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포병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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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제7기동군단 소속 예하 포병여단이다.
2. 상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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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육군의 포병여단이다. 북진선봉부대라고 불린다. 경례구호는 '북진'이다. 이는 상위 군단인 제7기동군단과 같다. 군단 직할 포병여단 이기 때문이다. 여단장에는 준장이 보임된다. 영문 정식 명칙은 Republic of Korea Army (ROKA) 7th Artillery Brigade. 평시에는 총 5개 대대로 이루어져 있으며 4개의 K-9 대대와 1개의 다연장로켓 대대를 보유하고 있다. 이 다연장로켓대대는 2017년경 신형 다연장로켓대대로 재편성 될 예정이었지만 아직까지도 구형을 쓰고 있다. 여단본부는 경기도 남양주시에 위치하며 1개의 다연장로켓대대와 2개의 K-9 대대가 여단본부 내에 위치하고 있고 2개의 K-9 대대는 영외대대로 각각 양평군과 남양주시에 위치하고 있다.
한국 육군의 제7기동군단의 화력을 담당하고 있다. 제7포병여단본부와 예하 3개 대대는 경기도 남양주시 근방에 주둔하고 있으며, 다른 두 개 대대도 의정부시 (실제 부대 위치는 남양주시인데 의정부시 경계 바로 앞) 양평군 등지에 산개해 있다. 위치가 중요한 것이 아닌게 방어를 포기하고 북으로의 진격(그래서 경례구호도 북진이다)에만 신경쓰는 군단 예하 포병이기 때문에, 그리고 기동군단의 특수성을 반영한 여단이기 때문에, 타 부대처럼 주둔지가 정해져 있어 그곳에 주둔하고 있는 것이 아닌, 서울특별시 동쪽, 북쪽 방면에 임시로 주둔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부대마크는 제7기동군단 마크에 뒤에 포병병과마크를 배경으로 한 것을 차용한다. 하지만, 제7기동군단 직속 여단이기 때문에 장병들이 군복에 다는 오버로크는 제7기동군단의 것을 그대로 단다.
2010년 연평도 포격 사태 당시 해병대 포병 병력이 철수하면서 제7포병여단의 K-9 대대가 순환으로 연평도에 투입됐으며 백령도에는 다연장로켓대대 1개 포대가 투입되기도 하였다. 또한 서북도서 병력 증가 뉴스 때마다 빠짐없이 나오는 다연장로켓 배치가 바로 제7포병여단의 다연장로켓 1개 소대이다. 해당 다연장로켓들은 2017년 신형 다연장로켓 배치 계획에 따라 해병대로 인계되었다.
3. 예하부대
3.1. 여단직할대
- 본부대
- 통신중대
- 정비근무대
3.2. 제661포병대대
3.3. 제662포병대대
3.4. 제663포병대대
3.5. 제670포병대대
3.6. 제758포병대대
4. 과거부대
5. 출신인물
5.1. 여단장
5.2. 장교/부사관
- 백종원(사업가)
학사 14기로 1989년에 임관하고 난 이후에 7포병여단에서 포병장교로 복무했지만 중간에 취사장교라는 직책으로 근무했다. #
5.3. 병
6. 기타
6.1. 근무환경
보통 신병은 제3수송교육연대에서 훈련받는 수송병을 제외하고는 육군훈련소, 맹호신병교육대, 20사단신병교육대 등지에서 훈련을 받고 자대로 온다. 가끔씩 다른 사단 신병교육대에서도 오기는 한다. 예하에 신병교육대가 존재 할 수 없는 것이 원인.
영내대대로 배치받은 병사는 포반장교육대라고 불리는 곳에서 1주일간 교육 을 받는다 (부대설명)
6.2. 훈련
한국군의 유일한 기동군단인 제7기동군단의 예하 포병여단이자 비슷한 사/여단급 제대인 수도기계화보병사단, 제20기계화보병사단과 같은 군단에 속해있기 때문에 훈련은 많은 편이다. 호국훈련, 각종 전술 훈련, KR/FE, 유격 훈련, 혹한기 훈련, 전투장비 지휘검열, 군단 지휘검열 등 빼곡한 훈련 일정이 있다. 호국훈련의 경우 약 한 달 정도. 유격훈련은 2박3일이었으나 4박5일로 변경되었다
북진에 최선봉으로 진격하는 부대를 지원하는 주 화력을 담당하는 훈련을 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제7포병여단 여단본부근무대의 경우 기본적인 훈련인 유격훈련과 혹한기훈련은 받게된다. 하지만 여단본부는 대대가 아니므로(중대급 편제이나 수는 일반 중대보다 더 많다) 대대전술훈련 등을 받지 않는다. 더 나아가, 각종 훈련이 있을 때도 상대적으로 여단본부의 경우, 본부의 특성상 훈련에 참가하는 것이 아닌 총괄하는 성격이 짙으므로 훈련을 할 가능성은 낮아진다. [3] 단, 통신은 제외, 운이 없으면 대대를 돌면서 지원을 해야 하기 때문에 한 달 정도 야지에 나가있는 경우도 있다.
