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스텔라

 


현대자동차중형차 모델
코티나

'''스텔라'''

쏘나타·마르샤
[image]
초기형[1]
'''HYUNDAI STELLAR'''[2]
1. 개요
2. 제원
3. 상세
3.1. SL, GSL, prima
3.2. CXL 모델
3.3. GL, GX, APEX, 88
3.4. 왜건형 모델
3.5. 소나타(Y1, 1985년)
3.6. 최후기형 (1.8i & 2.0 LPG)
4. 스텔라 이전, 이후
4.1. 직접접착식 전후면 유리
4.2. 일체성형식 도어트림 및 천정
4.3. 내장형 에어컨
4.4. 타코미터
4.5. 5단 수동변속기
4.6. 광폭 타이어
4.7. 파워 윈도우
5. 문제점
6. 모형화
7. 여담
8. 광고 영상
9. 둘러보기
10. 관련 문서


1. 개요


1983년 5월[3]부터 1997년 1월[4]까지 생산했던 현대자동차후륜구동 중형 세단. 쏘나타의 1세대격이다. 1세대 쏘나타가 따로 있지만 1세대 쏘나타 자체가 스텔라의 자체를 그대로 공유한 사실상 같은 차종이기 때문이다.
무척 오랜 시간 동안 생산된 것처럼 보이지만, 자가용으로서는 2세대 쏘나타가 나올 때까지인 1992년 초까지만 생산되었다.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1992년 단종으로 보는 것이 낫다. 97년까지 생산했다고는 하지만 대부분인 판매량은 80년대에 몰려 있다. 하지만 택시 모델로서 계속되어 1997년까지 생산된 것. 2세대 쏘나타는 택시가 출시되지 않았다.
한 동안 현대자동차에서 라이센스 생산하던 코티나포드와 기술 제휴 재계약 및 합작사 설립에 실패하고 미쓰비시와 새롭게 제휴하여 생산이 불가능하게 되자, 현대자동차코티나후륜구동 플랫폼[5]을 기반으로 Y카라는 코드 네임#[6]인 새로운 승용차를 만들었는데, 이것이 바로 스텔라이다. 차체 디자인은 이전에 포니를 디자인했던 이탈리아의 디자이너 조르제토 주지아로가 맡았다.[7] 기존의 승용차에 비해 넓은 공간과 편의 장비를 내세워서 꾸준히 팔려 나갔으며, 이는 훗날 쏘나타 시리즈대한민국 도로가 도배되는 기초를 쌓았다.
비록 출시 초반에는 좋지 않았지만, 이래저래 현대자동차 역사의 한 페이지를 화려하게 장식했던 장수 모델이다. 지금은 쌍용 체어맨 H에 의해 그 기록이 깨졌지만, 2000년대 초, 중반까지만 해도 국산 세단형 승용차 중에서는 최장수 모델로 기록되었다. 그리고 한동안 현대자동차가 생산한 최후의 후륜구동 세단이었으며, 2008년에야 제네시스가 발매되며 현대자동차 후륜구동 세단의 맥이 이어진다.

2. 제원


'''스텔라(STELLAR)'''
엔진
새턴
시리우스
연료공급장치
카뷰레터
MPI
엔진 형식
4G32(1.6)
4G33(1.4)
4G31(1.5)
4G62(1.8)
배기량(cc)
1,597
1,439
1,499
1,796
최대출력(ps/rpm)
100/6,300
92/6,300
94/6,300
105/5,000
최대토크(kg-m/rpm)
14.0/4,000
12.5/4,000
13.0/4,000
15.4/4,000
연비(km/ℓ)[8]
9.3
11.4
8~9[9]
-
차종
SL, GSL
prima
SL, GSL
SL, GSL, GL
prima
GX, CXL
APEX, 88
1.8$$\textit{i}$$
전장(mm)
4,416
4,429
4,416
4,429
4,556
전폭(mm)
1,716
1,756
전고(mm)
1,362
축거(mm)
2,579
윤거 전/후(mm)
1,445/1,425
구동방식
후륜구동
브레이크 전/후
벤틸레이티드 디스크[10]/드럼
현가장치 전/후
맥퍼슨 스트럿/5링크[11]
타이어
185/70SR13[12]

3. 상세



3.1. SL, GSL, prima


[image]
[image]
초기형 뒷면 (GSL, $$\textit{prima}$$)[13]
초기형 뒷면 (SL트림 및 택시 모델)[14]
출시 초기에 트림 레벨은 SL, GSL, 프리마($$\textit{prima}$$)[15] 라는 3단계가 있었다.
  • $$\textit{prima}$$ : 십자형인 독특한 휠커버를 달고 있는데, 최상급 트림인 '프리마(1.6ℓ)'와 '프리마 이코노미(1.4ℓ)'에만 장착되었던 것이다. 라디에이터 그릴은 진한 회색에 테두리만 은색으로 처리한 투톤 그릴이었다[16]. 고급사양으로는 파워 윈도우, 파워 도어록, 원터치 트렁크[17], 에어컨[18] , 전조등 세척기, 수동식 원격조정 도어미러, 스테인리스 도어핸들[19], 독서등[20]이 장착되었다[21].
처음에는 1.6ℓ 사양만 나왔는데, 이후 1.4ℓ 사양이 추가되면서 코티나 마크 IV와 코티나 마크 V에서 그랬던 것처럼 트렁크 덮개에 빨간색 '$$\mathbf{E}$$' 로고[22]를 추가로 붙이고 '이코노미'라고 불러 구별했다. 이후 1.4ℓ와 1.6ℓ가 1.5ℓ로 통합되면서 $$\mathbf{E}$$ 로고는 사라졌다.
1984년에 1985년형으로 페이스리프트되면서 라디에이터 그릴이 크롬 도금 및 은색 투톤인 격자형으로 변경되었고, 도어 핸들이 고급스러운 디자인으로 변경되었으며, 본네트와 트렁크 덮개에 스테인리스 몰딩이 부착되었다[23]. 또한, 와이어 스포크 휠[24]을 선택할 수 있는 '골든팩[26]' 사양이 추가되었다.
  • GSL: 대중적으로 선택되는 트림으로, 1.4와 1.6이 모두 출시되었다. 라디에이터 그릴은 바디컬러가 적용되었다. 포니 2에 적용되었던 8홀 일반 스틸휠[27]을 크롬도금하여 장착하었다.[28] 에어컨과 자동변속기는 선택사양이었다.
  • SL 및 택시 모델: 말 그대로 깡통 차량이었다. 라디에이터 그릴과 범퍼의 바디컬러가 적용되는 부위에는 밝은 회색을 칠하였고, 별도인 휠커버가 없는 일반 스틸휠이 장착되었다. 시트도 그냥 비닐(...)[29]이었다. 자동변속기조차도 선택이 불가능했음은 물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정부의 중형/고급 택시에 의해 대도시에서 엑셀을 밀어내고 택시 모델로 쓰였다. 5년 전까지만 해도 강원도에 한 대가 있었으나 현재는 오리무중이다.

