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쿠바 관계

 



[image]
[image]
'''대한민국'''
'''쿠바'''
1. 개요
2. 역사적 관계
2.1. 20세기
2.2. 21세기
3. 문화 교류
4. 대한민국에서 가는 법
5. 대사관
6. 관련 문서


1. 개요


대한민국쿠바의 관계. 현재 기준으로 쿠바시리아와 함께 대한민국수교하지 않은 국가이다.[1][2]

2. 역사적 관계



2.1. 20세기


20세기에 멕시코에 거주하던 한인 일부가 쿠바로 이주한 적이 있었다. 쿠바에 정착한 한인들은 쿠바에 정착한 뒤에도 한국의 독립운동을 지원했고 쿠바에서도 한글학교를 세우는 등 정체성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을 했다. 이후에 쿠바에 정착한 한인 후손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쿠바인들로 동화되었다.
한때 공산주의 혁명 이전까지는 1950년 한국전쟁 발발 때 바티스타 정부가 UN의 대한(對韓) 지원에 적극 동참하여 물자원조를 보내주었던 국가로 이 때까지는 한국이 고마워해야 할 나라 중 하나였다.
그러나, 1959년 카스트로가 쿠바 혁명을 일으키게 되면서 한국과의 교류를 단절하고[3] 이후로 극도의 공산국가로 변모하여 국제사회에서 북한, 시리아 등 일부 사회주의 국가들과 함께 한국의 입장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 태도를 취했고 주한미군의 주둔을 문제삼아 한국을 미국의 식민지나 다름없는 국가라는 주장도 펼쳤다. 북한의 외교적 주장을 그대로 답습한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인들은 정권이 바뀐 쿠바에서 사실상 무국적 상태였음에도 대부분 대한민국 국적을 포기하지 않았다. 쿠바 혁명이후 체 게바라가 쿠바에 사는 한인들이 남북한 모두 같은 민족이라고 생각하고 민심수습 차원으로 당시 쿠바와 수교를 맺기 직전의 북한 측에 같은 민족끼리 서로 돕는 게 어떻겠냐고 인도적으로 서로 친하게 지내라고 권장했다.
하지만, 정작 북한은 그런 생각은 전혀 하지 않고 그저 한인들에게 사상전향을 강요하려고 한인들의 집을 의도적으로 방문했다가 집집마다 3.1 운동 직후 한인들이 태극기를 들고 쿠바에서 대한독립만세를 부르는 사진이 액자에 담겨 있거나 혹은 집에 태극기가 걸려있는 모습을 보고 애꿎은 한인들에게 반동이라고 쌍욕을 퍼붓고 가버렸다.(...) 그 직후로도 한인 사회를 분열시키려고 여러 공작을 했고 심지어 조총련의 재일교포 북송처럼 거짓선전과 공작으로 쿠바에 있던 일부 한인들을 납북시켰다. 자신들을 인정하지 않는 쿠바 한인들의 존재에 대해 침묵하고 있다. #
1988 서울올림픽 때는 IOC 회원국임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동조에 맞춰 아예 불참해버리기도 했다. 하지만 서울올림픽 직후에 냉전 구도가 붕괴되면서 쿠바도 대한민국과 점차 관계를 회복하려고 하였다. 1992년 양국 체육관련장관 회담이 개최되어 스포츠 교류의 길을 텄다. 1997년 무주 동계 유니버시아드 대회에 쿠바가 불참했지만, 이는 적대적인 관계때문에 불참한 것이 아니라, 쿠바 자체가 동계 대회에 참가할 여력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도 같은 이유로 불참. 동계 스포츠가 돈이 많이 드니까 어쩔 수밖에... 1997년에는 양국간의 협력의정서가 체결되었다. 이후에도 관계가 점점 좋아지고 있다.

