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이 투 더 스카이

 




왼쪽부터 브라이언, 환희
1. 개요
2. 상세
3. 멤버
3.1. 역할
3.2. 열애설과 불화설
4. 커리어
4.1. 아이돌 시절 - 1, 2집
4.2. 뮤지션으로 넘어가는 과도기 - 3, 4, 5집
4.3. 소속사 이적 후 - 6, 7, 8집
4.4. 솔로 활동
4.5. 컴백 - 9집
4.6. 미니앨범
4.7. 10집
6. 여담


1. 개요


대한민국의 남성 2인조 R&B 듀오. 환희는 한국인이고, 브라이언은 한국계 미국인이다. 그룹 활동을 할 시 환희의 소속사인 H2미디어와 브라이언의 소속사인 iMe KOREA에서 공동으로 관리한다.

2. 상세


공식 데뷔일은 1999년 11월 21일. MBC에서 방영한 H.O.T.의 단독쇼였던 Login H.O.T를 통해 데뷔했다. SM 출신의 실력파 가수를 논할 때 가장 먼저 언급되는 가수 중 하나. SM엔터테인먼트와의 계약이 끝나자 2005년 7월경에 피풀(PFull)엔터테인먼트로 소속사를 옮겼다. 8집을 끝으로 각자 다른 소속사에서 솔로 앨범을 내며 현재 활동하였고 2014년 5월에 H2미디어에서 정규 9집을 발표하였다.
그룹명은 SM엔터테인먼트의 높으신 분의 작명이다. 의미는 말 그대로. 브라이언은 이 표현이 외국에서는 '학교 종이 땡땡땡~' 과 같은 수준이라며 만류했다고 한다. 차라리 Fly High를 그룹명으로 하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까지 했다고 한다. Fly High는 결국엔 팬클럽 이름이 되었다. 영어로는 '''Fly to the Sky'''라고 쓴다. 축약해서 '''FTTS'''라고 쓰기도 한다. 1집에는 유영진이 작곡한 동명의 곡도 있다. 이름이 긴 편이다 보니 줄여서 ''''플투, 플투스'''' 라고 부르기도 한다. 가수 본인들은 주로 "플라이"라는 약칭을 부르며, 여성 팬 한정으로 '''윤민'''[1], 디씨 플라이투더스카이갤러리 한정으로 '''환불'''이라고 불린다. 중국에서는 그룹명이 비행청소년(飛行靑少年)이 되어 버리다 보니 어감이 다소 괴상해진다.[2]
플라이 투 더 스카이의 대중적 이미지는 '슬픈 사랑 노래를 부르는 발라드 가수'인데 이는 타이틀 곡 선정과 관련이 깊다. 특히 4집 타이틀곡 'Missing You'와 소속사 이적 후에 발매한 6집의 '남자답게'가 히트했기 때문이다. 사실 다른 수록곡들은 더 밝은 것도 많고 콘서트에서는 댄스 퍼포먼스도 선보인다.[3] 어쨌든 타이틀 대부분은 미디엄 템포 발라드.
2008년 당시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선 매년 7월 27일을 '플라이 투 더 스카이 데이'로 선포했다. 당시의 월드 투어와 더불어 3집 타이틀 곡 'Sea of love' 의 뮤직비디오를 샌프란시스코에서 촬영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별 거 아닌 것처럼 보여도 브라이언은 최근까지 꼬박꼬박 챙기고 있었다. 2011년에도 트위터로 자축했다. 관련 기사 링크.
데뷔 10년째가 되는 2009년에 8집을 발매하면서 인터뷰를 통해 플라이 투 더 스카이의 이름으로 내는 마지막 정규 앨범이라고 했다. 두 멤버 모두 당분간 솔로 활동에 매진하며 그룹 활동은 수 년 후에 프로젝트 형태로 이루어질 계획이라고 했었다.
사실 개별 활동의 이유가 멤버간에 불화가 있어서가 아니냐는 소문이 있었고, 두 사람이 SBS 강심장에 출연했을 때 이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요약하자면 두 사람 사이를 오가며 험담을 하던 지인 때문에 오해와 갈등이 있었다고. 실제로 8집 녹음을 따로 했을 정도라고 한다. 그래도 절친노트 촬영을 계기로 관계를 회복하였다고 말했다. 최근에도 두 사람이 같이 찍은 사진을 웹상에 올리는 등 서로 가까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그 불화설 때문인지 팀이 해체된 것으로 오해받고 있다. 어쨌든 공식적으로 해체한 것은 아니다.'''
2014년 5월 20일 정규 9집 앨범 <Continuum>을 발표했다. 타이틀 곡은 '너를 너를 너를'. 음원 공개와 동시에 주요 음원 차트 1위를 석권하며 '돌아온 R&B 황제'라는 평가를 얻었다. 컴백 기념 콘서트도 예매 시작 3분만에 매진되는 결과를 가져와 식지 않은 플라이 투 더 스카이의 인기를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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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식기에 지인의 결혼식에서 축가를 부른 모습. 8집 이후 처음으로 같이 노래했다.'''
오덕계에선 이누야샤 1기 극장판인 시대를 초월한 마음에서 노래 중 하나인 '사랑을 모르다'가 엔딩곡으로 쓰였는데[4] 당시 엄청 인기 애니였던 것 만큼 해당 노래도 나름 꽤 인기가 있어서 첫 방송때는 검색어 순위에 오르기도 했다.
여담으로 걸그룹 레이디스 코드의 리더 애슐리가 플라이 투 더 스카이의 광팬이었다고 한다. 앨범도 전집을 가지고 있고 같이 사진을 찍은 적도 있다고. 다만 컴퓨터가 고장나는 바람에 사진이 지워져서 지금은 볼 수 없다고.
20년 동안 연예계 활동하면서 둘 사이의 숱한 거짓 루머를 제외하고는 그 흔한 스캔들조차 없었으며, 사소한 사건사고도 없이 롱런한 몇 안되는 그룹 중 하나다. 그러나 2020년 3월 환희의 음주운전이 적발되면서 옛말이 되었다.