3.2. CXL 모델


[image]
[image]
스텔라 CXL 정측면[30]
스텔라 CXL 후측면
1985년에 출시된 캐나다[31] 수출형(CXL; '''C'''anada e'''X'''port '''L'''imited). 5마일 범퍼[32]와 사이드마커, 프리마 트림의 고급사양[33]을 적용한 모델이다. 더불어 테일 램프에 블랙 라인 2개를 추가하고, 트렁크 아래 번호판 주위를 무광 검정으로 처리하였다[34].

3.3. GL, GX, APEX, 88


[image]
[image]
스텔라APEX
스텔라88
  • APEX[35] : CXL의 고급화 모델로, 1986년 출시되었다. 헤드램프, 방향지시등, 라디에이터 그릴, 테일램프, 리어 가니시, 사이드 몰딩, C 필러의 벤틸레이션 그릴, 휠커버, 스티어링 휠, 심지어 대시보드의 클러스터까지도 Y1 소나타 1800 것을 대거 적용한 모델로, 사실상 'Y1소나타 1500' 이나 다름없었다.
  • 88: 1987년 9월 출시된 1988 서울 올림픽 공식 자동차 지정 모델. 테일 램프는 스모크 처리[36]되었고, 도어 미러와 범퍼 전체에 바디컬러가 적용되었으며, 라디에이터 그릴과 휠커버가 위 사진처럼 별도인 디자인으로 달려 나왔다. 스티어링 휠은 Y1 소나타 2000 것에 혼 패드 부분을 가로형으로 재디자인하여 장착하였다. 올림픽이 끝난 이후인 1989년형부터 GXL로 트림명을 변경하였고[37] 에어콘이 기본장착되었다. 1990년 1.8$$\textit{i}$$이 나오기 직전까지 생산되었다.
  • GX[38] : 북미 지역의 법규가 변경됨에 따라 움푹 들어간 헤드라이트를 더이상 사용할 필요가 없게 되었고, 이에 따라 남아도는 기존 CXL 부품을 채용하여 보급형으로 새로 출시한 모델이다.[39] 89년형부터는 방향지시등이 백색으로 변경되었고 5단수동변속기, 파워윈도우, 중앙집중식 도어잠금장치, 원격조종 백미러, 원격 트렁크 열림장치 등이 추가되었다. 전기형에는 전용 휠커버도 존재하였다.#
  • GL: CXL의 헤드램프와 그릴을 장착했지만, 범퍼는 GSL.것을 장착한 깡통 사양이다.

3.4. 왜건형 모델


[image]
[image]
왜건
경찰차
경찰차 전용으로 한정 생산한 왜건도 있었다. 자동차 외판을 프레스 가공으로 만들 때 사용되는 금형 제작에는 많은 비용이 소요되나 이를 대폭 절약할 수 있는 간이 금형 기술이 1980년대 중반, 현대자동차에 도입되었고, 이를 활용하여 소량 생산한 것이다. 1984년부터 1986년까지 약 400대 정도만 생산되었을 뿐이며 정식 일반 판매는 이루어지지 않았고 관용차나 경찰차로만 납품되어 현재는 모두 사라진 상태이다. 그 당시 현대에서는 SUV라고 부를 만한 모델이 아직 없었는데, 관용차로나마 잠시 SUV의 역할을 할 만한 차량을 만든 것이다. 실제 스텔라 왜건은 적재공간이 넓다보니, 구급상자나 유압절단기같은 장비를 싣고 다니기도 하였다.[40]

3.5. 소나타(Y1, 1985년)


[image]
소나타(Y1)
1985년 하반기에 최상위 트림으로 소나타라는 차종을 선보였다. 이 '스텔라 베이스 소나타'는 어디까지나 내수용 자가용 사양으로만 '소나타'라는 이름으로 판매되었을 뿐이며, 수출용은 이전의 최상급 트림인 '스텔라 프리마'라는 이름을 이어갔다. 즉, 현대자동차 스스로도 이 차를 별개 모델로 인식하지 않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는 광고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다.# 단지 저배기량인 스텔라와 차별화를 위해 내수용 자가용만 차명을 바꾸었을 뿐이다. 1987년 나온 택시용 2.0 LPG 사양은 2.0 엔진인데도 여전히 스텔라로 나왔다.
크루즈 컨트롤, 전동식('자동'이 아니다) 뒷좌석 시트[41] 등 당시 최고인 편의 장비들[42]과 앞선 디자인[48] 을 가지고 대우자동차 로얄 시리즈와 경쟁했으나, 스텔라의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못해서 판매는 바닥을 기고 말았다. 결국 1987년, 출시된지 3년도 채 되지 않아 단종되는 비운을 맞았다. 애초에 스텔라급의 중형차는 로얄급의 중형차보다 한 사이즈 작은 차였으므로 경쟁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49][50]

3.6. 최후기형 (1.8i & 2.0 LPG)


