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고등학교

 




'''포항고등학교'''
浦項高等學校

'''POHANG HIGH SCHOOL'''
[image]

<colbgcolor=#0174df> '''교훈'''
성실, 자율, 신념
'''개교'''
1951년 10월 20일
'''교조'''
갈매기
'''교화'''
개나리
'''교목'''
느티나무
'''유형'''
과학중점고등학교
'''성별'''
남자고등학교
'''운영형태'''
공립
'''소재지'''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아호로 50
'''홈페이지'''

(학교알리미)
1. 개요
2. 역사
3. 연혁
4. 교가
5. 교복
6. 시설
6.1. 본관
6.2. 신관
6.3. 청운관(체육관))
6.4. 식당, 청운학사(기숙사)
6.5. 웅비탑
6.6. 교가탑
6.7. 호국학도충의탑
6.8. 총동창회관
7. 이용가능한 대중교통
8. 출신 인물
9. 여담

[clearfix]

1. 개요


[image]

''' 성실(誠實) · 자율(自律) · 신념(信念) '''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아호로 50 (학산동 288번지)에 있는 학교로, 1951년 개교하였다.
2020년 3월 기준으로 졸업생이 24,093명이 배출되었으며, 재학생은 27학급, 607명이다. 교직원은 현재 62명이 재직중이다. 포항 지역민들이 흔히 부르는 학교 약칭은 '포고(浦高)'

2. 역사


[image]
[image]
▲첫 교사였던 대신동 교사. 현재 선린한방병원이 있는 위치이다.
▲대신동 교사 시절. 사진 아래쪽이 학교.
포항고등학교의 전신으로 볼 수 있는 포항공립중학교는 1943년 개교했다. 개교 당시에는 4년제 였다가, 해방 후 6년제로 변경되었다. 포항공립중학교 졸업생은 졸업횟수는 부여받지 못했으나, 행사 등을 할 때 포항고 졸업 동문으로 인정받는다. 이후 1951년 학제 변경에 따라 포항공립중학교는 포항중학교 (3년제)와 포항고등학교 (3년제)로 분리되고, 1951년 8월 13일 6학급으로 포항고등학교가 정식으로 인가받는다.
개교 당시에는 두호동 우역검사소를 가교사로 사용했다. 1952년 제1회 졸업생을 배출하였고, 정식 포항고등학교 첫 입학생은 1954년 4회 졸업생이다. 1954년 부지를 기증받아[1], 두호동 가교사에서 대신동 교사로 이전했다.[2] 이후, 1984년 現 학산동 신축교사로 이전한다. 대신동 교사는 포항고가 이전한 후, 항도여중이 사용하였다. 2000년 항도여중이 죽도동으로 이전하면서 대신동 교사는 방치되어 있다가 선린병원에서 부지를 매입해 선린한방병원을 신축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포항고 학생들도 학도의용군으로 참전하였다. 특히 포항지구 전투[3]에서 많은 학도의용군들이 전사하였다. 이를 기리기 위해 학교 안에 호국학도충의탑이 세워져 있으며, 6월이 되면 추념식을 거행한다.
1960년 3월 8일, 대구에서 일어난 2.28 학생민주의거의 영향을 받아 포항고 학생 2백여명도 포항 시가지에서 자유당 정권 규탄과 학원 자유화 등을 외치며 시위에 나섰다.[4] 이후 일어난 4.19 혁명에도 많은 포항고 학생들이 참가하여 부정선거와 자유당 정권을 규탄하는 시위를 벌였다.

3. 연혁


시기
내용
1943년 03월 31일
포항공립중학교 설립 인가
1943년 04월 16일
포항공립중학교(4년제) 개교
1945년 11월 05일
6년제로 학제 변경
1951년 07월 18일
학제 변경에 따라 포항중학교(3년제), 포항고등학교(3년제)로 분리
'''1951년 08월 13일'''
'''포항고등학교 설립 인가 (6학급)'''
'''1951년 10월 20일'''
'''개교식, 초대 문기석 교장 취임 (두호동 가교사)'''
'''1952년 03월 21일'''
'''제1회 졸업식 거행 (졸업생 수 119명)'''
'''1952년 04월 21일'''
'''1952년도 입학식 거행 (첫 입학생, 4회 140명 선발)'''
'''1954년 09월 01일'''
'''대신동 신축교사로 이전 (대신동 74번지 일대)'''
1976년 01월 19일
부설 방송통신고등학교 설립인가(9학급)
'''1984년 01월 18일'''
'''現 학산동 신축교사로 이전 (학산동 288번지)'''
1985년 02월 15일
체육관 준공
1994년 09월 15일
청운학사 (기숙사) 개관
2010년 03월 01일
자율학교 지정 운영 (~2019.02.28)
2011년 03월 01일
교육과학기술부지정 과학중점학교 운영 (~2022.02.28)
2019년 09월 01일
제27대 김영석 교장 취임
2020년 02월 11일
제69회 졸업식 (졸업생 235명, 누계 24,093명)
2020년 02월 16일
제42회 포항고 부설 방송통신고 졸업식 (졸업생 66명, 누계 5,188명)
2020년 03월 02일
신입생 207명 입학

4. 교가


[image]
후렴구에서 기합을 넣는 전통 아닌 전통이 있다. 안 넣어주면 뭔가 허전하다.

