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마르샤

 

'''현대자동차의 중형차 모델'''
스텔라

'''쏘나타'''·'''마르샤'''

쏘나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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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여담
3. 둘러보기

HYUNDAI MARCIA[2][3]

1. 개요


'''차량 제원'''
2.0 / 2.5
'''구동방식'''
앞 엔진 전륜구동
'''배기량'''
1,997cc / 2497cc
'''최고출력'''
146hp / 173hp
'''최대토크'''
19.2kg•m / 22.4kg•m
'''연비'''
9.2~10.8km/l
'''전장'''
4,770mm
'''전폭'''
1,770mm
'''전고'''
1,405mm
'''축거'''
2,700mm
'''윤거전'''
1,515mm
'''윤거후'''
1,505mm
'''공차중량'''
1,355kg
'''변속기'''
수동 5단, 자동 4단
'''전륜 서스펜션'''
맥퍼슨 스트럿
'''후륜 서스펜션'''
멀티링크
'''전륜 제동장치'''
V디스크
'''후륜 제동장치'''
디스크

'''고품격 6기통 세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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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6 2500 전기형[4] 정측면
V6 2500 전기형[5] 후측면
2.0 DOHC 중기형[6]
현대자동차에서 쏘나타의 윗급으로 1995년 3월에 출시한 앞 엔진 전륜구동 중형 세단이다. 프로젝트명(코드네임)은 H이다.
현대자동차에서 고급 중형 세단을 컨셉으로 출시하였으며, 당초 목적은 쏘나타그랜저 사이의 라인업을 메워 줄 목적이었다.[7] 1993년 말~1994년 초까지만 해도 해외 수출 전용 모델로 개발하려 했으나, 이내 내수 시장 판매용으로 방향을 돌리게 된다.
원래 카덴자라는 이름으로 1994년 중순경 출시될 예정이었다.[8] 하지만 차량 출시일이 1994년 8월에서 그해 12월로, 또 1995년 3월로 계속 미뤄졌다. 그리고 출시명도 1994년 10월경 '카덴자'에서 '마르샤'로 바뀐다.[9][10]
마르샤는 출시 당시 절찬리에 판매 중이던 쏘나타 II의 고급화된 페이스리프트 모델이라고 봐도 된다. 플랫폼은 당시 판매중이던 쏘나타 II 및 III[11]에 적용된 Y3 플랫폼을 사용했다. 사실 플랫폼 뿐만 아니라 차체도 그대로 공유해서 마르샤는 파워트레인 및 앞, 뒤 디자인을 제외한 모든 부분이 쏘나타 II와 똑같은 차량이었다.[12] 이 때문에 영문 위키백과에서는 마르샤를 Y3 쏘나타의 파생 차종 중 하나로 소개하고 있다. 내장 디자인은 쏘나타 II를 베이스로 하되, 오디오, 공조 장치, 에어백, ECS 등과 같은 일부 편의사양이 그랜저급으로 업그레이드된 것이다.[13]
엔진은 2.0리터, 2.5리터 두 가지 트림이 존재했다. 2.0L 보급형은 쏘나타에 탑재되는 시리우스 2,000cc DOHC 엔진을 장착했고, 2.5L 고급형은 그랜저의 중급형 모델에 탑재되는 미쓰비시 사이클론 V6 2,500cc 엔진이 장착되었다.[14] 2.5L 고급형의 경우 공차중량 대비 구동 성능이 뛰어나 당시 고속도로에선 웬만한 국산차들은 모두 이길 정도의 성능을 발휘했다.
LPG 전용인 2.0/2.4 LPG 모델도 있었다.[15] 마르샤 택시도 있었다.[16]
현대는 처음엔 광고 속 등장했던 2.5L를 주력으로 밀었으나, 저조한 판매량에 2.0L가 실제 판매량의 대부분을 담당했다. 그러나 이 역시도 쏘나타에 치이며 저조한 판매량을 보이게 되었다.
비싼 가격 때문에 대한민국 정서상 그 돈을 줄 바에 차라리 돈을 더 주더라도 최고급 차인 그랜저로 가자는 인식이 팽배하여 큰 인기는 없었고, 2,000cc 보급형 모델은 이후 출시된 쏘나타 3의 호불호가 갈렸던 디자인으로 인해 쏘나타 3의 고급형 수요를 어느 정도 가져오기도 했다.
기본적으로 중형 세단 이상으로 갈수록 차체 크기에 집착하고, 남들에게 과시하는 것이 주류인 대한민국 자동차 문화에서, 그런 분위기가 현재까지도 남아 있는 걸 감안하면 그 당시에는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았다. 중형차의 차체를 그대로 활용하여 앞뒤 디자인을 손보고, 쏘나타에는 없었던 고급 옵션을 추가로 집어넣었음에도 불구하고 차별화에 한계가 있던[17] 마르샤는 그닥 좋게 보이는 모델이 아니었기에 쏘나타와 마찬가지라는 인식이 팽배하여 저조한 판매량에 첫 출시 3년만에 단종되는 비운의 운명을 맞이한다. 특히 비슷한 시기에 먼저 출시된 그랜저 2세대(뉴 그랜저/LX)의 경우 그랜저의 넓은 차체에 쏘나타의 2,000cc DOHC 엔진을 얹은 Executive 모델이 큰 차체 대비 가격 측면에서 상당히 인기가 좋았기에[18] 마르샤 살 돈으로 차라리 돈을 더 주더라도 그랜저를 사는게 나았던지라 더더욱 묻혔던 것이다. 실제로 마르샤 2.5 V6 버전이 대략 2400만원대였는데 그랜저 2.0 Executive 풀옵션 버전이 비슷한 가격이었다. 마르샤가 한급 위 엔진과 ECS 등의 고급 옵션들이 더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작고 비싼 중형차라는 세간의 인식을 극복하기엔 어려운 일이었다.
아랍 국가들과 러시아 및 타 동유럽 국가들에 수출도 했었는데, 그나마도 한정판으로 판매된 거라 상당히 보기 힘들다.[19]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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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 마르샤[21] 정측면
뉴 마르샤 후측면