3. 멤버




3.1. 역할


이수만의 혜안인지 아니면 의도치 않게 그렇게 된 건지 몰라도 두 사람이 가진 속성이 대부분 극과 극이다. 예를 들어 성격이나 음색 등등. 거기다 같이 활동한 기간이 20년 정도 되다보니 그조차도 역할이 분업화 되어있었다. 어떤 의미로는 정반대의 두 남자가 20년 동안 팀을 유지한 게 신기할 정도.[5]
우선 음악적인 면모만 봐도 브라이언은 깨끗한 미성으로 섬세한 감정을 표현하는데 주안점을 둔다면 환희는 굵고 화려한 목소리로 노래 전체를 힘을 실어준다. 정반대의 보컬톤이 조화를 이루어 감성을 극대화시킨다. 듀엣 시절 노래만 듣다가 처음 이들의 솔로곡을 접하는 사람들은 브라이언은 심심하고 환희는 부담스럽다고 말하곤 한다.
음악 외적인 부분도 그러하다. 유쾌하게 분위기를 띄우는 것이 브라이언의 몫이라면 환희는 팀이 지나치게 가벼워보이지 않도록 무게 잡는 역할이었다. 7집 컴백 당시 한 인터뷰에서 "'''환희가 쇼 오락 프로그램에 나갈 건 아니예요. 그건 나 하나면 족해요. 그래야 팀 밸런스도 맞고. 한 명은 무뚝뚝하게, 한 명은 재밌게. 저도 원래 그리 다정다감한 스타일은 아닌데 쇼 프로에서는 '일' 이기 때문에 그런 모습을 보여주는 거죠'''"라고 브라이언은 말했다. 본인들 스스로도 어떻게 해야 팀이 잘 굴러가는지 아주 잘 알고 있었다.[6]
이런 점 때문에 솔로 활동 이후 서로의 빈자리가 느껴진다는 대중들의 아쉬움이 많다. 워낙 정반대였다보니 같이 있을 때는 각자의 장점이 부각되어 시너지 효과가 컸지만 따로 떼어놓고 보니 단점이 두드러지는 안습한 상황이었다.

