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케 플로레스
1. 개요
스페인의 축구선수 출신 감독. 2019년에 왓포드 FC 감독을 맡았다.
다수의 라 리가 팀들을 지휘했고, 시대의 흐름에 맞춘 과감한 전술적 변화와 탁월한 분석력, 부드러운 리더쉽으로 인정받는 지장으로 2008-09 시즌 벤피카의 타사 다 리가 우승을 이끌었고 2009-10 시즌에는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유로파리그 우승을 달성하는 등 클럽팀 지휘 경험이 많다.
2. 선수 경력
현역시절 발렌시아에서 10년간 321경기를 뛰었다. 역대 발렌시아 오른쪽 사이드백 중에서 가장 많은 경기를 뛰었다.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스페인 국가대표팀에 승선했다.
3. 지도자 경력
현역 은퇴 후 레알 마드리드 CF의 유소년 코치를 하다가 헤타페 CF의 감독을 맡아 13위를 기록했고, 이 후 발렌시아의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첫 시즌이었던 2005-06 시즌에는 전 시즌 라니에리 감독의 이탈리안 커넥션 삽질로 챔피언스리그에 진출하지 못했던 발렌시아를 3위로 이끌며 챔피언스리그로 복귀시켰다. 2006-07 시즌은 4위로 마쳤고, 챔피언스리그에서는 8강까지 진출했으나 조세 무리뉴의 첼시에 8강전에
패배했다.
2007-08 시즌 성적은 선두 레알 마드리드 CF와 4점차로 나쁘지 않았으나 세비야전과 챔피언스리그 로젠보리전 패배 이후 발렌시아에서 경질되었다. 그리고 그 이후에 온 감독은...
2008년 6월 포르투갈의 SL 벤피카의 감독을 맡아 타사 다 리가를 들어올렸으며 2009년 10월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로 옮겨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를 코파 델 레이 결승전에 진출시킨데 이어, 팀에게는 '''창단 이후 최초의 유로파 리그 우승을 안겼다!''' 또 2010년 UEFA 슈퍼 컵도 우승시켰다. 그러나 이듬해인 2011년에 성적 부진으로 경질되었다. 그래도 후임 감독인[3]디에고 시메오네 체제의 핵심인 필리페 루이스와 디에고 고딘, 가비를 영입한 것도 키케.
2011년 스파르타크 모스크바와 링크가 떴으나, 성사되지 않았고, 11월 UAE의 알 아흘리에 부임했다. 알 아흘리에서 리그컵과 프레지던트 컵을 들어올린 뒤 2013년 6월에 팀을 떠났고, 2013년 9월에는 알 아인에 부임해 프레지던트 컵을 들어올렸으나, 2014년 3월, 성적부진으로 경질됐다.
2015년 헤타페에 다시 부임, 광저우 푸리로 떠난 코스민 콘트라 감독의 뒤를 이어 라 리가로 컴백했다. 팀의 상승세를 이끌었으나 7주 만에 개인적인 사유로 사임했다.
2015년 6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승격 팀인 왓포드 FC에 부임했다. 계약기간은 2년.
그리고 레스터 시티 FC에게는 못 미치지만 상당한 돌풍을 일으켰다. 그러나 시즌 중반 이후 수비진의 불안과 공격진의 페이스 하락이 겹치며 순위가 급락해 버렸다. 주포 오디온 이갈로의 부진이 뼈아픈 상황.
얼마 후자신의 의사로 왓포드 감독직을 사임한다는 기사가 떴다. 승격 팀치고 리그 13위에 FA컵 준결승 진출이면 잘한 것인데 떠나니 아쉽다는 여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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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6월 9일, RCD 에스파뇰의 감독으로 스페인 무대에 복귀하였다. 그리고 11경기에서 6무를 거두는 성과를 달성하였다. 그리하여 2016-17 시즌은 종합 8위로 리그를 마쳤다. 하지만 2017-18 시즌은 계속 죽쑤었고, 강등권 근처를 전전하자 2018년 4월 21일 에스파뇰 감독직에서 해임되었다.
3.1. 에스파뇰 이후
2018년 7월 페르난도 이에로의 후임으로 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유력하게 거론됐다. 기사 하지만 키케 플로레스는 감독직을 거절하면서 루이스 엔리케가 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 되었다. 이집트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후보로도 올랐으나 이집트에서는 하비에르 아기레를 선임했다.
