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경제

 


1. 개요
2. 생활수준
3. 역사
3.1. 스페인 지배 시절
3.2. 독립 - 공산주의 혁명 이전
3.3. 공산화 이후 - 냉전 종결
4. 현재
4.1. 미국의 경제제재
4.2. 중고품 천국
4.3. 농업과 식량 사정
4.4. 공산품
4.5. 개혁 시도
4.6. 최근의 경제난
4.7. 경제적 목적의 이주
5. 빈부격차
6. 산업구조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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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의 경제성장 추이
쿠바1990년대 공산권 붕괴 이전의 공산국가의 구조를 가장 잘 보존하고 있는 세계 최후의 공산국가이며, '''현재진행중인 나라'''이기도 하다. 나머지 공산주의 국가는 기간산업과 부동산의 국유화라는 기본적인 틀만 유지한 채 국유기업에 자본주의적 자율권을 주는 등 자본주의적 요소를 상당 부분 도입하였고 북한은 국유화의 기본적인 틀은 아직까지 유지하고 있으나 헌법상으로는 마르크스-레닌주의를 버린지 오래인데, 쿠바는 90년대 이전 공산주의적 경제 구조를 많이 유지하고 있다. 사실 쿠바도 1990년대 이후로는 소련 붕괴로 인해 발생된 경제난 해소와 관광업 진흥 등의 이유로 자본주의적 요소를 도입하는 정책을 펴고, 2019년에 개헌을 하면서 시장경제 제도 도입을 부분적으로 인정했기 때문에 100퍼센트 냉전시대 그대로는 아니긴 하지만, 2019년 현재까지도 다른 구 공산권에 비하면 박물관 수준으로 박제된 나라이다.
1990년대 이후로 미국의 경제제재를 받아 대외 경제 교류가 많이 어려운 편이다. 그렇기에 자급자족을 하려는 경향이 강한 편.
공산주의 국가라고는 하나 쿠바도 90년대 이후 경제개혁을 시도했고 이는 현재 진행형이다. 이건 쿠바에서 생존을 위해 중국과 베트남에서 진행되고 있는 개혁개방 정책을 참고한 결과이지만, 미국의 경제봉쇄가 유지되고 있는 상황에서 세계 각지의 제조업체들을 끌여들이기 난망하기 때문에[1] 자연히 쿠바의 자연 풍광과 따뜻한 날씨, 사회주의 국가라는 희소성과 비교적 안정적인 치안을 활용하여 주로 관광업 위주로 투자자금을 끌여들였고 그 때문에 제조업 위조로 성장한 중국, 베트남, 라오스와는 다른 경제구조를 지니게 되었다. 또한 그러면서도 사회복지제도가 충실히 유지되다보니 같이 경제개혁을 하기는 했지만 중국, 베트남, 라오스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 되어버렸다.[2]

진영에 따라 평가가 극으로 갈리는 게 특징이다. 우파에서는 쿠바가 지상의 지옥이며 국민들이 도망가는 나라라고 말하고 있고, 반대로 좌파는 미국의 제재[3]에도 불구하고 중앙아메리카에서 가장 잘 나가며 국민들이 사람답게 사는 곳이니 천국 아니냐고 말한다. 답부터 말하자면 둘 다 틀렸는데, 쿠바가 중앙아메리카의 파탄 지대 중심으로 보면 치안이 비교적 안정적이고 사회복지제도가 잘 갖추어져있으며 빈부격차도 비교적 적은 편이기 때문에 나쁘지 않지만, 절대적인 생산력 수준의 측면에서 보면 국민들이 구매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못 사는 나라인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분명 미국의 코앞에 위치한 나라로 수십년에 걸친 경제제재를 받았음을 감안한다면 나름 선방한 편이기는 하다. 1990년 소련 붕괴 이후, 교역이 활발했던 소련과 동구권이 몰락하면서 교역을 거의 할 수 없었고, 미국의 경제제재는 냉전 종식 이후에도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상당히 선방했다 할 수 있다.