3.2. 열애설과 불화설


20년이라는 활동 기간 동안 두 사람은 줄곧 열애설과 불화설에 시달렸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열애설은 사실무근이며 불화설은 어느정도 맞는 말이다.
둘이 사귄다는 루머는 헛소문에 불과하다. 환희의 남성적인 면, 브라이언의 여성적인 면이 부각되다보니 퍼진 면도 있는 데다 두 사람이 팀에 대한 애착도 컸고 그만큼 가깝고 돈독한 사이었기 때문. 성시경, 김동률, 김용만, 이휘재, 신동엽 등등 다방면의 연예인들이 둘에게 장난삼아 훌게드립을 날리는 걸 보면 방송가에 널리 퍼진 우스갯소리 쯤 되는 듯. 나중에는 두 사람도 해탈한 경지에 이르러 본인들 입으로 훌게드립을 날린다. 그러나 이를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들 때문에 환희와 브라이언은 실제로 충격에 빠지기도 했다.
불화설은 사이가 좋았을 때도, 사이가 나빴을 때도 항상 따라 다니던 말이었다. 환희가 아픈 브라이언을 등에 업고 응급실을 향해 달리던 때에도 불화설은 늘 존재했었다. 그러나 8집 즈음에는 정말 싸운 거 맞다.[7] 데뷔 초에도 사이가 나빴다는 카더라는 많지만 공식적으로 인정한 바는 없다. 여담으로 나쁜 남자라는 기믹 때문인지 환희가 브라이언을 때렸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제법 있다. 그러나 단 한 번도 서로에게 주먹다짐한 적이 없다고 한다. 현재는 화해해서 잘 지낸다.
근데 또 2014년 6월 19일 방영된 음담패설에서는 불화'설'일 뿐이라며 소문에 대해 일축했다. 절친노트에 나간 것도 연출자와의 친분 때문이지, 지금 와서 보면 왜 나갔는지 모르겠다고 심각한 불화설은 없었다는 듯한 뉘앙스로 답했다.