'''靜•中•動(정/중/동)'''

1997년 4월 페이스리프트 모델인 뉴 마르샤가 선보였다. 이중 격자 무늬의 프런트 그릴과 신형 알루미늄 휠, 새로운 우드 그레인 및 2단 콘솔박스 등으로 실내외를 개선했다. 그러나 판매량은 여전히 저조했고 결국 외환위기 때인 1998년 10월 현대자동차의 차량 감축을 통해 바람처럼 사라졌다.

2. 여담


당대 공도 폭주족들에게 양카로 크게 사랑을 받았는데, 저렴하고[22] 안정적인 튜닝방법인 엔진스왑이 가장 활발하게 이루어진 모델이다. 쏘나타의 V6 모델은 모두 수출형이었으므로, 국내에서 수출용 엔진 와이어링 하네스[23]와 서브프레임을 구하는게 거의 불가능했는데, 처음부터 V6 엔진을 장착한 마르샤의 경우에는 와이어링 하네스가 전부 호환되기 때문에 뉴 그랜저/다이너스티에 올라갔던 3,500cc 엔진을 스왑하는게 아주 쉬운 작업이었기 때문이다. 3.5 엔진 전용 센서 몇 개와 ECU/TCU만 바꿔주면 스왑이 끝나는 데다, 모든 것이 순정 하드웨어인 것과 마찬가지의 상태이므로 안정성 역시도 당시 기술력 부족으로 언제 퍼질지 모르는 불안한 상황이었던 과급 튜닝과는 궤를 달리할 수밖에 없었던 것. 가벼운 쏘나타 바디에 210마력을 내뿜는 엔진이 만나니 당대 최고의 성능을 자랑하는 국산차인 대우 아카디아조차도 마르샤 3.5 튜닝카 앞에서는 백기를 흔들 정도였다고.
여담이지만 당시 20~30대 재벌 2, 3세들과 사채업자들, 깡패(불량배)들이 V6 2500을 애용했다 카더라. 이와 비슷했던 케이스가 마르샤 단종 몇달 전 등장했던 SM5의 V형 모델들, 특히 SM525V. 후술하겠지만, 마르샤의 실패 원인을 분석해본 현대는 마르샤 후속으로 개발중이던 XG에 실패 요인을 반면교사로 삼아 E세그먼트로서 체급이 격상된, 그랜저 XG를 내놓게 되고, 이것이 지금의 준대형(E세그먼트) 차급을 제대로 형성해놓은 계기가 되었다. 어떻게 보면 이 때의 뉴 그랜저 후속작으로 기획되었던 것이 F세그먼트인 에쿠스였던 것을 생각하면 마르샤 후속 또한 체급을 올리려던 것이 처음부터 예정된 일이었음을 대략 짐작할 수 있다. 다만 XG와 에쿠스의 갭이 너무 커서 다이너스티를 한동안 생산하다가 XG의 후속작인 TG가 약간이나마 사이즈를 키워 에쿠스와의 갭을 줄이고 나서야 단종시킨 점이 그것. 그마저도 제네시스가 등장하고 나서야 제대로 된 라인업이 완성되었다. 애초 다이너스티는 오랫동안 만들 차가 아니었으며 풀체인지가 예정되어 있던 모델이었다는 점도 생각해볼 일. 그 때 기획된 모델이 바로 기아차로 넘어가 플래그십으로 데뷔하게 된 오피러스다. 만약 현대가 기아를 인수하지 않았거나 예정대로 다이너스티를 풀체인지했다면, 현대차의 준대형-대형 라인업은 XG-오피러스-에쿠스로 이어졌을 것이다. 실제 이들의 제원을 보면 이러한 구성을 염두에 두었을 것이라고 어렵지 않게 예측이 가능하다. 그랜저XG는 EF쏘나타보다 에쿠스와 제원 면에서 차이가 더 컸다는 게 그 증거.