6.3. 여단가
겨레의 부름 받들어
선봉에 선 호랑이여
포염의 전장속에 선 우리는 충호인
동트는 고요를 뚫고 불을 뿜으면
그 누가 따르랴, 지상전의 승리자
(북진!)
통일의 선봉이여, 7포병이여
우리 역사의 설 곳은 승리 승리의 장
7. 사건사고
8. 여담
- 전략무기인 현무 탄도 미사일까지 운용한 적이 있다. '제1000대대'라고 하여 현무 운용을 담당하는 부대가 있었다. 유도탄사령부를 창설한 뒤 현무의 운용을 유도탄사령부에서 맡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 적어도 본부와 그 이웃에 마주하는 대대는 신막사 생활을 한다. 2013년경까지 신막사 건설이 완공되었고, 모든 대대 및 근무대가 이제는 신막사에서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확실히 구막사 보다는 10명 내의 인원이(기본 6명) 생활하며 침대를 사용하는 신막사가 쾌적하고 시설도 월등하다. 하지만, 반대로 사무실 및 근무지와 거리가 멀어져 확실히 근무지간 이동에 불편함은 존재했다.
- 특이하게도 다른 여단들과는 달리 포병단 편제를 사용하지 않는 유일한 독립포병여단이다. 이는 자기 편제위주로만 다루는 타 여단과는 달리 7포병에서 각 예하 기보사단의 포병에 대한 지휘권을 인계받아 써먹을 수 있기 때문. 그렇기에 기보사단 포병은 작전계 업무가 타 포병에 비해 더 많은 편이고 7포병 직속 부대도 마찬가지 신세.
- 2013년 초까지는 별명이 제7포상여단이었다. 포상휴가가 많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 확실히 지휘관(최창규 소장, 전 육군포병학교장)인격적으로 장병들을 대우했고 장병 복지에 힘써 휴가나 외박도 잦았다. 2011년 정한기 여단장(육사39기)이 소장 진급과 함께 제35보병사단장으로 영전하면서 취임한 최창규 여단장은 취임식에서 병사들에게 가장 군기빠진 군대를 만들겠다고 선언했고 실제로 이루어냈다. 식사집합의 폐지 및 삼삼오오 식사하러 가라고 하는 한편 인트라넷 커뮤니티 활성화로 2011년부터 한동안 육군에서 당직 서면서 볼 만한 커뮤니티로 소문나게 됐다. 글 몇개 잘 쓰면 포상휴가도 쏠쏠하게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본인도 소장으로 진급하면서 또다시 정한기 후임으로 사단장에 취임하게 되었다.
물론 지금은 지휘관 교체로 예전만 못하다. 하지만, 아직도 지리적 위치는 중앙선으로 용산구 등 서울특별시 중심부로 한 시간 내 진입이 수월하기 때문에 타 근방 부대에 비해 좋은 편이다. 다만, 간부들은 주말출근에 야근이 잦았다. 말 그대로 간부를 갈아 넣은 건데, 그 덕분에 고급간부들이 전방으로 많이 빠졌고, 지원율도 현저하게 떨어졌다. 그 여파로, 심각한 인력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 포병여단 중 비교적 후방에 위치하며 한강과 매우 가깝다. 사실상 모든 포병여단 중 가장 최상의 근무환경을 자랑한다. 대부분의 포병여단이 휴전선인근 최전방 바로 아래에 위치하는 것을 보면 장점. 장비도 가장 최신이기 때문에 부대 조건은 가장 훌륭한 측에 든다고 할 수 있다.
- 남양주시 와의 연계 활동 및 교류가 잦다. 한강정화사업이나 각종 봉사 활동 등을 지원하는 주민 친화형 부대를 표방하고 있다(물론 장병만 주말에 고생한다).
- 해병대로 인계된 다연장로켓을 인수하기 위해 백령도의 제6해병여단이 한 달간 제7포병여단의 다연장로켓대대에 파견을 와서 각종 교육을 받은 적이 있었다. 당시 파견 온 해병대원들은 철원에서 실행하는 후반기대대전술훈련까지 참가하여 포탄사격까지 무사하게 완수 후 퇴소했다.
- 이 부대가 군단 사령부(이천)와는 달리 남양주시에 있는 이유는 대한민국 육군 사단 중 가장 화력이 강한 두 예하사단(각각 가평, 양평에 위치)중 하나라도 쿠데타를 일으켜 전차를 몰고 올 경우에 대비하여 서울로 통하는 고속도로 길목을 막기 위함이다. 라는 썰이 있으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 도로사정이 상대적으로 나쁜 가평 지역은 몰라도 양평지역은 남양주를 거치지 않고도 서울로 들어가려면 얼마든지 들어갈 수 있다. 7포병여단의 위치는 작계상의 임무에 의한 것이고, 썰과 같은 상황에서 수도 서울 방어작전은 다른 부대들에 의해 여러 가지 방법으로 시행된다.
- 윤의철이 군단장 시절 패악질을 피우는 와중[4] 에 그나마 영향을 덜받았다는 소문이 있는데[5] 여단장이 서욱 육군참모총장과 육사 동기였기 때문이다. 즉 윤의철의 육사 2년 선배이고 전임 여단장에게 전역신고를 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