2. 생활수준


1인당 GDP는 2020년 기준 약 10000$. 복지나 치안수준은 중남미에선 그래도 괜찮은 편인데다가[4] 197-80년대 수준은 아니지만 국가에서 이것저것 보장해주는건 많기 때문에 생활비도 높지 않다. 실업률도 1%대로 매우 낮다.
하지만 이중화폐 정책 때문에 체감 봉급이 낮은 편이라서 현지인들은 불만이 크다. 쿠바의 최저임금은 400페소이고 평균임금은 이보다 두배 가량 높은데 보통 1페소를 1달러로 환산했을 경우에는 쿠바인들이 중남미 기준으로 매우 풍족하게 먹고살아도 무리가 없는 수준이지만, 외국인용 화폐인 CUP을 기준으로 한다면 봉급 수준이 터무니없이 낮아지게 된다. 그런데 외제품 구매 및 고급레스토랑 출입 등 고급 취미생활을 즐기거나 환전을 하려면 외국인 화폐를 소지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전체 경제에서 암시장의 비중이 큰 편이다. 쿠바는 1인당 실질 GDP가 약 2만 달러에 달하지만, 이중화폐 정책으로 인한 엄청난 고환율로 인해 쿠바 페소화가 비정상적으로 자국내에선 고평가되어 있고, 국제 화폐 기준에서는 매우 저평가되어 있기 때문에 나타나는 수치이다. 전문가들은 쿠바의 1인당 명목 GDP를 약 7천 달러로 예상하며, 쿠바 내에서 생산되는 품목의 경우는 싼값에 거래되지만 수입 물품의 가격은 쿠바인 기준에서 매우 비싸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중화폐 정책 때문에 잠재구매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평이 많다. 비교적 높은 복지정책으로 쿠바의 자가주택보급률은 90%에 달할 정도로 타 중남미 국가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이 높고, 주택임대료로 나가는 비용 또한 몇푼 되지 않으며 교육비와 의료비로 나가는 지출이 많지 않아서 자영업 같은 사업을 벌이지 않는 이상 가계부채로 고생할 일은 없기때문에 중남미에서 유례없는 중산층 비율로 높은 소비력을 지닐수있겠지만 경제재제와 이중화폐정책으로 구매력이 제한되어있기 때문에 소비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구조인 것이다.
그러다보니까 현지인들 기준에서 봤을 때 체감봉급은 무척이나 낮게 느껴지고, 공무원들이나 국영기업 종사자들이 본업보다는 부업에 신경쓰게 만들어서 노동생산성도 떨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쿠바 정부에서도 이러한 정책을 폐기하려고 했지만 쿠바의 제조업이나 3차 산업이 크게 발달되지 않은 상황속에서도 외제품의 수입을 줄여서 무역수지나 경상수지 적자를 최소화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기 때문에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다. 이대로 가면 문제가 더 커질 수 있다는 것은 쿠바 당국도 인지는 하고 있기 때문에 2021년부터 화폐통합조치를 단행했다. 화폐 통합조치로 쿠바인들의 달러 기준 임금과 연금은 5배 가량 올랐지만 그 대신에 생필품과 공공요금도 많이 올랐기때문에 쿠바인 입장에서 마냥 좋은것만은 아니고 외국인들에게 더 이상 쿠바의 싼 물가가 매력적이지 못할듯하다.

3. 역사



3.1. 스페인 지배 시절


19세기 초 중남미가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해나가자 스페인은 쿠바를 거의 본토의 연장선상으로 취급하고 개발했다. 백인 비율이 다른 식민지와 이질적으로 높던 지역이라서(75% 정도) 단순히 플랜테이션 착취구조가 아니라 정상적인 사회적 인프라가 깔려있던 지역이고, 중남미 독립전쟁에서 고위관료-관직의 고학력 상류층 본토 충성파 백인들이 현물자산을 싸매고 우수수 쿠바로 피난오면서, 잘 가꾸어진 스페인 본토의 연장선상 신흥중심지 역할을 했다.
근대 스페인의 극심한 정치혼란으로 본국의 지식인-기술가-중산층 부터 서민층-빈농 까지 수많은 스페인인들이 이주해오는 본토보다도 더 전망이 좋은 지역이였지, 소수 크리요오들의 전근대적 과두독재 카르텔로 유지된 중남미 독립국과는 차원이 달랐다.

3.2. 독립 - 공산주의 혁명 이전


독립 이후로는 상당히 많은 개발이 이루어져서, 쿠바의 소득은 서반구 독립국 중 5위, 미국의 41%(1929년 기준)에 달했다. 이 수치는 당시 미국 미시시피 주나 사우스캐롤라이나 주 등 몇몇 가난한 주보다도 높은 것이었다.
또한 미국인의 관광지로서도 개발되어, 경마장이나 골프장, 도박장 등이 다수 세워졌다.
그러나 이 시기 쿠바 경제를 지탱했던 것은 뭐니뭐니해도 사탕수수담배(시가) 재배와 판매였다. 독립 이후 쿠바는 미국의 영향력 아래 들어가 미국의 설탕셔틀 역할에 충실했다. 이런 환금작물들의 유통과 판매는 미국 기업들이 독점하고 있었고, 재배 농가는 미국 기업들의 갑질로 인해 높은 소득을 올릴 수 없었다. 주요 산업인 설탕산업뿐만 아니라 다른 산업도 소수가 독점하는 건 마찬가지여서, 쿠바 혁명 직전 쿠바에서는 대부분의 금융기관과 발전회사 등이 미국 기업에 장악되었다. 처음 시작부터 이랬으니 새로운 산업이 생겨나도 곧장 미국인 기업들에 의해 독점되기 마련.
혁명 이전 1950년대의 쿠바는 당시 독재자 바티스타 가문과 미국인이 양분하여 소유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58년 통계에 비추어보면 미국 기업은 서비스 부분의 90퍼센트, 제당 산업의 40퍼센트, 그리고 경작 가능한 농지의 75퍼센트를 소유하고 있었다. 또한 미국 자본은 담배, 과일, 운송, 전기, 전신 및 은행 등도 장악하고 있었고 그나마 나머지 대부분의 국내 기업과 사탕수수 농지는 바티스타 일가의 소유였다.
결국 당시 쿠바는 소수 미국인들과 쿠바인들만 잘 살고 대다수 쿠바인들은 극도로 가난하고 만성적인 실업에 시달리는, 빈부격차가 심각한 국가였다. 실업률은 40%에 달했다. 도농격차도 엄청나게 커서, 혁명 직전 도시민들은 87%가 전기 공급을 받고 있는데 농촌 사람들은 10%만 제공받고 있었다. 극심한 빈곤 때문에 아바나 등의 도시로 이주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3.3. 공산화 이후 - 냉전 종결


