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주대교
1. 개요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행주동과 서울특별시 강서구 개화동을 잇는 한강의 다리. 39번 국도 및 78번 지방도 상의 다리이다. 서울특별시에서 최서단에 있는 다리이다. 행주대교 남단은 올림픽대로의 종점이기도 하다.
한강의 다리 중에서 특이하게도 남북으로 횡단하는 교량이 아예 별개로 나뉘어 있다.[3]
또한 총 연장은 1.460 km이다.
2. 구 행주대교
1978년에 교량 폭 10m, 왕복 2차로의 규모로 최초 준공되었다. 이 때는 고양이나 김포나 개발이 진행되지 않았고 당연히 시로 승격되지 않고 군으로 남아있을 만큼 논밭만 있는 허허벌판에 가까웠던데다가 자가용 수도 별로 많지 않아 차선이 2개 밖에 없어도 충분히 교통량을 소화할 수 있었다. 그러나 1980년대 중반부터 자가용 자동차가 중산층들을 대상으로 차츰차츰 보급되기 시작하면서 2차선 도로만으로는 교통량을 감당하기 힘들어졌고 거기에 더해 1989년에 주변 지역에 일산신도시, 중동신도시 등 신도시가 들어설 계획이 세워지면서 교통량 감당이 힘들게 뻔했다. 이에 교통망 구축을 위하여 1980년대에 행주대교 신교량 부설계획이 수립된다. 신교량은 각각 3차로의 동일한 규모의 교량 두 개가 건설 계획되어 고양시와 서울특별시에서 각각 한 교량씩 담당하여 건설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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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행주대교와 2차 신교량까지 준공되고 난 후 옛 교량은 차량통행이 차단되고 인도교로 한동안 사용되었다. 이후 구교량의 노후화에 따른 통행안전 문제로 입구에 콘크리트 블럭으로 담을 쌓아(현재 콘크리트 블럭은 없지만 철망으로 막아둔 상태) 교량 통행을 완전 차단하였다. 2011년에는 배가 다닐 수 있도록 교량의 일부가 철거되었으며, 이후 예산문제로 방치되고 있다가 고양시에서 자전거 및 보행자 전용 다리로 변화시킨다고 한다.
3. 신 행주대교
최초에 고양시에서 서울특별시 방면으로 시공된 1차 신교량(신행주대교)은 주탑을 세워 콘크리트로 지지하는 콘크리트 사장교 형태로 1987년 착공하여 1992년 12월 완공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1992년 7월 31일 시공업체인 벽산건설의 부실시공으로 교량이 통째로 무너져 내리는 붕괴사고가 발생하여 오히려 수도권 일대의 교통난을 악화시켰다.[4]
결국 과다하중을 일으키는 콘크리트 사장교 형태 대신 케이블 사장교로 설계 변경 및 재시공하여 1995년 5월 총 3차선의 규모로 개통하여 구교량과 함께 사용되었다. 기존 구교량의 왕복 2차선 도로에서 확장되어 총 왕복 5차선의 도로폭을 가지게 되었는데, 신교량의 경우 고양->서울 방면이 서쪽의 두개 차로를 차지하고, 서울->고양 방면의 화물차량 전용차로 1개를 내주었으며, 구 교량의 차로 2개는 협소한 교량 규모와 노후화의 이유로 서울->고양 방면 승용차 전용차로로 전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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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주대교 남단에서 바라본 신교량(좌측 두 교량)과 구교량(가장 우측)이 함께 있던 모습.
1996년부터는 1차 신교량과 구교량 사이에 서울특별시에서 고양시 방면의 2차 신교량(제2신행주대교)을 건설하기 시작하여 2000년 12월 16일 같은 3차선의 규모로 개통되었다. 1차 준공된 신교량과 똑같은 규모였으나 1차 신교량에서의 주탑과 케이블로 지지하는 사장교의 형태가 아닌 일반 교량의 형태로 시공되었다.
4. 교통 연계
행주대교 자체가 39번 국도의 일부분으로 지정되어 있다. 북단으로 나오면 곧바로 행주고가사거리로 연결되는데, 여기서 고가차도로 진입하면 그대로 호국로를 따라 우회해 화정동으로 진입하고, 고가차도 하단으로 빠진 후 직진하면 행신로로 진입해 능곡동으로 이어진다. 우회전하면 舊 행주내리 마을과 KTX 고양차량사업소, 그리고 행주산성으로 이어지며, 자유로와 재접속하는 교차로도 있기 때문에 실수로 행주대교IC를 지나쳤다면 이 교차로를 이용해도 된다.
