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동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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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2. 활동 내역
3. 출연 작품
3.1. TV
3.2. 연극
4. 기타


1. 소개


대한민국코미디언. 1971년 12월 31일 (정부 직할) 부산시 출생.

2. 활동 내역



2.1. KBS 개그 콘서트


1992년, 대학개그제에서 동상을 받으며 KBS 공채 9기로 데뷔했지만,[1]무명 세월을 보내다가 데뷔한 지 11년 만인 2003년 드디어 개그 콘서트에 첫 출연, 외길 30년을 진행하며 허둥이라는 이름을 알린다. 그리고 '''2004년'''에 드디어 빛을 본다. 개그 대국에서 눈에 다크서클을 깊게 칠한 '''허둥 9'''단으로 등장한 것. 코너 내용은 허둥 9단과 장동혁 3단이 언어유희와 개인기를 선보이며 사람들을 웃기고 박성호윤석주가 호들갑을 떨며 중계를 하는 내용. 여기서 박성호와 윤석주는 허동환을 향해 '''이창명과 동기'''라는 사실로 팩트폭력을 한다. '''허둥 9단'''으로 광고까지 찍었을 정도로 잘 나갔지만[2], 허둥 9단의 인기가 식자 2년 6개월 동안 존재감이 사라져버렸다. 그가 마지막으로 개콘에서 맡았던 코너는 박준형[3], 변기수[4], 유상무, 홍경준과 함께 진행한 '''이글 파이브'''.[5] 아이돌 콘셉트로 나온 다섯 명이 서로 자신을 소개하는데 이때 허동환은 마지막 차례에서 자신의 연배로 웃기는 개그였다. 예로 들면 다른 멤버들은 데뷔작이 개콘인 풋풋한 신인들인데 혼자 유머 1번지로 데뷔한 고인물이라던가, 다들 아이돌 멤버의 동창이나 사촌이라고 할 때 자긴 PD의 고교 선배라던가.

2.2. MBC 개그야


개콘에서 자취를 감춘 후에도 대학로에서 공연하며 부활의 기회를 노리던 허동환은 2006년 10월 SBS 웃찾사 무대에 오른다. 위양호, 차승환과 함께 '''거북이 특공대'''라는 코너를 선보이지만 편집당하면서 웃찾사 이적은 실패로 끝난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대학로에서 계속 공연하다가 2007년 5월부터 MBC 개그야에 합류해서 '''바라바라'''를 선보인다. 세 명의 불량학생(차민준, 김한배, 박규희)를 부산 사투리를 구사하는 허동환 선생님이 갈구는 내용인데, 이때 허동환의 뻘짓과 불량학생들의 어설픈 연기가 어우려지면서 코너는 히트를 친다. 이후 허동환은 '''바라바라'''를 연극으로 꾸미면서 전국 순회까지 한다.[6]

2.3. 근황


이후 2008년 8월, 서울 신촌에 소극장 '''허둥홀'''을 개관해서 후배 개그맨들을 양성했었다. 이때 허동환을 거처간 제자들은 3사 공채 개그맨으로 발탁되었으며 유명한 제자로는 김기리[7]서태훈 등이 있다.
그리고 2020년 5월 25일 근황올림픽을 통해 새로운 근황이 공개되었는데,해당 영상 현재는 고향인 부산광역시에 거주하면서 공연이나 행사를 다니고 있다고 하며(다만 코로나 19로 인해 2020년 들어서는 잘 나가지 못한듯 하다.), 전술한 허둥홀은 안타깝게도 큰 손해를 보고 폐업했다고 한다. 또한 이로 인해 건강악화와 우울증 등의 마음고생 역시 심하게 했다고 밝혔다.