공산화 이후로 전체 GDP의 2/3 이상을 차지하고 있었던 미국인 자본들은 모조리 몰수되어, 다른 공산주의 국가들처럼 모든 산업이 국영화되었다.
당연히 미국은 화가 머리 끝까지 나서 쿠바를 정치/경제적으로 압박했고, 이에 피델 카스트로소련과 협력하면서, 수출노선을 다변화하고자 하였다. 혁명 직전 쿠바는 수출의 90%를 미국이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수출 다변화는 체제 유지를 위해서도 중요했다. 소련은 미국 코앞에 공산주의 국가가 생긴 것을 반겨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1960년대에는 체 게바라가 주도하는 경제개혁은 토지배분과 빈부격차를 획기적으로 축소시켰지만 미국의 제재로 인해 큰 성과를 내지 못했다. 이에 1970년대와 80년대 전반기에는 노선을 전환했는데 이때는 나름대로 경제성장을 이룩했고, 중남미에서 무시못할 나라로 손꼽혔다. 그러나 1980년대 중반 이후로 소련의 침체가 가속화되며 쿠바의 경기침체가 시작되었고 급기야 소련이 붕괴되자 쿠바 경제에 큰 타격을 입히고 말았다.

4. 현재



4.1. 미국의 경제제재


냉전이 끝나고 더는 소련(그리고 그 후신인 러시아)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어진 1992년 미국이 '쿠바 민주화법(Cuban Democracy Act: CDA)'을 제정해 국내외의 '''모든 미국계 기업은 쿠바와 거래를 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1996년에는 '쿠바자유민주연대법(Cuban Liberty and Democratic Solidarity Act: CLDSA)'이 의회에서 통과되었는데 대략적인 골자는 이렇다. 첫째, 미국은 1959년 이후 쿠바정부가 일방적으로 몰수한 재산이 포함된 거래를 인정하지 않는다. 둘째, 미국은 쿠바의 국제기구 가입과 원조를 자유롭고 민주적인 정부가 들어서기까지 반대한다. '''셋째, 미국시민은 1959년 이후에 쿠바정부가 몰수한 재산을 거래하는 자를 미국 법원에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어느나라의 국민, 기업이라도 몰수자산에 개입하면 미국 법원의 소송대상이 될 수 있음)''' 넷째, 미국정부는 국유화된 자산에 개입된 제3국의 기업인에게 비자발급을 거부할 수 있다. 그 무렵 몰락한 사회주의 국가들이 미국에 지원을 요청하자 미국은 이런 조건을 덧붙였는데, "쿠바와 모든 거래를 중단하라"는 것이었다. 그러자 쿠바의 수입품 가운데 80%가 줄었는데, '''대부분이 식료품과 의약품이었다'''. 보다 못한 미국 내 NGO들 일부가 쿠바에 대한 식료품과 의약품 금수 조치를 해제해 줄 것을 정부에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2014년까지 지속되었다.
미국의 대쿠바 경제제재는 강력해서, 1990년부터 1992년까지 3년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1989-90년에 동구권의 공산 정권이 속속 붕괴함에 따라 지원이 하루 아침에 끊어진데다가 설상가상으로 원유자급이 불가능했던[5] 당시 쿠바의 상황 때문에 교통과 운송마저 마비되었고, 미국의 제재까지 겹쳐서 의료용품과 식료품 수입에도 차질이 생기면서 쿠바의 90년대 초중반에는 상당한 헬게이트가 열렸었다. 어느정도냐면 쿠바인들이 별 수 없이 덜 먹고 오래걷게 되면서 건강해졌다는 말이 나올 지경이고 이와 관련하여 연구결과도 나올 지경이었다. 물론 건강해지기는 했는데 버스나 택시같은 교통수단이 기름이 없어 멈추고 공장도 원자재가 없어서 멈추고 상점에 가도 물건이 별로 없으며 식량배급량도 줄어들어서 하루에 두끼 정도를 겨우 먹고 그나마도 고기는 가끔씩만 배급되어서 자주맛보기 힘들던 험난한 시절이었다는 얘기였다. 물론 쿠바의 경제가 다시 나아지면서 원상태로 되돌아왔으며 비만이 사회문제가 되고있다 쿠바에서 자영업이 성행하면서 길거리 음식들이 인기를 얻고있는데 이 길거리 음식들이 아이스크림이나 핫도그나 햄 치즈샌드위치, 피자, 볶음밥, 햄버거 같은 패스트푸드이 주류이고 쿠바인들이 이걸 즐겨먹기 때문이다.
그래도 재빠르게 관광업을 활성화해 국가재정을 확충시켜나가고 유기농 농법으로 일단 비료수입을 줄여내면서 일단 한숨은 돌려놓았고 2000년대에 러시아의 외교정책 전환이나 중국베네수엘라의 지원으로 어느정도의 성장은 이뤄놓았기에 북한에 비하면 훨씬 잘사는 편이다. 핵 개발 의혹을 받은 이란에 대한 경제제재조차 풀리려는 조짐이 보이는 가운데 미국이 이런 강도 높은 제재를 하는 나라는 거의 없고, 그 와중에도 나라가 막장이 되지 않은 나라는 더 드물다는 점에서 쿠바 정부의 국정 운영능력은 매우 뛰어나다고 해도 좋다.
하지만 이런 경제 제재에도 불구하고, 의외로 쿠바의 경제에 큰 도움이 된 것이 바로 미국이었다. 우선 지리적으로 가깝고 볼거리가 많다보니 편법을 써서라도 쿠바로 여행오는 미국인 관광객이 적지 않았다. 여기에는 미국으로 망명한 쿠바계 미국인도 있는데 냉전 때라면 모를까 경제가 어려워진 이후에는 이들의 돈도 감지덕지인지 반정부 인사같은 특별한 예외가 아니면 쿠바계 미국인들의 입국도 허용하고 있다. 또한 쿠바의 주력 수출 상품인 시가 중 많은 양이 미국 시장에서 유통되고 있었다. 형식적으로 캐나다멕시코 등지로 수출한 다음 미국으로 밀반입한 것. 미국 정부에겐 불법 행위이지만 쿠바산 시가의 수요가 만만치 않아서 밀수가 성행했다.

