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POP/역사
1. 1960년대까지
1980년대 초반 이전까지는 한국의 대중음악은 팝의 영향력 지배하에 있었다고 정리할 수 있다. 특히 1960년대 초기, 트로트 장르를 제외한 분야에서는 패티 김, 현미, 윤복희, 신중현 등 미국 제8군 (참고로 미국 제8군 쇼단은 엄격한 오디션과 가수 등급제로 활동할 수 있는 가수들을 관리했고, 그 때문에 이런 쇼단들에서 대표 가수라는 것은 실력이 인정된다는 징표였었다. 조용필도 미국 제8군 쇼단에서 활동한 경력이 있었다.) 공연을 했던 이들이 장악했기 때문에 팝의 영향이 클 수밖에 없었다.
한편 소비자 측면에서 보면, 1960년대까지는 경제사정이 열악했기 때문에 음반(레코드판)을 구입하고 공연을 보러 올 수 있는 소비층이 성년층 밖에 없었는데 그래서 당시의 대중음악은 장르를 불문하고 가사가 전체적으로 성인 취향이었다. 최희준의 <하숙생>("인생은 나그넷길..."), 김용만의 <회전의자>("억울하면 출세하라...") 등이 대표적이다.[1]
2. 1970년대
대한민국의 경제가 발전하면서 이때부터 20대 대학생들이 새로운 구매자로 떠오르기 시작한다. 통기타, 청바지로 대표되는 청년문화가 도래하여 대한민국 록 음악의 태동기를 비롯한 대중음악계의 대부 신중현 등을 위시한 북아메리카, 유럽 음악의 영향을 받은 아티스트들과 쎄시봉 같은 포크뮤직 가수들이 대한민국 대중음악의 토대를 닦기 시작했던 시기이기도 했으나, 10월 유신 (1972년 10월 17일 대한민국에서 발생한 박정희의 헌법 개정 사태다.) ~ 전두환 정권(국가재건최고회의 ~ 대한민국 제4공화국)의 검열과 억압 아래 창작활동에 많은 제약을 받았다. (더 자세한 것은 대한민국/문화 규제와 탄압 문서, 대한민국/문화 규제와 탄압/일지 및 대한민국/문화 규제와 탄압/일지/해방 이후~제4공화국 문서 참조)
3. 1980년대
이 시기의 대한민국 대중음악에서 가장 중추적인 변화 중 하나는 한국형 블루스라고 볼 수 있는 소위 한국형 발라드를 완성했다는 점에 있다. 이런 한국형 발라드의 틀을 완성한 두 인물로 이문세의 히트곡을 많이 작사/작곡한 이영훈과 가수 유재하가 거론되며 그들의 영향력은 지금까지 미치고 있다.
이때 국제적인 슈퍼스타인 마이클 잭슨부터 NKOB로 이어지는 영미팝의 영향이 여전히 지대하게 존재하였으나 이 시기 이후 대한민국에서 대중음악계의 인기는 역전되기 시작한다. 한국 대중음악시장에서 외국 음악이 No.1의 자리를 차지한 것은 NKOB가 사실상 마지막이다.
조용필 그리고 시나위, 들국화 같은 밴드들이 대한민국 대중음악의 토양을 만들었다. 시대적 상황 등의 영향으로 1970년대부터 이어진 포크송 장르가 이 당시 대중가요의 한 축을 이루었다. 또한 3저호황으로 더욱 발전한 경제에 힘입어 부모에게 용돈을 받아서 나이키 신발을 구입해서 신고, 가수들의 음반을 구입하고, 공연을 보러 다니는 10대가 새로운 소비자로 등장함으로써 이들을 겨냥한 상품이 쏟아지고 댄스 음악이 본격적으로 흘러나오게 된다. 이는 서태지와 아이들이 등장하는 계기가 되고, 나아가 향후 한류로까지 발전하는 K-POP의 토대가 된다. (대한민국/문화 규제와 탄압/일지/제5공화국 문서 참조)
4. 1990년대
1990년대 초중반의 대중음악을 이야기를 할 때는 서태지와 아이들을 빼놓을 수가 없었다. 이들이 데뷔한 1992년을 기점으로 대한민국 아이돌들과 아이돌 문화가 생성되기 시작했다. 서태지와 아이들은 남성 아이돌 그룹의 시초라고 볼 수 있다. 그 이전에는 현재 통용되는 아이돌이라는 개념이 아직 성립이 되지 않았던 시절이다.
