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츠나미 카즈요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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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立浪 和義 (타츠나미 카즈요시)
생년월일
1969년 8월 19일
국적
일본
출신지
오사카부 스이타시
포지션
유격수, 2루수, 3루수, 외야수
투타
우투좌타
학력
PL학원고등학교
프로입단
1987년 드래프트 1위
소속팀
주니치 드래곤즈(1988~2009)
'''1988년 센트럴리그 최우수 신인'''
1987년
아라이 유키오
(야쿠르트 스왈로즈)

'''타츠나미 카즈요시'''
'''(주니치 드래곤즈)'''

1989년
토마시노 켄지
(야쿠르트 스왈로즈)
1. 개요
2. 선수 생활
3. 은퇴 이후


1. 개요


일본의 前 프로야구 선수. '''미스터 드래곤즈'''라고 불리는 주니치 드래곤즈의 대표적인 프랜차이즈 스타로, NPB 통산 최다 2루타 기록(487개) 보유자이기도 하다. 선동열, 이상훈, 이종범, 이병규가 이 팀에 진출했을 때 한솥밥을 먹은 적이 있다.

2. 선수 생활


키요하라 카즈히로등을 배출한 야구명문 고등학교인 오사카 PL학원 출신으로 1988년 주니치 드래곤즈에 고졸 신인으로 입단하였다. 처음 맡은 포지션은 유격수로, 그 해에 주니치의 리그 우승에 공헌한다. 신인왕은 물론 고졸신인 최초로 골든글러브를 수상하게 된 건 덤. 다음 해에는 소포모어 징크스를 보이며 30경기밖에 출장하지 못하나, 3년차 시즌인 1990년 이후부터는 2005년까지 주니치 내야 중 어느 한 자리의 주전 자리를 놓치지 않는다. 1992년에는 2루수로 전향하였고, 1993년 당시 2루수로서는 연속 무실책 기록을 작성하였다.[1]한다. 이후 2000년대에는 3루수로 전향하였으며, 말년에는 좌익수로 출장하기도 하는 등 어느 포지션을 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유격수(1988), 2루수(95,96,97), 3루수(2003) 부문에서 모두 골든글러브를 차지한 이력이 있는 수비의 달인으로 평가받았다.[2]
타격에서는 1990년부터 2005년까지 16년 연속으로 세자리수 안타를 기록할 만큼 꾸준한 모습이 강점이었다. 또한 독보적인 2루타 생산능력과 더불어 매년 두 자릿수 안팎의 홈런을 때려낼 만큼 갭파워도 보유한 타자였다.
2003년에는 33세의 나이에 개인 통산 2000안타를 달성했으며 이듬해인 2004년에는 타율 .308, 5홈런 70타점의 성적으로 3루수 부문 베스트나인에 올랐다.[3] 워낙 빠른 페이스라 통산 3000안타도 가능하지 않겠느냐는 전망이 나오기도 했지만, 이후 급격히 기량이 하락하며 2006년부터 주전 자리에서 내려오게 되고, 말년에는 대타 요원으로 출장하다가 2009년 끝으로 은퇴하였다. 2009시즌 중인 2009년 5월 22일에는 성추문 의혹으로 물의를 일으켜 개인적인 흑역사를 만들기도 했다. 관련내용

3. 은퇴 이후


2013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일본 야구 국가대표팀에 타격코치로 참가하였다. 프랜차이즈 스타라는 상징성 등을 감안할 때 차기 주니치 드래곤즈 감독감 1순위로 점쳐졌으나, 2013년 최근 10년간 최악의 성적을 찍은 타카기 모리미치 감독의 실각 이후 2014년 시즌에 GM으로 오치아이 히로미츠 전 감독이 프런트로 복귀하고 현역 포수인 다니시게 모토노부가 선수 겸임 감독으로 취임하게 되면서 일단 몇 년간은 해설자로 주로 활동하게 되었다.
그 후 2016시즌 도중에 다니시게의 사임 으로 공석이 된 2016년 오프에도 타츠나미를 감독으로 밀자는 이야기가 주니치 팬들에게서 나왔지만 대부분의 언론은 오가사와라 미치히로로 추측하더니 선수시절 코치인 모리 시게카즈에게 감독직이 넘어갔다. 모리 감독 사임 이후 감독직도 요다 츠요시에게 넘어갔다.
2018년 7월에는 팀 동료였던 오치아이 에이지를 격려하기 위해 한국을 찾아왔다고 한다.
2019년, 기자단 투표로 일본야구 명예의 전당인 야구전당에 헌액되었다.
[1] 이 해에 수비율 0.997을 기록했지만 골든글러브는 한신 타이거스와다 유타카가 가져간다.[2]세이버메트릭스적인 분석에 의하면 타츠나미의 수비지표는 센터 내야수로서는 상당히 좋지 못한데, 특히 수비범위 관련 지표가 매우 낮다. 당시에도 타츠나미의 수비에 대한 호평은 포구, 풋워크, 송구 안정성 등 '기술적 측면'에 집중된 경향이 있었다.[3] 단 이것은 리그 우승 프리미엄으로 인한 것이었다는 게 중론. 멀리 갈 것도 없이 야쿠르트 스왈로즈이와무라 아키노리는 '''타율 .300, 44홈런 103타점'''의 괴물 성적을 냈지만 타츠나미의 우승 프리미엄에 밀려 베스트나인에 선정되지 못했다. 희한한 것은 그럼에도 수비를 평가하는 골든글러브는 이와무라가 가져갔다는 것. 이 해는 리그 전반적으로 타고투저 경향이 강해 강타자들이 속출하는 가운데서도 넓은 홈구장에서 수비적인 야구를 했던 주니치가 우승을 차지해 주전 1루수였던 와타나베 히로유키가 규정타석에 미달한 채 타율 .286, 2홈런 22타점으로 1루수로썬 너무 빈약한 타격성적을 기록했던 1루를 뺀 모든 내야 포지션(3루 타츠나미, 유격 이바타 히로카즈, 2루 아라키 마사히로-그렉 라로카 공동수상.)의 베스트나인을 가져갔다. 게다가 그 1루마저도 와타나베가 1루수 사상 첫 규정타석 미달 골든글러브 수상 기록을 세웠다. 해당 포지션의 강타자들에게는 안타까운 일일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