4. 커리어



4.1. 아이돌 시절 - 1, 2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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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이 환희[8], 오른쪽이 브라이언.
플라이 투 더 스카이도 인정했다시피 시작은 아이돌이었다. SM의 아버지 이수만이 원했던 콘셉트은 2인조 R&B 힙합 듀오. 플라이 투 더 스카이는 여타 SM 소속 가수들과 다른 점이 많았다. 우선 듀오라는 점.[9] 플라이 투 더 스카이를 벤치마킹한 이삭&지연과 천상지희에서 유닛으로 나온 다나&선데이를 제외하면 SM이 듀오를 내놓은 경우는 없었다. 또한 당시 많은 아이돌이 하우스 댄스곡을 위주로 활동했는데 이와는 달리 당시에는 생소했던 R&B 장르를 택했다. 때문인지 그들의 음반은 어렵다는 인상을 갖는 사람들도 상당수 있었다.
SM은 극초창기에 메이저와 J&J라는 듀오 그룹들을 데뷔시켰었으나, 데뷔하고 얼마 안 돼 망해버려 대중들은 그런 그룹이 있었는지 잘 모른다. 메이저가 멤버 조합이 플투와 상당히 유사했는데, 이 팀은 방송 심의에 걸려 이수만이 팀 컬러를 바꾸자고 설득한 걸 멤버 둘이 굽히면서 음악하고 싶지 않다고 버틴 끝에 해체돼 이수만이 매우 애석하게 생각했다고 한다. 그래서 이수만이 메이저를 모델로 플투를 만든 것이 아니라는 추측이 있다.
데뷔 초반까지는 문화 차이, 성격 차이로 충돌을 빚기도 했다.[10] 그러다 2집 활동 중 브라이언은 비자 문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미국으로 돌아가야 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브라이언 부모가 가수를 그만시키려고까지 했다. 그 후로도 이런저런 고생을 함께 겪으며 사이가 돈독해졌다.
데뷔곡은 'Day by Day'. 그 당시 많은 SM 가수들의 앨범에 유영진이 참여했으나 예외적으로 이들의 앨범만 참여도가 낮았다. 실력파 그룹을 표방하면서 한편으로 수정마이크를 쥐고 립싱크를 해서 욕도 많이 먹었다. 데뷔 콘셉트은 아직까지도 종종 회자되는데 환희는 라면 머리, 브라이언은 신부 머리였다. 머리가 너무 쪽팔렸던 나머지 두 사람은 숙소에 들어가자마자 울어버렸다. 2009년에선 토크쇼에서 오래된 이야기니 할 수 있는 이야기라며 당시 머리를 단호히 '그지'라며 폄하(...)하기도 했다. 상남자 성격으로 유명한 환희는 머리 뿐만이 아니라 신부 화장이나 호리호리하고 여성스러운 콘셉트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튀어야 산다는 이수만의 철학이 담긴 콘셉트이었고 그 덕분인지 1집 'Day by day'는 신인 치고 꽤나 히트해서 신인상을 수상했으며 1위 후보에까지 올라갔다. 그 뒤 후속곡인 'fly to the sky'도 10위 권까지 갔고,[11] 또다른 활동곡인 'I don't wanna say good-bye'로 짧게 활동했다.
2집 「The Promise」는 대중적인 발라드 '약속'을 타이틀로 삼았으며 앨범 전체적으로는 매우 딥한 분위기의 R&B를 시도했다. 후속곡도 대중적으로 전혀 먹힐 리가 없는 'Maybe God Knows'란 곡을 택했으며 그들 스스로도 잘 안 된 앨범이라고 인정했다.[12] 또한 환희는 이때부터 자신의 목소리에 변화를 가져가기 시작했다. 사람들에게 "'''강타, 신혜성도 목소리 똑같은데 환희까지 똑같네'''?"란 반응을 듣고 목소리를 바꾸기 시작했다고...라기 보다는, 사실 환희는 1,2집 때도 굵은 음색을 갖고 있는 편이었다. 하지만 자기 목소리 그대로를 내기 원한 환희에 비해, 소속사 측에서는 이를 극심하게 반대해 최대한 얇은 목소리로 녹음할 수밖에 없어 힘들었다고 고백했다. 말하자면, 3집 때부터 비로소 '원래 자기 목소리'를 내며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들어가기 시작한 것.