2018년 8월에는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후보로 급부상했으며, 대한축구협회와 협상을 진행하였다. 그러나 축협이 계약기간을 4년6개월로 하고 한국 상시 거주라는 조건을 걸어서 이에 부담을 느끼며 고사하였고 한국 축구 대표팀 감독으로는 또 다른 감독 후보였던 파울루 벤투가 선임되었다.
12월 초 마크 휴즈가 잘린 EPL의 사우스햄튼 FC의 감독 물망에 올랐으나, 랄프 하젠휘틀이 부임했다.
3.2. 상하이 선화
2018년 12월 14일 중국에서 상하이 뤼디 선화와 협상중이라는 기사가 떴고 결국 성탄절에 부임이 확정되었다.
3월 1일 상하이 상강과의 개막전 지휘를 맡아 중국 리그 데뷔전을 치뤘으나, 프레디 과린이 자책골을 첫 골로 내주고, 이어 내리 3골을 내리 먹어 0-4으로 참패했다.
2라운드 허베이 화샤 싱푸전에서는 1-2로 졌다. 허베이의 특급 외인선수인 에세키엘 라베찌가 부상으로 결장했기에 해볼 만한 시합이었음에도 이기지 못했다. 3라운드 허난 젠예 전에서 이갈로와 지오반니 모레노의 골로 2-1로 시즌 첫 승을 거둔다.
15라운드까지의 성적은 3승3무9패 강등권 바로 위인 14위로 매우 좋지 않다. 특히 상하이 선화는 황사머니 구단이고, 2018년에 강등된 창춘 야타이에서 그해 득점 2위이자 왓포드 시절에 인연이 있던 오디온 이갈로까지 데려왔는데도 성적이 형편없는 것은 감독의 문제라고 볼 수 있다. 결국 2019년 7월 3일 자진사임 형식으로 중국 슈퍼리그를 떠났다. 후임 감독은 최강희.
키케가 잘린 후 상하이 선화에 영입된 김신욱의 인터뷰에 의하면 키케 체제에서의 팀 분위기가 매우 망가져 있었다고 한다. 전술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는 것과는 별개로, 키케의 팀 장악력은 높지 않은 듯 하며, 그렇기 때문에 한 팀에 오래 있지는 못하는 듯 하다.
공교롭게 2019년 7월 뉴캐슬에서 중국 리그로 떠난 베니테스의 후임 감독으로 물망에 올랐지만, 스티브 브루스가 부임하며 좌절되었다.
3.3. 왓포드 FC
2019년 9월 7일 하비 그라시아가 초반 4경기 동안 1무 3패라는 저조한 성적을 거두고 초반에 잘리자 왓포드 FC 감독에 선임되었다.
9월 21일 맨시티와의 리그 원정경기에서는 8-0으로 참패를 하는 굴욕을 당했다. 그 뒤에도 성적을 크게 끌어올리지 못 하며 비판 받았다. 결국 사우샘프턴에 1-2로 패한 후인 12월 1일 경질되었다.
4. 기타
2018 러시아 월드컵을 끝으로 계약이 만료되는 신태용 감독의 후임으로 매체에서 강력히 거론되면서 실검에도 등장했을 정도로 축구팬들 사이에서 내심 협상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기도 했다. 하지만 전술했다시피 최종적으로는 결렬되었는데 감독 선임을 책임졌던 김판곤 국가대표감독선임위원장의 후일담에 따르면 모 감독은 자신을 끈질기게 찾아준 성의에 최소한의 보답 관련인지 자신의 집으로 초대하는 예우를 갖췄으나, 김판곤 위원장이 한국 대표팀 감독 부임을 요청했을 때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삶에 난색을 여러 번 표함으로 우회적인 거절을 표했다고 한다. 더군다나 한국축구에 대해 얼마나 아는지 물어봤는데 손흥민 과 기성용에 대해서만 알고있다는 발언을 했었다고 한다. 당사자에 대한 예의상 실명을 거론하지 않았지만, 정황상 키케일 가능성이 높다.
국가대표팀 감독직 경험이 있거나 저니맨 기질이 아니였다면 축협이 어떻게든 큰돈을 써서라도 모셔왔을 가능성도 컸을것으로 보이지만....키케의 선택은....
