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동왕자
1. 소개
好童
?~32
고구려 3대 국왕인 대무신왕의 맏아들로, 어머니는 차비 해씨.[1] 최씨낙랑국을 멸망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다. 그에 대한 것은 보통 '호동왕자와 낙랑공주'란 설화로 알려져 있다.
2. 출생
대무신왕의 둘째 왕비인 차비 해씨가 낳은 왕자. 이러니 일단 서자는 아니다. 얼굴이 수려하여 부친의 총애를 받았으며, 그래서 이름을 호동(好童)이라고 했다고 한다.
3. 낙랑공주와의 로맨스
낙랑국과 고구려 양국의 중립지대인 옥저에서 호동왕자가 낙랑왕 최리의 행렬을 만나면서 그 유명한 낙랑공주와의 로맨스가 시작되었다.
낙랑왕은 호동이 고구려 신왕의 아들임을 알고 자신의 딸과 결혼시킨다. 이는 고구려의 팽창을 두려워한 낙랑왕이 고구려와 친선을 도모하기 위한 것이라고 추측한다.여름 4월, 왕자 호동(好童)이 옥저(沃沮)에서 유람하고 있었다. 그때 낙랑왕(樂浪王) 최리(崔理)가 그곳을 다니다가 그를 보고 물었다.
“그대의 얼굴을 보니 보통 사람이 아니로구나. 그대가 어찌 북국 신왕(神王)의 아들이 아니리오?”
낙랑공주 쪽에서 생각하면 로맨스이겠으나, 호동왕자 쪽에서 로맨스라고 생각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호동이 낙랑을 사랑했다는 모습은 어디에도 등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너희 나라를 팔아먹으면 내가 너를 맞이할 것이요, 그렇게 하지 못하겠다면 보지 않겠다' 식의 협박만 늘어놓고 있을 뿐이다. 사랑하는 여인에게 '''매국노'''의 멍에를 지우는 행동이 과연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지 다시 생각해 보면, 이 때 호동의 행동이 국가적으로는 대의에 찬 결단일 수 있겠으나, 인간으로써는 얼마나 냉혹하고 비정한 짓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2]낙랑왕 최리는 마침내 그를 데리고 돌아가서 자기의 딸을 아내로 삼게 하였다. 그 후, 호동이 본국에 돌아와서 남몰래 아내에게 사람을 보내 말하였다.
“네가 너의 나라 무기고에 들어가서 북을 찢고 나팔을 부수어 버릴 수 있다면 내가 예를 갖추어 너를 맞이할 것이요, 그렇게 하지 못하다면 너를 맞이하지 않겠다.”
이전부터 낙랑에는 북과 나팔이 있었는데, 적병이 쳐들어오면 저절로 소리를 내기 때문에 그녀에게 그것을 부수어 버리게 한 것이었다. 이에 최씨의 딸은 예리한 칼을 들고 남모르게 무기고에 들어가서 북과 나팔의 입을 베어 버린 뒤에 호동에게 알려 주었다.
호동이 왕에게 권하여 낙랑을 습격하였다. 최리는 북과 나팔이 울지 않아 대비를 하지 않았고, 우리 병사들이 소리 없이 성 밑까지 이르게 된 뒤에야 북과 나팔이 모두 부서진 것을 알았다. '''그는 마침내 자기 딸을 죽이고 나와서 항복하였다.'''[원주]
夏四月 王子好童 遊於沃沮 樂浪王崔理出行 因見之 問曰 觀君顔色 非常人 豈非北國神王之子乎 遂同歸 以女妻之 後 好童還國潛遣人 告崔氏女曰 若能入而國武庫 割破鼓角 則我以禮迎不然則否 先是 樂浪有鼓角 若有敵兵 則自鳴故令破之 於是 崔女將利刀 潛入庫中 割鼓面角口 以報好童 好童勸王襲樂浪 崔理以鼓角不鳴不備 我兵掩至城下 然後知鼓角皆破 '''遂殺女子出降'''[或云 欲滅樂浪 遂請婚 娶其女 爲子妻 後使歸本國壞其兵物]
뿐만 아니라, 최리가 낙랑공주를 죽일 가능성이 충분함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보호하려 하는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던 것으로 미루어 볼 때, 호동왕자는 낙랑공주를 이용할 가치가 있는 반간(反間)의 대상으로만 생각했을 뿐, 사랑의 대상으로 보지 않았을 것으로 짐작이 가능하다. 그리고 호동이 계략을 통해 낙랑을 정벌했듯이, 곧 그 자신도 계략에 빠지게 된다.
4. 계모와의 갈등
낙랑 공주를 이용하여 낙랑을 정복하는 등, 군사적으로 호동이 명성을 높여가자 그가 태자가 되는 것을 두려워한 대무신왕의 첫째 왕비가 자신에게 못된 짓을 했다라고 참소하는 등 호동을 모함하고, 결국 억울하게 누명을 쓰자 그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자결했다.
테세우스의 아들 히폴리토스와 비슷하다.[3]내가 만약 변명을 하면 이것은 어머니의 악함을 드러내어 왕께 근심을 끼치는 것이니, 이것을 어떻게 효도라고 할 수 있겠는가.
我若釋之 是顯母之惡 貽王之憂 可謂孝乎
삼국사기에서 김부식은 순임금과 그 아버지의 예를 들면서, "호동왕자가 작은 의리를 위해 큰 정의를 버렸다"면서 비판했다.
5. 사후
결국 그가 세상을 떠난 뒤 왕자 해우(解憂)가 태자가 되고, 대무신왕 이후 왕권은 흔들리게 된다. 잠시 친척인 민중왕이 왕위를 이었지만 급사하고, 그제서야 첫째 부인의 소생인 모본왕이 즉위하지만, 막장이 되고 결국 모본왕은 두로에게 살해당한다.[4] 그의 죽음이 안타깝게 여겨지는 것은 이런 배경 때문이다.
6. 대중매체에서의 등장
- 국토만리(드라마)
- 바람의 나라(만화)
- 바람의 나라(드라마)
- 자명고(드라마)
- 둥둥 낙랑둥 (희곡)
낙랑을 정복한 호동은 죽은 낙랑공주를 떠올리며 괴로워 한다. 낙랑공주의 쌍둥이 언니이자, 고구려로 시집 와 호동의 의붓어머니되었던 '왕비'는 멸망한 자신의 모국 낙 랑국을 그리워 한다. 둘은 낙랑국과 낙랑공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각자가 지닌 '갈증'과 '결핍'을 채우려 한다. 왕비가 '낙랑공주'의 흉내를 내기 시작하자 호동은 최면 에 빠진듯 현실을 혼동하기 시작하면서 둘은 점차 '역할극'에 빠져들게 된다. 왕비는 낙랑공주에게 자명고를 찢게 만들고 낙랑국을 멸망시킨, 그라고 낙랑공주를 죽게 만 든 호동에 대한 복수심과 호동과의 금지된 사랑 사이에서 번뇌하지만 결국 둘은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역사 속 한 줄로 깨알같이 등장하는 인물인 '태후'를 모티프로 '낙랑공주의 쌍둥이 언니인 왕비'로 캐릭터를 변형 및 중심인물로 설정하였고, 호동의 최후에도 직접적으로 관여한다는 점까지 실제 역사를 반영한 점이 돋보이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