 카페베네 등의 고용자들이나, 청년 스팩 문제에 관련된 기업들과 단체 교섭을 하기도 한다.

5. 역사



5.1. 창립


1990년부터 2000년대 초반을 지나는 학생운동, 운동권 세력들은 기존 정파 세력들의 폐쇄성과, 청년 참여가 보장되기 힘든 노조 운동, 그럼에도 필요한 청년 노동운동의 필요성 등을 고민하며 새로운 형태의 조직을 물색하기 시작했다. 훗날 청년유니온의 창립자들이 될 김영경 등의 학생운동가도 같은 고민을 하는 중이었다. 그들은 처음에 민주노동당 청년조직에서 활동을 시작했지만, 진보 정당내에서의 청년 주변화[1]와 청년실업문제를 중심으로 해결해 줄 노동단체가 없다는 것을 자각하고, 기존의 노동, 정치 학생운동세력과 차별화된 새로운 형태의 청년노동운동을 시작하고자 했다. 결국 김영경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던 활동가들을 결집하여 2010년, 42명의 조합원으로 시작한 '''청년유니온'''을 발족했다.

5.2. 노조로 인정받기 위한 험난한 길


청년유니온은 '''대학생'''으로써의 청년이 아닌 '''일하는 사람'''으로써의 청년을 발굴해내며 당시에는 획기적으로 평가되는 캠페인 운동을 진행해 나아갔다. 진보 정당과 청년조직들이 당시 대학 등록금 투쟁에 열을 올릴 때, 이들은 청년 불안정고용 해결, 주휴수당 쟁취, 최저임금 인상 투쟁 등, 실제적으로 청년의 수당을 안정시킬 방법을 찾았다. 이를 통해 2012년경에는 조합원이 열 배 이상으로 증가하는 등의 성과를 내며 청년사회에 이름을 알리게 된다. 하지만 정부는 비정규, 일시적 구직자인 청년들에게 노동조합의 권리를 부여하는 것을 주저했고, 2012년까지 다섯 차례에 걸쳐 이루어진 노조신청이 모두 반려되었다.

5.3. 성장과 현재


하지만, 모든 노력이 허사로 돌아간 것은 아니었다. 2012년경, 서울 청년유니온은 서울시에게서 단체교섭권을 획득했고, 언론을 통한 이슈화와 직급별 조직운동을 통한 청년 대표성 강화에 어느정도 성공했다. 또한 현재 취업 중에 있는 청년 노동자들을 포함, 취업 준비생과의 연대를 실시하기도 하였는데, 이 활동의 주가 된 것은 토익 독점으로 장사질을 하는 YBM을 상대로 한 소송과, 표준 이력서 작성 운동이었다. 이런 운동의 결실으로 20대 회원들의 참가가 폭발적으로 증가했으며, 양대 노총도 이들을 전국단위 노조로 인정하는 자세를 보였다. 결국 2013년 4월, 청년유니온은 '''전국청년유니온'''이라는 이름으로 노조창립허가를 받았으며, 2014년에는 최저임금위원회의 당사자로 양대노총과 함께 참가, 15년까지 블랙기업 반대운동, 여러 개별교섭을 성사시키는 등 성장세를 보였다.
이후 2016년부터 시작된 박근혜 퇴진운동에 적극 참여하여 저력을 과시하였으며 최저임금위원회의 노동자위원으로 참가해 임금을 16.4%나 인상시키는 역사적인 결과를 얻게 되었다. 현재에는 강원랜드 채용비리 사태와 혼술남녀#s-9 스태프 사망사건 등의 문제를 중점적으로 해결해 나가고 있는 중.
2018년에는 기존의 사회적대화기구 노사정위원회가 개편된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 노동계의 일원으로 청년 계층 대표로 참여하였으나 탄력근로제 논란 등을 겪기도 하였다.

6. 특징



2000년대 학생운동을 경험했던 활동가들 몇 명이 모여서 시작된 단체 답지 않게, 운동권 정파색이 없다. 물론 각각의 조합원이나 후원 회원이 운동권 논리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있지만, 초대 운영진은 자신들이 청년유니온에 걸림돌이 된다 생각하여, 초대 지도부 임기가 끝나자마자 다함께 물러나기도 하는 등, 기존 운동권색을 버렸다.[2]
그렇다고 기존 학생운동, 정치세력과 아예 연대를 안하는 비운동권, 반운동권과는 다른 게, 총선청년네트워크 운동, 강원랜드 채용비리사건 등에서 민주당계 정당, 정의당, 녹색당 등의 정당 등과 연대하기도 한다. 가끔 지역에 따라서 진보당같은 NLPDR계나, 녹색당이랑도 연대한다. 진보당의 경우에는 일부 간부들도 당원으로 활동하기도 한다.
특히 민주당에서는 여러 자치단체의 사무 행정쪽으로 들어갔고, 정의당에서는 부대표(문정은)나 선출직 기초의원(이기중)까지 배출하기도 하는 등, 정치 참여에는 적극적이다. 정파 색이 없을 뿐. 통일운동이나 페미니즘 운동 등 노동을 제외한 운동에 소극적이거나 관심이 없어 비슷한 위치에 있는 알바노조와 비교된다.
사실 알바노조가 여러 풍파(...)를 일으키고 다녀서 인지도가 더 높을 뿐이지 실제 파워는 청년유니온이 더 강하다. 최저임금 교섭위원회에 노동자위원으로 한국노총, 민주노총과 같이 자리를 차지한 것도 청년유니온이고, 조합원 수도 청년유니온이 2배 정도 많다.
비교를 해 보자면 알바노조는 사회당PD(정파)그룹이 건설한 정파적 노동운동단체이고, 그덕에 조합원 대부분이 평등파 학생운동의 경험을 가지고 있으며, 이름 그대로 비정규직 인턴등 보다는 '''아르바이트'''쪽에 방점이 찍힌 프레카리아트 운동이다. 또한 청년보다는 노동에 방점을 둔, 그렇기에 노동조합 운동에 더 적극적인 단체이다.
이에 비해 청년유니온은 처음부터 운동권 정파의 정치조직이 아니었다.[3][4]또한 대부분의 조합원들이 아르바이트생보다는 대기업인턴 등, 전일제 풀타임 노동자들인 차이점도 존재한다. 비정규직 문제 등 보다는 '''청년의 삶'''쪽에 문제의식을 둔 조직이기에 노동조합의 특성과 함께, 참여연대 등의 NGO의 특성도 강하게 가진다.
비슷한 성향의 단체들 중 몇 안되게 여성주의 문제로 조직내 사건사고가 안 터진 곳이다. 페미니즘에는 호의적이며, 관련한 활동과 목소리도 내는 편이다.
[1] 특히 2000년대 초반에는 청년을 쪽수 채우는 동원형식으로만 생각하는 정치조직이 많았다. 좌,우 할것 없이...[2] 일례로 민주노동당에서 계속 활동하고 국회의원 보좌관도 하면서 청유 창립을 주도한 조성주정의당으로 들어오면서 오히려 운동권의 비토를 받았다.[3] 그 덕에 자신들보다 숫자가 적은 운동권 조직들보다 동원력이 딸리는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청유에서는 대여섯명이 모여서 오순도순 분위기로 기자회견하는데 옆에서 같은 의제를 다루는 알바 노조는 수백명씩 모아놓고 연좌 농성하는 경우도...[4] 명심해야 할 것은 동원력=조합원 수는 아니라는 것이다. 한 데모에 얼마나 많은 사람을 투입할 수 있는 지가 관건인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