남단으로 내려오면 곧바로 개화IC를 통해 올림픽대로와 연결되는데, 개화IC 램프에 78번 국가지원지방도 방향 진출램프도 합쳐져 있는데다 개화IC 램프를 지나서 얼마 가지도 않고는 곧바로 39번 국도, 48번 국도와 연결되는 고촌IC 연결램프가 등장하기 때문에 자칫하면 행선지가 꼬일 가능성이 있으므로 주의해야한다.[5] 여튼 이 구간에서 올림픽대로로 진입하지 않을 경우 개화IC 램프와 연결된 78번 국지도 방향 램프로 나가면 아라김포 여객터미널 방향으로 이어져 전호IC를 통해 김포한강로로 들어갈 수 있으며, 고촌IC 연결램프를 통해 39번 국도로 진입하면 부천/인천 방향으로, 고촌IC 연결램프를 통해 48번 국도로 진입하면 김포 방향으로, 어디로도 들어가지 않으면 김포국제공항 방면으로 이어진다.
다리 북쪽의 덕양산에 행주산성이 있다. 자전거 동호인들이 한강을 달리다 행주대교를 건너 행주산성 근방에서 국수를 먹고 오는 것을 하나의 코스로 하는 경우가 많아서 행주대교 북단에서 행주산성 주변에서 자전거 동호인들을 많이 볼 수 있다.
가양대교의 정체를 피하기 위해서 이 다리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자유로를 거쳐 수도권제1순환고속도로 자유로IC와 서울문산고속도로 남고양IC 및 북로JC - 흥도IC 경로를 이용하려고 하거나 진출한 차량들로 인해 정체가 발생한다.
5. 경유 시내버스
2019/11/22 기준 정보이며, 별도의 서술이 없는 한 전방향 경유이다.
- 경기광주 버스 9600 : 위시티 방면 한정 경유
- 고양 버스 85
- 고양 버스 85-1
- 파주 버스 56
- 파주 버스 150
6. 여담
구 행주대교에는 12.12 군사반란과 관련하여 흑역사가 있다. 12.12 군사반란 당시 반란군인 하나회 소속이던 제1공수특전여단장 박희도[6] 준장은 수도경비사령부 소속 군사경찰의 담당이 아닌 구 행주대교를 지나가려 하였다. 결국 남단 쪽 검문소에 있던 제30보병사단 소속의 군사경찰들을 제압하고 육군본부로 가서 난장판을 만들었다.
근데 웃긴 건 이미 30사단은 신군부에 포섭되어 1여단의 진입을 저지하라는 육본명령을 씹고 쿠데타를 방조하기로 했는데 행주대교 검문소에는 따로 연락을 취하지 않은 건지 1여단을 막고 열어주지 않다가 제압당한 것(......)
[1] 본래 콘크리트 사장교로 설계되었으나 시공중 붕괴사고로 인해 교량 하중을 줄이기 위해 케이블 사장교로 설계 변경되었다.[2] Prestressed Concrete[3] 다른 하나는 강동대교인데, 심지어 강동대교는 교량이 하남 방향, 의정부 방향 1,2차로, 3,4차로로 총 3개 교량으로 이루어져 있다.[4] 공교럽게도 바로 전날에 남해 창선대교 붕괴사고가 일어났다. 당시에도 개탄하는 목소리가 지배적이었지만 2년여 뒤의 성수대교 붕괴사고의 전조라고는 상상치도 못했다. 이 사고가 발생하였을 당시는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대한민국 선수들이 연일 승승장구하고 있었을 때였는데다 건설중인 교량이 붕괴된 사고였기 때문에 인명피해가 없어 사람들의 뇌리에서 너무나 쉽게 잊혀진 사고였다.[5] 이는 개화동로와 48번 국도가 연계되는 이름없는 교차로의 구조 변경이 한 가지 원인으로, 본래 이 교차로는 많이 찌그러진 트럼펫형 입체교차로였으나 김포한강로 개통으로 개화IC의 구조가 이리저리 뜯어고쳐져야 하는 상황이 왔고, 이 때문에 개화IC에서 개화동로 김포공항 방향으로 진입하는 램프가 길어지게 되면서 부지가 더 필요해진 탓에 이 이름없는 교차로의 행주대교->48번 국도 방향 램프를 철거하게 된것. 그 대신 개화IC 진입램프를 지나친 위치에 곧바로 고촌IC방향 램프를 신설해서 이를 대체했고, 여기에 그렇게 뜯어고친 개화IC지만 행주대교->김포한강로 방향 접속램프 개설이 어려워서 이를 대체하기 위해 행주대교 방향에서 78번 국지도로 접속해 김포한강로로 간접 접속할 수 있게 추가 램프를 또 내다보니 이런식으로 램프가 복잡하게 꼬였다.[6] 육군사관학교 12기 출신이었으며, 후일 육군참모총장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