2.2. 21세기


2001년에 이만섭 국회의장이 쿠바를 방문했다. 방문 당시에 피델 카스트로와 만나기도 했다. 이만법 국회의장을 방문 후, 2005년 9월에는 쿠바의 수도 아바나에 KOTRA 무역사무소가 개설되는 등 양국 관계가 점차 변화되어가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경제, 문화적인 관계 개선일 뿐, 아직 전격적인 관계 개선은 아니다. 여전히 쿠바와 대한민국의 외교관계 수립은 미정이다. 그렇지만 정치적인 관계가 그럴 뿐이지 경제적으로는 한국산 전자제품들이나 중고버스(...)가 상당수 돌아다니고 있을 정도로 교류는 예상 외로 활발하며 쿠바의 무역대상국 10위 안에 한국이 들 정도다. 또 2002년 7차 교육과정 때 초등학교 6학년 도덕 교과서에 쿠바 한인들의 초기 이민사가 소개되기도 했다.
2016년 6월에 윤병세 외교부장관이 국무위원으로서 최초로 단교 이래 57년만에 방문해 브루노 로드리게스와 만났으나, 당국자의 말에 따르면 쿠바 국정을 장악하는 국가평의회가 한국과의 수교는 '공산혁명 동지인 북한하고 의리를 끊는 행위'라고 인식하기 때문에 외교상 장애 요인이 있다. 11월 피델 카스트로가 사망하면서 쿠바와 남/북한과의 관계에 변수가 생겼다. 북한과 쿠바의 우호 관계에는 피델 카스트로의 영향력이 컸기 때문에 이를 계기로 두 나라의 관계가 이전보다는 약해질 가능성이 생겼다. 북한도 이를 인지하고 쿠바와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카스트로에 대한 애도 기간의 공식 선포, 조기 계양, 김정은과 김영남 명의의 공식 조전, 최룡해가 단장을 맡은 대규모 조문단의 파견 등 각별한 노력을 기울였다. 대한민국은 윤병세 외교부장관 명의로 '서거'란 표현을 사용한 조전을 보냈으며, 조문단 파견도 검토하였으나 이는 불발되었다. 당시 대한민국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여파로 국내 정세가 대혼란 상태에 빠져서 쿠바에 대한 '조문 외교'를 행할 여력이 없었다. 게다가 오바마의 행정명령을 반대하는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정식 수교는 원점으로 돌아가는 듯했다.
최근 중국파나마와 외교 관계를 정식으로 맺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한국이 쿠바와의 외교 관계 회복 및 수교에 대해 급물살을 타려는 의도가 있었으나, 북한의 ICBM 발사 등 계속되는 도발 행위가 비대화하면서, 한국-쿠바 외교관계 수립에 난항을 겪는 등 커다란 부작용 역시 나올 수도 있다.
쿠바에도 한국인들의 후손들이 거주하고 있는데, 이들 쿠바인으로 동화된 한인 후손들중에는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 유학을 가면서 한국인의 후손임을 잊지 않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3. 문화 교류


쿠바에서도 한류가 인기를 끌면서 쿠바인들중에는 한국어를 배우고 유학을 오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다. 2018년 10월 30일에 코트라는 쿠바에서 한국과의 다양한 교류를 하는 '코리아 위크'를 개최하고 있다고 밝혔다.#
반크에서는 쿠바, 멕시코에서 각각 활동한 한국의 독립운동가인 임천택, 김익주 선생을 알리는 영상을 제작해 유튜브에 공개했다.# 그리고 강남대는 2년 연속으로 국제동포재단이 주관하는 멕시코와 쿠바 한인 후손 초청 직업연수 프로그램에 선정되었다.출처 재외동포재단은 멕시코와 쿠바의 한인 후손들을 초청해서 9월 27일까지 12주간 직업연수를 진행한다고 밝혔다.#
임천택 선생 사후에 쿠바 한인들을 이끌었던, 임천택 선생의 아들 헤로니모 임의 생애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헤로니모'가 2019년 3월 1일에 상영회를 가졌다.#

4. 대한민국에서 가는 법


의외로 미국 비자만 있으면 이제는 찾아가기 어렵지 않은 곳이 되었다. 출발지가 수도권이든 아니든 간에 미국 또는 멕시코까지만 가면 쿠바행 비행기 탑승은 그리 어렵지 않다. 인천 출발시 아에로멕시코를 타고 멕시코시티 국제공항으로 가면 되기에 굳이 미국 비자가 필요없지만, 표값 자체는 미국 경유가 제일 싸기 때문에 앞에다 ESTA를 적어둔 것. 부산을 비롯한 비수도권 출발은 얄짤없이 일본항공 - 아메리칸 항공 환승으로 가야 하므로 미국 비자가 필요하다. 실제로도 그렇게 쿠바를 여행하는 한국인도 많을 지경.

5. 대사관


양국은 미수교 상태이기에 상대국에 어떠한 외교공관도 두지 않았다.
대한민국은 주 멕시코 대한민국 대사관에서 쿠바를 관할한다.[4]
쿠바는 주 쿠바 일본 대사관에서 쿠바내 한국인들의 외교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6. 관련 문서


  • 대한민국/외교
  • 쿠바/외교
  • 주 멕시코 대한민국 대사관[5]
  • 주 쿠바 일본 대사관[6]
  • 대한민국/경제
  • 쿠바/경제
  • 대국관계일람/아시아 국가/동아시아 국가
  • 대국관계일람/아메리카 국가/카리브 국가
[1] 이 두 나라는 친북국가라는 공통점이 있다.[2] 반면, 일본은 쿠바와 외교관계를 맺고 있어서 한국과 달리 대사관이 존재한다.[3] 간혹 '단교'라고 하는데 정식으로 수교를 맺은 적이 없어 정확한 표현은 아니다.[4] 다만, 대사관이 없다보니 코트라에서 쿠바 업무를 일부 담당하고 있다.[5] 주 멕시코 대한민국 대사관에서 쿠바를 관할하고 있고 일부 영사 업무를 맡고 있다.[6] 쿠바 내 한국인들의 영사 업무를 일부 담당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