이후 나이트클럽 DJ나 이태원 문나이트에서 댄스를 추던 많은 사람들이 제작자 및 작곡가 그리고 가수 등으로 뛰쳐나온 시기가 되었다. 당시 이른바 5대 작곡가로 불리던 김창환, 최준영, 주영훈, 윤일상, 김형석 중 김창환과 최준영이 대표적인 DJ 출신 작곡가였고, 서태지와 아이들을 제작한 유대영 역시 유명한 DJ였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아이들을 이루던 양현석과 이주노는 유명한 댄서였고, 현진영과 와와도 유명한 댄서 출신 가수였다. 무엇보다도 현진영의 경우 현재 K-POP의 한축을 이루고 있는 이수만이 이끄는 SM의 1호 가수였다는 점에서 서서히 현재 K-POP의 원형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겠다. 와와의 경우도 1-2기 모두 유명한 댄스가수인 클론과 듀스로 성장하였다.
한편 걸그룹의 시초는 1993년 언론에 처음으로 소개된다. 바로 중앙대학교 연극영학과 4학년생들이 최초로 칼라라는 걸그룹을 만들어 1993년 강변가요제에서 '후회하고 있는거야'라는 데뷔곡으로 대상을 받았는데, 이들이 걸그룹의 시초라고 볼 수 있다. (대중가요계 걸그룹 선풍, 여성그룹 가요계 새바람)
이렇듯 댄스가요는 1990년대 초중반을 그야말로 강타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1996년 은퇴를 선언하게 되면서 그야말로 대중 가요계에 기점이 생기기 시작했다. 바로 서태지와 아이들 은퇴 직후 등장한 H.O.T.를 위시 하는 전문적인 아이돌 그룹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들은 이전의 가수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이전 데뷔했던 가수들은 대부분 이미 다른 분야에서 활동을 하거나 혹은 즉석으로 캐스팅 되어서 가수로 데뷔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로 인해 전문적인 가수라는 느낌보다는 본인들의 일을 가요식으로 전환해서 한다는 느낌이 강했다. 하지만 아이돌 그룹들은 달랐다. 기본적으로 연습생 시기를 거쳐서 소속사의 혹독한 트레이닝을 거쳐서 데뷔한다. 즉 준비된 사람들만이 데뷔를 한다는 점이다. 또한 활동 역시 회사의 전문적인 계획 아래 운영이 된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들은 앨범이 나오는 시기의 텀도 이전 가수들에 비해서는 굉장히 긴 편에 속했다. 그리고 팬클럽이라는 구조도 본격적으로 회사에서 관리하는 체제로 들어갔다. 즉 팬덤을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체제가 등장했고 이 체제는 2020년대를 지나는 현재도 꾸준히 진행되고 있는 K-POP의 가수 생산 체제이기도 하다. 또한 소속사 내에서 주요 작곡가가 있어서 이른바 소속사 스타일이라는게 처음으로 정립되기 시작한 시기이기도 했다.
이 당시 이렇게 트레이닝을 받고 등장한 대표적인 보이그룹으로는 H.O.T, 젝스키스, 신화, god가 있었고, 걸그룹으로는 1997~1998년 이후부터 등장하여 베이비복스, S.E.S., 핑클 등이었다. 이들을 이른바 1세대 아이돌이라 부른다. 이들은 1990년대 말까지 전성기를 누렸고 2000년대 초반까지 활동을 이어나갔다.
1990년대는 혼성그룹도 꾸준히 등장했다. 1994년 룰라, 쿨, 투투, 1996년 UP, 1997년 자우림, 1998년 S#ARP, 코요태 등이 대표적이다. 또한 여성 솔로 댄스 가수도 상당한 강세였다. 김창환이 댄스가수로 변신 시킨 박미경부터 시작해서 엄정화, 김현정, 백지영, 이정현까지 시대를 풍미하는 여성 솔로 댄스 가수가 많이 등장하였다. 하지만 그에 비해 남성쪽에서는 솔로 가수는 대부분 발라드 쪽이 담당할 정도로 댄스 솔로 가수는 굉장히 드문 상황이었다.
이처럼 1990년대에 서태지 이후로 10대~20대 아이돌 그룹이 등장하면서 대한민국 가요계는 10대가 시장 전체를 장악하다시피하고 이런 현상은 20여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이어지게 된다.