ECS의 성능과 내구성이 매우 엉망이었다. 와인딩은 커녕 슬라럼 연습만 해도 박살난다고 할 정도의 평가를 받았을 정도. 거기에 스포츠 모드 역시 있으나 마나라는 악평을 많이 받았고, 유일하게 쓸만한 기능은 차고조절 기능 뿐이라는 비아냥을 받으며, 비싼 수리비용 때문에 고장나면 오너들이 별 미련없이 일반 서스펜션 내지는 튜닝용으로 바꾸는 일이 흔했다.
'원래 계획에 따르면 현대차가 미쓰비시 디아망떼의 라이센스를 받아 국내에서 마르샤로 팔 것이었다'는 소문[24]이 있다. 소문에 따르면 인기 차종이었던 디아망떼의 라이센스 비용이 너무 고가라서 라이센스 받기를 포기하고 그냥 쏘나타 II를 고급화했다고 한다.[25] 단, 이는 당시의 실정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지어낸 근거 없는 소문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당시는 현대자동차가 외관 뿐만 아니라 기술적인 부분까지 자립하기 위해 애쓰던 시기로서,[26] 공동개발 형태의 그랜저 외에는 미쓰비시 모델의 승용차를 들여올 생각 자체를 하지 않았다. 애초에 마르샤의 기본이 된 쏘나타 II 자체가 디아망떼의 플랫폼을 기본으로 만든 차이기도 하다.[27] 이미 디아망떼 플랫폼의 중형차(쏘나타 II)와 대형차(뉴 그랜저)를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현대는 마르샤와 유사한 개념의 차를 먼저 만든 적이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1세대 쏘나타였다. 1세대 쏘나타는 당시 현대의 중형차 모델인 스텔라를 고급화한 모델이었다. 엔진 배기량을 업그레이드했고, 일부 편의시설을 고급화했다. 외관 또한 고급스러워 보이게 하려고 크롬 몰딩을 떡칠했다. 당시 현대는 1세대 쏘나타 광고에 '달리는 귀빈실, VIP승용차, 중후함, 기품' 등의 온갖 고급진 수식어를 광고 문고로 내세웠고 광고모델로 신성일을 기용하며 '고급 승용차'라고 홍보했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스텔라와 별 차이를 느끼지 못했고, 대부분의 수요가 쏘나타와 별 차이 없어 보이고 경제적인 스텔라로 몰렸다. 결국 1세대 쏘나타는 처참하게 실패하고 말았고, 출시 2년 1개월만인 1987년 12월 조기 단종되고 말았다. 그렇게 쏘나타라는 이름이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질 뻔 했으나 현대차가 스텔라 후속 차량을 쏘나타라고 명명했고 쏘나타라는 브랜드는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현대는 한동안 1세대 쏘나타를 쏘나타 계보에서 제외했다. 사실 현대는 2세대 쏘나타에 다른 이름을 쓰고 싶어 했지만, 해외 딜러들이 쏘나타라는 이름을 선택했기 때문에 따랐다고 한다.
마르샤의 실패를 통해 현대차는 단순히 중형차에다가 디자인 좀 손보고 고급 옵션 좀 넣은 정도로는 성공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그래서 3세대인 그랜저XG는 마르샤의 포지션을 계승하면서도, 기존 1, 2세대 그랜저와 같은 E세그먼트 준대형차의 위치를 유지시켜 쏘나타와는 확실하게 차별화시켰고, 대성공을 거두게 된다.