4.2. 뮤지션으로 넘어가는 과도기 - 3, 4, 5집


3집은 그들에게 매우 기념비적인 앨범이었다. 'Sea of Love'는 그들에게 처음으로 음악 방송 1위의 영광을 가져다 주었다. 이 곡은 8장의 정규 앨범 가운데 유일하게 빠른 템포의 타이틀곡이기도 하다. '''브라이언 맥나잇'''에게서 곡을 받은 사실도 큰 화제가 되었다. 곡명은 'Condition of my Heart'. 후속곡으로 잡은 뒤 방송 활동 곡명은 'My Heart'였으며 브라이언 맥나잇이 이들을 위해 쓴 곡이 맞다. 다만 나중에 다른 가수한테도 줘서 모양새가 좀... 3집 녹음 당시 비자 문제로 인해 브라이언은 미국에서 앨범을 녹음했다. 3집을 들어보면 두 멤버가 함께 부른 곡들보다도 솔로곡의 비중이 더 높다. 특히나 환희의 솔로곡이 더 많다. 심지어 컴백 후 한동안은 환희 혼자서 무대에 서야 했다.
그 뒤에 나온 4집 「Missing You」는 플라이 투 더 스카이가 뮤지션으로 발돋움하는 데 큰 영향을 준 앨범이다. 현재 플라이 투 더 스카이의 정체성을 확립한 시기라고 할 수 있다. 더불어 깊은 흉성을 사용하는 환희의 목소리가 완성된 앨범이라 할 수 있다. 4집으로 컴백한지 얼마 되지 않아 매니저가 교통사고로 유명을 달리하게 되어 'Missing you'는 세상을 떠난 고인에게 바치는 노래이기도 하다.
교통사고로 숨진 매니저 한씨의 상황은 이러했다. 플라이 투 더 스카이는 전주에 지방공연을 갔었다. 전주에서 서울로 가는 상향 고속도로에서, 환희하고 매니저 한씨는 그랜저 차량을 타고 있었고, 브라이언하고 댄서는 밴을 타고 있었다. 그런데 한씨와 환희가 타고 있던 그랜저에 엔진이 이상이 생겨버렸다. 그래서 휴게소에서 브라이언이 타고 있던 밴과 환희가 타고 있던 그랜저가 만났고, 플라이 투 더 스카이, 댄서, 매니저는 식사를 한 후, 환희는 브라이언이 타고 있던 밴으로 옮겨 탔다. 매니저 한씨만 그랜저를 타고 있게 된 상황이 된 것이다. 매니저 한씨가 플라이 투 더 스카이하고 댄서보다 먼저 휴게소에서 출발을 했다. 매니저 한씨는 새로 개통된 고속도로를 탔다. 그러다, 한씨는 환희에게 전화를 해서 추돌사고가 났으니 빨리 와달라고 부탁을 한다.
그런데, 브라이언하고 환희는 기존의 고속도로를 타버리는 바람에, 새로 개통된 고속도로하고 휴게소하고 5분도 안걸리는 거리를 1시간이 지나서야 매니저가 있는 곳으로 도착했다고 한다. 추돌사고가 벌어진 상황에다 깜깜한 밤+ 폭우라는 악조건에 매니저 한씨는 앞을 보지 못하고 가드레일을 박아버렸고, 그 사고를 처리하던 매니저 한씨를 미처 보지 못한 덤프 트럭이 한씨에게 돌진해버렸다. 그 사고로 매니저 한씨가 그 자리에서 안타깝게도 즉사해버린 사고가 있었다. 만약 환희가 만약에 매니저의 그랜저에서 밴으로 갈아타지 않았더라면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 가능성도 있다.[13]
플라이 투 더 스카이는 병원에 도착했고, 매니저의 지갑과 시신을 보고, 그 자리에서 실신해 오열했다고 한다.[14] 지금도 두 사람에게 대표곡을 물으면 주저 없이 'Missing you'를 꼽을 만큼 애착이 큰 노래이다. 앨범의 전체적인 색채도 한국 아이돌에게선 전혀 들을 수 없는 음악들이었다. 미디움 템포 등의 장르까지 소화하면서도 'Good To You' 같은 진한 R&B까지 소화해낸다.
5집 「Gravity」는 SM엔터테인먼트에서 발표한 마지막 정규 앨범이다. 타이틀곡 '중력'은 4집 'missing you'를 만든 박창현의 곡. 높은 퀄리티에도 불구하고 앨범 판매량은 기대 이하여서 많은 아쉬움을 낳았다. 마지막 앨범인 탓에 활동 말미로 갈수록 소속사의 푸쉬가 줄어들어 더욱 안타까웠다. 하지만 이 시점에 이르러서 이들은 대중에게 완전히 실력파 가수로 인정받게 된다.