3. 출연 작품



3.1. TV



3.2. 연극


  • 바라바라 꿍

4. 기타


신인 시절에는 못 나가는 선배들이 참 안돼 보였다고 하였지만, '''그게 오히려 자신의 모습이 된다'''. 반지하 자취방 생활을 하면서 어려운 생활을 보냈고 1998년에는 아무것도 먹지 못하다가 병원에 실려가기도 하였다. 결국 2000년에 강제로 부산 고향집에 끌려갔다가 아버지의 신용카드를 훔쳐들고 다시 서울로 와서 선배 개그맨의 수발을 돌며 힘든 생활을 했다.
아버지 허식은 교사였으며, 교장까지 승진했고 형 허동권은 성악가로 활약 중이다. 당시 개콘을 챙겨보던 사람들은 윤석주와 박성호가 허동환을 디스하며 부산 모 중학교 교장 선생님의 근심거리라고 디스하던 것을 들었을 텐데 실제로 아버지께서 당시 그 학교의 교장이셨다고 한다.[8] 허동환이 유명해지자 학생들이 교장실에 들어와서 정말 아들이 허둥 9단 맞느냐고 질문을 해댔다고 한다. 그리고 개그콘서트 개그대국 2004년 5월 30일 방영분 에서 방청객석에 앉아있는 허동환의 아버지를 박성호, 윤석주가 소개한 적이 있다. #
2007년 2월 25일에 7살 연하 신부와 결혼식을 올렸는데, 색다르게 진행되었다고 한다. 현재 1남 1녀를 두고 있다.
또한 후배들한테는 편하게 대해줘서 그런지 후배들과 활발하게 SNS로 소통하고 있다.
개콘에서 코너를 진행할 때는 대부분 여덟 기수 후배 윤석주와 콤비로 등장했는데, 실제로 둘은 서로를 이끌어준 존재였다. 윤석주는 개그맨이 되고 싶어 허동환을 찾아가서 도움을 받았으며, 공채 데뷔 후 부진했던 허동환과 코너를 구상했다. 뜬 후에도 함께 하기로 했던 둘은 한 때는 사소한 갈등으로 인해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되어 결국 헤어졌지만, 후에 화해했다. *
이창명과 KBS 입사 동기인데, 둘의 입지 차이는 넘사벽이었다. 허동환이 11년 만에 개콘에서 첫 코너를 진행할 때 이창명은 이미 인기 개그맨으로서 여러 예능에 출연 중이었다. 오죽했으면 개그 대국 당시 이창명과의 입지를 비교한 것이 주된 개그 패턴이었을 정도. 신인 시절[9]을 제외하면 둘이 함께 촬영이나 행사를 진행한 적은 없지만, 허동환의 결혼식에 이창명이 참석했다.

[1] 유재석이 심형래 같은 대선배들의 뒤에서 엑스트라로 출연할 때 허동환도 함께 출연했다.[2] 다만, 개그 대국은 허동환이 긴 무명 시절을 끝내고 대박난 것과는 별개로 코너 자체에 대한 평은 별로 좋지 않은 편이었다.[3] 당시 허동환이 속한 '''갈갈이 패밀리 엔터테인먼트'''의 대표이기도 하다. 한 마디로 말해 허동환은 소속사 사장보다 연배나 경력이나 모두 선배인 셈.[4] 처음에는 채경선이었다.[5] 우연스럽게도 다섯 명 모두 타 방송사 개그에 출연한 적 있다.[6] 개콘의 허둥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갈굼 받는 호구 선배의 의미지를 기억하겠지만 개그야에서는 오히려 자신이 후배들을 갈궜다. 개콘에 있을 때는 무명이라고 윤석주와 박성호한테 갈굼 당하더니 개그야에서는 똑같은 이유로 김한배를 갈군다.[7] 처음부터 허동환의 극단에 있던 건 아니고 맹승지, 박영재와 함께 전유성의 극단에 있었다.[8] 이와 비슷하게 정종철은 자신의 모교 이름과 교장 말버릇을 개그로 이용했다.[9] 당시 KBS 희극인들과 함께 티라노의 발톱에서 단역으로 등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