마르샤 이후 기아자동차에서 마르샤의 개념을 이어간 차가 나왔는데, 바로 옵티마 리갈이었다. 마르샤처럼 중형 모델인 옵티마의 차체를 그대로 활용하면서 좀 더 고급스러운 소재와 편의사항을 업그레이드시킨, 마르샤와 그야말로 똑 닮은 개념의 모델이었다. 이 때까지만 하더라도 대우의 로얄 프린스-로얄 살롱과 같이 같은 차체로 하급차와 상급차를 만든다는 개념을 우리나라 자동차 메이커들이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애초에 스텔라 기반의 1세대 쏘나타를 만든 이유도 로얄 프린스와 로얄 살롱의 관계를 참조한 것이었고, 마르샤 역시 그런 개념의 차였다. 리갈은 그런 사고방식을 버리지 못하고 한번 더 시도했던 것에 불과하다. 물론 당시 기아는 포텐샤의 단종으로 준대형급 모델이 전무했기 때문에, 그랜저가 건재한 현대차와 달리 한번 더 이런 시도를 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오피러스는 E세그먼트였던 다이너스티의 후계자이고 플랫폼도 XG 섀시였지만 프로젝트명이 GH, 즉 대형급을 뜻하는 H가 들어갔기에 준대형급으로는 간주되지 않는다.
이 정도면 이제 안 통한다는 것을 깨달았을만도 한데 현대는 미련이 남았는지 이후 아슬란에서 이런 짓을 한번 더 했다가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르노삼성의 SM7이나 대우의 로얄 살롱도 그런 차였으나 이들은 원판이 상급 모델이었기 때문에 문제가 없었던 것일 뿐이다. 르노삼성 역시 3세대 SM5에서는 원판이 하급 모델이었기 때문에 상급인 SM7이 처절하게 실패하고 만다.
이후 현대자동차는 2014년에 그랜저제네시스 사이에 아슬란을 끼워 놓았다. 아슬란은 그랜저의 플랫폼을 활용하여 고급한 것이다. 아슬란 역시 그랜저와 제네시스 사이에서 제대로 압살당하면서 마르샤가 성공사례처럼 보일 정도로 처절하게 실패했다.
현재 마르샤의 후속으로 인정받을 만한 차는 현대 i40이 그나마 해당한다. i40이 쏘나타와 같은 중형이면서 더 고급스러운 차이기 때문이다.[28] 일부 사람들은 '6기통이어야 진짜 그랜저다'라는 식으로 그랜저 2.4를 후속으로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29] [30] 물론 그랜저 윗급인 아슬란도 그랜저에게 녹아웃된 와중에 쏘나타와 그랜저 사이에 한 대를 더 끼워넣을 가능성은 매우 낮고, 설사 나온다고 해도 현대자동차 측에서 실패한 차종인 마르샤의 후속 모델임을 주장할 가능성은 더욱 낮으니 이러한 논쟁은 전혀 의미가 없다. 오히려 제네시스 G70을 정신적 후속작으로 보는 의견도 소수있다.
1:35 스케일의 모형차로도 출시되었다. 세창기업과 크로바미니카에서 생산했다. 크로바제는 그런대로 실차같이 재현했지만 세창은 쏘나타 2 차체에 전면부 데칼만 바꿔서 내놨다. 세창의 보기드문 금형 우려먹기 사례다.
운전교습용 차량으로도 쓰인다.