[image]
스텔라 최후기형(1.8$$\textit{i}$$)
1987년 Y1 소나타 단종을 앞두고 Y1 소나타에 들어간 2.0 엔진을 LPG화해서 탑재한 2.0 LPG가 택시 전용으로 출시되었으며[51] 이와 동시에 1.6 엔진이 택시 전용 LPG 사양으로 부활하였다. 1988년 올림픽을 앞두고 1987년 정부에서 발표한 중형 택시 배기량 기준이 1.6~2.0 급이었기 때문에 이에 맞추기 위함이었다. 자가용 사양이 단종되기 직전인 1990년 6월에 배출가스 규제를 맞추기 위해 나왔던 최후기형에는 Y2에 장착된 1.8리터 시리우스 SOHC MPI 엔진도 후륜 구동에 맞게 세팅하여 장착했다. 택시 사양은 그에 앞서서 1.8 LPG 엔진이 동년 1월부터 탑재되어 1.6 LPG 엔진을 대체하였다. 소나타(수출명은 스텔라 프리마)에는 1.8리터/2.0리터 시리우스 엔진이 달렸다.(Y1에 달린 시리우스 엔진은 MPI가 아니다.) 최후기형 1.8 MPI 및 LPG 택시에는 빗살무늬 라디에이터 그릴과 현대자동차의 바뀐 로고가 달린 휠커버가 장착되었다. 1.8$$\textit{i}$$ 모델은 자사차량 뉴 쏘나타(Y2 후기형)에게 팀킬을 당함으로 인해 판매량이 부진하여 고급 트림을 없애고 가격을 낮추면서 저가형 승용차로 판매되다가 1992년 단종되었지만, LPG 택시모델[52]은 택시업계와 개인택시 기사들 사이에서 꾸준히 수요가 존재하여 1997년 1월까지 판매된 장수모델이었다.[53] 한 마디로 유종의 미를 거둔 셈.

4. 스텔라 이전, 이후


'''한국 최초의 고유모델 중형차로서 '최초'로 시도되었고, '스텔라 이후' 일반화된 부분들'''을 소개한다.

4.1. 직접접착식 전후면 유리


당시까지 대부분의 국산차들은[54] 전후면 유리를 차체에 고무 몰딩으로 장착하였다. 그리고 고무 몰딩에 미관상의 마감으로 금속 질감의 연질 PVC 몰딩을 끼워 놓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이 PVC 몰딩이 태양광 등과 반응하여 시간이 지날수록 변색되는 문제가 있었다. 그래서 오래된 차량들의 경우 누렇게 변색되다 못해서 진한 갈색으로 변해버린 경우가 허다했다.[55] 스텔라는 유리를 실리콘으로 차체에 바로 접착하고, 스테인리스 몰딩으로 마감하여 우수한 방수 성능과 아울러 매끄러운 외관까지도 구현하였다. '''스텔라 이후''' 생산되는 대부분인 차량들은 이러한 방식으로 장착되고 있다.[56] 다만, 마감 방법에서 차이가 있는데, 금속제 몰딩은 굵기가 가늘어졌고, 금속제 몰딩 대신 고무 스트라이프를 두르거나 아무런 마감 없이 그냥 두기도 한다.

4.2. 일체성형식 도어트림 및 천정


그때까지 대부분인 차들은 도어트림이 스펀지와 인조가죽을 봉제가공하여 합판에 두른 형태로 되어 있었다[57]. 그러나, 스텔라는 우레탄을 입체적인 모양으로 성형[58]하여 인조가죽을 압착하는 방법으로 제작하였다. 천정(헤드라이닝)도 직물을 매달아놓듯 부착하던 기존 방식이 아니라, 전체를 우레탄으로 성형하여 직물을 압착하여 만든 것을 장착하는 방법을 썼다. '''스텔라 이후''' 대부분인 차들의 도어트림과 헤드라이닝을 이렇게 만들고 있다.

4.3. 내장형 에어컨


그때까지 대부분인 차량용 에어컨은 실내기[59]를 동반석 대쉬보드의 글로브 박스 아랫쪽에 장착하는 형태로 돼있었다[60]. 미관상인 문제도 그렇고, 냉기가 한 군데에서만 나오기에 냉방 성능이 균일하지 않다는 단점이 있었다. 스텔라는 비록 증발기[61]를 글로브 박스 아랫쪽에 장착하기는 했지만[62], 크기를 최소화하였고, 냉기는 대쉬보드의 송풍구를 통해서 나오도록 함으로서 깔끔한 인테리어와 우수한 냉방성능이라는 두마리 토끼를 잡았던 것[63]. '''스텔라 이후''' 에어컨은 거의[64] 이런 방식으로 대체되었다[65].

4.4. 타코미터


모든 (승용)차들의 계기판에는 속도계와 연료계, 수온계는 기본으로 있었지만, 타코미터 자리에 아날로그 시계가 달려 있는 경우가 많았다[66]. 스텔라는 국산차 최초로 GSL과 프리마 이상인 사양에 타코미터가 기본으로 장착되어 나왔다[67]. 이것은 국산차로서 최초이고, 1979년 기아자동차가 조립생산한 피아트 132가 국내 최초이다[68] . '''스텔라 이후''' 모든 승용 차량 계기판에는 타코미터가 장착되기 시작했다.[69]

4.5. 5단 수동변속기


최초 출시 때는 전체 트림에 4단 수동변속기(미쓰비시 라이센스 KM119)가 장착되었고, 3단 자동변속기(보그워너 라이센스 03-55L)는 선택사양이었다. 85년형으로 F/L가 이루어지면서 프리마와 CXL [70] 이상급에는 국내 최초로 5단 수동변속기(미쓰비시 라이센스 KM119)가 적용되기 시작했다[71].[72] '''스텔라 이후''' 4단 수동변속기는 자취를 감추게 된다.

4.6. 광폭 타이어


스텔라는 포드 코티나 섀시(chassis)를 기본으로 설계된 차량이다. 출시 당시 이미 개발된 지 10여년[73]이 지난 섀시이다 보니, 폭이 좁을 수밖에 없었고, 넓히는 것은 당시 현대차 기술로는 어려운 일이었다. 좁은 섀시에 넓은 차체를 얹다 보니, 바퀴가 차체 안으로 들어가게 되고, 눈에 보이는 빈 공간으로 인하여 이른바 '없어 보이는' 느낌은 피할 수 없었다. 현대는 이것을 '광폭 타이어'를 장착함으로써 해결하였다. [74] [75]
85년식으로 F/L을 하면서 추가한 185/70SR13[76][77] 규격의 타이어가 그것이다.[78] 그렇게 하여 타이어가 바깥으로 좀 더 튀어 나오게 되면서 빈 공간이 많이 감추어지는 효과가 나타나게 되었다. 당장 저 위의 SL 차량과 스텔라 APEX의 이미지를 비교해 보시라. 타이어 주변 공간이 APEX 쪽이 더 메워진 것이 보이고, 차가 더 '있어' 보이는 것이다. '''스텔라 이후''' 요즘 차들은 섀시까지도 자체 기술로 설계하고, 차체도 그에 맞게 설계하기 때문에 예전처럼 빈약해 보이는 디자인은 거의 없지만, 대신 광폭 타이어를 응용하여 휠 크기를 키워서 강한 이미지로 어필하고 있다. 그래서 요즘 중형차들은 대부분 17인치 이상인 휠을 장착하는 추세여서, 최소 사이즈인 16인치[79]도 오히려 왜소해 보인다.