5. 2000년대
2000년대 초반부터 1세대 아이돌 그룹이 퇴장하고부터는 다른 식의 가수들이 많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우선 여성 가수 쪽에서는 핑클, S.E.S., 베이비복스가 퇴장하고 난 뒤엔 어린 여성 솔로 가수들이 활발한 활동으로 인기를 얻었다. 특히 보아의 경우 일본에서도 상당한 인기를 모으고 그 인기를 바탕으로 국내에서도 인기를 끌었던 가수였다. 또한 1990년대 후반부터 살아 남았던 혼성그룹인 쿨과 코요태도 2000년대 초반에 가장 큰 인기를 모았다. 남성 아이돌 그룹에서도 H.O.T.와 젝스키스의 퇴장 이후 god가 전국민적인 인기를 끌었다. 다만 이 시기 부터 음반판매량이 급감하기 시작하였고, 대중들이 이른바 발라드에 조금 더 관심을 지니기 시작했던 시기였다. 그나마 댄스 분야에서는 여성 솔로로 이효리, 남성 솔로로 비가 전 국민적인 인기를 끌면서 대상을 차지하는 등 명맥을 유지해나가던 시절이었다.
상대적으로 덜 부각되긴 했지만 2000년대에 들어서는 J.ae의 '어제처럼'의 흥행으로 인해 한국 대중가요계에서는 R&B 장르의 서막을 알리기 시작했다. 2001년 브라운 아이즈의 데뷔 이후 본격적인 R&B 열풍이 불기 시작했다. 2004년 미디엄 템포 발라드를 주력으로 하는 SG워너비의 등장과 대히트 이후 수많은 가수들이 천편일률적으로 소몰이창법만 써서 비슷한 분위기의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고 대중이 지칠 무렵, 2000년 중후반부터 아이돌 그룹이 유행을 타기 시작했다. 참고로 이는 발성적으로 성대에 매우 좋지 않은 창법이었기에, 이 시기 소몰이창법을 쓰던 플라이 투 더 스카이, 박효신도 창법을 바꿨고, 심지어 대표주자 였던 SG워너비조차 성대결절로 창법을 바꾸었다.
2000년대 초반에 1세대 아이돌 들이 퇴장하고 중반에는 소몰이창법이 크게 유행을 탄 것은 사실이지만, 아이돌 그룹의 명맥이 완전히 끊기지는 않았다. 1990년대에 결성된 혼성그룹들은 2000년대에 와서도 어느 정도 인기를 유지했으나, 신규 결성 그룹은 확연히 줄어들었다. 2000년대에 결성된 혼성그룹은 2006년 타이푼, 2007년 써니힐, 2009년 어반자카파 등이 전부. 이들은 나름대로의 색깔로 인기를 끌었으나, 높은 인기를 오랫동안 지속하지는 못했다. 1990년대 후반~2000년 이후 1세대 아이돌의 맥이 거의 끊긴 뒤 2000년대 초반은 댄스를 추는 아이돌, 특히 걸그룹은 거의 멸종되었던 시절이었다. 2세대 아이돌의 원형이 되는 동방신기나 SS501 등이 활동하긴 했으나 대중들에게 크게 인정받는 상황은 아니었고, 걸그룹의 경우에는 쥬얼리 정도만이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을 정도로 최악의 상황이었다. 그나마 인기 있던 걸그룹이었던 씨야는 정통적인 아이돌 그룹은 아니었으니 애초에 논외였던 상황이었다.
그러다 2007년 JYP에서 내보낸 원더걸스의 Tell Me, YG에서 내보낸 빅뱅의 거짓말이 그야말로 대중들에게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기 시작하면서 2000년대 초중반을 감싸고 있던 R&B와 발라드 열풍을 끝내고, 다시금 가요계에 댄스 음악들을 불러 들어오기 시작했다. 2008년에 이들의 곡들은 역시 최고의 인기를 끌기 시작했고, 2009년에는 소녀시대 Gee, 카라의 미스터 등을 시작으로 하는 걸그룹 댄스 열풍이 시작하면서 걸그룹들이 대규모로 등장, 그야말로 K-POP의 현재를 이루어 나가는 시기로 돌입하기 시작하였다.
6. 2010년대
2010년에는 여성 솔로 쪽에서는 아이유라는 가수가 등장하여 기존의 체제를 흔들면서 2020년대까지 주름잡고 있는 상황이 되었다. 하지만 아이돌 시장은 이른바 해외 진출 특히 카라의 일본 진출 성공 이후에는 대부분 일본으로 진출이 일상화가 되면서 국내 활동이 주가 아닌 상황이 이어지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도 여성 아이돌 그룹들은 소녀시대, 2NE1, 씨스타, 티아라 등을 중심으로 대중들에게서 상당한 강세를 꾸준히 보여오면서 인기를 모았다.
