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수교국
1. 개요
국가 간의 공식적인 외교 관계를 맺지 않은 국가를 지칭한다.
보통 두 가지로 나누는데 처음부터 일방 또는 쌍방이 상대국을 정식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 부류와, 국가로 인정하기는 하되 여러 가지 외교적 문제로 수교를 하지 않는 부류이다. 수교를 맺지 않는다고 해서 교류 자체를 완전히 금하는 것은 아니며, 미수교국이더라도 경제, 문화적인 교류는 활발한 사례도 있다. 또한 미수교국에도 일정한 절차를 거치면 직접 방문이 가능하다.
미수교국에는 정식 대사관/영사관을 설치하지 않는 대신, 해당 국가에서 활동하는 자국민의 보호 및 대표를 위해 대표부를 설치할 때가 많다. 이 대표부는 공식적으로는 대사관이나 영사관과 같은 외교적 특권을 가지지 못하나, 대표부의 성격상 암묵적으로 특권을 상호존중해 주고 있다. 해당 미수교국과 인접한 국가의 대사관/영사관에서 필요한 업무를 대행하기도 한다.
2. 대한민국의 경우
대한민국도 과거에 많은 미수교국이 있었는데 크게 세가지 경우였다.
- 공산권
냉전 시기에 소련과 중국을 중심으로한 공산권 국가들은 대한민국을 인정하지 않고 북한만을 정식국가로 승인하고 외교관계를 유지하였다. 냉전시대에도 공산주의 진영과 자본주의 진영의 대부분의 국가들은 서로를 국가로 인정하고 외교교류를 이어갔지만, 남북한은 분단후에 서로 전쟁까지 치루면서 상대방의 실체를 인정하지 않고 각자 자신들의 정통성을 주장하였다. 이에 따라서 대한민국과 자본주의 진영은 북한을 부정했고, 북한과 공산진영은 대한민국을 부정하였다. 따라서 대한민국은 공산진영 국가들도 북한만을 인정한다는 이유로 적대시하고 외교관계를 맺지 않았다. 이건 북한도 마찬가지.[1] 대한민국도 노태우 정부의 북방외교로 소련, 중국 등등 공산국가와 수교하였다. 물론 중국과의 수교 과정에서 대만이 단교하는 상황이 있었다.
- 제3세계의 친북 성향 국가들
냉전 시기 남과 북은 서로 자신들의 정통성을 주장하면서 다방면에서 극한의 체제대결을 이어갔고, 이것은 국제적인 외교전으로도 나타났다. 특히 아시아/아프리카의 식민지들이 대거 독립해서 UN에 가입한 1960년대부터는 남북문제가 유엔의 단골 주제가 되었고, 남과 북은 유엔총회에서 표대결을 불사하게 되었다. 따라서 최대한 많은 숫자의 우호국가를 확보하는 너무나도 중요해졌다. 이게 극단적으로 흐르면서 남과 북사이에는 수교국가 경쟁이 붙게 된다. 지금보면 웬 병림픽이냐고 하겠지만, 1980년대 까지는 가위바위보도 북한한테는 지면 안된다고 할 정도로 남과 북 사이에는 살벌한 경쟁의식이 넘쳐 흐른데다가 유엔총회에서의 표대결이라는 현실적인 문제가 걸려있어서 대단히 중요하기도 했다.[2] 이게 지금까지도 미묘한 기류가 있지만 당시엔 남북이 유엔 회원국이 아닌 참관국이었기 때문에 더욱 유엔 회원국들의 우호표가 절실했었다. 남과 북은 아시아/아프리카/중남미 국가들을 상대로 서로 상대와 외교관계를 끊고 우리하고만 수교하라고 설득했고, 이 과정에서 (없는 살림을 쪼개서) 각종 물자를 퍼주기도 했다.[3] 이런 외교전 속에서 이집트, 시리아 같은 국가들은 친북노선을 명확히 하고 북하고 군사/경제 교류를 하면서 대한민국을 적대시했다. 당연히 이런 국가들과는 미수교 상태가 오래 지속되었다.
- 기타
대표적으로 백인정권의 인종차별(아파르트헤이트) 정책으로 국제 사회의 왕따가 된 남아공이 있다. 대한민국도 수교했다가 남아공이 국제사회에서 고립되자 대세를 따라서 단교했었다. 보츠와나는 유엔의 북한인권보고서에 따라 자발적으로 비인권적인 북한을 규탄하며 단교한 바 있다.