4.3. 소속사 이적 후 - 6, 7, 8집


5집을 끝으로 SM과 작별하고 피풀엔터테인먼트와 계약했다. 그 과정이 힘들었던 나머지 둘 다 그 시절 언급을 피하는 편이다.[15] 브라이언은 가수를 그만 둘 생각까지 했었다. 이에 화가 난 환희는 브라이언의 집을 찾아가 싸웠다. 그 끝에 쌓여있던 열등감과 오해를 풀고 끝까지 서로를 믿어주기로 약속했다. 피풀과의 계약 후 6집을 준비하는 동안에도 많이 힘들었지만 서로를 믿고 의지하며 견뎠다고 한다. 브라이언 말에 따르면 혼자 있으면 저절로 눈물이 흐를 정도로 힘들었으나 환희와 매니저를 생각하며 이겨냈다고 한다.
이적 후 참여한 드라마 패션 70's OST '가슴 아파도'가 대박나고 이어 발표한 6집 역시 대박났다. 쉽게 말해 이때가 플라이 투 더 스카이의 리즈시절이다. '남자답게'와 ''가 연달하 히트했다. 예능 기대주로 자란 브라이언은 기세를 몰아 첫 솔로 앨범을 발매하고 환희는 드라마에 캐스팅되었다.
'My angel'이 타이틀이었던 7집은 6집에 비해 주춤했으나 차트 1위를 차지하는 등 여전히 플라이 투 더 스카이의 위력을 과시했다. 6집과 마찬가지로 황세준이 프로듀싱했으며 피풀 사장인 조규만, 그의 동생 조규찬 등의 아티스트들이 참여했다. 기면증을 소재로 한 'My angel'의 뮤직비디오에는 미야자키 아오이가 출연했다. 후속곡 사랑해의 뮤직비디오는 환희가 직접 출연했다.
8집은 여러모로 팬들에게 많은 아쉬움과 상처를 남긴 앨범이다. 8집 발매와 함께 마지막 정규 앨범이라는 폭탄선언을 날렸기 때문이다. 불과 몇 달 전까지도 리메이크 앨범 발매하고 잘 활동하던 그들이었기에 더욱 뜬금없었다. 결국 후속곡도 없이 짧은 앨범 활동을 마감했다. 훗날 밝히기를 당시 오해가 생긴 상황이어서 그랬다고 한다.[16] 두 사람의 마지막 촬영이었던 절친노트를 계기로 오해를 풀고 화해했다.

4.4. 솔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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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동안 대표적인 남성 듀오로 활동했던 플라이 투 더 스카이는 어느 이간질러의 대활약으로 인해 해체 아닌 해체를 선언했다. 아름다운 표현으로 저마다의 길이라고 한다. 저마다의 길 이후 환희와 브라이언은 각자 기획사를 세웠다.
현재까지 환희는 미니 앨범 2장과 정규 앨범 1장을 발매했다. 모두 본인이 프로듀싱한 앨범이다. 미니 앨범들은 기존 환희 이미지와 너무 다른 음악 장르를 선택한 탓인지 기대만큼 결과가 좋지 못했다. 그 사이 송지은, 메이다니 등 여러 여자 가수들과 듀엣곡을 불렀다. 첫번째 정규 앨범은 환희의 주종목인 발라드로 다시 돌아왔다. 오랜 팬 한 명이 5,000만 원 어치 버스 광고를 해주어서 화제가 되었다. 또한 일명 '환희 보이즈'라고 알려진 아이돌 그룹 마이네임을 데뷔시켰다.
브라이언 역시 본인이 직접 프로듀싱하여 정규 2집을 발매했다. 누가 같은 팀 아니랄까봐 환희와 마찬가지로 클럽 스타일의 앨범이었다. 후에 제이슨 데룰로의 'in my head'를 번안해 발표했으며 같이 무대에 서기도 했다. 제이드 빌라론과 영어로 듀엣곡을 불렀다. 이후 브라이언은 성시경, 박효신 등이 소속된 젤리피쉬엔터테인먼트로 소속사를 옮겼다. 그리고 플라이 투 더 스카이 시절부터 인연을 맺어온 황세준의 프로듀싱 하에 첫번째 미니 앨범을 발매했다. 뮤지컬에도 캐스팅되었다.