물론 나중에 상하이 선화 감독직을 수락한 점을 보았을 때 가족 문제는 한국행을 거절하기 위한 일종의 변명이고 실제로는 대한축구협회에서 제시한 연봉이 마음에 들지 않아 거절한 것으로 보인다. 사실 한국이나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는 세계 축구계의 변방인 점은 마찬가지인데[4] , 중국 슈퍼리그 구단에서 제시한 연봉이 워낙 높으니[5] 결론은 자신이 축구 변방인 아시아로 가기 위해서는 그에 맞는 대접을 받아야 하지 않겠나는 생각이다.[6] 결국 "돈을 많이 달라"는 이야기를 돌려말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7]
게다가 키케의 감독 경력을 보면, 팀을 맡은 재임기간은 2년이 한계이며, 그나마 성과가 좋았던 발렌시아(2005-2007)와 아틀레티코(2009-2011), 에스파뇰(2016-2018) 시절은 모두 자국팀인 스페인 클럽들이다. 나머지 외국 클럽들은 거의 1년 미만으로 지휘하다 해임되거나 (특히 개인적인 사유를 들어) 자주 사임했기 때문에, 다음 월드컵인 2022년까지 4년간 꾸준히 버틸 감독은 아닌 듯. 한 팀을 맡다가도 더 좋은 오퍼가 오면 언제든지 그만 둘 수 있는 감독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키케가 상하이 선화에서 실패하고 또 왓포드에서 처참하게 폭망한것을 보면 키케 본인이 한국 국대 감독직을 고사한 건 한국 입장에서는 결과론적으로 엄청나게 좋은 일이 되었다.
그 후 중국에서 대실패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EPL 팀의 감독이 된 것이 의외로 보일 수도 있으나, 중국 리그에 가면 폐급 취급을 받는다는 속설과는 달리 세계 축구계에서 중국 슈퍼리그는 기본적으로 예외성이 많은 곳으로 간주되어서 유럽 명장이 중국에서 실패를 하더라도 커리어가 그다지 망가지지는 않고 유럽에서 다시 자리를 잡을 수 있는 듯 하다. 거스 포옛[8] , 파울루 소자[9] , 파울루 벤투[10] 감독 등은 중국에서 실패한 감독이라고 할 수 있겠으나, 이후 키케처럼 중국 클럽보다 좀 더 위상이 높은 팀의 감독이 되었다. 다만 한국에서는 '''중국에서 실패했다고''' 잘못 알려져 있는 마누엘 페예그리니[11] 나 안드레 빌라스보아스[12] 감독은 비교적 성공한 감독들이다.
[1] 시즌 도중 경질[2] 시즌 도중 경질[3] 정확히 말하자면 키케의 후임 감독은 그레고리오 만사노이고 만사노의 후임 감독이 시메오네이다.[4] 한국 축구가 중국보다 수준이 높은 건 명백한 사실이지만, 외국인인 키케의 입장에서는 두 나라의 실력차가 크게 느껴지지 않을 것은 물론 아시아 축구에 대해 아는 게 없을 것이다.[5] 약 100억을 불렀다고 한다. 한국 대표팀 연봉의 2배 이상. 거기에 상하이 선화는 황사머니를 가진 클럽팀이고 국가대표팀과는 달리 자기가 쓰고 싶은 선수를 얼마든지 데려올 수 있다.[6] 이는 대다수 유럽 축구에 종사하는 지도자들이 가지고 있는 마인드이다. 역시 대표팀 감독에 협상했던 다른 감독들 또한 이런 이유를 들어 한국 대표팀 감독직을 고사했다.[7] 거기에다 한국 축구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는 모양이였다. 김판곤 선임 의원장이 키케에게 한국 축구를 아냐는 질문에 웃으면서 잘 모른다고 답하고 손흥민 정도만 알고 있고 또 생각하면서 기성용도 안다고 할 정도로 한국축구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다.[8] 상하이 선화 → FC 지롱댕 드 보르도[9] 톈진 취안젠 → FC 지롱댕 드 보르도[10] 충칭 리판 →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11] 허베이 화샤, 2017년 리그 4위[12] 상하이 상강, 2017년 리그 2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