3. 둘러보기




[1] 4세대 이후[2] 이탈리아어로 '행진,행진곡'을 의미한다. 이 차가 당당하게 행진하라는 것에서 유래되었다. 줄여서 '''"말샤"'''라고 부르기도 한다.[3] 여담으로 런칭 전에 기획된 이름은 "카덴자" 였으나# 정작 런칭 후에는 마르샤로 변경되었다고 한다. 런칭 전에 기획되었던 이름인 카덴자는 후에 기아 K7의 수출용 이름으로 재활용된다.[4] 옆에 중기형 사진과 달리 방향지시등 색상이 주황색이다. V6 2500은 전용 휠이 있었고, 2.0의 경우, 97년식 아반떼와 휠 디자인이 유사해보이지만, 전혀 다르다.[5] 2.0의 경우, VLS 트림에만 '''VLS'''라는 엠블럼이 달려있었고, 아랫등급인 VL은 아예 엠블럼이 없다.[6] 중기형은 방향지시등이 투명 클리어 타입이다.[7] 당시 그랜저는 대형차로 분류되었다. 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준중형, 준대형의 개념이 국내에서는 완전히 정립되지 않았었다. 국내에서 C세그먼트 차는 B세그먼트 차와 경쟁했고, F세그먼트 차는 있지도 않았다. 이러한 개념이 정립된 것은 아반떼, 누비라 등이 준중형차 라인업을 정립하고, 기존 대형차로 취급받던 그랜저, 포텐샤보다 더 큰 에쿠스, 엔터프라이즈가 나와 준대형차와 대형차가 구분되기 시작한 이후부터다.[8] 1994년 3월에 그해 중에 새로 출시될 중형차 H카를 '카덴자'라고 소개하는 기사가 있다.[9] 1994년 중순까지만 해도 신문 기사에서 H카를 카덴자라고 표기했으나, 1994년 11월 기사부터 H카를 '마르샤'라고 표기하고 있다.[10] 카덴자라는 이름은 현재 기아 K7의 수출명이다.[11] 쏘나타 III는 쏘나타 II의 페이스리프트 버전이다.[12] V6 2500 한정으로 에어 서스펜션(ECS)이 있었으나 이를 제외하면 거의 비슷하다.[13] 이는 대우 프린스의 차체를 페이스리프트하고 엔진 및 내장재만 바꿔 출시한 대우 브로엄도 마찬가지 사정이다. 심지어 1980년대에는 하위의 로얄 프린스와 상위의 로얄 살롱의 내장까지도 시트와 트림의 천 종류 정도만 다를 뿐 기본적으로 아예 같았다.[14] 그래서 쏘나타 II와 III는 쏘나타 I(Y2) 이후로 유일하게 2.5리터급 배기량 모델이 없었다.[15] 현재는 잔류 차량을 찾기 힘들고, 제원도 찾아보기 힘들다. 차량의 취급설명서에도 LPG 엔진이 나와 있고 LPG 모델 관리법도 있다.[16] SK 엔카에 매물도 올라와 있다.[17] 실제로 쏘나타 3의 수출형에는 마르샤와 동일한 인테리어 사양 옵션도 있었다.[18] 다만, 무거운 차체에 엔진은 그대로이니 구동 성능은 그닥이었다. 2,000cc 엔진은 1세대 그랜저에도 있기는 했지만 2세대는 공차중량이 1세대보다 무거웠다.[19] 엔진 사양은 3.0 혹은 3.5 미쓰비시 사이클론 엔진이 탑재된 것으로 추측되는데, 자세한 정보는 나와 있지 않다.[20] 여담으로 이 광고의 내레이션은 성우 안지환이 맡았는데, 안지환은 실제로 이 광고를 녹음한 뒤 마르샤를 샀다고 한다. 원래는 뉴 그랜저를 사려고 MBC에 영업사원이 와서 계약을 하던 중에 어느 선배가 "지환아 너 차 사니? 그랜저? 선배들 눈치 안 보이겠니?"라고 압박을 주는 바람에(...) 마르샤로 계약했다고.[21] V6 2.5의 경우, 휠은 ASA 휠과 유사한 5스포크 타입이며, 후드탑도 금도금 형태로 들어간다. 