5. 교복


[image]
교복이 굉장히 심플하다. 마이와 셔츠가 끝이다. 조끼도 없고 넥타이도 없다. 단순한 체크무늬 마이라 멀리서 보면 흥해공고생과 구분이 안 된다. (흥해공고 교복도 단순한 체크무늬이나 바탕색깔이 다르다.)
하복 역시 단순한 하얀색 반팔 셔츠이다. 명찰 색깔은 노랑, 파랑, 초록을 사용하며. 명찰 왼쪽 가에 세로방향으로 '포고'가 적혀있다.
포항 고등학교 교복 중에선 꽤나 구린 편이다. 다만, 영신고나 중앙고 교복보단 나은 편이다.

6. 시설



6.1. 본관


[image]
1984년 준공. 학교의 메인 건물. 시설이 많이 낙후되어 있어 2010년 리모델링을 거쳤다. 리모델링 이전에는 '浦高人의 殿堂(포고인의 전당)'이라는 한자 부착물이 있었으나, 리모델링을 거치면서 없어졌다. 포항고 교표 자리는 리모델링 당시에는 시계가 설치됐으나, 현재는 교표로 가린 상태이다. 3학년 교실과 교장실, 행정실 등이 있다.

6.2. 신관


1984년 준공. 본관 뒤에 있는 건물. 본관과 마찬가지로 2010년 리모델링을 거쳤다. 본관 중앙 현관과 통로가 연결되어 있어 비 오는 날에도 비를 피해 다닐 수 있다. 1학년, 2학년 교실과 매점이 위치하고 있다.(매점은 2020.12.1부로 사라졌다.)

6.3. 청운관(체육관))


[image]
1985년 준공된 건물. 2017년 포항 지진으로 인해 외벽이 갈라지는 등 피해를 입었다. 이로 인해 리모델링이 진행되었다. 리모델링이 진행되면서 비를 피할 수 있게 본관, 신관과 통로가 연결되었다. 학교 정문에서 보이는 교가탑 갈림길에서 왼쪽 갈림길로 올라가면 보이는 건물. 실내 체육수업과 웅비축제, 체육대회 등이 열리는 장소다. 수능 예비소집이나 시 주최 체육대회 등 각종 행사에도 많이 사용된다. 체육관 야외에는 테니스 코트도 있다.

6.4. 식당, 청운학사(기숙사)


1994년 준공. 청운학사 구관 1층은 식당으로 사용되며, 2층부터는 기숙사로 사용 중이다.
기숙사 관련 사항은 하단 참조.
★ 청운학사 시설 현황(2010년 증축 및 리모델링)
1. 침실 수 : 43실(4인 1실 기준)
◦ 신관 : 14실. 샤워실, 욕실, 베란다 있음. 남향으로 채광이 좋음, 천장형 냉난방기
◦ 구관 : 29실. 에어컨.
◦ 각 실마다 개인별 사물함(옷장 포함) 비치
2. 독서실 : 174석 규모
◦ 18:30 ~ 21:30 야간자율학습
포항고 기숙사의 정식 명칭은 청운학사이며, 일부 학생들이 거주하고 있다. 입사할 때 뽑는 기준이 거리점수 + 성적점수이며 입사 일시는 매년 3월 1일이다. 기숙사 규정 중 스마트폰을 비롯한 전자제품 등의 반입금지 규정이 있는데, 사실상 유명무실한 규정이다.[5]
현재 1,2학년은 야간자율학습을 청운학사에서 진행한다.
2019학년도부터는 기숙사 신입생을 뽑지 않으며 앞으로 기숙사를 폐지할 예정이다.

6.5. 웅비탑


[image]
1988년 완성된 조형물. 공식 명칭은 '웅비탑'이나 아무도 그렇게 부르지 않는다. [6] 우뚝 솟은 바위는 아이를 안은 어머니를 상징하며, 중앙의 바위에는 학교의 교훈을 새겼다. 양 옆의 바위[7]는 어머니의 자식을 의미한다.
웅비탑의 건립과 관련된 유명한 설이 있다. 현 부지에서 학교 공사를 하던 도중 수맥이 발견되었고 음기가 강한 땅인 것으로 밝혀져 음기를 누르기 위해 양기를 상징하는 석물을 세우게 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위의 설은 모두 사실이 아니다. 1988년 당시 학교에는 공사가 전혀 없었으며, 따라서 수맥이 발견된 일도 없었다.

6.6. 교가탑


[image]
2011년 포항고 60주년을 기념하여 제작된 탑이다. 양팔을 벌린 사람 형상 뒤로 학교 교표와 교가가 적혀 있다.

6.7. 호국학도충의탑


[image]
2000년 한국전쟁 당시 격전지 중 한 곳이였던 포항지구 전투에서 전사한 포항고 학도의용군들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탑이다. 탑 하단부에는 '祖國統一(조국통일)' 이라고 적혀 있다. 본관에서 식당 가는 길에 보인다. 매년 6월이 되면 학도의용군들을 기리기 위해 추념식을 연다.