4.5. 컴백 - 9집


2014년 1월 14일, 컴백 기사가 떴다.
5월 20일 컴백한다. 5년이라는 오랜 공백을 깨고 14년 5월 20일, 9집 컨티뉴엄(CONTINUUM)으로 컴백하였다. 타이틀곡은 '너를 너를 너를'.
9집 기준으로 소속사는 환희가 운영하는 H2 미디어.
2014년 5월 30일 음악중심 1위를 차지했다.#
2014년 8월 초 나는 가수다 2014년 추석특집편에 섭외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
활동 중 SM Town 콘서트에 참여하고 이수만에게 감사 인사를 하는 등 SM과 친밀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2017년 9월 14일, 10월 5일 해피투게더 전설의 조동아리 - 내 노래를 불러줘에 모처럼 두 사람이 나섰으나, 찬스까지 동원했음에도 아무도 플라이 투 더 스카이의 곡을 불러 주지 않아 김경호에 이어 2번째로 실패하는 굴욕을 당했다.

4.6. 미니앨범


2014년 10월 5일 역대 히트곡들을 모아 리메이크 앨범을 발표했다.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진 sea of love, missing you, 남자답게 이외에도 팬들이 애정하는 그대는 모르죠 등이 수록되어 있다.
2015년 9월 14일 1년만에 컴백했다. 컴백 당일 하루종일 차트 1위를 하는 등 음원강자다운 면모를 보였다. 앨범명은 [love&hate]다. 플라이 투 더 스카이의 이름으로 발매된 첫 미니앨범이며, 더블 타이틀을 내세우며 활동했다. 유희열의 스케치북에서의 라이브가 레전드라 일컬어지며, 특히 환희의 최근 창법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좋아할 만한 라이브다. 더블 타이틀 중 하나인 ‘미워해야 한다면’은 환희가 깊이 애정하는 곡이라고 언급한 바 있으며, 콘서트 도중 이 노래를 부르면서 눈물을 흘리며 많이 아끼는 곡이라는 것을 또 한 번 보였다.
2017년 11월 5일 두 번째 미니앨범 [너의 계절]로 컴백했다. 타이틀곡은 앨범명과 똑같이 “너의 계절”이다.
2018년 11월 13일 세 번째 미니앨범 [i]로 돌아왔다. 타이틀 곡은 “헤어질 시간이 정해진...”이다.

4.7. 10집


2019년 10월 17일 10번째 정규 앨범이자 데뷔 20주년 기념앨범인 [fly high]를 발매했다. 백아연이 부르는 Day by Day, 에일리가 부르는 sea of love, 길구봉구가 부르는 Missing you 등 다른 가수들이 부르는 플라이 투 더 스카이의 명곡을 들을 수 있다. 또한 콘서트마다 팬들의 떼창을 불러일으킨 “폭풍 속의 내 이름 불러주길”의 리메이크 버전이 수록되었으며, 그외의 신곡들도 수록되어 있다. 타이틀 곡은 “추억이 돼줘 고마워”다.

5. 음반




6. 여담


  • 가족 관계는 둘 다 형 한 명이 있다.
  • 생년월일로 따지면 브라이언이 빠른 81, 환희가 빠른 82로 실질적으로 브라이언이 1살 형이지만 처음 소개받을 때 동갑으로 소개받아서 그냥 친구 사이로 지낸다.
  • 성격이 정말 판이하다. 브라이언은 붙임성이 좋아서 먼저 말을 걸면서 친하게 다가가는 성격에 하고 싶은 것도 많아서 가수 이외에 꽃꽂이, 크로스핏, 요리에도 관심이 많지만 환희는 내성적이고 과묵한 성격에다가 집돌이 기질이 있어서 밖에 잘 안나간다.
  • 2014년 유희열의 스케치북 크리스마스 특집에서는 거미(가수), 나비(가수)와 함께 '사랑해요 우리'를 불렀는데 파리(fly)로 분장하고 나왔다. 거미와 나비 역시 이름대로 분장했다. 유희열모기. 그나마 거미와 나비는 나름대로 분장이나 옷차림이 예쁘게[17] 나왔는데, 플라이 투 더 스카이는 아예 얼굴에 검댕을 칠하고 말 그대로 파리 모습으로 나왔다. 모습을 영상으로 직접 보자.

