험프리 보가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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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험브리 보가트''' (Humphrey Bogart)
'''본명'''
험프리 드포레스트 보가트 (Humphrey DeForest Bogart)
'''국적'''
미국 [image]
'''출생'''
1899년 12월 25일, 뉴욕 주
'''사망'''
1957년 1월 14일 (향년 57세), 캘리포니아 주 로스앤젤레스
'''학력'''
필립스 아카데미 앤도버
'''직업'''
배우
'''신장'''
173cm
'''활동'''
1921 –1956
'''서명'''
[image]
''' 역대 아카데미 시상식'''
[image]
'''남우주연상'''
''' 제23회
(1951년) '''

''' 제24회
(1952년) '''

''' 제25회
(1953년) '''
호세 페레
(시라노)

'''험프리 보가트'''
('''아프리카의 여왕''')

게리 쿠퍼
(하이 눈)

1. 소개
2. 커리어
3. 기타


1. 소개


미국배우. '''AFI(미국영화협회) 선정 가장 위대한 남배우 1위'''[1]로 선정되었을 만큼 큰 인기와 영화사에 인상적인 업적을 남긴 배우이다. 특히 필름 누아르에서 큰 활약을 펼쳤고 해당 장르를 개척한 배우로서 '''필름 누아르의 대표'''격으로 평가받는 배우이다.
는 173cm. 키가 작아서 영화 촬영 때는 키높이 신발을 신었다는 일화와 카사블랑카 출연 당시 상대역 잉그리드 버그만이 175cm로 당시는 물론이고 지금 기준으로도 여자로는 상당한 장신이라 사과 상자 위에 올라가 포옹씬을 찍었다는 일화가 있다.
트렌치 코트와 중절모를 쓴 탐정 캐릭터로 널리 알려졌으며, 미국 탐정의 대명사 샘 스페이드와 필립 말로역을 모두 맡았던 하드보일드의 남자. 유명한 명대사는 영화 카사블랑카에서 남긴 "당신의 눈동자에 건배"가 있다.
미국에서는 Badass의 상징적 존재이자 사실상 영화 연기 내에서 쿨한 터프가이, 입체화 된 하드보일드 캐릭터를 처음 선보인 배우이다. 보가트 이전의 주연급 배우들이 주로 전형적인 착한 주인공이나 코미디 캐릭터들에 불과했다는것만 봐도 영화연기에 있어서 한 획을 그은 인물이다. 어찌 보면 말론 브란도 출연 이후 물밀듯이 쏟아져 나온 다양한 개성의 성격파 배우들의 큰 틀을 프레드릭 마치와 함께 미리 잡아준 배우라고 볼 수 있다.
무려 '''1899년생'''으로 할리우드 남배우계의 맏형 라인이다.

2. 커리어


뉴욕 출신으로 원래는 배우를 꿈꾸던 사람이 아니었다. 이런저런 다양한 직업을 거친뒤 1921년에 본격적으로 연기를 시작했다. 1920년대부터 1930년대까지 브로드웨이에서 일하면서 연기생활을 이어 나갔으나 검은 목요일, 사건으로 인해 연극 생활에 문제가 발생하자, 그는 할리우드로 진출한다. 1936년, 《화석의 숲》에서 뛰어난 연기를 펼쳐 평단의 호평을 받은 이후 《더럽혀진 얼굴의 천사》같은 갱스터 영화에 주로 출연하였다.
뉴욕 토박이인데 단순한 토박이 수준이 아니라 그의 10대조 할머니는 뉴욕 당시 이름 뉴암스테르담에서 태어난 최초의 백인이었다. 그러니까 뉴욕이라는 도시 자체가 그의 가문과 역사를 함께하고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당시 뉴욕 지역의 식민지 개척사를 보면 보가트라는 이름이 자주 등장한다.
냉정하고 날카로운 눈매와 턱선, 깡마른 체구등이 탐정역할에 제격이었는지 그는 1941년부터 주연을 맡아, 《하이 시에라》, 《몰타의 매》같은 탐정 영화에서 뛰어난 연기를 펼쳤다. 다음해에는 본인의 최고 흥행작이자 명작으로 아직까지 회자되는 《카사블랑카》에 출연하여 주옥같은 연기로 인기를 얻게 된다.
이후 그는 로렌 바콜과 함께 출연한 《소유와 무소유》, 《빅 슬립》, 《다크 패시지》, 《키 라르고》에 나왔다. 그는 《시에라 마드레의 황금》에서도 출연하였으며 1951년에는 《아프리카의 여왕》으로 마침내 아카데미상을 수상하였다. 그는 이후로도 《사브리나》, 《케인 호의 반란》에 출연하였으며 마지막으로 《하더 데이 폴》에 출연하였다.
하지만, 1956년 과도한 흡연으로 인해 후두암이 발병하면서 수술을 받았지만 병이 깊어져갔다. 결국 1년도 못가 1957년 1월 14일, 만 56세로 세상을 떠난다. 사망 당시 몸무게가 40킬로그램도 되지 않을 정도로 병색이 깊었다고 한다. 죽기 하루 전, 캐서린 헵번과 스펜서 트레이시가 마지막으로 병문안을 왔고 보가트도 이제 당장 죽을 몸임을 알아서인지 덤덤하게 이 둘을 맞이했다고 한다.

3. 기타


험프리 보가트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이 바로 담배이다. 지금이야 담배에 대한 인식이 워낙 안 좋고 방송에서 흡연 장면을 모자이크 처리하는 지경에 이르렀지만[2] 보가트는 당시 그가 출연하는 영화에서 멋드러지게 담배를 태우는 모습으로 흡연의 아이콘이었고 뭇 남성들의 로망이었다. 오죽하면 이지 라이더 삽입곡 중에서 Don’t Bogart That Joint, 즉 '보가트처럼 대마초 피우지 마' 라는 곡이 있는데, 여기서 보가트는 '독차지 하다'라는 뜻의 '''동사'''로 쓰인다. 담배를 가장 멋지게 피우는 배우를 뽑으면 부동의 1위이기도 했다. 험프리 보가트의 사망 원인은 후두암이었는데, 이는 실제로도 엄청난 골초였던 그였기에 담배로 인한 후두암이 발생한 것이다.
냉전 시대에 미국 영화계에 불어닥친 매카시즘 열풍에 적극적으로 반항하던 배우 중 하나였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엄청난 바람둥이로 1000명 가량의 여성과 잠자리를 가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러한 여성편력은 오히려 그 자신이 게이가 아닌가 하는 불안감의 발로에서 나온 것이라고도 한다.
[1] 출처[2] 사실 대한민국을 제외하면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흡연 장면을 완전검열하는 국가는 아직도 그렇게 많지는 않다. 2010년대유럽, 일본 그리고 미국 드라마에서도 담배는 물론이고 전자담배대마초 흡연씬을 아무렇지 않게 내보일 정도이다. 게다가 영화에서는 누구나 다 알다시피 동서를 막론하고 지금도 거리낌없이 흡연장면이 나온다. 단, 우리나라의 경우 '''국가에 의한''' 검열이 아니라 방송사들 자체 협약에 의해 검열된다. 흡연장면이 불법인 것은 아니나 방송사 자체적으로 금연 운동을 위해 검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