6.8. 총동창회관


[image]
1999년 준공. 학교에서 포항세관 쪽으로 내려오면 보이는 건물. 포항고등학교 총동창회에서 사용하는 건물이다. 학교 운동장 바로 옆에 붙어있으며 운동장과 바로 연결되는 문이 있다. 지각생들이 몰래 들어가는 주요 통로. 언제부터인가 문을 잠갔지만, 지각생들은 이에 굴하지 않고 문옆 철망을 넘어간다.

7. 이용가능한 대중교통



8. 출신 인물



9. 여담


  • 신입생들은 배치고사를 치게 되는데, 배치고사 성적에 따라 특반과 평반을 나눈다. 1학년은 1반과 5반이 특반이다.[9] 2018학년도부터 교육청 지침으로 인해 특반을 나누지 않고 성적순으로 과중반 지원자를 뽑았다. 대신 모의고사 성적 순으로 지원자를 받아 야자를 따로 시키는 웅비실 제도를 운영 중이다. 자습실에 가벽을쳐서 자습을 하기에 큰 메리트는 없다. 다만, 웅비실에 있는 학생들은 따로 봉사 활동 같은걸 한다.
  • 2학년부터는 1~4반은 인문계, 5~8반은 자연계 반으로 나뉘었으나, 2017년의 2학년은 자연계학생의 증가로 1~3반이 인문계, 4~8반이 자연계이다. 그리고 포항고는 과학중점학교라 2019년 기준 1,2학년은 8, 9반이 과학중점반이다. 교내 과학 경시 대회가 열리면 과학중점반이 상을 휩쓸어가며, 일반반과 수업 진도도 차별화 되어있다.
  • 입학식 때 총동창회, 포항시장학회, 포항시의사회 등에서 장학금을 많이 준다. 물론, 고등학교라 받는 인원은 소수.
  • 2013년 3월 9일 포항시 북구 용흥동 인근에서 발생한 산불이 바람을 타고 학교까지 번졌다. 불씨가 날라와 학교 안 잔디에 옮겨붙었고, 오후 자습중이던 학생들은 대피하였다.
  • 2017년 11월 15일 2017년 포항 지진의 여파으로 인하여 학교 건물과 체육관에 금이 가는 등 피해를 입었다.
  • 야간자율학습은 2019년 기준으로 3월은 야자를 무조건 하지만 그 이후로는 1,2학년에 한해 쭉 자율이다. 다만 3학년은 1년 내내 강제 야자를 한다.(다만 현재는 정시보다 수시로 대학가는 학생들이 많아진 관계로 3학년들도 대부분 야자를 안한다. 담임들도 강제로 시키려고 하지 않는다.)
  • 2019년 4월부터 1, 2학년은 기숙사 독서실에서 야자 및 토요 자습을 실시한다. 1학년은 독감 환자가 발생해 5월부터 실시했다.
  • 비평준화 시절에는 전통 명문 포고 vs 신흥 명문 제철의 라이벌 구도가 있었다. 포항고가 북구에 위치한 공립, 남고였다면 제철고는 남구에 위치한 사립, 남녀공학이라는 점이 비교 대상이었다. 입시 결과에서는 약간 제철고가 앞서는 편이었다.
  • 이명박 정권 내내 실세로 군림했던 '영포라인'의 주축 학교이기도 하다. 포항지역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드러내는 예. 21대 총선에서도 포항고 출신 김병욱(1977)이 당선되었다. 지역사회 영향력과 학교 위치(북구 학산동) 덕분에, 학생과 학부모들의 인식 역시 굉장히 좋은 편이다.
  • 포항에서 가장 넓은 부지를 가진 고등학교이다. 약 14000평 정도 된다. 특히 운동장이 매우 넓다.
  • 2000년대까지는 포항여고와 교류가 많았다. 연합 동아리도 많았고 축제도 연합으로 같이 진행했다. 2010년대 들어와서는 포항여고와의 교류는 거의 사라졌다. 2019년도에는 포항여고와 연합축제를 진행했다.
  • 청운학사(기숙사) 신관 일부 호실에서는 불빛축제 관람이 가능하다.
  • 영일대해수욕장이 가까이에 있다. 야자 째고 바다 보러가거나, 기숙사에서 밤에 몰래 나와 놀기도 한다.


[1] 증. 항도조선소 대표 김춘생[2] 연세 많은 어르신들이 떠올리는 포항고의 첫 모습은 대신동 시절 모습일 것이다. [3] 이를 배경으로 한 영화가 바로 포화속으로[4] 1960.04.25 동아일보 석간 참조[5] 과거에도 학교 내부에서 스마트폰 사용은 엄격하게 단속했으나, 기숙사 내부에서 사용하는 것은 아무도 터치하지 않았다.[6] 거의 다 조ㅈ바위라고 부른다.[7] 하필이면 이 바위 덕분에 특정 모양과 더 닯게 되었다.[8] 당선 무효[9] 2017년에는 배치고사를 실시하지 않고 고입과 중학교 내신성적으로 특반과 평반을 나누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