[1] 환희의 본명 황윤석, 브라이언의 본명 주민규에서 따 온 말이다. 한때 거침없이 하이킥의 이윤호X서민정 커플에 밀렸다.[2] 웃지 못할 이야기로 실제로 비행기의 비행과 비행청소년의 비행은 한/중/일 삼국에서 발음이 같다; 중-페이싱, 일본-히코우[3] 대표적으로 the girl is mine. 뮤지컬처럼 댄스 퍼포먼스를 선보이는데 컴백 이후엔 안무가 덜 격해질 것이라고 추측했지만 이젠 연속 백 텀블링에 윈드밀(!)까지 하면서 더 격해졌다.(...)[4] 당시 SM에 소속되어 있던 때였고 그 당시 스폰서였던 AVEX와 SM이 맺은 제휴 관계 때문에 일본 측에서 '이누야샤의 주제곡은 SM에서 제작했으면 좋겠다.'고 요구해서 TV판 1기를 제외하곤 SM 가수들의 노래를 타이업하거나 로컬라이징할 경우 SM 소속 연습생이나 가수들이 불렀다.[5] 남자 듀오는 붙여놓으면 자주 싸워서(...) 처음부터 잘 기획하지 않는다는 말도 있다. 플라이 투 더 스카이의 경우 성격도 정반대였고 브라이언이 교포인 관계로 문화적 차이까지 겹쳤으니 이만하면 원만하게 잘 지낸 건지도 모른다. 성격이 첨예하게 다른 두 사람 때문에 휘성은 중간에서 고민 상담 셔틀이 되기도 했다.[6] 최근 라디오 스타에 나와 브라이언이 이와 비슷한 말을 또 했는데 김구라가 이를 듣고 "니가 그렇게 속이 깊은 줄 몰랐다"고 말했다(...) [7] 강심장에서 브라이언은 환희와의 불화 때문에 죽음을 생각했을 정도로 힘들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8] 이 머리는 속칭 라면 머리라고 하는데, 환희는 이 머리가 너무 하기 싫어 울었다고 한다.[9] 대놓고 커플 놀이 하라고 만든 그룹이냐는 시선 역시 존재했다.[10] 특히 음식 문제로 자주 싸웠다. 환희는 한식을, 브라이언은 양식을 고집했다.[11] 댄스곡인데 춤이 꽤나 격렬하다. 무대에서는 노래 후반부에 환희가 윈드밀을 한다.[12] 그래도 타이틀곡은 20위 권에 들면서 선전했다.[13] 2018년 12월 18일에 방송된 <휴먼다큐-사람이 좋다>에서도 브라이언이 언급했다.[14] 고인은 보아와 플라이 투 더 스카이의 매니저를 맡고 있었다. 고인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플라이 투 더 스카이는 한동안 근조 리본을 달고 활동했다. 보아는 활동 중이던 '아틀란티스 소녀' 대신 발라드곡인 '나무'를 부르다 그만 눈물을 흘렸다.[15] 너희들은 SM 나가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등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고 한다. 때문에 둘은 6집에서 '남자답게'로 첫 1위를 했을 때가 가장 기뻤다고 회상한다.[16] 심지어 심할 때는 같은 대기실조차 쓰지 않고 따로따로 있을 정도.[17] 이것도 거미는 처음엔 도저히 못하겠다고 반대하다가, 제작진과 타협해서 맞춘게 이 정도라고.