2014년 6월 하순, 에릭 슈밋 구글 회장이 경영진과 함께 쿠바에 방문해 쿠바의 인터넷 환경을 파악하고 귀국했다. 슈밋 회장은 미국의 쿠바 금수-경제제재 조치를 비판하고 이의 해제를 주장했다.# 이로 보아 50년이 넘게 이어진 미국의 '쿠바 봉쇄'도 차후 변화가 있기는 있을 것으로 보인다.
2014년 12월 역사적인 미국-쿠바 간의 국교정상화 선언에서 미국이 쿠바에 대한 봉쇄정책의 실패를 자인함에 따라 봉쇄정책 자체는 폐기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그러나 위에 설명한 것처럼 미 의회를 장악한 공화당이 국교정상화를 결사반대하고 있어 실제로 국교정상화나 봉쇄정책 폐기가 이루어질 가능성은 낮았다.
오바마 행정부가 케네디 행정부의 대 쿠바 봉쇄정책의 실패를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쿠바와의 국교정상화를 발표했다. 교황청과 캐나다가 중재를 했으며 지난 1년 동안 비밀합의가 계속 이루어진 결과. 라울 카스트로 의장과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쿠바 봉쇄 이후 최초로 양국 정상간의 전화 통화를 실시했고, 수개월 내 아바나에 미국 대사관을 설치하고 고위급 회담을 통해 실무사항을 조율하였으며, 주쿠바 대사까지 임명한 상태이지만 의회를 장악한 공화당이 반대하고 있는 실정이다.

4.2. 중고품 천국


1990년대 중반 이후로는 관광산업 육성과 유기농 농법 보급으로 사정이 한결 나아졌고, 2000년대 들어서는 중국이 급성장하고 남미에서도 좌파정권이 많이 집권하며 쿠바에 많이 우호적이 되어 외화 수급과 소비재 수입이 크게 원활해졌으며, 또한 베네수엘라로부터 석유 지원도 받기 때문에 많이 나아진 편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텔레비전이나 전화기, 라디오 등도 국내에서는 고물상에서 조차 보기 힘든 옛날 물건을 사용하는것이 많고 신제품의 경우에도 유럽제품이나 일본제품, 한국제품등은 쿠바 물가 기준으로 심하게 비싸기 때문에 스마트폰이든 TV든 간에 대다수가 중국산 제품을 쓴다. 물론 관광업 등으로 돈 버는 사람들은 이들 제품을 거리낌 없이 사기는 하지만. 또한 석유가 생산되는 산유국임에도 경제 봉쇄로 인해 수출하지 못하다 보니 돈은 못 버는 편이다. 덕분에 쿠바 내의 기름은 매우 저렴한 편이지만, 정유시설을 돌릴 물자나 자금이 없다 보니 대충 분류한 저질의 휘발유를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다만 2000년대부터 2010년대 전반기까지는 쿠바가 베네수엘라에 의료인력이나 교육인력을 보내는 대신에 휘발유를 상당수 받는 식의 교역을 했고 이 때문에 휘발유는 나름대로 풍족하게 공급된 모양인지 버스나 택시를 운전하는 기사들이 운전하고 나서 남은 휘발유를 주유소나 암시장같은곳에다가 팔아서 엄청나다가 나름대로 짭잘하게 용돈벌이를 하고 그랬다. 하지만 2015년 이후로는 베네수엘라의 경제가 크게 악화되면서 베네수엘라로부터 휘발유 공급받는것도 크게 줄어들었다.
아바나 시내에는 1940년대 머큐리 승용차나 1950년대 포드, 1950년대 비틀, 1970년대 라다 쥐굴리[6]를 비롯한 올드카들이 마구 굴러다닌다. 농담 삼아서 전세계 올드카 덕후들의 지상락원이라고 한다. 다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무역 봉쇄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사용하는 경향이므로 올드카 덕후처럼 올드카를 아낀다기 보다는 "있는 게 이것 밖에 없으니 고쳐서라도 써야지 뭐"라는 마인드이므로 차량 자체의 상태는 별로 좋지 않다. 오히려 오리지널리티를 중요시 하는 올드카 덕후들에게는 일단 굴러가게만 만들어 놓아야 하므로 정품이 아닌 그냥 부품을 막 이용해서 마구잡이로 수리한 올드카를 보며 울지도 모른다(?). 거기에 쿠바산 기름은 질이 형편없어서 자동차에 더욱 악영향을 준다. 실제로 이런 오래된 자동차의 매연은 실로 끔찍한 수준으로, 증기 기관차 수준의 검은 연기를 뿜뿜하며 달리는 경우가 상당하다. 전세계 관광객들이 쿠바에서 가장 적응하지 못하는 것 중에 하나이다. 다만 2000년대에 들어와서는 남미권과의 관계가 좋아졌고 중국이나 러시아의 경제도 그런대로 좋아지면서 상당한 지원을 받을수있게 되었고 이로 인해 현대적인 차들도 많이 등장해서 볼보, 현대자동차, 기아자동차 차량도 많이 볼 수 있다. 다만 쿠바내에서 이들 자동차의 가격은 비싸기에[7] 대다수 쿠바인들은 자동차를 '''빌려서''' 사용하며, 자동차를 소유한 사람은 쿠바내에서도 당간부나 기업인, 돈 거하게 버는 민박집 주인 등 돈버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시리아, 북한과 더불어 코카콜라를 찾아볼 수 없는, 세계적으로 드문 나라이기도 하다. 하지만 시리아와 마찬가지로 자체적으로 콜라 브랜드를 만들어서 판다.