그러다가 1985년 미하일 고르바초프의 집권으로 소련이 개혁개방 노선으로 전환하면서 전세계적으로 냉전 분위기가 완화되었고 국내에선 노태우 정부가 서울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해서 공산권과의 관계 개선 필요성을 절감하면서 북방정책을 내건 것이 서로 맞아떨어지면서 1988년 서울올림픽 직후부터 공산권 국가들과의 외교관계가 급진전되었다. 이러한 노력은 1990년 한-소련 수교, 1992년 한-중국 수교, 1995년 한-베트남 수교 등으로 이어진다. 또한 남아공도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을 폐지하고 넬슨 만델라를 석방하자 1992년 다시 수교를 맺었다.
냉전도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지고 남북간 체제대결도 사실상 대한민국의 승리로 끝나면서 서울올림픽 이후 미수교국의 숫자는 급속하게 줄어들어서 2019년 현재 UN에 가입한 193개국 중에서 대한민국 자신과 국가 승인 자체를 안 한 북한을 제외한 191개국 중 미수교국은 쿠바, 시리아 2개국 뿐이다. 그 외에는 대부분 국제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미승인국들이다.[4][5]
대한민국 출입국관리법에는 한국에 입국하고자 하는 미수교국 국민에게는 비자가 아니라 별지 형태의 외국인입국허가서를 발급하고 미수교국 국민으로서 외국인등록증이 나온 거주자들에게는 여권에 날인/스티커 부착하는 형식의 재입국허가증이 아닌 별지 책자 형태의 재입국허가서를 발급하도록 되어 있다.
2.1. 목록
2024-10-30 12:09:02현재 대한민국이 수교를 맺지 않은 국가는 다음과 같다.
2.1.1. 승인
승인했지만 외교관계가 없는 나라들이다. 현재 이 중에서 단교로 인해 미수교국으로 분류된 나라는 없다.
6.25 전쟁 때는 우리나라에 물자 지원을 했었으나 사회주의 계열의 바트당 정권 수립과 하페즈 알아사드의 쿠데타 이후 친북 국가로 변모하여 한국과 수교를 맺지 않았다. 그래도 한때 경제 투자나 관광 등의 민간 교류는 활발했었으나 2011년부터 시리아 내전으로 인해 여행금지국가가 되었다. 이전엔 냉전 이후 대한민국이 시리아에 수교를 제안했으나 시리아는 북한 및 이스라엘과의 관계를 고려해 이를 보류해 왔다. 2006년에 시리아측과 영사급 수교[6] 를 합의하였으나, 미국의 눈치를 보느라 한국 측에서 소극적으로 나서서 무산되었다.[7]
코소보 독립 이후 국가로 인정했으나, 수교는 맺지 않았다. 대한민국에서 세르비아와 세르비아의 우방국인 러시아와의 관계를 눈치보며 아직까지 미수교로 남은 것으로 추정된다. 대한민국 국민은 무비자로 입국 가능하다.
시리아와 마찬가지로 6.25 전쟁 당시 우리나라를 도와주었던 나라 중 하나였으나 피델 카스트로의 공산주의 정권 집권 이후 친소 정책을 펴면서 1964년에 북한과만 수교하였다. 현재는 시리아와 마찬가지로 친북 성향이 강해서 수교를 맺지 않고 있다. 하지만 탈냉전 이래 양국의 상대에 대한 인식이 나쁘지 않고 양국 간의 민간 교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으며 쿠바는 다에쉬 같은 테러 집단도 없고 시리아 내전처럼 심각한 내전도 없는 안정된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결정적으로 쿠바는 2015년 쿠바의 대표적인 적대국으로 여겨졌던 미국과도 공식 수교를 맺었다. 그리고 쿠바 고위층들도 대한민국과의 수교를 원하고 있었기 때문에 쿠바의 최고 권력자인 라울 카스트로(피델 카스트로의 동생)만 결단을 내리면 머지않아 수교가 맺어질 가능성이 있었다. 이런 분위기가 무르익다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지는 바람에 무기한 연기 중. 2016년 피델 카스트로가 사망했을 때 일종의 '조문 외교'를 할 기회가 있었으나 이 때 바로 최순실 게이트가 터져서 대한민국은 도저히 쿠바와 외교 접촉을 할 상황이 아니었다. 그리고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대 쿠바 강경파인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되면서 수교할 분위기는 가라앉았고, 당분간 수교논의는 없을 듯 하다.