4.7. 파워 윈도우


당시엔 에어컨과 더불어 그라나다나 로얄 살롱 등 고급차 혹은 외제차에서나 접할 수 있는 사치스러운(...) 장비였다. 스텔라는 비록 프리마와 CXL 이상만 기본적용되었지만, 국산차로서는 최초로 달려 나온 것이었다. 요즘 차들은 대부분 운전석 도어의 암레스트에 스위치 4개[80]와 후석 스위치 잠금버튼이 있고[81], 조수석 도어와 후석 양쪽 도어에도 독립적으로 스위치가 달려 있는 형태가 일반적이다. 그러나, 스텔라는 센터 콘솔 앞의 기어 레버 양쪽에 전후좌우 제어용 스위치 4개와 후석 스위치 잠금버튼이 있고기어 레버 주변 모습 보기[* 운전석의 '자동기능'은 없었다.(...) ], 후석쪽의 스위치 2개는 양쪽 도어가 아니라 리어 콘솔 뒷면에(...) 달려 있었다. 결국 동반석 것은 따로 있는 것이 아니었고 , 뒷좌석에서 유리창을 여닫을 때는 몸을 숙이고 팔을 뻗어야 하는 불편이 있었다. 국산차로서는 최초로 적용된 장비였지만, 편리성은 흑역사였던 셈.[82] '''스텔라 이후''' 대부분인 차들에는 파워 윈도우가 선택사양으로 장착되기 시작한다.[83]

5. 문제점


  • 출시 초기에는 전기 계통 문제로 인한 화재로 전소되는 사고가 몇 건 발생하기도 하였고, 서스펜션에서도 국산화한 볼 조인트 부품이 문제를 일으켰다.
  • 본래 직렬 4기통 미쓰비시 새턴 엔진을 손보았던 1.4리터(포니2와 동일[84] )와 1.6리터로 출시되었지만, 1.4는 출력이 부족하고, 1.6은 세제상 불리한데다 대우의 1.5리터 중형차인 로얄 XQ와 경쟁 문제도 있었기 때문에 1984년 1.5로 통일되었다[85].
  • 한여름에 퍼져서 길가에서 후드를 열어 놓고 있는 차의 대부분이기도 했다[86]. 실제로 외국에서는 힘이 약하다는 이유로 팔아버린 사람도 나왔다고 한다. 그런데 스텔라 1.5리터 사양은 내수 전용으로서 외국에 수출된 일이 없다. 수출용은 끝까지 1.4리터와 1.6리터였다. 뿐만 아니라 스텔라 정도 사이즈의 중형차에 1.2~1.5리터 엔진이 장착되는 것은 1980년대 유럽에서는 흔한 일이었다.[87] 중형차 중에서 사이즈가 다소 작은 편이었기 때문이다. 포드 코티나, 오펠 아스코나 등에도 모두 1.3 또는 1.4리터가 있었다. 즉, 1.5리터 스텔라가 잘 퍼진 것은 단지 엔진 내구성이 떨어져서 였을 뿐이다. 하지만 이 상황은 당시 대한민국, 요즘도 개발도상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상황이다. 자동차가 귀해서 단순히 탈것이 아닌 신분의 상징으로 보는 상황에서 차의 성능이나 편의성과는 별개로 외부인들이 보는 소위 뽀다구에 중시하는 상황. 즉 뽀다구 나는 중형차를 타지만 유지할만한 돈은 없다, 이 상황을 메이커에서 해석하기를 최대한 큰, 아니 크지 않다만 커 보이는 차체에 최대한 원가 절감을 해서 저렴한 가격 개념에 충실한 차종이였다.
  • 게다가 경쟁차인 대우 로얄 시리즈보다 차체도 작았다. 이상인 여러 문제들이 겹쳐 1980년대 중형 승용차 시장에서 대우 로얄 시리즈에 상당히 밀렸으며, 로얄 시리즈 상위 차종들에 비해 한 급 낮은 차량으로 평가받았다. 지금의 세그먼트로 따지면 스텔라는 D, 로얄 시리즈는 E 세그먼트로서, 유럽에서 동급으로 분류되지 않았다. 현재 기준으로 D 세그먼트는 아반떼급이고 E 세그먼트는 쏘나타, 그랜저급이다. 로얄 시리즈 플랫폼은 준대형인 오펠 제나토어까지 커버하는 사이즈였고, 그 경쟁차는 포드 코티나보다 한 급 높은 포드 그라나다였다. 현대자동차의 중형차 시장 장악은 쏘나타(Y2) 시대를 기다려야 했다.

6. 모형화


  • 프라모델 : 아카데미과학에서 1/24 스케일 국산차 시리즈 두번째로 스텔라를 발매하였다[88].
[image]
#
  • 다이캐스트 모형 : 크로바완구에서 1/35 스케일 스텔라 미니카## 를 발매하였고, 세창기업 에서 Y1소나타 미니카### [89]를 발매하였다. 현재 모두 단종상태.

