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91년
1. 개요
''' 십자군 국가의 소멸과 스위스의 성립 '''
2. 사건
2.1. 실제
- 1월 - 카다안의 침입군이 고려의 교주도 - 북한강 일대를 유린하였다.
- 봄 - 제노바의 반디노와 우글리노 형제가 인도 제국를 향한 항해를 시작하였다. (대항해시대의 시초) 그들은 다시 기록되지 못하였다.
- 치악성 전투에서 원충갑이 이끈 고려 군민이 카다안의 침입을 격퇴하였다.
- 4월 - 원나라의 지원군이 개경에 당도하였다.
- 4월 5일 - 맘루크 왕조의 술탄 알 아슈라프 할릴의 군대가 예루살렘 왕국의 수도 아크레를 포위하였다.
- 4월 15일 - 성전기사단이 아크레의 포위망을 공격했지만 역습을 당해 패퇴하였다.
- 구호기사단의 아크레의 포위망 기습도 실패하였다.
- 5월 1일 - 연기 전투에서 몽골군이 카다안 군대를 격파하였다.
- 5월 4일 - 맘루크 왕조 군대의 아크레에 대한 대공세가 시작되었다.
- 5월 8일 - 몽골군이 한희유의 활약으로 카다안의 본군을 격파하였고 이후 원나라 군은 귀국한다.
- 5월 10일 - 스코틀랜드의 귀족들이 잉글랜드의 왕 에드워드 1세에게 충성 서약을 하였다.
- 5월 18일 - 맘루크 왕조가 아크레를 함락하여 예루살렘 왕국이 멸망하였다.
- 5월 28일 - 아크레의 성전기사단 성채가 함락되었다. 요새의 템플러들은 전멸하였다.
- 6월 - 이무의 활약으로 카다안의 침입이 끝났다.
- 8월 1일 - 스위스 지역의 3인 대표가 스위스의 기원이 된 영구동맹을 맺었다. (루에틀리 서약)
- 8월 4일 - 맘루크 왕조 군대가 아크레 함락 이후 십자군의 중심지가 된 시리아의 토르토사를 함락하였다.
- 8월 14일 - 맘루크 왕조 군에게 샤토 펠라린이 함락되며 레반트의 십자군 거점이 소멸되었다.
- 산초 3세가 이끄는 카스티야 왕국군이 지브롤터 인근의 타리파를 함락하였다.
- 합스부르크 가문이 스위스의 루체른을 획득하였다.
- 쿠빌라이 칸이 캄말라를 북평왕으로 임명, 항가이 산지에 주둔하며 카이두를 견제하게 하였다.
- 교황의 칙령을 통해 산마리노의 독립이 확인되었다.
- 베네치아의 유리 제조공들이 화재 방지를 위해 무라노 섬으로 배치되었다.
- 헝가리 국왕 언드라시 3세가 브라티슬라바에 왕립 도시 특권을 주었다.
- 원나라의 과학자 곽수경의 설계로 대도에 곤명호가 저수지 용도로 지어졌다.
- 일본에서 선불교 사원 난젠지가 건립되었다.
- 홀란드 백작령과 질란트 백작령의 도시들이 공동 군주인 플로리스 5세에 대한 이자율을 같게 하기로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