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강수

 



'''제33대 제7기동군단장
허강수
Heo Kang Soo
'''
'''복무'''
대한민국 육군
'''기간'''
1986년 ~ 현재
'''임관'''
육군3사관학교 23기
'''현재 계급'''
중장
'''현재 보직'''
제7기동군단장
'''주요 보직'''
지상군 페스티벌단장
제27보병사단장
제7포병여단장
제5포병여단 제1포병단장
1. 개요
2. 생애
3. 여담
4. 관련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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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군인. 현재 계급은 중장이며 2019년 11월부터 제7기동군단장을 맡게 되었다.[1]

2. 생애


충청북도 제천시 수산면 다불리 출신이며 충주고등학교(39회)를 졸업하고 육군3사관학교(23기)에 입교하여 1986년 졸업 후 포병 소위로 임관하였다.[2]
영관 시절 제5포병여단 제1포병단장과 육군본부 정보작전부 지휘통제계획장교, 제3야전군사령부 대화력전과장을 지냈고 준장으로 진급하여 7포병여단장을 역임하였다.[3] 2017년 9월 소장으로 진급하여 27보병사단장으로 취임하였다.[4] 사단장 이임 후 한직이라고 할 수 있는 지상군 페스티벌 지원단장직을 수행하였다.[5] 이후 중장 진급에 성공하여[6] 제7기동군단장으로 취임하게 되었다.취임식 기사

3. 여담


  • 7포병여단장 재임 시절에는 부대원들에게 구보를 많이 시켰는데, 그 일환으로 비 내리는 날이면 여단 본부와 울타리 안의 예하 부대원(약 200명)을 모두 집합시켜 부대 인근 팔당대교를 10~20km 정도 뛰도록 지시했었다. 그래서 비가 오거나 하늘이 흐린 날이면 여단 전속부관 전화기는 예하 부대의 뜀걸음 집합여부에 대한 문의전화가 빗발쳤었다. 목격담으로 낙오한 일부 간부들이 택시를 타고 복귀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 제27보병사단장 재임 시절, 여단장 때의 무리한 뜀걸음으로 무릎에 무리가 생겨 목욕탕 체력단련'을 지시했다. 일과 내의 체력단련이 종료된 후에 목욕탕에 모인 사단 참모들과의 체력단련 2차전으로 플랭크(3분) → 레그레이즈(200개) → 팔굽혀펴기(100개) → 스쿼트(200개) → 수영발차기(1000개) → 냉수마찰로 구성되어있다.
  • 전임자가 부대원의 특급전사 강요 논란으로 악명이 높았던 윤의철[7]이었던 관계로 기대가 높다. 다만 대신 그동안 매우 소홀했던 주특기 훈련(특히 정비, 조종, 운전)이 주로 이루어질 전망이다. 기동부대의 목적을 생각해보면 이는 지극히 당연한 내용이지만 그만큼이나 전임자의 행적이 개판이었다는 소리다.
  •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며, 사단 내 대대급 교회를 불시에 방문하기도 한다.
  • 27사단에서는 소부대 단위의 실전적인 훈련이 이루어지도록 지시하였다. 전장군기와 야전성 그리고 특히 소부대전투기술을 강조하였는데, 이는 군단장이 되어 군단 전 부대 유형별 소부대 전투기술 전술예규 작성으로 이어진다.
  • 7군단장 재임 시절, 코로나19로 인한 용사들의 스트레스 해소는 물론, 자칫 외면받을 수 있었던 간부들을 위해서는 '1table-1flower 캠페인'을 해당 내용 기사(국방일보) 코로나19를 함께 극복하는 군인 가족들을 위해서는 '퇴근길 꽃 한송이 캠페인'도 실시하였다.
  • 2020년 12월 인사에서 3사 동기인 정철재 소장이 중장으로 진급하여 제2군단장에 부임하면서 본의 아니게 경쟁자가 늘었다.[8]

4. 관련문서



[1] 소장에서 같이 중장으로 진급하는 장군들은 박정환, 김현종, 강창구, 박양동 장군이다.[2] 임관 연도기준으로는 김승겸 한미연합군사령부 부사령관(육사 42기)과 동기이나 1998년 이전의 육군3사관학교 출신 장교들은 지금처럼 전문대 졸업생 또는 4년제 대학 2년 이상 수료자가 편입학하지 않고 입교 후 2년만에 졸업 및 임관하였기에 2년간 학사학위 위탁교육을 받았으며 입교기준으로 하면 강인순 한미연합군사령부 부참모장(육사 44기), 박양동 제6군단장(학군사관 26기)이랑 동기이다.[3] 재임 당시 알자회 일당들의 쿠데타 진압 주력부대 예정이었다. 직속 상관인 이종섭 중장(육사 40기)이 반알자회로 탄핵 기각시 강제 예편이 예정되어 있었다. 여담으로 후임 여단장은 서욱 육군참모총장과 육사 41기 동기인 이귀우 준장(무려 7군단에서 짬밥 넘버원이었다. 즉 윤의철보다 2년 선배)인데 군단장 취임하자마자 전역신고를 받게 되었다.[4] 전임은 중장 진급 후 수도방위사령관과 지상작전사령부 참모장을 지내고 대장에 진급한 김정수제2작전사령관(육사 42기)[5] 지상군페스티벌이 진행되는 동안에만 있는 임시적인 보직이라 보직을 다른 곳으로 옮기고, 파견 형태로 임무를 수행했을 가능성이 있다. 김승겸 장군도 알자회 일당들 눈 밖에 나서 국군의 날 행사 지휘관을 맡은 바 있다. 그 당시 사진을 보면 그의 착잡한 표정이 드러난다.[6] 군단 간 화력을 비교했을 시 제7기동군단이 타 군단에 비해 월등하나, 최근 대장 진급자는 제1군단장이나 제5군단장 출신이 더 많다. 다만 육군3사관학교 1998년 이전 임관자의 경우 소위 임관 후 2년간 학사 학위를 인정받았어야 하므로 임관 동기는 육사 42기이나 진급 동기는 육사 44기, 즉 1차 진급자인 셈이므로 육사 44기 1차 진급자들과 경쟁할 가능성이 높다.[7] 심지어 본인과 똑같은 포병 출신이다. 다만 소위 임관은 허강수가 6개월 빠르다.[8] 보통 비육사 출신 중장은 한 기수당 한명씩 나왔지만 3사 14기의 이순진, 한동주 중장 이후 오래간만에 2명 이상의 중장을 배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