그리고 그동안 쉬었던 남성 아이돌 그룹쪽에서도 가수들이 나오기 시작했는데 EXO와 방탄소년단이 대표적이었다. 그리고 다인원 그룹이었던 EXO의 인기에 힘입어 이후에 남성 아이돌 그룹쪽은 다인원 그룹이 상당히 많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중에 성공한 케이스로는 세븐틴 정도가 되겠다.
이른바 2세대 아이돌 시장은 2015년에 사실상 마지막을 장식하였다. 이 해에 빅뱅의 뱅뱅뱅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는데 사실 이것이 마지막 불꽃이었고, 이 시점 이후로는 이른바 3세대 아이돌 시장으로 돌입하게 되었다. 2016년 여자친구, 트와이스, 마마무, 블랙핑크, 레드벨벳을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세대의 여성 아이돌 그룹이 성장하였고, 남성 아이돌 그룹쪽은 방탄소년단이 두각을 보이기 시작하면서 그 이후에는 그야말로 전 세계를 호령하고 있다.
여전히 양산형 아이돌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이때부터 서서히 아이돌 개인이나 그룹이 장르별 다각화를 시도하려는 움직임이 보이기 시작했다. 더불어 아이돌로서의 가창력, 퍼포먼스 등 역량에 대한 시청자와 팬들의 기대치가 점차 상향되면서 수많은 아이돌 중에도 정말 실력 있는 소수만이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
2010년대 중반부터는 유튜브를 활용한 북미, 아시아, 유럽 등 해외 진출이 매우 활발해지며 K-POP의 글로벌 성장이 이전에 비해 폭발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방탄소년단과 블랙핑크는 그 유튜브에서 상당한 인기를 모으며 성장한 그룹들이고 2020년 현재 아이돌 그룹계의 양대 축으로 자리 잡고 있다.
또한 2010년대 중반에는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이 등장하여 거기서 파생한 프로젝트 그룹이 상당한 인기를 모았다. 물론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 상당수가 조작임이 밝혀지면서 그 이후에는 그 열풍이 대중적인 측면에서는 줄어들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많은 기획사들이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을 이용할 정도이고 이는 지속적으로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2010년대 마지막은 트로트가 장식했는데 장윤정, 박현빈, 홍진영 등을 위시한 젊은 트로트 가수들이 10여년간 중심을 잡고 활동을 하고는 있었지만 이들이 이른바 브라운관을 장악하는 정도의 수준까지는 아니었다. 하지만 트로트도 당시 유행하였던 오디션 프로그램을 차용하기 시작하면서 그야말로 붐이 일기 시작했다. 이는 2010년대 후반부부터 해외 진출과 유튜브에 집중하던 아이돌 그룹 노래들에 염증을 느끼던 40대 이상의 연령층들이 트로트라는 장르에 빠져들기 시작하면서 생겨난 점이라 볼 수 있겠다. 트로트 열풍을 통해 느낄 수 있는 점은 K-POP이 결국 어디를 지향하느냐가 앞으로 2020년대 이후 발전에 있어서 중요한 상황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의미한다.
현 상황이 지속된다면 아이돌 그룹이 대중들에게서 도태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고, 물론 팬덤이나 해외 인기를 통해 돈을 벌어들일 수는 있지만 2007년 빅뱅과 원더걸스 이후 그야말로 K-POP의 주축을 이루고 있던 아이돌 시장이 다시금 2000년대 초중반의 대중들에게 외면 받던 비주류 시장이 되지 말란 법이 없다는 점을 의미한다. 결국 새로운 K-POP의 주류가 과연 어디로 가느냐는 앞으로 2020년대 가요계를 관통하는 주요 키워드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이른바 4대 기획사 중심의 댄스형 K-POP이냐 아니면 발라드 중심의 K-POP이냐 아니면 트로트 중심의 K-POP이냐, 혹은 이 셋이 적절히 어우러지는 2010년대 후반의 상황이 지속될 것인가가 중요해진 시기가 다가올 것으로 예상된다.
[1] 출처: 김창남, 『인문학이 인권에 답하다』, 「드라마 주인공은 왜 사투리를 쓰지 않을까?」 . 철수와 영희. 65-66쪽. 이하 연도별 소비자층에 관한 내용도 동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