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피로게니투스
'''Born in the Purple'''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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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로마 제국의 '재위 중인' 황제와 황후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들을 일컫는 말.[1] 콘스탄티노플 동남부의 마르마라 해가 내다 보이는, 대황궁의 포르피라(Porphyra)라는 황후 전용의 산실에서 태어난(Genitus) 아이들을 의미하여, 동로마 제국의 제위 계승권이 있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기도 하다.
찬탈이 빈번했던 제국에서 그나마 안정적인 세습을 위한 장치이자 계승의 중간 과정의 역할을 수행했다. 찬탈을 통해 제위에 오른 황제이더라도 재위 중에 자식을 보면 이들은 포르피로예니토스로 인정받았고, 아버지와는 달리 찬탈과 그 과정에서 수반한 행위에 대한 도덕적·윤리적 채무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다.[2] 또한 아버지가 훌륭한 통치를 했을 경우 그 덕을 보기도 쉬웠다. 특히 왕조의 지속 기간에 비해 찬탈 위협이 많았던 마케도니아 왕조의 황자들과 황녀들이 덕을 상당히 보았다.
포르피로예니티인 황녀의 경우 다른 나라에 시집 가는 것이 지양되었지만, 바실리오스 2세의 경우 누이를 처음으로 시집 보내 많은 외교적·군사적 이득을 보았다. 물론 제국의 상황이 악화되는 말기에는 그런거 없다가 되어 그냥 시집 보내졌다(...).
포르피로예니토스인 것이 전가의 보도는 아닌지라 권력 기반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이것 하나만으로 버티기는 어려웠다. 알렉시오스 2세가 좋은 예인데, 명군 마누일 1세의 적자였지만 당숙 안드로니코스 1세에게 선임 황제 자리를 내주고 나중엔 살해당했다. 물론 명불허전이라 마누일의 치세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이 폭거를 듣자마자 반란을 일으켰다.
2. 기원
이견이 많긴 하지만, 대체로 콘스탄티노스 5세가 하자르족 출신 이리니와의 사이에서 본 레온 4세를 시초로 본다. 레온 4세는 콘스탄티노플 동남부의 마르마라 해가 보이는, 대황궁 옆 부콜레온 궁의 보라색[3] 으로 둘러싸인 포르피라(Porphyra)라는 방[4] 에서 태어났고 이후 이것이 전통이 되고 의미가 덧붙여지면서 특별해졌다.
보라색과 로마 제국의 이미지가 덧씌워져서 그렇지, 왕과 왕비의 적장자, 그중에서도 부모가 이미 왕위에 오르거나 왕위계승자이던 시기에 태어난 자식이 비범한 혈통적 정통성을 가졌다고 여겨졌던 것 자체는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 당장 조선 왕조의 경우를 보더라도, 성종의 경우 연산군이 태어나자 임사홍을 비롯한 신하들이 "지금까지 세자 저하들이 모두 사저에서 태어나 이런 경사가 없었습니다"라고 경하를 올렸을 정도. 그리고 아버지 문종이 세자였던 시기에 태어난 단종에 대한 설명에서도 '사실상 조선의 역대 국왕 중 가장 강력한 정통성을 가졌던 인물'이라는 평가가 빠지지 않는 것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왕의 적장자 중에서도 왕이 이미 즉위한 상태 또는 확고한 계승자로 여겨지던 상태[5] 에서 태어난 사례의 경우 더욱 특별하게 여겨졌던 것. 이외에도 사산 왕조의 샤푸르 2세 같은 경우도 '태어나면서부터 황제'였다는 점에서 특별한 정통성을 가졌다고 여겨진 사례가 있다. 이는 말하자면 왕조 국가에서 정통성의 가장 중요한 기반 중 하나는 혈통이고, 혈통이란 후천적인 노력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것인 만큼 태어나면서부터 잠정적 왕위(제위) 계승자로 여겨진 인물이 왕위 계승자로 여겨지지 않다가 그 자리에 오른 인물보다 더 비범한 혈통적 권위를 가진 인물로 여겨진 사례들이라 해야 할 것이다.
(어째서인지 그 연산군과 그 단종의 운명은...)
3. 유명한 사례
이 중 유명한 것은 레온 6세의 아들인 '''콘스탄티노스 7세'''와 콘스탄티노스 8세의 딸들인 '''조이''', '''테오도라''' 그리고 알렉시오스 1세의 장녀 '''안나 콤니니'''이다.