2.1.2. 미승인
승인하지 않아 미수교 상태이다.
- 북한(대한민국의 일부로 간주)
대한민국 헌법에 의거해 반국가단체로 지정하고 있어서 수교는 커녕 승인도 안 했다. 향후 개헌으로 특수하게 설정된 관계가 바뀌지 않는 이상 승인은 어렵다. 서로가 UN 회원국이라 존재를 무시할 수는 없으며, 2018년 9월부터 남북공동연락사무소가 개소됨에 따라 외교관계에서 가장 낮은 단계인 연락사무소가 작동하게 되었다.
- 대만(중화인민공화국의 일부로 간주)
중국과의 외교 문제로 인해 공식적으로는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있지만 과거 수교국이었던데다 우방국가이기에 상호 대표부를 두어 실질적으로는 교류가 유지되고 있으며 민간 교류 또한 매우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 팔레스타인(이스라엘의 일부로 간주)
UN에서는 엄연한 옵저버 국가이나, 대한민국 입장에서 아직 미승인국이다. 이는 이스라엘과의 관계를 고려한 정치적인 이해관계가 내포되어 있다. 한국 측은 팔레스타인의 임시 수도 라말라에 대표부를 두고 있다. 다만 팔레스타인 측은 한국에 대표부가 없고 한국 관련 업무는 주일 대표부에서 처리한다.
자세한 내용은 미승인국가 문서 참조.3. 관련 문서
[1] 당시 분단상태였던 서독과 동독도 초기에는 한국과 비슷했다. 서독도 연합군의 일원이었던 소련을 제외한 나머지 공산권 국가들과는 일체의 외교관계를 거부하는 할슈타인 원칙을 고수하였다. 그러다가 1969년 총리로 취임한 빌리 브란트가 공산권과 관계를 개선한다는 동방정책을 추진하면서 동유럽 국가들과 수교하였고, 이런 외교적 노력이 훗날 독일통일로 이어진다.[2] 이때는 매년 언론에서 북한의 수교국 몇개, 대한민국의 수교국 몇개 이런식으로 도표를 그려서 보여주었다. 특히 새로운 국가와 수교를 맺게 되면 무조건 9시뉴스에서 표로 보여주면서 꼭 앵커가 "대한민국은 XX개국가와 수교중이고, 북괴는 우리보다 한참 뒤쳐진 **개 국가와 수교중으로 우리가 국제무대에서 격차를 벌리면서 앞서 나가게 되었습니다" 같은 멘트를 날렸다. 물론 지금은 남한은 바티칸과 쿡 제도를 합쳐서 191개국, 북한은 미승인국까지 합쳐서 161개국으로 많이 벌어져 있다.[3] 이런 수교경쟁 때문에 특별한 경제적 이익이 없는데다 거액을 투자한 나라가 바로 아프리카의 가봉이다.[4] 단 코소보는 다소 미묘하다. 대한민국 정부는 국가로 승인했지만 미수교 상태이며, UN 회원국 중 과반 이상의 승인을 얻었지만 승인을 거부하는 국가들 수도 만만치 않아 아직 국제사회에서 완벽한 국가로 인정받지는 못하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코소보, 코소보/독립 인정 국가 목록, 미승인국가 항목 참조.[5] 가장 최근에 수교를 맺은 국가는 북마케도니아로 2019년 7월 18일에 수교했다. 그리스-마케도니아 분쟁으로 인해 한동안 수교하지 않다가 북마케도니아의 국명 변경으로 분쟁이 정리되면서 수교했다.[6] 통상적으로 맺는 대사급 수교보다 한 단계 아래의 관계이다. 대개 정식 수교로 치지는 않는 편이라서 수교국 개수에는 영사급 수교를 넣지 않는다. 대한민국과 이집트 간 1961년부터 1995년까지 유지한 관계도 영사급 수교였다. 이집트와의 선례를 참고하여 영사급 수교를 합의한 듯 하다.[7] 당시 대한민국은 시리아와 관계 개선에 섣불리 나설 수 없었던 상황이었다. 그 이유는 2000년대 중반에 한미관계가 별로 좋은 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한국의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문제와 대북정책 등으로 양국간 입장 충돌이 잦아 별로 좋은 편이 아니었다. 또한 시리아와의 수교가 반기문의 유엔 사무총장 당선에 악영향을 끼칠 것을 우려하여 소극적으로 돌변했다는 시각도 있다. 당시 한국은 반기문의 유엔 사무총장 당선에 혈안이 된 상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