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시/역사
1. 선사 시대
청주 소로리에서 재배벼 유적이 발견되었다. 이는 '''쌀 재배 국가 중 가장 오래된 것'''이다. 즉 지금까지 발견된 것 중 가장 오래전에 벼를 재배했다. 지금은 소로리 볍씨 기념물이 세워져 있다.
2. 삼국시대 ~ 남북국시대
백제 때 상당현(上黨縣)이었다. 고구려의 전성기인 장수왕 때 고구려에 편입됐다가 진흥왕 때 신라에 편입된다. 통일신라 때 전국을 9주 5소경으로 개편하면서 옛 백제 지역 행정구역인 웅주에 속했고, 지금으로 치면 광역시격인 소경 중 하나인 서원경(西原京)이 되었다. 서원구나 서원대학교 등의 이름은 서원경에서 유래한 것이다. 신라 말기에는 아지태가 이 지역의 호족으로 궁예에 투항했다.
3. 고려
태조 때 청주목이 되어 충주와 함께 충청도의 어원이 되었다.
고려시대의 무인 집권자중 한명인 경대승이 청주 경씨이며, 조선 초기의 유명한 문신 한명회가 청주 한씨이다.[1]
현존 최고(最古) 금속활자본인 '''직지심체요절'''이 간행된 흥덕사 유적이 청주에 있으며, 그 옆에 고인쇄박물관이 들어서 있다. 청주시 차원에서 직지와 관련된 마케팅을 적극적으로 펼치고 있으나, 그 의욕이 지나친 나머지 전혀 상관없을 법한 자리에서까지 직지를 홍보하고 있는 모습이 간혹 보인다. 예를 들면 한의학 박람회에 직지 부스가 있다든지. 청주에 놀러와서 동네를 한 바퀴 돌면 '직지' 혹은 'JIKJI'라는 글자가 박힌 가로수나 가로등, 횡단보도 보호석, 버스 정류장 등이 보이는 건 기본이고 직지의 모습이 그려진 간이 매대라든가 직지의 이름을 넣은 도로, 초등학교, 어린이집, 태권도장, 뼈해장국집 등 정말 '직지'가 넘쳐난다.
사실 청주시 자체가 그다지 내세울 만한 명승지나 유적이 따로 없어서 그런 것이기도 하다. 아무리 국보라지만 용두사지 철당간을 홍보하기에는 임팩트가 부족하고 상당산성도 좀 그런데 마침 '세계 최초'라는 엄청난 타이틀을 가진 직지가 있다 보니 이렇게 된 모양.
4. 조선
조선 후기까지 청주목(淸州牧)과 문의현(文義縣)으로 이루어진 곳이었다.
23부제 실시 후에는 '''공주부''' 관할[2] 로 넘어갔다가 13도제 실시 후 충청북도 청주군과 충청남도 문의군이 되었다. 1906년 월경지 주안면이 회덕군에 편입되었다.
참고로 당시 청주목의 면 이름들은 하나같이 개성이 떨어지는 이름들이었는데 동주내면, 서주내면, 남주내면, 북주내면, 서강내일면, 서강내이면, 서강외일면, 서강외이면, 북강내일면, 북강내이면, 북강외일면, 북강외이면, 산외일면, 산외이면, 산내일면, 산내이면, 남일면, 남이면, 남차이면 이런 식이었다(...) 그리고 조선 말엽에는 이것들 중 일부는 또 상하로 분할되기까지 했다. 그나마 방위를 나타내는 말만 들어간 게 아닌 구체적 장소를 나타내는 말도 들어가서 좀 낫다.
5. 일제강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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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4년 현 청주시 일대의 행정구역 상황. 읍내 시가지를 '청주면'으로, 그 주변 지역을 '사주면'으로 청주면을 둘러싸는 도넛 모양으로 따로 편제한 것이 눈에 띈다.[3]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통폐합 당시 충청남도 문의군이 청주군에 병합되었다. 또한 청천면이 괴산군에 편입되었다. 1931년 청주면이 청주읍으로 승격되었다. 1935년 사주면 일부가 청주읍에 편입되었다.
6.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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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직후인 1946년 청주읍이 '''청주부'''(府)로 승격되어 청주군에서 분리되고, 청주군의 잔여지역은 '''청원군'''으로 개칭되었다. 1949년 청주부가 '''청주시'''(市)로 개칭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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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청주시를 둘러싸고 있던 청원군 사주면을 편입해 시역(市域)을 넓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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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청원군 강서면 등을 추가로 편입하였다.
1989년 동부출장소와 서부출장소를 설치하였고, 1990년 또다시 청원군 북일면, 남일면, 남이면 일부 추가 편입을 통해 지속적으로 영역을 넓혀 나갔으며, 1990년대 초엽, 인구 50만명을 돌파하였다. 1980년대 청주시의 인구가 25만명 정도였다는 걸 감안하면 무려 두배 가까이 늘었다! 비수도권 기초자치단체중 당시 가장 인구가 많았던 전주시를 앞지른 것은 2002년~2003년 경이었다.
1995년 흥덕구(구 서부출장소)와 상당구(구 동부출장소)의 2개 일반구를 설치하였다.
2014년 7월 1일 청원군과 통합되어, 청주부(청주시)-청원군 분리 68년 만에 다시 하나가 되었다. 구 청주시와 구 청원군의 통합 및 변경 사항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청주시/통합 청주시 성립과정 항목 참조.
[1] 청주 한씨는 한국의 한씨중 가장 많고 본관별로 성씨를 나누어 세어도 10위에 드는 많은 씨족인데, 청주에서는 이 청주 한씨들을 '''대머리 한씨'''라고 부른다. 청주시 근교의 한씨 집성촌 동네 이름이 대머리라서 그렇다는데, 행정구역상으로는 상당구 방서동(구 방정리)이며, 대머리는 '큰마을'을 뜻하는 '대멀'에서 나왔다 한다.[2] 충청도의 주요도시 중 혼자만 자기 이름으로 된 부가 없었다. 안습.[3] 이처럼 대전광역시의 전신인 대전군 역시 이 때 대전역 일대(중구 은행동, 동구 정동, 중동, 원동, 인동)를 대전면, 그 외곽지역을 외남면으로 도넛 모양으로 편제했다. 이후 사주면이 청주시에 편입되듯이 외남면이 대전부에 편입되는 것도 마찬가지. 대전광역시/역사 문서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