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벨바겐

 




1. 개요
2. 제원
3. 상세
4. 이야깃거리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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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W Type 82 "Kübelwagen"'''
'''Kübelwagen, Kübelsitzwagen (VW Typ 82)'''
독일이 생산한 최초의 다목적 차량. 1934년 4월에 아돌프 히틀러국방군이 사용할 군용차량을 페르디난트 포르쉐에게 요구하였고, 이에 포르쉐에서 싼 값에 다양한 목적으로 사용 가능한 차량을 만든 것이 퀴벨바겐이다.
사실 퀴벨바겐이라는 독일어 단어는 본래 '욕조형 좌석' 즉 '버킷 시트'를 가진 차량들을 통틀어 부르는 말이었다. 또한 Horch 901이나 메르세데스 G-5 등 당시의 독일제 군용 승용차를 뜻하는 단어로도 많이 쓰이던 말이기도 했으나, 오늘날에는 본 문서에서 설명하고 있는 폭스바겐의 Typ 82를 칭하는 단어로서 일반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2. 제원


설계된 시기:1939년
사용기간:1940년-1945년
생산시기:1940년-1945년
총 생산량:50435대
무게:1.175t
길이:3.74m
폭:1.6m
높이:1.11m(지붕 씌울시1.65m)
승무원:4명
장갑:없음
무장:7.92mm MG34/ MG42 기관총1정(정찰용때나 쓰였다.)
엔진:V-4 VW 복서 985cc 가솔린엔진(혹은 V-4 VW 복서 1131cc 가솔린엔진)
마력:22마력(V-4 VW 복서 1131cc 가솔린엔진 일시 25마력)
출력/중량:21.3 PS/t
구동방식:RR
속도:84km
항속거리:450km

3. 상세


퀴벨바겐의 개발은 나치 독일 정부에서 오늘날의 폭스바겐 비틀의 선조가 되는 민수용 승용차Type 1 비틀의 설계와 기술을 응용한 군용 차량의 개발을 요구했던 것에서 출발했다. 1938년 1월에 기본 설계를 마친 뒤 11월에 VW Type62라는 시제품을 내놓았는데,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한 이후 나치 독일 정부에서는 차량을 좀 더 개량할 것을 요구했다.[1] 이 2가지 요구에 맞추기 위해 차축장비였던 기어 감소중축 장비를 채용함과 동시에 바퀴의 크기를 41cm로 교정, 최종적으로 Type82 퀴벨바겐이 완성되었다.
1940년 2월부터 본격적으로 생산되기 시작하여 1945년까지 생산되었다. 생산 도중에 불필요한 부품을 제거하거나 다른 엔진을 장착하는 등[2] 자잘한 마이너 체인지를 거쳤으나, 외형상으로 큰 변화는 없었다. 파생형 중 가장 많이 알려진 것이 슈빔바겐이다.
그 뿌리가 Type 1 비틀이었기 때문에, Type 1 비틀과 마찬가지로 퀴벨바겐 역시 구동방식은 RR이 되고 있었다. 하지만 최저지상고를 높게 설계하는 등 오프로드 주행을 의식한 설계를 채용한 덕분에, 퀴벨바겐은 구동방식이 RR인 것치고는 지형적응력이나 험지주파력이 당시로서는 꽤 높은 차량이 될 수 있었다. 또한 냉각수라디에이터가 불필요한 공냉 엔진을 가지고 있었기에 무더운 사막에서 사용하기도 편했고, 부동액 역시 필요하지 않았기에 한랭지에서의 운용도 편했다고 한다. 다양한 환경에서 편리한 운용이 가능했고, 여러 조건에서도 높은 내구성을 발휘했기에 아프리카 전선에서도 동부전선에서도 똑같이 취급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렇듯 실용성이 높은 차량이었기에 퀴벨바겐은 사이드카군마에 많이 의존하고 있던 안습한 처지였던 당시의 독일군에게는 실용적인 다목적 차량으로서 환영받았다.[3]
다만 실용성이 높고 내구성도 양호했던 것과는 별개로, 그 뿌리가 뿌리였던 탓에 군용 차량으로서는 작고 가벼운 편이었으며 구동방식의 한계도 떠안고 있었기에 성능상으로는 역시 많은 한계가 있었다. 예를 들자면 RR 구동방식의 한계로 인해서 견인력은 그다지 좋지 못했는데, 소형 대전차포의 견인조차도 할 수 없었다고 전해진다. 또한 앞서 말한 대로 지형적응력이나 험지주파력이 높아 오프로드 주행에도 어느 정도 대응할 수 있었기는 하지만, 이 역시 미군윌리스 MB 지프와 같은 본격적인 4WD 차량에 비할 만한 정도는 아니었다. 미군의 지프와 비교하자면 어떤 의미로는 과도기적인 차량이었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4]