7. 여담


  • 정주영현대그룹 회장이 전용차로 쓴 적이 있었다. 스텔라를 타고 모 호텔에 갔는데, 도어맨이 외제차들 사이에 국산차가 보이자 호텔 격 떨어지니 비키라고 하자 회장 옆의 한 중역이 "타고 있는 사람을 봐야지 차를 보면 되겠냐?" 고 핀잔을 준 일화가 있다.
  • 대부분인 차량은 경음기 스위치가 스티어링 휠의 중간 혹은 스포크의 양 끝단에 달려 있다. 그런데 스텔라에는 경음기 스위치가 특이하게도 방향지시등 레버에 장착돼 있었다모습 보기. 그래서 레버 끝 헤드램프 스위치 부분을 중심 방향으로 눌러야 소리가 나게 돼 있다. 이 차량을 처음 운전하는 경우, 다른 차를 운전하던 습관대로 스티어링 휠 중간 부분을 누르다가 당황하거나 혹은 이 차량을 운전하던 습관대로 다른 차를 운전하다가 방향지시등 레버를 누르는 실수를 하기도 한다.[90]
이렇게 생뚱맞은 구조로 된 이유는 뉴코티나[91]에서 마크 V까지 이런 구조로 돼 있는 것을 현대차가 그대로 답습했기 때문이다[92]. 물론, APEX와 88 이후 모델[93]에서는 이런 폐단을 버리긴 했지만, 현대차는 버스의 경음기 스위치도 이와 유사한 구조로 돼 있었는데[94], 60년대 말 R192를 시작으로 80년대 중반 FB485까지도 계속 이런 형태를 고수했었다. R192부터 계속 사용했던, FB485의 경음기 스위치 모습 보기. 스티어링 휠 바로 아래에 오른쪽으로 뻗은 굵고 검은 봉 끝에 작게 튀어나온 것이 경음기 스위치.
  • MIRA(Motor Industry Research Association)에서 테스트에 합격하여 유럽 수출을 시작했다며 1984년 1월 초, 일간지에 대대적으로 전면 광고까지 낸 적이 있었다당시 광고 보기. 그러나 당시 국내 자동차 기술은 조립생산 단계를 갓 벗어난 상태였기 때문에 안전도 기준을 통과하기 조차도 버거운 수준이었다. 가령, 충돌시 운전석에서 스티어링이 12.7cm 이상 돌출되지 않아야 하는 조건에서 스텔라는 무려 11.0cm나(!) 돌출하거나[95], 80dB 미만인 소음 규정도 74.6~77.8dB을 기록하는 등, 규정들을 '간신히' 통과하였다. 개발 과정에서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테스트하고 보완하며 진행하는 등 기술이 발전하여 미국이나 유럽 등의 까다로운 NCAP 테스트에서도 만점에 가까운 테스트 결과가 흔하게 나오는 요즘에 비하면 격세지감이다.
  • 많은 사람들이 간과하는 사실이 하나 있는데, 현가 장치가 처음에는 코티나 마크 V와 같은 것으로서 전륜에는 더블 위시본형, 후륜에는 일체 차축식 4 링크형이었다. 그러나, 1986년말부터 현대가 독자 개발한 것으로 변경되어 전륜은 맥퍼슨 스트럿형, 후륜은 일체 차축식 5 링크형이 되었는데, 이는 현대에서 최초로 독자 개발한 후륜 구동형 플랫폼[96]이었다고 할 수 있다.
  • 경쟁 차종이었던 대우 로얄 시리즈의 원형인 오펠 레코드는 전 모델인 포드 코티나보다 한 급 높은 차였다. 코티나 플랫폼을 그대로 썼으니 후속인 스텔라도 작을 수밖에 없었다. 코티나, 스텔라와 정확히 같은 급의 오펠 차종은 레코드보다 한급 낮은 아스코나였다. 한 급 낮은 차로 한 급 큰 차와 경쟁하려니 어려울 수밖에. 그래서 현대는 후속모델인 Y2에서는 차체를 로얄 시리즈 수준으로 키우게 된다. 그런데, 대우가 야심작으로 개발한 중형차 에스페로는 르망 플랫폼을 가져다 쓰면서 스텔라 수준으로 작아져서 상황이 역전된 것이 아이러니. 결국 에스페로는 쏘나타와 경쟁하기에 역부족이었고 쏘나타의 경쟁은 구닥다리 로얄 시리즈의 페이스리프트 모델인 프린스/브로엄이 이어간다.[97]
  • 이 차 이름을 딴 국내 인디밴드로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 라는 밴드가 있다. 옛날 남자와 여자가 스텔라를 탄다는 뜻.
  • 1990년대까지만 해도 자주 돌아다녔으나[98] 2000년대 들어와서는 점차 보기 힘들게 되었고 현재는 희귀 차종이 되었다.[99] 그래도 당시 많이 판매한 차량이라 그런지 올드카 매니아들 사이에서 부품수급이 어렵지 않고 폐차하지 않고 세컨드카 개념으로 운행하는 차주들이 많아졌다. 각그랜저와 함께 엔카보배드림에서는 이 매물이 자주 올라오는 편에 속한다.
  • 최초 출시 당시에, 이 차량 이름과 동일한 스낵(!)이 삼양식품에서 출시된 적이 있다.[100] 신문이나 TV에는 광고를 하지 않았던 것으로 여겨지나, 라디오에서는 "삼, 양, 스텔 라~" 라는 CM송으로 광고가 나왔었다.(...) 또, 85년 소나타가 출시되기 전에도 같은 이름인 비스켓이 출시되었으며[101], TV광고로도 나왔었다. 현재 이 비스켓은 단종되어 나오지 않지만, 소나타라는 이름을 쓰는 다른 물건이 현재 판매중이다.

8. 광고 영상



1983년 출시 당시 광고

1983년 출시 당시 홍보 영상. 당시엔 차량 후면에 자전거와 비슷한 장치를 달고 성능을 측정하였다.