뛰어난 행정가이자 입법가였던 레온 6세는 오랫동안 적자를 못 봤다. 첫째 아내와의 사이에서는 자식이 없었고, 둘째 아내와의 사이에서는 딸 하나만을 보았다. 삼혼을 위해 교회법에서 요구하는 고된 참회 끝에 결혼한 셋째 아내는 출산 중에 죽었다. 결국 레온 6세는 애인을 들여서 임신시켰는데, 이에 교회 측에서는 '사혼(四婚)은 짐승들이나 할 짓'이라며 네 번째 결혼에 대해 경고했다. 결국 동거 상태를 유지하던 아내를 출산 후에 수녀원으로 보내는 대신 아들의 세례성사와 견진성사를 받고 적자로 인정받기로 했는데, 레온 6세는 포르피라에서 태어난 아들이 성사를 받자마자 아내를 다시 황궁으로 불러들여 황후로 맞아들였다. 이에 세계 총대주교는 길길이 날뛰어 황제를 파문하는 등 갈등을 벌였고, 결국 파문을 거두는 대신 사혼불가에 대한 법을 명문화 시키는 것으로 아이를 적자로 인정했다. 하지만 이러한 레온 6세의 진땀나는 고생은 헛되지 않아서[6] 콘스탄티노스 7세가 장인 로마노스 1세와 그 아들들에게 찬탈 압박을 받는 와중에도 버티는 원동력 중 하나가 되었고, 그의 조부와 아버지의 치세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지지를 기반으로 제위를 되찾게 해주었다. 이렇게 말많은 출생부터 탈 많은 황제까지의 길에 우여곡절이 많았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콘스탄티노스 7세는 자신의 저서 '궁중 예법(Περὶ τῆς Βασιλείου Τάξεως))'에 포르피로예니토스에 대해 따로 기술하였고, 그렇게 '보라색 방에서 태어난 자'들 중 가장 유명한 이가 되었다.
조이와 테오도라 여제의 경우 마케도니아 왕조의 말예이자 포르피로옌니티였기에 미하일 5세를 몰아내고 다시 권력을 찾을 수 있었다. 물론 콘스탄티노스 7세의 경우처럼 전임자들에 대한 좋은 기억 - 특히 백부 바실리오스 2세라던가 - 도 그러한 요인들 중에 하나였겠지만 말이다.
안나 콤니니의 경우는 위의 두 사례들과는 조금 다른 의미를 가진다. 어쨌든 아버지가 찬탈자 황제였고, 전 황실이었던 두카스 가문 출신 황후와의 사이에서 난 첫 아이였으며 동시에 두카스 가문 출신 황태자의 약혼녀로서 두 가문의 결합과 황실의 정통성을 상징했기에 여러가지로 특별한 대우를 받았다.[7] 그래서인지 남동생 요안니스 2세 대신에 남편을 통해 차기 제위를 노리기도 했고, 이후에 알렉시아스를 포르피로예니토스에 대해 기술하기도 했다.
4. 그 외
- 크루세이더 킹즈 2에서는 이를 구현하여 현직 황제의 자식이 태어나면 이벤트 창이 따로 뜨며, 자식은 전용 특성(Trait)을 가지게 된다. 이 특성은 매달 명성(Prestige)이 0.50씩 증가하고, 봉신과의 관계도가 +5가 되는 효과가 있다. 또한 제위 계승에 있어서 제국 전용 선거제 내에서 조금 더 가산점을 받는 등의 효과가 있기도 하다. 다만 현직 동로마 황제의 손자는 황제의 후계자가 공동 황제인데도 포르피로예니토스가 못 되는 시스템상의 미구현점이 있다.
[1] 단, 계승 예정자인 황태자도 대체로 공동 황제이기에 그 자식도 포르피로예니토스로 인정받았다.[2] 찬탈자가 아들과 함께 공동 황제로 오르는 경우가 있었기에, 최소한 손자나 증손자 정도부터는 확실한 포르피로예니토스가 나타났다.[3] 19세기까지도 보라색은 그 색을 내는 데 막대한 비용을 필요로 해 중세 당시에는 매우 높은 지위의 명사들만 사용할 수 있는 색이었다. 보라색 문서의 '고귀한 색' 부분을 참조하자.[4] 보라빛을 띄는 이집트산 반암석으로 건축한 방에 보라색 비단을 둘렀다.[5] 로마 제국의 경우 복수 황제 전통이 있어 공동 황제로 임명받는 것이 왕위 계승자의 자격을 입증하는 과정이었던 것. 공동 황제 전통이 없던 조선 왕조의 경우라면 '왕세자 책봉' 정도가 이와 비슷한 의미를 가진다고 봐야 할 것이다.[6] 황후가 아닌 아내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교회법의 인정을 받지 못한 혼인 관계에서 태어난 아들은 정통성에 흠결이 있으리라 생각했을 것이다.[7] 다만 이후에 두카스 황실의 황태자 콘스탄티노스 두카스와의 약혼은 파기된다.[8] 게임 시스템 상 한계이니 어쩔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