4. 이야깃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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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벨바겐과 지프간의 직접적 연관성은 없지만 밀덕들 사이에서 가끔 두 차량을 비교하는 글이 나오곤 하는데, 디자인에 대해서는 자동차로서 좀 더 그럴 듯하고 평범한 생김새를 가진 퀴벨바겐을 선호하는 쪽도 있지만, 성능에 있어서는 윌리스 MB가 퀴벨바겐보다 훨씬 우월했으며 실용성 역시 윌리스 MB 쪽이 보다 우수했다. 사실 지프는 그 성능 만큼 양산도 많이 되었고 일반인들에게도 친숙하므로 인지도나 후속차량 면에서도 비교하기 많이 힘들다.
이는 근본적으로 체급과 구동방식의 차이가 있었기 때문으로, 퀴벨바겐은 상대적으로 덩치가 약간 작았고 구동방식도 4WD가 아닌 RR이었기에 윌리스 MB보다는 성능상으로 뒤질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퀴벨바겐의 뿌리가 Type 1 비틀이었음을 생각하면 이건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최저지상고를 높게 설계하는 등 오프로드 주행을 의식한 설계를 채용한 덕분에 구동방식이 RR인 것치고는 퀴벨바겐도 지형적응력이나 험지주파력이 당시로서는 꽤 높았었지만, 역시 4WD 구동방식을 채용한 윌리스 MB의 그것에 비교하기는 무리였다.[5] 뿐만 아니라 퀴벨바겐은 4WD가 아니었던 탓에, 상기한 대로 소형 대전차포의 견인조차도 할 수 없었던 등 견인력도 윌리스 MB에 비해서는 뒤졌다.[6]
덧붙여 퀴벨바겐 역시 4WD 사양으로의 개량계획이 존재하고 있었지만, 이 개량계획을 통해 만들고자 했던 4WD형 퀴벨바겐인 Type 87은 결국 제2차 세계 대전 당시에는 양산되지 못한 채 끝났다고 한다. 대신 그 기술은 퀴벨바겐의 파생형으로서 개발된 4WD 수륙양용차슈빔바겐에 활용되었는데, 수륙양용 성능을 얻기 위해서는 4WD 구동방식을 채용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원형인 퀴벨바겐과 파생형인 슈빔바겐의 구동방식이 서로 다른 이유는 이 때문이다.
프라모델 메이커 타미야가 세계적으로 유명해지게 만든 물건이기도 하다. 타이먀의 주력 라인업인 MM 시리즈에 전차보다도 먼저 등장했다.[7] 단 제품 자체의 완성도는 비슷한 시기에 시장에 있던 이탈레리제를 더 높이 쳐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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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폭스바겐에서 퀴벨바겐의 후계 차종을 내놓아서 많은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이른바 폭스바겐 사파리. 한국에서도 광고 등에 사용되어 눈에 익은 차종이다. 1974년까지 내놓았는데...1987년에 새소년 지에서 퀴벨바겐을 한국에서 소유한 사람 사진과 차량을 찍어 올린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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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용 버전
티거 에이스 오토 카리우스가 퀴벨바겐을 타고 나갈 때마다 날려먹어 병사들 사이에서 퀴벨바겐 귀신이라 불렸다고 한다.

[1] 최하속도를 4~8km로 맞춰 군대와 함깨 행진할 수 있는 것과 동시에 비포장 도로 주행성능을 끌어올릴 것을 요구하였다.[2] 1943년 3월 이후 생산품은 VW 복서 1131cc 엔진을 장착했다.[3] 다만 생산량이 충분치 못 했던 덕에, 퀴벨바겐의 등장 이후에도 독일군사이드카군마에 계속 의존할 수 밖에 없었다. [4] 그 때문에, 병사들은 엔진 출력이 더 높았던 슈빔바겐을 더 선호했다.[5] 윌리스 MB는 본래 온로드 차량으로 설계되었기에 사실 오프로드에서 달리기에는 전고가 너무 높고 차륜의 폭도 좁아서, 험로에서의 안전성이나 주행성능이 저하되기 쉽다는 결함을 가지고 있었다. 다만 안정성을 높이기 쉬운 4WD 구동방식을 채용했기에, 설계상의 단점을 어느 정도 보완할 수 있었던 것이다. 설계상으로는 나름대로 오프로드 주행을 의식하고 있었으나 구동방식의 한계를 안고 있었던 퀴벨바겐과는 반대되는 사례.[6] 윌리스 MB의 경우는 37mm 대전차포 정도는 견인 정도가 아니라 아예 기관총 마운트 자리에 설치도 가능했다.[7] 단, MM 시리즈가 아닌 타미야의 밀리터리 모델 자체의 시발점은 판터 전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