스텔라가 나오는 아랍권 광고, 그냥 현대(هيونداي)라고 되어 있다. [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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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관련 문서


[1] 위 이미지는 프리마 모델이다. 자세한 내용은 3.1의 프리마 항목 참조.[2] 차명은 라틴어 "Stellaris"에서 나온 말로 "별의", "별 같은", "우수한", "일류의"라는 뜻이 있다.[3] 계약은 6월 1일부터 시작하였고, 출고는 7월 15일부터 시작하였다고 한다.[4] 승용 모델은 1992년도까지만 생산되었다.[5] 1971년에 등장한 뉴 코티나(코티나 마크 III) 부터, 코티나 마크 IV, 마크 V까지 적용된 장수 플랫폼이다. 여기서 마크는 세대(generation)를 의미.[6] 그리고 Y로 시작하는 코드 네임은 이후에 쏘나타가 계승한다.[7] 그는 이후 포니엑셀(X카)과 Y2 쏘나타도 디자인하게 된다.[8] 출시 당시 현대차 발표수치.[9] 실제 차량의 운행상 체감 수치.[10] 최초 출시 당시에는 일반 디스크였다.[11] 최초 출시 당시에는 더블 위시본/4링크였다.[12] 이 규격은 1985년형 프리마 이상에 적용된 광폭타이어이다. 이전 규격은 165SR13. [13] 사진 속 차량은 85년형 프리마다. GSL 및 이전 연식인 프리마는 트렁크 키홀 아래의 스테인리스 몰딩이 없다. 또한 현재도 서울 동대문 모처에서 현역으로 사용 중이라고 한다.[14] LPG 택시 모델이며, 이 차량의 테일램프는 왜건에도 적용되었다. 이후 테일램프는 GSL 것과 통일된다.[15] 다른 트림은 모두 대문자 산세리프체, 프리마는 소문자 이탤릭 세리프체로 표기되었다.[16] 단, '프리마 이코노미(1.4ℓ)'는 GSL처럼 바디컬러였다.[17] 파워 도어록과 연계되는 기능으로, 시동키로 운전석 도어의 자물쇠를 해제한 상태에서 트렁크의 키홀을 손으로 누르면 열리는 기능이었다. 다만, 운전석에서 버튼으로 트렁크를 열 수 있는 기능은 1985년 출시된 Y1 소나타에서 먼저 적용되었고 이후 스텔라 APEX에서 적용되었다. [18] 국내 최초로 내장형이 장착되었는데, 아래 4번 항목 참고.[19] SL과 GSL은 검정색 플라스틱형이 장착되었다.[20] 양쪽 C필러 상단에 장착되었던 것으로, 그라나다 V6 것을 그대로 사용하였다. 맨 위 사진에서 B 필러를 통해 보이는 반대편 C 필러 상단 안쪽의 작은 원형 물체가 그것이다.[21] 모두 GSL에는 없는 사양들이다.[22] 실제로 이렇게 생겼었다.(...) 단, 가로로 약간 더 긴 형태였고 기울임체였다.(참고로 기울어진 서체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단순히 기울어지기만 한 것은 기울임체, 또는 오블리크체라 하며 글자 모양이 완전히 다른 것을 이탤릭체라 한다.)[23] 트렁크에 부착되는 스테인리스 몰딩에 PRIMA 로고가 음각되면서, 따로 붙이던 $$\textit{prima}$$ 엠블렘은 삭제되었다. 본네트에 부착하는 스테인리스 몰딩에는 'STELLAR' 로고가 음각되었다.[24] 1980년대 미국 고급차에 유행한 것으로서 허브와 림을 자전거 휠처럼 여러 개의 살(spoke)로 연결해 놓은 형태. 알루미늄 휠이 일반적이지 않던 시절이다.[25] 전자식 카 오디오와 3웨이 스피커가 처음에는 중소기업(크라운전자) 제품이 쓰였으나 조금 지나서 현대전자 제품으로 변경되었다.[26] 와이어 스포크 휠 외에 전자식 카 오디오 및 3웨이 스피커(뒷선반에 장착)[25] 가 포함된다. [27] 당시 현대차의 휠 규격이 소형차와 중형차는 허브 크기가 13인치로 똑같았다. 단, 림의 폭은 스텔라 것이 조금 더 넓었으며, 중앙의 허브커버가 포니 2와는 다르게 테두리와 HD로고 부분에 흰색으로 도장이 되어있었다.[28] 프리마와 SL에는 그냥 은색으로 도장된 스틸 휠이 적용되었다.[29] 인조가죽 비슷하나 좀 더 낮은 등급인 재질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염화비닐이며, 시내버스 의자에 쓰이는 소재와 같은 재질이다.[30] 이미지의 차량은 '골든팩' 적용 모델로, 위에서 설명한 와이어 스포크 휠이 장착되어 있다.[31] 참고로 당시 외래어 표기법에 따르면 캐나다가 아니라 '''카나다'''였다.[32] 즉, 시속 8km 이하의 충돌에서 범퍼가 부서지면 안 되는 미국 기준에 맞춰서 본래의 크기에서 10cm 이상 돌출시키고 내부에 우레탄과 강철 프레임을 넣은 범퍼.[33] 다만, GSL에 적용하는 크롬 도금 휠을 장착하였다. 헤드램프가 북미 규정을 따르는 이유로 전조등 세척기는 삭제되었다.[34] 최초 출시 때는 범퍼에 스테인리스 몰딩이 없었다. 이후 예고 없이 적용하고 86년형으로 F/L하면서 공식적으로 발표하였다.[35] 'APEX'가 America-Pacific EXport의 약자라는 이야기도 있으나 근거자료가 없다. 당시 현대차는 "새로운 정상 - 스텔라 APEX"라는 문구로 광고를 냈었는데당시 신문광고, apex가 영어로 '꼭대기, 정점' 등의 뜻이기도 하다.[36] 본래의 색상보다 조금 어둡게 보이도록 하는 것으로, 당시 완성차 업계에서 잠시 유행했었다. 대우차는 한술 더 떠서, 로얄 살롱이나 임페리얼 등은 아예 시커멓게(...) 칠해 버리기도 하였다.[37] 대신 원가절감 차원에서 계기판의 유압계와 전압계가 빠졌다.