4.3. 농업과 식량 사정


지리적, 기후적 조건은 좋고 자급자족 농업에 힘쓰고 있으며, 기본적인 식량 자급은 되지만 아무래도 농기계가 부족한 문제도 있고 해서 환경 및 농업 특성상 생산량이 적은데 수요가 많은 식량은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2009년 기준으로 식량의 40% 정도를 수입에 의존한다고. 2000년대 이후로는 미국에서도 식량을 수입한다. 그럼에도 쿠바를 여행한 론리플래닛의 저자 토니 휠러는 중미에서는 그래도 제법 살만한 나라이자 중미 최대의 지옥같은 나라 아이티에 견주면 천국과도 같다고 평했을 정도.[8] 중미 국가들 중에서도 우수한 수준이다. 과거 막대한 소련의 지원이 줄어서인지 예전보다 배급품이 적다는 불만이 많지만, 쿠바 사람들은 자본주의가 들어오면 과거 풀헨시오 바티스타 정권 시절처럼 굶주리던 시절이 돌아오거나 아이티와 같은 꼴이 될까봐 반정부적인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미국이 몇 번이나 반정부 폭동이 일어나기를 기대했다가 실패했던 이유도 이런 민심의 탓이 결정적인 셈이다.
게다가 서방 세계의 경제 봉쇄로 인해 자유로운 수입·수출이 불가능하므로 국제 시세에 영향을 적게 받아 가격도 저렴한 편. 아바나에 위치한 국영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오랫동안 줄을 서서 기다렸다가 아이스크림을 먹어본 여행자는 길게 줄을 섰던게 왠지 화가 나서 그곳에서 판매하는 아이스크림에서 비싼 것을 죄다 주문했다가 기겁했다고 한다. 한 사람이 먹기에는 많은 양이 나왔는데 한국이라면 몇 만원은 넘을 양이 여기에서는 우리 돈으로 겨우 '''250원이었다'''고 한다. 바닐라맛 큰 스푼으로 3스푼, 딸기맛 2스푼, 초콜릿맛 4스푼, 와플케이크까지 있는 세트를 죄다 합친 값이 이 정도. 왜 이리도 싼가 하면 국영 가게이기에 보통 서민이 먹을 값은 겨우 30원 수준이라 쿠바인들이 모처럼 외식하자면 이런 곳에서 줄을 설만큼 먹어볼 여유가 된다는 것이었다. 특이 사항으로는 1990년대 이래로 비료농약 등도 부족한 터라 어쩔 수 없이 유기농 방식으로 농사를 시작했고. 게다가 트랙터 등의 농기계 또한 가동할수없게 되면서 90년대 중후반기 내내 유기농 방식으로 지은 농작물을 먹고 살아야되었다. 이 당시에는 상황이 처절했냐면 너나할것없이 화분이나 도심공터에도 농사짓도록 당국에서 지원을 해서 이렇게 너나할것없이 농사를 지었고 이렇게 해서, 식량부족분을 채웠을 정도이다. 다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시기에 쿠바의 관광객수가 크게 늘어나서 유기농 농법으로 농사를 짓는 나라라는 타이틀로 유명세를 타게 되었고 쿠바인이라고해서 건강에 관심없는것은 당연히 아니기 때문에 석유와 식량의 수급이 원할해진 이후에도 지속해서 유기농 방식으로 농사를 지었고 덕택에 현재에도 소가 쟁기를 끌고 말이 수레를 끌어서[9]농사짓는 경우도 잔존하게 되었는데, 유기농 덕후라면 한번쯤 가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듯하다. 다만 집집마다 농사를 해서 경제난을 이겨냈다는건 좀 예전얘기이고 먹는 문제가 90년대 말과 2000년대를 기점으로 대강은 해결된 이후로는 취미로 농사를 짓거나 건강에 관심있는 사람들이 도시에서 농사를 짓고 일반 노동자들은 다른 부업을 하는 경우가 많다(...)