사진은 2.0 VLS 트림.[22] 당시엔 인터넷 커뮤니티 같은 정보가 많이 없던 시절이라 터보튜닝은 튜너들이 그날 기분 내키는대로 부르는게 튜닝값 이었으며, 보통 기본견적이 1000만원부터 시작했었다.[23] 어차피 이 당시 쏘나타 수출형은 SOHC 엔진이므로, 구해본다 한들 와이어링을 또다시 추가로 개조해야 하는건 변함이 없다.[24] 근거는 없다. 현대가 공식적으로 그런 계획이 있었다고 언급한 일이 전혀 없다. 쏘나타 II와 뉴 그랜저의 플랫폼이 디아망떼를 기본으로 한 것이라는 말이 와전되었거나 누군가가 뇌내망상으로 만들어낸 말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25] 미쓰비시의 준대형 이상 고급차 중 상업적으로 성공한 것은 디아망떼밖에 없다. 데보네어(현대 그랜저)와 프라우디아(현대 에쿠스)는 경쟁자들이 너무 쟁쟁해서 초반에만 좀 잘 팔리다 말았다. 특히 프라우디아는 미쓰비시의 경영 상태 악화로 인해 조기 단종되어 총 판매량이 1,300대도 되지 않는다.[26] 당장 마르샤와 거의 비슷한 시기(1995년 3월)에 출시된 현대 아반떼 1세대(통칭 구아방)만 봐도 당시 현대차의 기술 자립을 위한 노력을 엿볼 수 있다.(1세대 아반떼는 부품 국산화율이 99.9%에 달하는 순수 국산차이다.)[27] 정확히는 디아망떼가 갤랑 6세대의 플랫폼에서 파생된 차량이니 갤랑 플랫폼 기반이라 보는게 맞지만.[28] 그러나 i40은 YF 쏘나타보다도 크기가 작으며, 한국과 호주 시장을 제외하면 같이 팔리는 곳도 없다.[29] 그러나 그랜저가 플래그쉽 대형차였던 1, 2세대 시절에도 2.4 L 모델은 있었고, 6기통 그랜저는 모두 배기량이 3.0 L 이상이며 그 때는 2.0 L 모델도 있었기 때문에 배기량만으로 비교해 봐도 현재보다 작다는 점에서 그리 신빙성 있는 이야기는 아니다.(당시는 2.0 L, 2.4 L, 3.0L, 현재는 2.4 L, 3.0 L, 3.3 L, 예외적으로 XG는 2.0 L, 2.4 L 6기통 모델도 있었다.) 우선 그랜저 2.4 모델만을 마르샤의 후속으로 치부할 이유가 전혀 없다. 차라리 XG가 본래 마르샤의 후속으로 개발되었다는 이유를 들어 현재의 그랜저를 마르샤의 후속으로 보는 편이 설득력이 있다. 또한, 가격으로 봐도 그러하다. 1995년과 현재의 원화 가치를 비교해 보면 대략 1.9배 정도의 차이가 나는데, 이렇게 보면 당시의 마르샤와 동급의 승용차는 그랜저 2.4가 아닌 그랜저 3.0 이상의 준대형차가 된다. 애초에 차급 문화가 크게 변하고 그랜저급의 차가 상당히 대중화된 상황에서 마르샤와 같은 특수한 차의 후속 모델을 따지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30] 오해의 소지가 있어 첨언하자면, 6기통이어야 진짜 그랜저라는 저 말은 설득력이 전혀 없는 것이 맞다. 그러면 그랜저 2.0과 2.4는 가짜 그랜저라는 말인가? 게다가 그랜저 3.0은 라인업에 출시 초기부터 있던 것도 아니고, 나중에 추가된 것이다. 오히려 4기통 그랜저가 원조인 것이다. 만약 누군가가 8기통이어야 진짜 에쿠스이고, 에쿠스 3.5와 3.8은 가짜 에쿠스라는 주장을 하고 다닌다면 어떻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