[38] 1987년 즈음에 CXL의 모델명을 GX로 변경했다는 이야기도 있었는데 이는 사실과 다르다. CXL이 출시될 때는 CXL은 최상위 트림이었고, 이 포지션을 이어받은 사양은 이듬해 출시된 APEX였다.[39] GX가 CXL의 후속이라는 이야기도 있지만, 단지 CXL의 외관을 이어받은 것이고 사이드 마커는 생략되었다.[40] 이는 119구조대가 아직 정식으로 발족되기 전이여서, 경찰들이 119구조대의 인명구조 업무를 실시할 시기이기도 하다.[41] 시트 쿠션이 전후로 이동하면서 시트 백 각도가 함께 조절된다.[42] 예로 든 크루즈 컨트롤과 뒷좌석 전동시트 외에, 운전석 파워 시트, 파워 핸들, 전동식 원격조정 도어미러, 4단 오버드라이브 자동변속기(선택사양)가 장착되었다.[43] 원래 삼선공업(주)에서 애프터마켓용으로 출시한 것을 현대가 순정화하였다.[44] '첩보'를 입수한 대우가 프린스를 F/L하면서 먼저 써먹는 바람에 국내 최초가 되지는 못했다.[45] 4개의 휠 아치에 비슷한 모양인 스테인레스 몰딩을 범퍼와 이어지도록 덧댄 것으로, 미관상 신선했다. 그래서 이 부품을 구해서 붙이고 다니는 스텔라 오너들도 있었다. [46] 전체 모습은 4각형이지만, 네 모서리에 작게 '모따기'를 해서 8각형이다.[47] 'S' 자와 음표를 적절히 섞어서 디자인한 배지가 커버에 들어간, 키홀을 덮는 8각형[46] 장식으로, 나중에 대우 수퍼 살롱에서도 이와 유사한 것을 트렁크에 붙이기도 했다.[48] 운전석과 조수석에 국내 최초로 프레임형 헤드레스트가 달렸고, 알루미늄 휠[43], 백색 방향지시등[44], 펜더 몰딩[45], 트렁크 키 오너먼트[47] 등의 참신한 시도가 다수 있었다.[49] 스텔라 기반이 된 포드 코티나는 오펠 레코드보다 사이즈가 작다. 코티나와 후속인 시에라의 경쟁차는 레코드 아랫급인 아스코나였다. 이후 시에라 후속인 몬데오가 세대를 거듭하면서 점점 커지고 반대로 레코드 후속은 오메가를 거쳐 인시그니아로 가면서 지금은 몬데오가 인시그니아보다 크지만 아무튼 당시에는 그랬다.[50] 이런 상황은 수 년 후 입장이 바뀌어 재현되기도 했다. 대우에서 에스페로를 내놓으면서 쏘나타와 경쟁하고자 했는데, 작은 에스페로로 큰 쏘나타를 상대하기에 한계가 있었기 때문에 결국 에스페로의 급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쏘나타는 스텔라보다 한 사이즈 큰 플랫폼으로 만들어졌고, 에스페로는 아스코나급 플랫폼으로 만들어진 차였으니 스텔라-로얄이 처했던 상황과 정확히 반대가 되었다.[51] Y1 소나타나 이후에 출시된 Y2 쏘나타와 판매 간섭을 우려하여 스텔라 2.0은 자가용으로 생산되지 않았다.[52] 당시 택시모델의 배기량은 범퍼로 구분할 수 있었다. 2.0리터 LPG는 개인택시가 주를 이루었으며 GSL, APEX, 88에 장착되었던 각진 범퍼가 장착되었고 개인택시가 절대다수였다. 1.8리터 LPG는 전기형 SL 및 깡통 트림에 장착되었던 곡선 형태인 범퍼가 장착되었고 개체수는 업체택시가 많았다.[53] 1993년 출시된 3세대 쏘나타(쏘나타2/Y3 전기형)의 택시모델이 스텔라 택시모델의 판매량을 앞지르게 되면서 스텔라 택시가 최종 단종된 것.[54] 승용차 뿐만 아니라 버스, 트럭 등 거의 모든 자동차들.[55] 그라나다, 푸조 604, 로얄 살롱 등, 당시의 최고급 차량들은 연질 PVC몰딩 대신 반영구적인(...) 스테인리스 몰딩으로 마감하기도 하였다.[56] 일부 저가형이나 화물차, 버스 등에는 아직도 고무 몰딩 장착방식이 사용되고 있기는 하다.[57] 자가용 오너들은 생애 첫 차를 장만하면서 행여나 때가 타거나 찢어지지 않을까 하여, 받은 후 곧바로 카센터에 가서 여기에 비닐 씌우고, 시트커버를 맞추는 것이 거의 정식 코스였다.[58] 당시의 스텔라 카탈로그에는 이것을 '일체성형식(Formed Type)' 이라고 기술하였다.[59] 증발기가 내장되어서, 크기가 대략 A4용지 500매짜리 뭉치 2개 높이정도 된다.[60] 조립할 때부터 장착하는 것이나 출고 후 장착하는 것이나 형태는 동일하였다.[61] 요즘 '에바가루' 논란의 중심에 있는 부분이 바로 이 기기이다.[62] 요즘은 증발기를 센터콘솔 안에 히터 방열기와 함께 장착한다.[63] 당시 카탈로그에는 이것을 '냉온풍 혼합형 히터' 라고 기술하였다.[64] '모두'는 아니다. 기아 세레스 후기형에서 에어컨을 옵션으로 선택 가능했는데, 선택하면 대쉬보드 우측 하단에 장착되어 나왔다.[65] 내장형 에어컨은 스텔라 이전인 1982년 출시된 포니2에서 처음 시도되었지만(당시 포니2 카탈로그에 '흔적'이 남아 있었다.), 그 때는 아직 소형차에 에어컨은 '사치품' 이라 선택하는 사람도 드물었기에 이후 중형차에서 시도되었던 것이다.[66] 당연한 이야기지만, 기본형에는 시계조차도 없이 무늬만 눈금이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현대 로고가 그려져 있었다.[67] 프리마와 CXL에는 계기판에 전압계와 유압계도 달려 나왔다. GSL에는 타코미터 외에 수온계와 연료계만 장착되었고, SL 트림에는 타코미터가 생략되었다.[68] 타코미터 디자인이 132와 유사했는데, 132 디자인을 조르제토 주지아로가 하였기 때문이다. 이 분은 비슷한 유형을 다른 여러 차종에도 적용하는 경우가 많았다.[69] 승합차나 트럭, 마이크로버스까지 영역을 넓히면 2000년대 초중반까지도 깡통 또는 마이너스 옵션을 통해서는 RPM 타코미터가 생략되고 제조사 로고만 떡하니 붙은 멍텅구리 게이지가 자리잡았다.