4.4. 공산품


상당수의 공산품을 수입에 의존하지만 역시 미국의 경제 제재 덕분에 들어오기 어려워서인지 비싸다. 쿠바에서 여행하다가 현지인과 친해진 한국인이 한국에 돌아가면 선물을 보내주겠다면서 무엇을 받고 싶은지 묻자 '''샴푸를 보내달라 했다고.''' 다른 것도 아니고 왜 굳이 샴푸를 원하는지 묻자 현지인 왈, '''"우리 월급이 너네 나라 돈으로 몇 만원 정도인데 샴푸 하나 사려면 적어도 2천 원이 넘는다." (.....)'''
이게 단순히 케바케로 볼 수도 없는게, 길가에 돌아다니는 호객꾼들마저 팁 줄거면 돈 말고 차라리 샴푸를 달라고 할 정도라고. 샴푸 같은 공산품의 대다수는 나라 자체가 미국과의 정상적인 교류가 불가능할만큼 막혀있다보니 수입품 자체가 비싼건 당연한것이고, 그나마 수입이 가능한 메이드 인 차이나 말고는 사실상 힘들다. 물론 유럽산이나 일본산도 구할 순 있지만 가격이 그저 안습.
현지 상점에 가면 파는 전자제품 같은 것들의 상당수도 중국산이다. 물론 여기서도 숙박업 영업등으로 돈 버는 계층은 존재하기 때문에 이들이 주로 유럽산이나 일본산, 심지어 한국산 수요를 담당하는 것. 여담이지만 중국과 그나마 교류가 활발하다보니 1990년대에 석유수입량이 크게 줄어서 버스운행이 파행될 지경이 되었을때 중국에서 자전거를 지원해서 버틸수있었고 2010년도에 대규모 태풍과 금융위기로 인한 베네수엘라의 지원감소때문에 재정적으로 위기에 처해있었는데 이를 중국과 채무조정에 나서고 그 이후로 재정안정화에 성공했을 정도였다. 그래서 쿠바에서 중국에 대해서 은인이라면서 이득이 되는 관계라고보면서 중국에 대한 호감도는 높은편이다. 물론 중국제를 돈 없을때나 쓰는것이라면서 거들먹거리는 사람도 있기는 하다. 그 정도로 여유있는 사람은 미국에 친척이 있거나 민박같은 일로 돈 벌거나 하는 소수계층 한정이지만.

4.5. 개혁 시도


90년대부터 중국을 본받아 시장경제적 요소를 도입하는 등의 개혁이 있었다. 그러나 경제제재 등으로 인해 큰 효과를 보지는 못했다.
2014년 4월 28일, 쿠바 정부가 국영기업들(2,800여 개, 500만 명 종사)의 운영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여 재고품의 가격 조절, 종업원의 자율 임금 인상제도 도입 등을 실시했다.# 이는 중국식 사회주의적 자본주의 체제로의 경제개혁에 첫 발을 디딘 것으로 여겨진다.
2019년에 개헌을 하면서 사유재산권과 시장경제 첫 인정, 외국인 투자의 중요성과 인터넷의 역할 인정 등 경제 개혁을 위한 법적 근거를 마련해두었다. 헌법을 조금씩 개정해나가면서 개혁개방을 밀고나간 중국과 유사하다.

4.6. 최근의 경제난


2019년에 쿠바 공산당 기관지 그란마를 비롯한 국영 신문사들이 종이 부족을 이유로 발행 지면을 줄인다고 하는데 이미 이전부터 긴축조치가 진행되어왔지만 긴축조치의 여파가 언론계까지 미쳤다는 점에서 쿠바 내에서 심심치 않게 바라보는 시선이 지배적이다. 그리고 전국의 당국에 연료를 절약하고 정전을 피하기 위해 전력 소비를 줄이라는 명령이 하달됐다#
2019년 5월 10일 경제난으로 인해 식료품과 생필품의 부족이 심각해져 쿠바 정부는 식료품과 생필품에 대한 배급제를 실시했다.#
게다가 부채 상환에도 허덕이고 있는 상황이다.#
2020년에 미국 달러에 적용되던 10% 세금을 폐지했다. #
2020년 12월 10일에 쿠바의 미겔 디아스카넬 대통령은 2021년 1월 1일부터 이중화폐제를 폐지하고 24페소의 가치를 1달러에 연동하겠다고 밝혔다.#

4.7. 경제적 목적의 이주


쿠바는 정치적으로 비교적 자유롭지 못하고, 경제가 1990년대보다는 나아졌지만 이중화폐제도로 인한 저임금 문제때문에 많은 쿠바의 젊은이들이 자국을 떠나 새로운 삶을 찾기를 원한다. 젊은 운동선수들의 해외 망명은 이제는 새삼스럽지도 않은 뉴스. 2010년대에 대표적으로 알려진 사례로, 메이저리그 선수인 야시엘 푸이그의 탈출이 알려져 있다. 그래서인지 정부에서도 운동 선수들의 해외 리그 진출을 허용하는 조치를 발표했다. 하지만 아무래도 미국에서 제대로 성공하면 넘사벽급으로 돈을 벌 수 있다보니 탈출 행렬은 여전하다. 사실 메이저리그 같은 경우에는 캐나다 팀도 있으므로 원칙적으로는 캐나다 야구팀에서 뛰는 것이 가능하지만 '''미국 입국이 불가능'''하다.[10]
메이저리그급까지 안되는 선수들은 베네수엘라 리그나 멕시코 리그로 진출하는 경우가 많이 있으며, 실력이 메이저리그 급이 되어도 돈을 많이 주는 일본으로 가는 경우도 많다.[11]
2018년 12월에 메이저리그와 쿠바 야구협회가 협정을 맺음에 따라서 2019년 시즌부터는 쿠바 선수들의 메이저리그 진출에 대해 합의를 보면서 쿠바 선수들이 굳이 목숨을 걸고 미국으로 보트타고 간다거나 비행기값을 모은다음에 멕시코, 베네수엘라, 도미니카 등을 통해 미국에 간다는 말도 옛말이 될 전망이..었는데 도널드 트럼프가 백지화하는 바람에 아직도 망명이 필수인 상황.