[70] 5단 수동은 기본이었고, 3단 자동이 옵션이었음.[71] 당시 프론트 펜더 양쪽에 '5-SPEED' 엠블럼이 부착되어 출시되었다.[72] 한편, 4단 오버드라이브 자동변속기(보그워너 라이센스 03-71)는 Y1 소나타에 선택사양으로 적용되었다.[73] 코티나가 줄곧 같은 섀시를 쓴 것이 아니다. 1970년에 신형 코티나가 나오면서 대폭 커진 신형 섀시로 변경되었고, 이후 마크 IV, 코티나 마크 V에도 적용되었고 스텔라에게도 이어졌다. 스텔라 출시 당시에는 13년 된 섀시이지 결코 20여년 된 섀시가 아니었다.[74] 광폭타이어를 장착하면 휠 크기를 키울 수도 있지만, 스텔라는 기존 13인치 그대로에, 트레드 폭을 넓히고 허브를 좀 더 안쪽으로 넣었다. 바퀴가 조금 더 바깥으로 튀어 나오도록 함으로서 '꽉 차 보이는' 효과를 본 것이라 할 수도 있다.[75] 이 빈약해 보이는 외관은 코티나 후속인 시에라도 마찬가지였다. 조금 낫기는 하지만 당시 동급 경쟁차인 푸조 405 등과 비교하면 휠이 지나치게 안쪽으로 들어가 있는 구식 느낌이 강했다.[76] 타이어의 사이드월 높이가 트레드 폭의 70%.라는 것으로, 기존 타이어의 내, 외경을 그대로 두고 접지면의 폭을 늘린 것이다.[77] 프레스토, 엑셀, 스쿠프, 엘란트라 1.5의 휠커버를 달고 다닌 스텔라도 많았다. 심지어는 캐피탈, 프라이드 베타도 13인치여서 휠커버 호환이 가능했다.[78] 기아 콩코드 및 2세대 쏘나타부터는 14인치 휠이 적용되었다.[79] 예전 대우 로얄 시리즈는 14인치였지만, 그것보다 크다.[80] 추가로, 운전석은 한번만 누르는 것으로 자동으로 여닫는 스위치가 별도로 있다.[81] 4 + 1 + 1 = 6개.[82] 요즘 것과 같은 구성은 다행히도 Y1소나타에서 처음 적용되었고, 이후 1986년 출시된 그랜저에도 적용된다.[83] 물론 어지간한 깡통사양(...)이 아니면 거의 기본으로 장착되어 나온다.[84] 1982년 포니2 출시하면서 엔진을 100% 국산화하였으나, 미흡한 열처리 기술로 인하여 작동중 피스톤 링이 부러지면서 이것이 실린더를 갉아먹는 바람에, 출고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엔진을 보링해야 하는 문제가 있었다(...). [85] 다만, 경찰차 한정으로 생산되었던 왜건에는 세단과는 달리 모두 1.6으로 통일되었다.[86] 심지어 'X텔라' 라는 욕까지 먹었다.[87] 70마력대인 1.1리터 엔진도 중형차에 달렸다. 유럽 중형차는 작지 않느냐는 반론이 있을 수 있으나 현대 스텔라는 바로 그런 작은 중형차에 속하는 차종이다.[88] 첫 번째 모델은 현대 포니2로, 이후 대우 르망GSE, 현대 포니엑셀이 출시되었다. 그 외에도 현대 그랜저 1세대와 기아 프라이드 1세대도 출시될 예정이었으나 무산되었다. 그 후 20여년간의 공백 후에 현대 그랜저HG가 출시된 상태.[89] 이 링크의 블로그 제목과 이미지속 제품에는 스텔라 라고 돼 있지만, 실물은 Y1소나타이며, 초기에는 소나타 로 발매하였고, 미니카의 앞뒤 번호판에도 'SONATA' 라고 인쇄된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90] 가령, 80년대 대우 로얄 시리즈는 방향지시등 레버 끝에 윈도 워셔 스위치가 달려 있기도 했다(...). 로얄 시리즈 방향지시등 레버 사진 보기 맑은 날 운전 중, 스텔라를 운전하던 습관대로 실수로 누르게 되면...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91] 이전의 차량에서도 그랬던 듯...[92] 반면 유럽 쪽에서는 꽤 익숙했을 듯하다.[93] GL, GX 등의 하위 사양 포함[94] 스티어링 컬럼 오른쪽(방향지시등 레버의 반대편)에 가로로 굵고 긴 파이프를 달고 그 끝에 헤드램프 스위치와 경음기 스위치를 장착하는 충공깽을 선사했었다(...). 이 때문에 HD160/170이나 FB485를 운전하던 버스기사들이 BF101이나 AB185/AM907을 몰면(혹은 그 반대도 마찬가지) 경음기 조작하는 부분에서 헤메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95] 그나마 충격흡수식 스티어링 컬럼을 적용한 것인데도 이 정도였다(...).[96] 단, 현가 장치만 바뀌었을 뿐이고 바닥판 자체는 그대로였으므로 엄밀히 따지면 플랫폼은 아니다.[97] 현대와 대우는 경차 엔진에서도 비슷한 경쟁 구도가 있었다. 현대 아토스(기아 비스토)가 4기통이었고, 대우 마티즈는 3기통이었는데, 당시 대우는 4기통보다 3기통이 우수하다며 대놓고 광고까지 했었다. 그러나, 이후 기아 모닝이 3기통이었고, 쉐보레 스파크(1세대)가 4기통(!)이었다(...) 지금은 양사 모두 3기통이다.[98] 택시 한정. 자가용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이 보였다. 택시 단종년도가 97년인걸 감안한다면 2005년까지는 돌아다녔던 셈.[99] 서울 석계역 부근에 2019년까지도 GL 모델이 있었다.[100] 현대 스텔라가 출시되기 6년 전인 1977년에 이미 '스텔라 지' 라는 피부연고가 출시되어 있기는 했다.당시(1977.4.20) 신문광고. 영어 스펠링도 똑같다.(...) [101] 회사 이름은 기억이 나지 않음(...)[102] 주마 알 마지드란 아랍에미리트의 종합상사 회사이고 현대/기아차 등 국산차들의 현지 딜러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