5. 빈부격차


쿠바 정부는 공식적으로 인종간 차별이 존재하지 않는 평등한 사회라고 주장하지만 90년대 이후로 경제적으로 개방정책을 펴면서 흑인과 백인 사이에 경제적 격차 문제가 다시 심각해졌다. 사실 60년대부터 80년대까지는 동구권의 지원을 받았던데다가 체계적인 사회복지정책으로 인해 지니계수도 0.2 초반정도의 수준으로 북유럽 국가들과 비슷한 수준인지라 인종차별 개념이 자연히 약해질 수밖에 없어졌지만 90년대 경제난 이후 쿠바가 자본주의를 어느 정도 수용함에 따라 빈부격차가 커지면서 지니계수도 2010년대엔 0.39 정도로까지 상승하고[12]이외에도 여러 제도적/사회적 원인으로 인해 주로 흑인과 백인 사이에 작용했기 때문이다. 정부의 완전한 통제와 배급으로 대표되는 사회주의 체제에 편입된 공공근로자들과 자본주의의 수혜를 받는 시민들, 주로 자영업자와 해외 거주 쿠바인들에게 송금을 받는 사람들 간에는 소득 수준의 차이가 많이 나는데 전자는 주로 흑인들이고 후자는 주로 백인들이다.
세계의 여러 극빈국들이 대체로 그러하듯 해외에 나가서 일하는 근로자나 이주한 국민들의 송금이 쿠바에서도 막대한 비중을 차지한다. 그런데 2000년 아바나에서 실시한 조사 결과를 보면 백인 가구의 44%가 송금 수입이 있었던 반면, 흑인 가구는 단 23%만 송금을 받아들이고 있었다(Dela Fuente 2011, 32). 2008년에는 전체 인구의 약 60%가 송금수입을 얻었다. 이렇게 되면 송금을 받는 백인의 비율이 더 늘어날 수밖에 없기 때문에 흑백 간의 불평등은 더 심해지게 된다(González-Corzo and Larson 2008, 293).
한편 쿠바에서는 다른 선진 자본주의 국가와는 달리 자영업자들의 소득이 공공근로자에 비해 훨씬 높고 일자리의 질도 우월하다. 참고로 쿠바는 공산주의 국가이기 때문에 여기서 말하는 공공근로자는 일부 자영업자와 불법 근로자 정도를 제외하면 전 국민이 해당된다. 오죽하면 식당 근로자나 택시기사의 월급이 교수나 의사보다 훨씬 높다. 이렇게 된 이유는 월급이 몹시 짜서인데 미화로 칠경우에 월급이 꼴랑 20달러-50달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물론 기초 생필품은 매우 싸게 공급되고 공공재도 그럭저럭 돌아가는데다 집세나 의료도 무료이기때문에 실질봉급은 그보다 훨씬 높다고 평가되는 수준이라 그렇게까지 가난한건 아니고 대체적으로 중간급 정도의 생활 수준을 누리는 수준이라고 봐도 무방하지만[13] 그럼에도 인터넷을 사용한다거나(인터넷 요금은 한국 pc방 요금보다 비싸서 1시간 정도만 써도 이틀치 일당은 거뜬히 날라간다[14])하는 수준높은 소비문화를 누리기에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에 쿠바의 전문직들은 자신의 직업을 포기하거나 자영업을 겸할려고 하는 사람이 많다.
2000년의 자료를 보면 흑인과 흑백혼혈은 공공분야에 종사하는 비중이 훨씬 높다. 당시에 약 70%의 백인들이 국가에 의해 고용되어 있지만, 흑백혼혈은 81%, 흑인은 84%였다. 반면에 자영업에 취업한 백인들의 비율은 흑백혼혈이나 흑인들보다 3배 이상 많다. 이는 자영업을 하려면 기본적으로 상당한 규모의 자본이 필요하고,[15] 사회적, 정치적으로 연결망을 잘 유지하고 있어야 사업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쿠바의 흑인들은 '''사적 소유는 철폐되었지만 생산력이 부족한 낙후된 사회'''의 열악한 실정에서 벗어날 수단이 백인들보다 훨씬 적기 때문에 불평등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16]

6. 산업구조


[image]
2009년 쿠바의 산업구조. 회색은 미분류, 황토색은 니켈시멘트 등 광업, 진한 갈색은 시가와 주류제조 등 사치품, 진한 상아색은 사탕수수설탕 산업, 보라색 계통은 의약품 제조, 어두운 하늘색은 철강산업이고 밝은 하늘색은 식품제조업이다. 가운데 조그맣고 진한 고동색은 석유 생산. [17]


[1] 쿠바의 매우 낮은 월급수준과 비교적 안정된 치안은 제조업체들에게 매우 매력적이지만, 미국의 봉쇄정책때문에 유치할수가 없다. 사실 쿠바인들이 가난하다 가난하다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도 이 때문인데 제조업체 유치가 난망하다보니까 경제성장률이 별로 높지 않고, 또한 이 때문에 경제가 회복된다한들 재정사정이 여전히 빠듯해 국가에서 월급을 쿠바인들이 적절하다 생각하는 수준으로 못 올려준다.[2] 사실 중국이나 베트남, 라오스는 사회복지제도 자체가 쿠바에 비하면 많이 뒤떨어지는 편이라고 평가된다.[3] 사실 북한보다 미국의 제재가 더 철저하고 더 효과적이었던 곳이 바로 쿠바다. [4] 의외로 쿠바 투자요인으로 손꼽힌다. 병원비나 노조관련해서도 말 그대로 정부에서 모든것을 다해주기 때문에 기업 입장에서 따로 보험들 필요가 없어서 비용을 절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거기에다가 인건비도 낮고 치안도 비교적 안정적이기 때문에 경비원들을 대량으로 고용할 필요도 없으니 기업 입장에서 충분히 투자요인이 되는 것이다. 단지, 미국의 경제봉쇄때문에 투자가 적은것일 뿐.[5] 쿠바의 원유가 심해유전이기 때문에 소련도 개발하기 힘들다고 개발을 포기하여서 당시 쿠바는 원유의 대다수를 소련에 의존했다.[6] 소련의 대중차[7] 한국으로 친다면 자가용 1대 소유하는데 몇억씩 드는 수준이다.[8] 실제로 아이티와 비교해보면 천국 맞다. 물론 아이티를 본질적인 측면에서 망가뜨린 것은 미국보다는 프랑스.[9] 다만 이건 1990년대 이후로 쿠바에서 소를 노동력으로 쓸 목적으로해서 소의 도축을 금지시켰기 때문인 영향도 있다. 그래서 소의 도축이 힘들어지게 되면서 자연히 소들을 노동력으로 쓰게 되었고 2010년대 와서도 소의 도축을 금하는 법령 자체는 남아있기 때문에 현재도 지속적으로 노동력으로 쓰고 있는 것.[10] 캔암리그라는 캐나다 독립야구 리그에 쿠바 야구선수가 공식적으로 파견되기도 한다. 다만 여기는 월급이 쿠바 리그랑 별 차이가..[11] 일본, 멕시코, 베네수엘라는 망명하지 않아도 갈 수 있다. 다만 에이전트 역할을 정부가 하기 때문에 세금 외에 쿠바 정부가 수수료를 10~20% 떼어간다. 물론 멕시코만 가도 10만 달러 가까이 받기 때문에 세금이고 정부 수수료고 뭐고 다 떼도 쿠바의 10배 이상.[12] 하지만 그럼에도 쿠바의 빈부격차 수준은 주변국에 비해서는 "양호한 편"이기는 하다. 북중미에서는 캐나다 정도나 쿠바보다 낮은 수준이고, 남미기준으로 봐도 일부 국가를 제외하면 가히 넘사벽 수준. 물론 이건 라틴아메리카 지역과 미국의 빈부격차가 유럽에 비해 월등히 크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13] 그렇지만 쿠바정부에서 개방정책을 펴면서 이런 배급제도를 예산문제를 이유로 점진적으로 줄여나가고 있기에 점차 살수있는 물품수가 줄어들고있다고 한다 그 대신 자영업자의 수가 크게 늘어나고는 있지만[14] 쿠바는 북한과 다르게 자국민들의 인터넷 사용을 허용하기는 했지만 대개 위성을 받아 인터넷을 받아스는 방식으로 가정용 인터넷 서비스가 시작되지 않은데다가 이용요금도 비싸기 때문에 인터넷은 전문직이나 꽤나 돈있다는 사람들이나 사용하는 수준이었다. 물론 인트라넷 정도야 쓸수있기는 하지만 그와 별개로 인터넷은 부유층의 상징이다시피나 한것인것. 그나마 2010년대 들어서는 미국과의 국교수교 정상화를 계기로 어느정도 인터넷이 점차 확산되어가고 있는 추세이고 베네수엘라나 중국의 지원으로 가정용 인터넷망 사업이 진척되고 있는 상황이기는 하다. 여하튼 그래서 쿠바의 인터넷망도 베네수엘라의 서버를 경유하는데 문제는 베네수엘라의 인터넷망이 2010년대 들어서는 석유값으로 인한 예산문제 때문에 와이파이망 설치를 제외하면 추가적인 투자와 관리가 잘 이루어지지 않아 한국의 2000년대 초중반 정도의 속도를 지녔고, 쿠바의 인터넷 속도도 영향을 받아서 한국의 2000년대 초반 정도의 수준을 지닌다는 점. 미-쿠바 수교가 이루어지면서 구글에서 투자를 하고있기때문에 이보다는 나아질것이라는 것이 주 예상이기는 하지만 여하튼 아직까지는 느리다. [15] 백인들이 이 자본을 확보하는 경로는 앞서 언급한 해외 거주 쿠바인들의 송금이다. 사회주의 국가인 쿠바에 자본시장 따위가 있을 리 없으므로.[16] 이상 쿠바의 인종간 소득격차에 대한 서술은 <주종택, 쿠바의 관광산업과 히네테리스모: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접합, 라틴아메리카연구 Vol.27 No.4, 2014.11, 57-89 (33 pages)>를 참고하였음.[17] http://en.wikipedia.org/wiki/Cuba#Econom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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